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로소득 비판에서 "부자되세요"까지
        2009년 09월 15일 08: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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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외환위기 발발로 가장 불명예스러운 대통령이 되어 버렸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금도 금융실명제를 자신의 최고의 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외환위기 와중에서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폐지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빼놓고 있지 않다.

    김대중 정부는 2001년에 금융소득종합과세를 다시 도입했지만 과연 금융소득종합과세를 4년간 유보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하여튼 한국 세제사에서 금융실명제만큼 뜨거운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제도도 없을 것이다.

       
      ▲ 2002년 "부자되세요"로 인기를 끌었던 모 카드회사 TV광고

    역시 이 모든 논란은 박정희 정부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경제성장을 위한 저축 증대를 위해 박정희가 5. 16. 쿠데타 이후 도입한 제도는 이자배당 소득세 폐지, 가차명 거래 허용이었다. 즉, 저축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자가 발생하더라도 세금도 걷지 않고 설사 가명이라고 하더라도 보호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1962년 세법 개정 때부터 논란이 있었다. 노동자와 사업자 모두 과세를 하면서 유독 이자를 받는 사람만 과세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쉽게 정당화될 수 없었다. 이러한 논란 때문에 이자소득에 대해서 1971년부터는 5%의 세율로 과세하기는 했지만 다른 소득에 비해서는 저율과세가 아닐 수 없었다.

    2.

    고도성장이 지속되면서 한국에도 거대한 부를 축적하는 계층이 생겨났다. 그들은 전통적 의미의 산업자본가인 경우도 있었지만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시세차익을 통하여 부를 축적한 자들이었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산업자본가들 또한 투기를 통한 부의 축적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왜 재벌들은 비업무용 토지를 그토록 많이 보유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부동산을 통하여 실현한 거대한 이익에서 발생하는 이자에 대해서 전혀 과세되지 않았고 이는 명백히 사회정의에 반하는 것이었다. 이 때부터 ‘불로소득’ 내지 ‘불로소득자’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게다가 금융실명제는 두 번이나 시행이 좌초되었다. 1980년대의 희대의 금융사기 사건 때문에 정부는 그 실시를 고려하다가 법률만 만들고 실시시기를 시행령으로 위임하게 되었다. 토지공개념을 강력하게 실시했던 노태우 정부도 금융실명제만큼은 계획대로 실시하지 못했다. 당시 속설은 대통령이 정치자금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해 실명제를 유보하였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금융실명제가 정치적 상징성을 띤 것은 당연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금융실명제는 경제정의요 이를 반대하는 것은 특권과 부패를 용인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이 중심에는 새로운 상황에서 만들어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라는 시민단체가 있었다. 시민단체가 해방 이후 시행한 최대의 정치선동이 바로 금융실명제였다.

    경실련은 집요하게 금융실명제 실시를 요구하였고, 이것은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서 경제적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대의 요구에도 맞아 떨어졌다. 당시 사회분위기는 불로소득자에 대한 반감이 컸고, 9시 뉴스에서도 특권층의 무분별한 소비행태를 공격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은 이 불로소득이라는 용어가 별로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자되세요”가 인구에 회자되고 누구나 불로소득자가 되고 싶어하는 현실에서 더 이상 이 부정적 용어는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에 이르기까지 불로소득자는 한국의 부유층의 문제점을 한마디로 드러내는 상징성 강한 용어였다.

    당시 경실련의 정치적 도덕적 위세는 필자의 기억에도 당시 현존하던 거의 모든 세력을 압도할 정도로 강하였고, 1980년대 혁명을 꿈꾸던 일부 정파는 자신의 노선을 접고 경실련에 통째로 들어가기까지 할 정도였다.

    3.

    사실 금융실명제는 그 자체로는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금융실명제를 찬성한 사람도, 반대한 사람도 그들이 주장했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금융실명제 실시 때문에 경제정의가 갑자기 세워진 바도 없고, 정치권의 비리가 갑자기 근절되지도 않았으며 금융실명제 때문에 금융시장에 극도의 혼란이 발생한 적도 없었다.

    금융실명제는 소득세의 공평한 과세를 위해 필요한 제도에 지나지 않았고,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실시하지 않는다면 공평과세와도 무관한 제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금융실명제는 필요한 제도이기는 했지만 그 제도의 효과는 과대평가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 실시도 매우 드라마틱하였다. 김영삼은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를 긴급재정경제명령 형태로 전격적으로 발동하였다. 주무부처 장관도 몰랐다는 이 전격성은 금융실명제가 그만큼 중대한 것이기 때문에 합리화되었다.

    당시에는 일부 사람들만 논란을 벌였으나 원래 긴급재정경제명령은 헌법 상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가능한 것이었고,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알 수 있었지만 당시 상황은 헌법 상 요건에 전혀 충족되지 않은 것이었다.

    헌법재판소는 한 변호사가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서 대통령의 넓은 재량을 인정해 헌법위반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당시 국회가 폐회 중이었기 때문에 국회가 소집될 때까지 기다릴 경우 각종 경제혼란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명백히 정치적 판단이었고 아마도 당시 분위기에서 대통령의 긴급재정명령을 위헌이라고 했다면 아마 헌법재판소는 존폐위기를 맞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4.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금융실명제를 하면 당연히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하여야 하고 실제 그 내용이 어느 정도인가가 문제가 되었다. 여기서부터 희극이 시작된다. 가장 큰 문제는 금융실명제가 차명거래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는 데에 있었다.

    가명거래는 금지되었는데 당연히 조세정의를 위한다고 한다면 차명거래도 근절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차명으로 금융자산을 분산시킨다면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한다고 하여도 그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금융실명제가 시행된지 16년이 지난 2009년 3월 21일에 이르러서야 대법원은 차명계좌도 예금명의자 소유로 보아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렸다. 금융실명에 따라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예금계약이 체결된 경우에는 명의자가 예금계약자이기 원칙적으로 명의자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전에는 예금 출연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 약정에 의하여 은행을 상대로 예금반환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였던 것이다. 즉, 16년간 동안이나 금융실명제는 차명거래를 허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세율과 과세범위 문제를 들 수 있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후 금융소득종합과세가 1996년부터 실시되었는데 과표가 양성화되었다는 이유로 소득세 최고세율은 50%에서 40%로, 20% 원천징수하던 이자소득세는 15%로 세율인하를 단행한 것이다.

    불로소득자에 대한 감세를 한 것이고, 이후 이 세율을 계속 낮추어 온 것이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였다. 금융소득종합과세는 연간 이자, 배당소득이 4,000만원 이상인 경우에만 대상자로 했는데 이 또한 대상자 수가 너무 적은 것이었다. 다른 소득은 1원만 있어도 합산과세하는데 왜 유독 이자배당소득만 4,000만원이 넘어야 합산과세하는지 문제는 여전히 남았다.

    이렇게 약화된 금융소득종합과세는 그 실효성이 의문시될 수 밖에 없었고, 외환위기 상황에서 4년간이나 폐지되게 된다. 그 폐지 이유 또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외환위기 상황에서 거의 모든 정부가 강요받는 정책은 달러를 받아들이기 위한 고이자율 정책이었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제는 외국인의 경우에는 조세조약 때문에 과세하는 것 자체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폐지한다고 해서 외국인이 한국에 더 많은 돈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이자를 받아가는 경우 한국 국내에 고정사업장이 없는 경우에는 우리 정부의 이자에 대한 과세권은 12%로, 일본인의 경우에는 10%로 제한된다. (이자만이 목적이라면 미국인이나 일본인이 굳이 한국에 고정사업장을 둘 이유가 없을 것이다.)

    결국 금융소득종합과세의 폐지로 인하여 이득을 본 것은 한국의 자산가들이다. 한국정부는 고율의 이자수입을 올리는 이들이 심하게 말하면 외국으로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하여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폐지하였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외환위기 직후 한국의 이자율은 다른 어느 곳보다 높았고, 한국의 자산가들이 굳이 자금을 외국으로 가지고 나갈 아무런 이유가 없던 상황이었다. 이자율이 낮아진 이후에는 김대중 정부는 총력을 다해 부동산 경기를 살렸으니 한국의 자산가들은 그 부를 계속 집적할 수 있었다.

    5.

    금융실명제의 실시는 애초에 의도한 바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는지 모른다. 지하경제는 줄어들었고, 투명한 금융거래를 일부 가능케 했지만 불로소득과 경제적 특권에 철퇴를 가한다는 대중의 열망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금융실명제가 시행되었는데도 한국은 여전히 자산가의 나라였고, 대중의 열망은 사그라 들었다. 그 열망의 폐허 속에 “부자되세요”라는 욕망이 들어섰고, 우리는 그 욕망의 집합체인 대통령과 여당의 지배 하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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