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자회담 원하면 남북관계 정상화를"
    By 내막
        2009년 09월 16일 0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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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북미 양자대화 수용을 발표하면서 한반도 정세의 근본적인 변화가 예견되고 있다. 9월말~10월초로 예상되는 첫 대화에서 북미 양국은 6자회담 개최 여부 및 북한의 핵포기와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철회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일 것이다.

    또한 중국 건국 및 북중 수교 60주년을 맞이해 북중 양국의 최고위급 인사들의 상호 방문도 예상된다. 아울러 일본 민주당 정권 출범을 계기로 북일간의 대화도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반도 정세의 근본적 변화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기다리기 모드’이다. 선제적·적극적 대응으로 급변하는 정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도모하기보다는 북미 대화를 지켜보고 판단하겠다는 ‘뒤따라가기식’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많은 우여곡절 끝에 찾아온 기회를 이명박 정부가 또 다시 방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지켜보자(wait and see)’를 견지하는 데에는 두 가지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아직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MB 정부가 세운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 여부의 판단 기준은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이다.

    최근 북한이 대화에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이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구도에 균열을 내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정부 내에서 여전히 강하다. “근본적 변화가 아니라 전술적 변화”라며,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둘째는 통미봉남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MB 정부는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과 취임 직후에 제기된 바 있는 통미봉남 우려를 해소하고 강력한 한미공조를 구축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이러한 자신감은 앞으로도 북미 대화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의 변화에서 한국이 소외될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을 낳고 있다.

    외교를 통해 달성해야 할 목표를 대화의 조건으로?

    그러나 MB 정부의 이러한 인식과 판단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우선 북한의 근본적 변화 여부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유도하고 확인해야 할 사안이지, 이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것은 외교의 기본을 무시한 접근이다.

    더구나 북한은 9월 4일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선반도 비핵화와 세계의 비핵화 그 자체를 부정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이는 핵포기 불가를 고수했던 기존 입장에 비해 한결 유연해진 것으로, 북한이 ‘조선반도 비핵화’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겠다는 것을 암시한다.

    통미봉남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근 남북관계 정상화 의지를 강력하게 밝히고 있는 쪽은 남측이 아니라 북측이다. 그러나 정부는 먼저 대화를 제의하지 않겠다는 희한한 원칙을 세워, 모처럼 찾아온 남북관계 정상화 기회를 유실시킬 위험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북한의 위성 발사와 2차 핵실험을 계기로 추구했던 통미봉북, 즉 강력한 한미공조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고 굴복시키겠다는 접근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력한 한미공조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도 미지수이다. 동맹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 원칙은 “적대국 지도자들과도 직접 대화를 하겠다”는 개입정책과 상충한다. 결국 이 둘이 상충할 때, 오바마 행정부는 국익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고, 이에 따라 북한이 ‘통 큰 제안’을 들고 나올 경우 한미공조에 집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내년 5월 핵확산금지조약(NPT), 이란 핵문제 해결,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북핵 문제의 해결은 오바마 행정부에게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또한 부시 행정부가 일본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 교훈을 MB 정부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6자회담 재개, MB 손에 달렸다

    정부가 북한에 1차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이다. 북미 직접대화가 시작되어도 이 문제가 핵심 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미국 국무부는 “6자회담이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며, “6자회담 틀 밖에서는 실질적인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고, 북미 양자회담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예비회담’의 성격이라고 못 박고 있다.

    이에 따라 북미 양자대화를 6자회담의 ‘대체재’로 간주하는 북한과 ‘보완재’로 여기는 미국 사이의 힘겨운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한반도 비핵화가 북미간의 사안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비핵화의 성공 여부에 따른 득실관계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나라들이 남한을 비롯한 북한의 인접 국가라는 점에서 6자회담을 되살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또한 현실적으로 북한 핵포기의 상응조치로 거론되는 경수로 사업,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대규모의 경제 지원, 한미동맹의 변화 등은 한국의 동의와 참여 없이 이뤄질 수 없다.

    그러나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북한이 6자회담을 거부하는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공식적인 입장은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과 평화적 발전권을 난폭하게 유린하는 데 이용된 6자회담 구도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는 6자회담 참가국들이 지난 4월 5일 북한의 위성 발사를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 문제 삼은 것에 대한 반발을 의미한다.

    이를 뒤집어보면, 6자회담 참가국들이 북한의 위성 발사 권리를 비롯한 자주권과 평화적 발전권을 존중한다면,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향후 핵문제와 함께 북한의 로켓 문제가 뜨거운 쟁점이 될 것임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북한이 6자회담을 거부하는 속사정은 또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은 6자회담에서 일본과 함께 찰떡궁합을 이루면서 대북 강경 자세를 선보였다. 대표적으로 작년 12월 6자회담에서 북핵 검증을 에너지 지원과 연계했고, 이는 6자회담 파탄의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다.

    이는 MB 정부가 계속 북핵 검증과 에너지 지원을 연계하면 6자회담이 열리더라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을 것임을 예고해준다. ‘2012년 강성대국’을 앞두고 속도를 내고 싶어 하는 북한으로서는 구도도 바뀌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6자회담을 선호할 까닭이 별로 없는 것이다.

    결국 6자회담의 재개 여부는 남북관계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가 정상화되고 상호간의 불신이 줄어들면, 남한의 6자회담 참가에 대한 북한의 거부감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MB 정부가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라도 조속히 남북대화를 제안해 신뢰구축과 정상화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민주당 정권 출범을 계기로 북한의 대일 불신이 완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 역시 한국 정부의 입장이 더욱 중요해지는 요인이다.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최근 쓴 책으로 ‘오바마의 미국과 한반도, 그리고 2012년 체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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