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조기 졸업이 김대중 업적?
    2009년 09월 15일 03: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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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우리 현대 정치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김대중 전대통령이 생을 마감했다. 정부, 여권에서는 소위 지난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 국면에 대한 학습효과 탓인지 서둘러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나서서 애도를 표하고 약간의 논란이 있긴 했지만 현직으로서 사망했던 박정희에 이어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후 두 번째로 국장을 엄수하도록 했다.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진보정당들 역시 이에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추모와 애도의 분위기에 동참했다. 특히 국장 기간 동안 민주노동당의 홈페이지는 온통 검은 색으로 장식한 초기화면을 통해서만 비로소 진입할 수 있게끔 꾸며지기도 했다.

제도권과 재야의 경계선에 위치했던 김대중

70년대 이래 이미 오래전부터 김대중은 진보진영에 있어서 논란거리였다. 사실 그는 진보진영이 제도권 영역에서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제도권과 재야의 경계선에 위치해 있으면서 적어도 제도권 내에서는 가장 개혁적이고 진보적이었다.

그래서 그의 정치적 성향,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은 진보진영내에서의 다른 정치, 이념적인 문제와 얽히면서 항상 핵심적인 이슈 중의 하나를 형성하고 있었다. 중요한 정치적 격변기라 할 수 있는 87년 대선 때는 그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둘러싸고 진보진영내에서 각 정파들이 서로 의견대립으로 다투며 갈라졌고 그 때의 분립 구도는 얼마간의 변화를 거치며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진보진영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여기에서는 그의 정치적 역정 전체에 대한 평가보다는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정책, 특히 IMF와 관련한 그의 정책과 태도에 대한 평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IMF 체제 조기 졸업이 김대중의 업적?

여론 조사에서 보면 대체로 국민들은 그의 업적으로 민족 화해와 민주주의의 진전을 한축으로 꼽고 또 다른 한축으로는 IMF체제 조기 졸업을 들고 있다. 민족화해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극단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인정하는 바일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IMF체제 대응 문제에 대해서는 그의 치적으로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여론 조사가 어떻더라도 말이다. 어쩌면 국민들이 기만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국민들이 속았다면 어떻게, 왜 속았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 정치의 문제를 보다 분명히 드러내고 다음에도 그런 기만을 당하지 않기 위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다. 사실 IMF 체제 대응 문제는 민중적 입장에서 볼 때 민족화해나 민주주의 발전 보다 더 원초적이다. 민중들의 생존권적 문제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을 가능케 한 것들

먼저 IMF체제를 맞은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야권 후보인 김대중이 당선되었는지를 한번 보자. 그의 대통령 당선은 IMF외환위기를 초래한 김영삼 정권, 보수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87년 이래 꾸준히 성장한 민주역량의 성장이 이룬 것일까?

흔히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을 대한민국 최초의 수평적 정권 교체라고 한다. 어쩌면 해방 이후 지속적인 수구보수 여당의 집권으로 절망하고 있던 국민에게 국민 스스로의 힘에 의한 정치적 승리와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몇 가지 정황을 보자. 누구는 김대중 당선의 중요한 동인으로 DJP연합을 꼽는다. 야권이 단일화했기 때문에 당선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야권 단일화가 왜 가능했을까? 오히려 이상한 것은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여권이 분리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여권 대선 경쟁에서 탈락한 이인제가 출마 했고 실제로 그의 득표는 김대중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전 대선을 둘러싼 레이스에서도 이종찬, 박태준 등 많은 대권 후보군들이 있었으나 어느 누구도 여권 대선 경쟁에서 밀려난 자가 당당히 대선 후보로 출마한 적이 없었다. 뒤로 어떤 정치적 공작과 압박, 회유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두 탈락했었다.

미국의 이례적인 정치적 중립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과 경쟁하던 이회창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 정계 고위층 누구도 만나주지 않았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전 김영삼이나 노태우 등은 모두 대권 후보 시절 미국 대통령과 직접 만나고 사진을 찍고 하던 때와 확연히 비교된다.

또 국내적으로 보더라도 그렇다. 권력과 가장 밀접하게 결합해 있고 권력 추이에 누구보다도 민감한 검찰의 태도도 과거와 달랐다.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은 김대중 대통령 후보에 대한 조사를 전격적으로 대통령 선거 이후로 미루겠다고 선언하면서 사실상 김대중의 손을 들어줬다. 어디 그뿐인가? 당시 국민회의의 정보력은 이미 여권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줬다.

박지원 등 유능한 미국통들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그것이 가능했을까? 사실 DJP연합이 있기 전에 소위 뉴 DJ플랜을 통한 김대중의 우경화가 있었다. 김영삼 정권 말기 클린턴 행정부는 대북 정책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김영삼 정부의 좌충우돌식 정책과 소소하지만 잦은 충돌을 일으켰다. 미국과 클린턴 행정부로서는 미국의 정책(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과 북한 연착륙 정책 등)에 잘 따르면서도 합리적인 면모를 가진 김대중이 훨씬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이런 정황을 볼 때 적어도 한국 정치권력의 동향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과 이에 민감한 국내의 영향력 있는 권력기관이 김대중에 대한 암묵적 지지를 하고 있었으리라는 추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최소한 일방적으로 여권을 지지했던 그전 시기와는 달리 정치적 중립 정도는 확실히 지켰다는 것이다.

IMF, 김영삼 정권 무능과 재벌 탓 무리

나는 초등학교 시절 조선이 패망한 원인은 문호를 일찍 개방하지 않고 쇄국정책을 폈기 때문이라고 듣고 배웠다. 일본은 일찍 개방해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서 발전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해 뒤떨어져서 망했다는 것이다. 더 커서는 조선의 멸망이 조선 봉건세력의 부패와 무능 때문이라는 주장을 접하게 되었다. 그럴 듯 했다. 패망의 원인을 단순히 쇄국정책으로 돌리는 것보다는 훨씬 주체적인 시각으로 보였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와 IMF 관리체제가 되면서 줄기차게 들어온 이야기도 이런 논리인 것 같다. 박정희 시대부터 개방을 부르짖으며 우리는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수출 입국 정책이야말로 우리의 살길이라면서 수출 몇 억불 시대가 매년 경제정책의 핵심 캐치 프레이즈가 되던 시기가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충분히 개방이 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논리와 더불어 관료의 부패 무능과 재벌 경제의 문제가 IMF 관리체제를 가져왔으므로 이를 혁파해야 한다는 것이 김대중 정부의 IMF체제에 대한 입장이었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의 투명성 제고가 이야기 되고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이 비판되면서 각 계열 기업의 독립과 주력 기업을 제외하고 경쟁력이 약한 계열 기업의 해외 매각이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강제되었다. 자본시장, 금융시장은 더욱 급격하게 개방되었다.

IMF 체제, 초국적 투기자본의 이익 위한 것

조선의 멸망이 봉건관료세력의 부패와 무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일면 맞다. 그러나 그것만 주장하면 자칫 엉뚱한 함정에 빠져들기 쉽다. 실제로 일본과 친일세력들의 주장이 그렇다. 조선의 직접적인 패망의 원인은 무엇보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행위이다.

만약 일제의 침략이 없었다면 봉건세력의 부패와 무능은 반란이나 민중들의 봉기 등을 야기시켜 다른 내부적 변화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산업의 발전과 경제의 성장도 그것이 제국주의의 침략적 이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중적, 민족적 이해를 위한 것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외형적, 수치적 성장으로 발전과 진보를 논할 수 없다. 

초국적 외래자본의 이익 실현 수단으로 왜곡된 ‘개혁’ 

재벌이 부패했고 한국 경제가 왜곡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초국적 자본, 외래 투기자본과 그들의 대변자인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 진실로 올바른 개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실제로 개혁의 주도자가 어떤 세력이냐에 따라 그 내용은 본질적으로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주도 세력이 외래자본의 이익을 대변할 때 기업의 투명성 제고나 경쟁력 없는 부문 퇴출과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통한 재벌 개혁 등은 그들 외래자본의 국내 자본잠식과 침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어떠했는가! 외국자본의 국내 시장 잠식에 대한 각종 규제가 IMF 관리체제하에서 김대중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에 따라 빠른 속도로 풀리면서 삼성, 대우차의 해외 매각, 외환은행의 해외 투기자본 론스타 매각을 비롯해서 삼성전자, 삼성화재, 포스코, 현대자동차, 현대 미포조선, SKT, E마트 등 국내 우량 기업들의 외국 소유지분 비율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국민은행, 하나 금융지주를 비롯하여 대구은행, 부산은행 등 지방 금융권까지 금융 시장 역시 급격하게 외국인이 잠식해 들어갔다.

최근 증시활황의 지표를 외국인의 투자 동향에서 찾는데에서도 쉽게 이를 가늠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의 침투를 보다 확대할 수 있도록 KT 등 공기업의 민영화가 이루어졌다. 초국적 자본, 외래 자본의 국내자본, 금융시장의 잠식은 곧바로 그들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동통제 강화를 동반하게 됐다.

소위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추진되었고 이로부터 비정규직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를 전 사회적으로 볼 때는 양극화의 심화로 귀결되었다. 최근 연일 IT나 반도체 부문에서 삼성전자나 LG 전자 그리고 자동차 부문에서 현대자동차의 기술력과 국제시장에서의 시장 점유률 확대가 언론에 오르며 국가적 영광으로 포장되어 선전되는데 그것이 비록 허구적인 민족적 자부심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줄지는 모르지만 우리 민중적 삶을 개선시키는 데는 그다지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한다.

IMF 졸업은 또다른 입학

따져보면 결국 IMF 관리 체제로부터 일찍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초국적 외래자본과 미국이 그들 이익의 대변자인 IMF관리체계를 통해 애초에 그것을 통해 그들이 얻고자 했든 것을 김대중 정권의 적극적인 협조해 의해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IMF관리체제의 종료와 함께 완결된 것은 아니지만 향후 그렇게 되기 위한 발판을 충분히 닦아놓았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초국적 외래자본의 국내시장 잠식, 공기업 민영화 정책 비정규직 양산, 양극화 심화 등이 노무현, 이명박 정권으로 확대 심화되면서 이어져 왔다.

김대중 정권의 IMF 정책의 본질에 대해서 다소 투박하지만 정리해봤다. 사실 우리 진보 민중진영은 그 성격에 대해서 복잡한 이론적 인식은 가지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미 당시에 피부로 느꼈기 때문에 부르주아 제도권 세력의 현혹과 선전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권 퇴진까지 주장하며 그의 반민족적, 반민중적 정책에 저항했던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런 투쟁에 실질적으로 동참했던 진보진영 상층부의 상당수가 벌써 그것을 잊어버린 것 같다. 지금 이명박 정권이 과거 87년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듯 워낙 퇴행적인 정치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이명박 정권에 대항하는 연대의 폭을 확장시키고 국민적 정서에 부응하기 위해서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물론 민주주의나 인권문제, 대북정책 등에서 이명박 정부가 그런 행태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민중의 삶을 피폐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경제, 사회적 문제는 김대중 정권의 정책적 유산이다. 정치적 노련함과 기교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민중들을 기만하고 자신의 정체성마저 훼손시키거나 혼란에 빠지도록 해서는 안된다.

대충 이야기는 끝난 것 같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한 두가지 첨언하겠다.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에 대한 정황 설명은 결코 모든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뒤에서 결정된다고 하는 음모론이나 또한 결국 엄청난 힘을 가진 미제국주의에 의해서 모두 결정되고 만다는 민중의 역동적 역량을 무시한 패배주의적 시각을 두둔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다만 김대중 정부의 정책이 민중들의 요구와 열망을 수렴하고 표출하는 과정으로서 행해진 것이 아니라 외래 자본을 중심으로 한 세력에 굴복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 민중들의 요구를 짓밟고 왜곡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그래도 김대중 전대통령이 민주주의의 발전과 민족화해에 나름대로 기여한 점이 있고 또한 진보진영이 제도 정치권으로 까지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시켜 그 공간에서 현실적인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죽음에 대해 얼마간의 애도의 감정을 표하는 것을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계를 넘어서서는 곤란하다. 진보이념의 정체성 혼란을 가져올 수 있고 상층의 정치적 입신을 위해서 민중을 배신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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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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