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강의는 학점과 관계 없습니다"
    By mywank
        2009년 09월 11일 11: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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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수업』은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로이센에게 할양했고, 그 결과 프랑스어로 마지막 수업을 진행해야만 했던 비극적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프로이센이라는 외부적 폭력에 의해 학생들의 소중한 배움의 권리가 처절하게 침해되었던 역사의 한 장면이었던 것입니다.

    진중권 교수님의 사례 역시 외부의 폭력에 의해 학생들의 소중한 수업권이 박탈당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행사를 ‘마지막 수업’이라고 이름 짓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진 교수님의 수업은 오늘이 끝이 아니기에 다시 중대에서 만날 것을 기원합니다.”

    진중권 교수의 ‘마지막 수업’

    지난 2003년부터 올해까지 진중권 전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의 강의를 들었던 최동민 씨(독어독문학 석사과정)는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이야기를 꺼내며, 학교 측으로부터 재임용을 거부당한 진 전 교수 위해 학생들이 마련한 고별행사의 의미를 설명했다.

       
      ▲’화가의 자화상’이라는 주제로 고별강의에 나선 진중권 전 교수 (사진=손기영 기자)  

    11일 오후 5시부터 중앙대 서라벌홀 2306 강의실에서 열린 진중권 전 교수의 ‘마지막 수업’은 소설 속 이야기가 떠오를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100여석 규모의 강의실은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며,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학생들은 땅바닥에 주저 앉아서 들었다. 

    “학생들에게 굉장히 미안했습니다. 지난 학기에 멋있게 해어져야 했는데, 오늘 강의는 학점과 관련이 없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웃음)”

    진중권 전 교수를 지키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아쉬움이 학생들의 표정에 역력했지만, 남색셔츠에 청바지를 차림으로 강의실에 나타난 진중권은 특유의 화법으로, 강의실의 분위기를 ‘웃음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권력에 의한 탄압의 성격이 농후함에도, 비판적 지식인을 대학 강단에서 쫓아내는 일이 벌건 대낮에 노골적으로 자행돼도, 조용하기만 대학 사회와 지식인 사회의 모습이 강의실 웃음소리에 오버랩 되면서 그 씁쓸함에 강의실을 보이지 않게 휘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 학기 멋있게 해어져야 했는데" 

    재학생을 대표해 나온 허완 씨(독어독문 4)는 “정말 마지막이 될 줄 몰랐지만, 이렇게 되어서 안타깝다”며 “진중권 교수님은 문화비평론을 비롯해, 매 강의마다 성황을 이뤄 학생들에게 좋은 강의 들려주셨다”고 전했다. 

       
      ▲땅바닥에 앉아 강의를 듣는 학생들(사진=손기영 기자) 

    이날 행사에서 진중권 전 교수는 ‘화가의 자화상’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그는 “그런 일(재임용 거부 사태)이 있는 동안 책을 썼다. 10월 4일 정도에 나올 예정인데, 그 한 꼭지를 오늘 강의하겠다”며 “요즘 ‘미술책을 읽어주는 여자, 남자’ 그런 컨셉의 책들이 많은데, 짜증이 난다. 미술도 스스로 해석 감상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진중권 전 교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서양화가들의 작품들을 소개하며, 자화상에 대한 생각을 풀어나갔다. 

    “진정한 의미의 자화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작가도 거울을 보고 자신을 그리기 때문입니다. 거울을 사용하는 것은 남이 보는 것이지 진정한 자화상은 아닙니다. 그래서 허구입니다. 블로그에 자기사진을 올릴 때, 허구를 많이 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웃음)

    "대중의 오해 허용하는 것 같다"

    저는 대중의 오해를 허용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제 모습이 ‘객관’에 가까울까, 아니면 사람들이 말하는 제 모습이 맞는 걸까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의 모습에 물음을 던져야 합니다.”

       
      ▲사진=손기영 기자 

    진중권 전 교수는 강의가 끝날 무렵 “여러분들을 위해 특별히 줄건 없고, 마지막으로 시 하나를 준비했다”며 페터 한트케의 ‘유년기의 노래’라는 시를 독일어로 낭송하기도 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자기가 아이라는 것을 몰랐고, 그에게 모든 것은 영혼이 있었고 모든 영혼들은 하나였지. 아이가 아이였을 때 어떤 것에도 견해를 갖기 않았고 습관도 없었고, 책상 다리로 앉았다가 뛰어다니기도 했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하고 사진 찍을 때도 억지로 표정을 짓지도 않았지.(중략)”

    그는 “어른이 되면 ‘childlike(순진한)’은 다 사라지고 ‘childish(유치한)’만 남는 현실을 학생들이 잘 생각해 봤으면 해서, 이 시를 고르게 되었다"고 말했다. 강의를 마친 진중권 전 교수는 박수를 받으며, 지난 6년간 학생들과 함께 했던 강의실을 떠났다.

    박수 받으며 강의실 떠나

    저녁 7시경부터 중앙대 자이언트 농구장에서는 진중권 전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하는 ‘뒤풀이’ 행사도 열렸다. 진 전 교수는 학생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석별의 정을 나누웠다. 이날 학생들은 고별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준비했으며, 진 전 교수는 노래를 부르며 화답하기도 했다.

       
      ▲’뒤풀이’ 모습(사진=손기영 기자) 

    ‘뒤풀이’ 행사에서 만난 황규환 씨는 “오늘 수업만 봐도 진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자 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학교 측에서 정말 필요한 수업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학생들이 참 많이 아쉬워한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다시 진 교수님의 수업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태재석 씨는 “교수님이 강의 때 ‘이제 꼰대 질은 그만둬야 겠다’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며 “우선 슬프지만, 가시는 교수님의 표정이 밝으니까 제 마음도 편안하다. 앞으로 집필에 전념하셔서 좋은 작품들을 많이 내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지식인 또는 비판적 지식에 대한 폭력적 탄압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그 결과 실질적인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젊은 학생들이 아쉬워 하고, 안타까워 하는 것을 끝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쉬워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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