• 내가 ‘신자유주의환원론자’라굽쇼?
    87년 체제는 죽었다…편향을 넘어서
        2009년 09월 16일 07: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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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호철 교수(사진=레디앙) 

    영어에 ‘허수아비 두들겨 패기’라는 표현이 있다. 논쟁을 할 때 남의 주장을 왜곡해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고 이를 두들겨 패 KO시킨 뒤 이겼다고 만세 부르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맑스는 경제결정론이라 틀렸다"는 우파의 상투적인 주장이 그러하다.

    물론 맑스가 토대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상부구조는 나름의 ‘상대적 독자성’(상대적 자율성)이 있고 토대에 반작용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고 말했다.

    즉 일종의 다이내믹한 ‘상호작용론’인데 이를 조야하고 일방적인 토대결정론이라는 허수아비로 왜곡한 뒤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손호철 허수아비 만들기"

    나의 체제론을 둘러싼 논의가 그러하다. 나는 ‘한국체제논쟁을 다시 생각한다'(이하 ‘한국체제’)는 글을 「한국과 국제정치」 2009년 여름호에 발표했는데 이에 조희연, 서영표 교수가 ‘체제논쟁과 헤게모니 전략’라는 반론을 「마르크스주의 연구」 2009년 가을호에 제기했고, 이를 <레디앙>이 ‘손호철 97체제론은 경제주의적 편향'(2009년 9월 10일자)라는 기사로 요약, 소개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나의 주장이 신자유주의와 반신자유주의 투쟁만 강조하는 ‘경제환원론자’, ‘신자유주의환원론자’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경제환원론자, 신자유주의환원론자 손호철’이라는 허수아비가 만들어진 것이다.

    구체적으로 반MB연합과 반신자유주의연합의 문제와 관련시켜 조희연, 서영표는 나의 입장을 “‘경제환원주의’ 혹은 신자유주의 환원주의적 접근”으로 몰면서 반신자유주의 전선 이외에도 국민정치적 공간을 사고할 수 있는 “급진민주주의적 헤게모니 전략의 관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182쪽)

    문제의 기사 역시 기자의 요약인지, 조희연, 서영표의 인용인지 알 수 없지만, “손호철 교수는 ‘08년 체제는 IMF 이후 서민대중이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되는 97년 체제의 하위체제’로 분석하며 ‘87년 체제 형태의 정치적 민주주의 중심으로는 현재 모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고, 과거 ‘비판적 지지’의 단점도 상쇄할 수 없기에 ‘반신자유주의 연대’로서 대항헤게모니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고 보도했다.(이 기사 자체는 틀린 주장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MB투쟁에 대한 나의 주장은 완전히 생략해 나를 반신자유주의환원론자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마찬가지다)

    조희연과 서영표의 주장을 인용한 기사 제목대로 나의 97년체제론이 경제주의적 편향인가 등은 긴 논쟁이 필요한 주제로서 나는 이에 대해 내 자신이 수긍하는 내용에서 반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사회학적 서술주의와 추상성의 혼돈을 넘어서: 조희연, 서영표 체제론에 대한 반론’이란 글로 완성해 「마르크스주의 연구」 2009년 겨울호에 기고한 상태이다. 따라서 이 글이 나오면 이를 참고하기 바란다.

    다만 나의 주장을 ‘경제환원론자’, ‘신자유주의 환원주의자’로 그리는 것은 중대한 왜곡이기에 이와 관련된 부분과 <레디앙>에 인용된 조희연, 서영표의 비판만은 우선 <레디앙>을 통해 바로잡아 보고자 한다. 조희연, 서영표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나의 논문 ‘한국체제’의 핵심내용은 다음과 같다.

    97년체제

    1. 체제는 경제체제와 정치체제로 구성된 ‘사회체제’와 헌법체제, 노동체제, 젠더체제 같은 다양한 ‘부분체제’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헌법체제 등 일부 ‘부분체제’로는 아직도 87년체제가 유효하지만 사회체제는 ‘97년체제’가 87년체제를 대체했다.

    2. 한국은 48년의 극우반공체제를 61년 개발독재체제(경제체제-국가주도형 발전국가체제, 정치체제-종속적 파시즘)로 대체했다가 87년 체제가 이중 정치체제를 민주화시켰고, 97년에는 나머지 경제체제가 신자유주의체제로 전환되어 97년체제로 변화했다.

    3.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08년체제는 97년 체제의 특징인 신자유주의(경제)와 제한적 정치적 민주주의(정치)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97년체제의 대체가 아니라 이의 하위체제다. 이 08년체제는 정치체제에서의 민주주의 후퇴, 경제체제에서의 김대중, 노무현의 ‘좌파신자유주의’로부터 ‘우파신자유주의’로의 변화, 분단체제라는 면에서 2000년(평화)체제에서 냉전체제로의 변화를 특징으로 한다.

    4. 결국, “현재의 한국에서 반신자유주의가 주모순이고, 반MB는 주모순의 주된 측면이다”(손호철, ‘바보 노무현 계승자는 진보정치’. <레디앙>, 2009년 6월 23일자 인터뷰). 따라서 97년체제와 관련해 반신자유주의 투쟁만 강조하는 것은 좌익소아병, 반대로 08년체제와 관련한 반MB투쟁 대동단결론은 우편향이다.

    정세에 따라 “반이명박연합과 반신자유주의연합을 결합하는 지혜”, “당장 눈앞의 투쟁인 08년체제의 문제, 나아가 보다 심층적인 97년체제의 문제를 적절히 결합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손호철, “문제는 반MB연합과 반신자유주의연합의 결합이다.” <한겨레>, 2009년 6월 18일자)

    반신자유주의-반MB 투쟁 결합시켜야

    이처럼 나는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강조했지만 반신자유주의 환원론자가 아니라 반MB 투쟁의 중요성도 인정해온 반신자유주의-반MB 결합론자이다. 특히 MB의 우파신자유주의 정책만이 아니라 정치적 민주주의 공격과 냉전적 대북정책에도 주목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경제환원론이고 신자유주의환원론이라니 어안이 벙벙하다.

    <레디앙> 기사에도 인용한, 손호철 같이 “지난 민주정부 10년과 이명박 정부를 동일시하는 프리즘으로는 ‘풍부한’ 반신자유주의적 정치, 나아가 국민정치적 공간에 대한 ‘유연한 헤게모니적 전략’의 가능성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조희연, 서영표의 주장도 그러하다. 내가 김대중, 노무현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동일시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08년체제라는 하위체제를 이야기하고 좌파신자유주의와 구별되는 우파신자유주의와 2000년 평화체제와 구별되는 08년 냉전체제 등을, 반신자유주의와 구별되는 반MB를 이야기하겠는가?

    하위체제란 동일시가 아니라 김, 노정부와 MB간의 단절성과 연속성을 동시에 사고하기 위한 개념이다.
    조희연, 서영표가 반신자유주의 이외에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국민정치’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나와 운동권이 그같은 ‘유식한’(‘국민정치’) 용어를 잘 몰라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지, 나와 운동권이 사용해온 ‘반MB(국민)전선’이란 용어와 국민정치가 내용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마지막으로, 조희연, 서영표는 나의 97년체제론 대신에 ‘87년-97년 관계론’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왜 87년론이 아직도 필요한지 이해가 되지 않다. 우선 87년의 유산인 정치적 민주주의는 97년의 정치체제에 계승되어 따로 논의할 필요가 없다.

    87년체제에 합당한 장례식을

    ‘한국체제’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97년체제는 단순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아니라 여기에 87년의 유산인 제한적 정치적 민주주의의 유산을 계승발전시킨 정체체제가 결합한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넘어서 조희연, 서영표는 “87년 체제가 다양한 정치적 입장들이 분화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경제적, 사회적 민주화가 쟁점으로 등장한 시기”이며 “제한된 형태이지만 경제적 심급에서도 어느 정도의 진전을 성취”해 “노동자의 권리, 인권의 확장 등 개혁적 조치들이 이루어지고 자본과 권력의 힘을 압도하지 못해도 자본주의를 규율․통제하는 흐름이 충분한 힘과 공간을 갖고”있었기 때문에 87년체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그렇다. 87년체제에 작지만 경제적 민주화가 일어났다. 그래서 나는 ‘한국체제’에서 이를 ‘완화된 발전국가‘라고 표현해 변화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것이 발전국가를 넘어서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로 간 것은 아니기에 추상성 수준에서 체제 수준의 변화는 아니었다.

    이들이 ‘자본주의대 민주주의’라고 표현한 다양한 진보적 투쟁을 나의 87년체제 분석이 보고 있지 못하다는 주장도 잘못이다. 그렇다. 다양한 진보적 투쟁이 있었다. 그러나 운동과 체제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사회주의 투쟁이 있었다고 당시의 체제가 사회주의체제인가? 체제는 아니더라도 하다 못해 ‘사회주의적 우클라드’라도 만들었나?

    조희연, 서영표가 이들 운동을 계승하기 위해 87년체제를 아직도 붙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97년체제하에서도 민주노총, 민교협, 문화연대, 진보연대, 사노련, 사노준.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등 그 같은 운동은 계승되고 있다. 따라서 이 같은 운동을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죽은 87년체제를 붙잡고 있다고 사그라진 운동이 살아나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죽은 87년체제를 붙잡고 있는 ’87년-97년 관계론‘이 아니다. 오히려 반신자유주의와 반MB를 복합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97년-08년 복합체제론(08년은 하위체제라는 점에서 대문자 97년에 소문자 08년으로 표기된)‘이다. 이제 87년체제에게 그에 합당한 장례식을 지내주고 우리의 현재와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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