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레논과 앤디 워홀을 찍다
        2009년 09월 12일 02: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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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제 포스터.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리투아니아 청년은 영어를 제대로 할 줄 몰라 소통이 어려웠다. 그 청년은 소통하기 위해서 필요한 언어를 배워야 했다. 그가 말보다 먼저 선택한 소통 언어는 영상이었다.

    낯선 나라에 발은 디딘 지 겨우 2주 만에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고, 세상에 대해 자신을 드러낸 청년 요나스 메카스(미국식으로는 조나스 메카스)는 이후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를 이끄는 이론가이자, 작가가 되었다.

    소통방식으로서의 영화

    요나스 메카스의 영화는 보기에 편한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를 영상으로 풀어내는 극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며, 매끄럽게 가공된 영상이 아니기 때문이며, 카메라 뒤에서 누군가가 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워버리는 대신 작가 자신이 관객과 스크린 사이에 항상 개입해 있다는 것을 매순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영화라는 매체로 개인이 해볼 수 있는 실험의 과정이 곧 영화가 되는 요나스 메카스의 작품을 본다는 것은 작가가 일상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그가 어떤 고통과 의혹으로 괴로워하는지,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추억하고 기대하는지, 그런 자신의 모든 것을 왜 그런 방식으로 영화화하는지에 대해 오로지 이미지로 짚어보면서 작가와 직접 대면하는 행위다. 

    그러다보면 카메라를 손에 든다는 것,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본다는 것, 카메라를 통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 카메라를 통해 생각하고 반성하고 꿈꾼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문득 깨닫게 된다. 미국 땅에 도착한 난민 청년이 영어를 배우기보다 먼저 선택한 소통의 방식, 자신만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어느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로서의 영화.

    어지간한 휴대전화의 카메라 동영상보다 거친 화질에, 간단한 편집 프로그램으로 조작되는 것보다 거친 편집과 효과는 요나스 메카스의 작품이 오래 전의 낡은 매체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환기시킬 지도 모른다.

    새로운 시간성의 획득

    그러나 자신의 삶을 카메라와 하나로 묶어 냈을 때 만들어지는 성찰은 단순히 현재 진행되는 시간에 대한 기록이 아닌 새로운 시간성을 획득해내면서, 카메라를 통해 현재를 관통하고 과거와 미래를 이어나가도록 만든다. 이런 성취는 카메라를 가졌다고 해서 아무나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라는 매체를 개인이 전유하고 활용하여 세상과의 소통방식으로 삼는 독립적이고 실험적인 요나스 메카스의 작품들을 모처럼 풍성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2009 서울국제실험영화 페스티벌’에서 마련했다.
    ‘실험’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모든 예술이 그렇듯 실험영화페스티벌에서 소개되는 많은 영화들 또한 보기에 만만하지는 않다. 또 ‘실험’이란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는 시도인만큼 모든 작품이 썩 훌륭하기만 한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실험영화를 볼 기회가 흔하지 않은 대부분이 관객들에게 풍성한 영화제 상영작 프로그램 가운데 무엇을 보아야할지 선뜻 결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 경우 ‘회고전’이라는 이름으로 특별히 묶인 작가의 작품이 첫경험의 대상으로 좋을 것이다.

    요나스 메카스 회고전에서 소개되는 작품은 모두 11편, 프로그램 섹션으로는 7개로 나뉘어 있다. 개막작 <생일축하해요, 존 Happy Birthday to Jhon>을 비롯해 <앤디 워홀의 삶의 모습들 Scenes from the Life of Andy Warhol>과 같은 작품들에서는 존 레논이나 앤디 워홀처럼 20세기 대중문화예술의 아이콘이 된 인물들의 사적인 모습들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상황의 기록

    요나스 메카스가 앤디 워홀을 찍는 동안 앤디 워홀은 다른 이들을 찍는다. 이렇게 카메라로 서로를 포착하는 시대가 곧 팝아트와 뉴 아메리칸 시네마와 로큰롤의 시대, 아방가르드의 시대, 청년문화의 시대였다. 작가가 굳이 정치적인 영화를 의도해서가 아니라 이 시대의 사적인 기록이 곧 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기록이 되는 개인과 세상의 관계가 차곡차곡 쌓인 필름들의 연대기 속에 드러난다.

       
      ▲’생일 축하해요, 존’의 한 장면. 

    요나스 메카스의 <생일축하해요, 존 Happy Birthday to Jhon>과 함께 미술작가로 알려진 박찬경 작가의 <신도안>이 개막작으로 함께 상영되었으니 실험영화는 지금의 한국에서도 영화와 미술의 경계를 오가는 실험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45개국에서 700편 가까이 모인 지원작 가운데 추리고 골라 248편이나 상영되는 실험영화 가운데 어떤 실험에 도전할 지는 관객의 몫이다.

    아니면 자신의 실험을 영화제 현장에서 바로 내보일 수도 있다. ‘선착순 상영회’라는 독특한 기회를 통해 실험영화페스티벌은 누구나 자신의 상영본을 가져다가 선을 보일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 두었다. 단, 상영시간은 5분 이내. 선착순으로 주어지는 기회이니 극장에서 자기 작품을 상영할 자격으로는 부지런함만 갖추면 되겠다.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9월 10~16일, 서울아트시네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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