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차지한 래대안(來大安) 부대
    2009년 09월 14일 09:18 오전

Print Friendly
   
  ▲ 그림=억수씨

여포가 유비에게 망명하자 유비는 여포를 서주의 구석에 위치한 ‘소패성’이라는 작은 성에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여포는 유비의 배려에 감사했다. 그러나 유비의 아우들은 이러한 유비의 조치에 불만이 많았다. 특히 장비가 불만이 컸다. 장비는 유비가 옆에 있건 없건, 대놓고 여포를 향해 가시 돋친 말을 쏟아놓아 여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 장비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한 여포가 시무룩한 얼굴로 유비를 찾아왔다.

"유공께서는 이 여포를 불쌍히 여겨 받아 주셨으나, 아우님들이 저를 탐탁지 않게 여기시니 저는 다른 데로 가야 되겠습니다."

그러자 유비는 당장 장비를 불러 혼을 내고 여포가 소패성에서 일정하게 자기 세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시 배려해 주었다.

한편, 조조는 여포를 내몰고 연주를 회복한 후에 계속 서주성에 눈독을 들였다. 조조는 복양성을 탈환한 이후 곧바로 서주를 향해 진격하려고 생각했다. 이 때 순욱이 또다시 반대하고 나섰다.

"장군, 서주에는 지금 유비가 망명한 여포를 받아 주어 여포가 소패성에 작은 근거지를 확보한 상태입니다. 만약 우리가 서주로 쳐들어가면 여포와 유비가 힘을 모아 우리와 싸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만히 있다면 언젠가 여포와 유비는 서로 자기들끼리 분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서주에 유비와 여포가 함께 있다는 것은 두 마리의 호랑이가 같은 먹이를 놓고 공존하고 있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하게 군사를 일으킬 필요 없이 가만히 놔두면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상황입니다. 이호경식지계(二虎競食之計: 두 마리 호랑이가 하나의 먹이를 다투게 하는 계책)을 쓰시지요."

순욱의 ‘이호경식지계(二虎競食之計)’

조조는 자신의 서주 진격론이 번번이 반대에 부딪히자 왠지 순욱에 대한 섭섭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러나 가만 듣고 보니 순욱이 말하는 "이호경식지계"가 맞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조조는 말없이 다시 한 번 서주 공격의 꿈을 접고 잠시 상황의 전개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렇게 조조와 유비, 그리고 여포가 서로 아웅다웅하고 있을 무렵, 중앙정계에는 커다란 회오리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동탁의 잔당으로서 정권을 잡고 있던 이곽과 곽사 사이에 내분이 발생한 것이었다. 동탁이 죽은 후에 그 부하들이던 이각과 곽사 등은 동탁을 암살한 여포와 왕윤 등을 몰아내고 다시 정권을 잡았다. 이 때 이각은 대사마가 되고, 곽사는 대장군이 되어 조정의 권력을 장악하고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천하의 실권을 장악했던 것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동탁의 과도한 폭정을 교훈 삼아 회유정책을 펴나갔다. 그러나 이것은 잠시 뿐이었다.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동탁에 못지않은 난폭한 정치를 하기 시작했다. 애당초 천하를 어떻게 운용하겠다는 철학을 가진 정치세력이 아니었고 단순히 자신들의 지배적 지위를 확보하는데만 미쳐있던 군인들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들이 천자를 능멸하고 백성들을 학대하는 수준은 점점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러자 천자의 측근 대신들 중 일부가 이각과 곽사를 몰아내기 위한 은밀한 계책을 마련한다. 그것은 이간질 작전이었다. 즉 이각과 곽사를 이간 시켜 서로 싸우도록 만드는 계책이었다. 애당초 이각과 곽사는 함께 정권을 장악하면서 적당한 권력배분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권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신뢰관계란 본시 매우 취약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천자 측의 몇몇 대신들은 역할을 나누어 각자 이각과 곽사의 사소한 언동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면서 고의로 여러 가지 억측을 생산해 냈다. 또 사소한 비난과 미확인 정보를 각기 반대방향으로 흘려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이각과 곽사의 신뢰관계는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계획은 황제 측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큰 효과를 보았다. 이각과 곽사는 이미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된 이상 한시라도 먼저 칼을 뽑는 놈이 유리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진리였다. 결국 양측은 서로의 사병을 끌고 와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공동정권을 포기하고 각자 권력을 단독장악하기 위한 치열한 사투를 시작한 것이다.

이각과 곽사의 치열한 사투

그러나 이러한 상황 전개는 한 가지 큰 문제를 낳았다. 이각과 곽사를 서로 싸우게 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싸움이 너무 심각한 수준에 달하는 바람에 궁궐이 불타고 황제의 목숨마저 위태로워지는 수준에까지 이른 것이다.

원래 이각과 곽사의 이간질에 참여했던 황제의 신하들은 이각과 곽사가 서로 싸우게 되면 그 두 인간이 서로 견제하게 되고, 결국 서로 황제를 사이에 놓고 충성경쟁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의 대립은 이런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아예 저마다 황제를 쟁탈하려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먼저 움직인 것은 이각이었다. 이각은 곽사와 싸우던 중 일부 병력을 빼서 헌제가 있는 궁성으로 들어가 두 채의 수레에 황제와 황후를 태워 미오궁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한발 늦은 곽사 측은 황제를 되찾기 위한 추격대를 보내는 한편 궁궐로 쳐들어가 조신들을 베어 죽이고 궁녀들을 겁탈했다. 금은보화를 노략질한 것은 물론이다. 갖은 행패를 부리던 곽사의 부하들은 급기야 궁궐에 불까지 질렀다. 장안성은 또 다시 화염에 뒤덮였다.

처음 이각과 곽사를 서로 싸우게 하자는 계책을 내놓았던 황제의 측근들은 일이 이렇게 되자 황제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번에는 거꾸로 이각과 곽사를 화해시키는 계략을 쓰기로 한다. 그러나 이는 이미 소용없는 짓이 되고 말았다. 이각은 미오성에 황제를 가두어 둔 채 무려 50일 동안이나 곽사의 군대와 전투를 계속했다. 황제는 거의 매일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한 생활을 계속해야 했다. 비참한 지경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견디다 못한 황제와 신하들은 미오성을 빠져나가 낙양으로 도피하는 길을 택하게 된다. 그러나 이 때 쯤, 이각과 곽사 양측은 서로가 서로를 이길 수 없다는데 인식에 도달한다. 힘의 균형을 확인한 것이다. 양측은 다시 화해를 하고 전처럼 함께 힘을 모아 공동정권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황제가 낙양 쪽으로 도주한 뒤였다. 이각과 곽사는 합동으로 추격대를 만들어 도망간 황제를 뒤쫓기 시작한다.

낙양으로 도주한 황제

황제는 불과 얼마 되지도 않는 호위군을 이끌고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가까스로 낙양에 도착하였다. 이 때 태수 장양이 마중 나와 비단과 음식을 바쳤다. 황제는 장양에게 대사마의 벼슬을 내렸으나 장양은 황제가 주는 벼슬을 사양한 채 군사를 이끌고 야왕으로 떠나버렸다.

장양이 보기에는 말은 황제이지만 실권이 전혀 없는 나이어린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이각과 곽사가 다시 정권을 잡으면 황제의 도피를 도운 자신에게 칼끝을 겨눌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명색이 황제가 왔는데 나와 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장양은 이런 선택과 저런 선택 사이에서 적당히 처신한 것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황제를 모신 어가가 이윽고 낙양에 당도하였으나 황제의 눈앞에 들어온 것은 너무나 처참한 낙양이었다. 낙양은 지난번 동탁이 불을 질러 파괴한 이래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관아도 민가도 무성한 잡초 속에 불에 그슬린 잔해 더미만 잔뜩 남아 있었고 거의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이었다.

관리들은 나무껍질을 벗겨 떡을 만들고, 풀뿌리 죽을 끓여 먹으며 그날 그 날을 연명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위협은 이각과 곽사의 추격대가 언제 다시 쫓아와 황제를 끌고 갈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 때 신하들 중에 양표라는 자가 ‘조조에게 구원을 요청해보자’는 진언을 올렸다.

"폐하, 연주에 있는 조조는 근자에 수많은 장수들을 휘하에 두고 30만에 이르는 대군을 길렀다고 합니다. 천자께서 조칙을 내리시어 그에게 사직을 지키도록 하십시오.!"

조조에게 구원 요청

물론 이것은 어차피 황제 자신의 실권이 없는 상태에서 또 다른 외부의 힘을 빌려 임시로 황제의 자리를 지키라는 얘기이기도 했다. 조조가 제2의 이각과 곽사가 되지 않는다는 아무런 보장도 없었다. 그러나 당장의 시급한 상황에서 대안은 그것 밖에 보이지 않았다. 황제는 궁리 끝에 연주에서 안정적 군사력을 갖고 있던 조조에게 구원을 요청하기 위해 칙사를 조조에게 보낸다.

조조는 황제의 칙사가 오기 전에 이미 이러한 정황을 알고 있었다. 황제의 움직임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시시각각 전해지고 있었다. 조조의 고민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혼자 있는 황제를 내 주머니에 주워 담을지? 말지?’ 조조는 부쩍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다. 황제의 칙사가 조조의 진영에 도착해 친서를 전달한 것은 이미 그런 고민이 무르익고 있던 참이었다. 조조는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지금 방금 내게 황제의 칙서가 도착했소!"

조조의 참모들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천자께서는 이각과 곽사의 난을 피해 지금 낙양으로 환궁하셨다 하오. 그러나 천자께서는 폐허가 된지 오래인 낙양 땅에서 따르는 군사도 없이 홀로 외로운 도피를 계속하는 중이라 하오. 짐작컨대 지금 폐하의 처지는 마치 들판에서 부모를 잃은 어린애와 같을 것이오.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이 때 누군가 천자가 별 필요 없다는 듯이 말했다.

"주공께서는 지금 연주를 회복하시고 다시금 인재를 모아 기반을 닦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이 어린 황제가 곤경에 빠졌다 하여 그를 구해준들 무슨 이익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실권도 없는 허수아비 같은 임금이야 죽든지 살든지 신경 쓰지 마시지요. 어차피 오래갈 것 같지도 않은 황제를 도와준들 크게 이로울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순욱이 즉각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아닙니다. 이제 빨리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아무리 껍데기만 남은 천자이지만, 천자는 천자입니다. 지금 천자께서 궁박한 처지에 계실 때 장군께서 이를 보호하고 지켜주신다면 우리가 조정의 실권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좀 더 다양한 인재와 물적 기초를 우리 세력권으로 편입할 수 있습니다. 마땅히 낙양성을 옹위하고 천자를 받들어야 합니다. 만약 머뭇거리다 기회를 놓치시면 다른 자가 나설까 염려되는 바입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이 때 순욱은 말을 하면서도 ‘드디어 때가 왔다’는 생각에 약간 가슴이 떨리기 까지 했다.

조조는 놀라웠다. 서주로 쳐들어가자던 제안은 번번이 반대하던 순욱이 이제 황제를 지키기 위해 낙양으로 가자는 제안에는 한시라도 빨리 움직이자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순욱의 오래된 이상, 정확히 말해 황건당 청년파의 오래된 꿈과 관련이 깊은 문제였다. 황건 농민 반란에 참가했던 황건당 청년파의 기본노선은 한나라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황제를 제대로 세워 한나라의 이상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이었다.

황건당 청년파가 황실 재건에 대한 신념을 가졌던 이유는 어차피 황제라는 자리는 누가 앉아 있더라도 앉아있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천자는 천하신뢰체계의 중심점이자 민심의 합의체를 상징하는 중계점이었다. 정치의 실무는 신하들이 관장하더라도 천자는 누가 맡더라도 맡아야 하는 것이었다. 천자가 열네 살이 아니라 네 살이라도 천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 민심의 합의체에 관한 상징점이기 때문이었다.

본래 천하를 구성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아래에서 위로 구성하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위에서 아래로 구성하는 방법이다.

물론 천하는 민심의 합의체이기 때문에 원래는 백성들의 뜻을 물어 신뢰체계의 중심점을 구성해야 했다. 그러나 순욱이 생각할 때 백성들의 뜻을 하나씩 물어서 천하신뢰체계의 중심을 구성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실로 불가능한 발상이었다. 도대체 어느 세월에 백성들에게 일일이 뜻을 물어 민심의 합의체를 구성한단 말인가?

방통의 ‘죽간 천하구성체’

물론 황건당 청년파의 일부에서는 대나무 조각 같은 것에 민심의 내용을 적어서 이를 모두 수거한 다음 이를 수량적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었다. 황건당 청년파의 또 다른 지도자였던 방통이 이런 발상을 내놓았었다. 대나무 조각을 모아 천하를 구성한다는 뜻에서 그는 이를 ‘죽간 천하구성체’라고 불렀다. 그러나 순욱이 보기에 이것은 너무 이론적인 이상에만 치우쳐 만들어낸 실현 불가능한 생각이었다.

‘어찌 참된 민심을 수량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순욱이 생각하기에는 권력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유일한 방법은 일단 임의의 주체인 누군가가 천자를 구성하고 뒤에 백성들의 추인을 받는 방식 밖에 없었다. 이것은 천하를 위에서 아래로 구성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결국 권력이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천하신뢰체계를 구성하려면 땅의 아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아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순욱의 꿈은 두 번째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젊은 시절 황건 농민 반란을 통해 조직된 농민의 물리력으로 황실을 재조직하는 방식은 이미 실패했었다. 순욱이 찾아낸 두 번째 방법은 조조의 힘을 빌려 황실을 재구성하는 방법이었다. 순욱으로서는 첫 번째는 농민의 힘, 두 번째는 귀족의 힘을 빌려 새로운 세상을 시도해보고 있는 것이었다.

조조는 이번에도 순욱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사실 조조 역시 천자의 조서가 아니더라도 이미 군사를 일으킬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아무리 허수아비 같은 황제라 해도 조조는 그 허수아비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 정치의 절반은 명분으로 하는 것이었다. 황제를 장악하고 있는 군대는 관군이고 반대로 황제를 장악하지 못하면 반란군이었던 것이다.

황제를 장악하지 못하면 ‘반란군’일 뿐

‘그래서 이각과 곽사도 저렇게 서로 황제를 차지하려고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이렇게 순욱과 조조는 황제 구출에 합의하게 된다. 조조는 즉시 명을 내려 군사를 일으키고 곧바로 황제가 있는 낙양으로 진군을 시작한다. 그것은 단순한 진군이 아니었다. 조조에게는 중앙정치 무대로의 진격이었고 순욱에게는 청년시절부터 품었던 오랜 된 꿈을 향한 진격이었다.

조조는 달리는 말 잔등위에서 조금씩 다가오는 낙양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내심 그려오던 천하가 한 걸음씩 자신에게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순욱도 오래 전부터 그려오던 태평세의 꿈이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았다.

한편, 낙양성의 형편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먹을 것이 없어 심지어는 황제와 황후의 배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날 정도였다. 더 큰 문제는 이각과 곽사가 연합한 추격군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래지 않아 몇 사람의 병졸이 달려와 황제에게 고했다.

"폐하 위급합니다. 이각의 선봉부대가 낙양성 가까이까지 진격해 오고 있답니다. 어서 피하셔야 되겠습니다."

천자는 그 말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황제와 대신들은 또 다시 급한 피난길을 떠나기로 했다. 어가는 남쪽을 향해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황제를 태운 어가와 그 일행들이 낙양성 남쪽의 광야를 힘차게 달리고 있을 무렵 이번에는 정면에 보이는 언덕 쪽에서 커다란 흙먼지가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틀림없이 군마의 말발굽이 만들어낸 먼지구름이었다.

천자의 일행은 일순간 긴장에 휩싸였다. 저 일단의 군마들이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하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 와중에 저편에서 갑옷이 아니라 관복을 입은 한 사람이 빠른 속도로 말을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황제의 일행 앞에 다다르더니 말에서 훌쩍 뛰어내려 어가 앞에 무릎을 꿇었다. 황제가 자세히 보니 조조에게 조서를 전하러 갔던 바로 그 사신이었다.

조조, 황제를 구하다

"폐하, 조조 장군이 어명을 받들어 군사를 거느리고 출발했습니다. 저는 조조 장군이 이끄는 본대에 앞서 하후돈이 이끄는 선봉대 5만과 함께 지금 막 당도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폐하께서는 심려하지 마십시오."

어가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사자의 말을 듣자 마치 저승에서 살아온 듯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오! 다행히 우리 편이구나!"

그랬다. 조조는 20만에 이르는 대군을 출발시키기 전에 날랜 병사 5만과 하후돈, 허저, 전위 등을 먼저 보내 황제를 시급히 지키게 한 것이었다. 어가를 에워싼 신하들과 궁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만세!’를 외쳤다. ‘이제는 살았다!’는 외침이었다.

하후돈은 황제에게 인사를 올린 후 곧바로 군사를 둘로 나누어 일제히 황제를 뒤쫓아 오는 이각과 곽사의 추격군을 덮치기 시작했다. 하후돈이 이끄는 조조군은 날랜 병사를 가려 뽑은 정예군이었다. 거기다가 전위와 허저 같이 용맹을 떨친 장수들이 많았다. 황제를 사로잡기에만 급급하여 여기저기서 끌어 모은 이각, 곽사의 잡군들은 여지없이 조조군에게 짓밟혔다. 짧은 전투 끝에 수천 명의 군사들을 시체로 만든 뒤 이각과 곽사는 황급히 군사를 돌려 달아났다.

그날 저녁, 천자는 무사히 낙양에 다시 입성했다. 그리고 다음 날, 조조군의 본대인 20만 대군이 낙양성에 당도 하였다. 조조는 붉은 투구에 붉은 전포를 입은 수천의 근위병과 함께 대오의 선두에서 말을 타고 천천히 낙양성에 입성하였다. 그들은 붉은 자루의 창을 들고, 붉은 기치를 나란히 세운 채 행렬의 맨 앞에 커다란 붉은 깃발을 들고 있었다.

"완전 붉은 군대로군!!"

조조군의 대규모 행렬을 바라본 사람들은 저마다 이렇게 중얼거렸다. 대열의 선두에 있는 커다란 붉은 깃발에는 하얗고 큼직한 글자 3개가 적혀있었다.

“래대안(來大安: 커다란 행복이 온다)”

조조의 ‘래대안’ 부대

길가에 서서 조조군의 입성을 구경하던 백성들은 모두들 그 깃발을 보았다. 그리고는 저마다 ‘정말 이제는 전쟁 없이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한 조각씩 품게 되었다. 그 깃발을 보고 있으니 왠지 조조가 그런 세상을 만들어 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 바람에 어떤 사람들은 조조군을 ‘래대안 부대’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 모든 것이 조조의 연출력이었다.

낙양에 입성한 조조는 천자 앞에 나아가 단정한 신하의 예를 갖추었다. 조조는 전상에 오르지도 않고 계단 아래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황제를 뵈었다. 조조가 헌제에게 아뢰었다.

"신 조조, 삼가 폐하를 뵈옵니다. 신은 일찍이 황은을 입은 몸으로 목숨을 바쳐 폐하의 안위를 지켜야 하나 이제야 겨우 도착하였으니 신을 중죄로 다스려 주십시오!"

조조의 말은 정상적인 경우에 신하들이 하는 의례적이고 입에 발린 소리였지만 허수아비 황제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였다.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경은 고개를 들고 가까이 오라!"

"저와 함께 도착한 연주, 산동의 20만 정병들은 모두 폐하의 충량들이오니 부디 마음 편안히 하시고 옥체를 잘 보존하소서."

조조가 연달아 던지는 신하다운 언사에 헌제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오, 그대야말로 진정한 나의 신하로다.!"

헌제가 조조를 치하하자 사방에서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헌제는 조조에게 영(領) 사예교위(司隸校尉) 가절월(假節鉞) 녹상서사(錄尙書事)라는 긴 벼슬을 내렸다. 황제와 신하들은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다.

한편 뜻하지 않은 조조의 출현으로 크게 패한 이각, 곽사의 군대는 어제까지 관군이었으나 이제 황제를 빼앗기는 바람에 졸지에 반란군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일이 다급해진 이각, 곽사는 뒤에 도착한 본대와 함께 군사를 서둘러 수습했다.

"조조의 군사는 먼 길을 급히 오느라 군마가 모두 지쳐 있다. 한시라도 빨리 공격하는 것이 낫겠다."

이각과 곽사는 이렇게 의견을 모으고 조조군을 최대한 빨리 다시 공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다음 날 이각은 낙양성 앞으로 나아가 조조에게 싸움을 걸었다. 그렇지 않아도 먼저 쳐들어갈 참이었던 조조는 오히려 이각이 제 발로 찾아오자 즉시 허저를 내보내 이각의 군대를 물리치기 시작했다.

"허저, 당장 저놈들의 지저분한 목을 쳐서 내게 가져오라!"

이에 허저는 쏜살같이 달려나가 적장들과 2, 3합을 부딪는가 싶더니 어느 새 적장 두 명의 목을 떨어뜨렸다. 허저의 용맹함에 가까이 있던 적군들은 혀를 내두르며 감히 상대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조조는 그 모습을 보더니 전쟁터에서 모두가 다 듣도록 큰소리로 허저를 칭찬했다.

“그대는 나의 번쾌로다! 하하하!”

허저, 조조의 번쾌가 되다

번쾌는 한고조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만든 1등 공신으로 전설적인 명장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주위의 다른 장수들은 은근히 경쟁심에 발동이 걸렸다. 허저는 불과 얼마 전에 새로 영입한 장수가 아니던가! 조조는 곧바로 총공격을 명했다. 조조 자신이 직접 보검을 빼들고 공격에 나섰다. 조조가 허저를 칭찬하는 모습을 보고 경쟁심에 발동이 걸린 다른 장수들은 말할 것도 없이 맹렬한 기세로 말을 달려 나갔다. 조조군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결국 이각과 곽사의 군대는 조조의 대군에게 크게 패했다. 항복하는 병사들은 헤아릴 수 없었다. 겨우 목숨을 건진 이각, 곽사는 살아남은 몇몇 졸개들을 이끌고 깊은 산중으로 숨고 말았다. 헌제는 이런 조조를 크게 치하한다.

이로써 조정의 실권은 자연히 조조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비록 허울뿐인 황제였지만 조조로서는 형식상 천하의 실권을 잡은 것이고 순욱으로서는 드디어 농민의 힘이 아닌, 조조의 힘을 빌려 황제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커다란 계기를 잡은 것이었다. (계속)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