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 민주노총당을 원하는 것입니까"
    By 내막
        2009년 09월 10일 11: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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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민주노총 임성규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진보정당은 사분오열돼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합니다.

    민주노총 주요 간부들이 늘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만, 과문한 탓인지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그래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입니까.

    물론 여기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무엇으로 정의하는 가에 따라 판단의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분화를 겪기 전에는 배타적 지지방침에 근거하여 편하게 정치 사업을 펼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라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위기가 맞습니다.

    그렇지만,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거창한 목표를 그렇게 좁은 틀로, 단순한 사업의 하나로 바라보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요.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해 원론적이고 기초적인 정의를 해본다면, 그것은 바로 노동자들이 정치의 주체로 서고, 그 정치의 내용이 진보적인 것으로 채워지는 것을 뜻할 것입니다.

    사분오열? 달라진 것은 진보신당 탄생뿐

    그렇다면 최근의 변화된 정치 지형이 무엇이기에 다들 위기가 닥쳐왔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사회당과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준비모임(이하 사노준)은 조금씩 변화를 겪었지만 9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크게 달라진 변수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유일한 변화는 민주노동당의 분화와 진보신당의 탄생이지 싶습니다. 예전에는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이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정당이라는 설명으로 많은 것을 충족시킬 수 있었지만, 이제 그것이 잘 먹히고 있지 않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때 민주노총이 정의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위기는 무엇입니까. 하나였던 것이 둘이 되어서 조합원들에게 쉽게 설명하는 것이 난망해졌다는 것이 위기의 본질입니까.

    ‘사분오열’, ‘분열’이란 핵심 단어의 반복 사용은 자꾸만 본질적인 문제를 회피하게 만듭니다. 하나가 왜 둘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은 애당초 봉쇄되고 있는 것입니다.

       
      ▲ 통추위 3차 토론회(사진=정상근 기자)

    2009년 하반기 사업계획 안건 가운데에는 정치사업과 관련한 내용도 들어가 있습니다. 약칭 ‘진보정당 통합추진위원회(위원장 정갑득)’가 올린 사업계획들이 그 골자로 보입니다.

    이것의 핵심은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진보정당 단결과 통합 촉구 민주노총 선언문>을 채택하자는 것, 앞으로 진보정당 통합을 위한 10만 조합원 선언, 서명운동을 벌이겠다는 것 등입니다. 정치의 내용과 방향에 대한 고민보다는 압박이 주를 이룹니다.

    ‘제2의’ 내용이 빠져있다

    또한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표현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제1의’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실패해서 이제 ‘제2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인지, ‘제2의’라는 규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그 내용은 빠진 채로 있습니다.

    몇몇 정당이 통합되면 2000년 민주노동당의 창당 초기처럼 민주노총의 인적, 물적 자원을 다시 한 번 그 정당에 몰아주겠다는 것으로 ‘제2’의 내용이 온전하게 채워질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제1의’ 경험과 교훈에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는 선언에 불과합니다.

    <선언문>에는 또다시 “진보정당 세력의 분열이 민주노총 현장의 분열로 이어”졌다는 동의하기 힘든 분석 결과가 등장하고, “민주노총은 단결과 통합에 동의하지 않는 진보정당은 지지할 수 없습니다.”라는 싸늘한 엄포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이야 민주노총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자세만 취하고 있으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고, 나머지 진보신당, 사회당, 사노준은 나름대로의 문제의식이 있으니 이러한 선언문을 탐탁하지 않게 여길 것이 예상됨에도 이런 문구가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노총의 입장에서는 진보정당 통합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엄포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진보신당의 입장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일단 사회당이나 사노준에게는 이것이 사실 엄포로서의 효과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이미 10년이 넘도록 그런 환경 속에서 거리낌 없이 자신의 길을 개척해왔기 때문입니다.

    이 엄포의 실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면, 두 가지가 엿보입니다. 하나는 배타적 지지방침을 앞으로도 굳건히 고수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쨌든 민주노총당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풀이하면, 민주노총이 인적 물적 자원을 다 대고 민주노총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당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의 출발도 사실 민주노총당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에 혹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그에 혹했던 사람들마저 등을 돌리고 나온 상태입니다.

    때문에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시도는 ‘제1의’ 그것보다 더욱 힘든 조건에 처해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조건도 크게 달라졌지만, 지난 10여년의 뼈저린 경험은 이전과는 다른 사고, 다른 모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일은 민주노총이 홀로 책임지고 감당해야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활로 모색뿐만 아니라 안팎의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는 일은 그간 민주노조운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왔던 이 땅 진보정치 세력 모두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정당과 대중조직 각기 존중 필요…인상 찌푸릴 일 없기를

    정당과 대중조직은 그 자체로 각기 존중되어야 합니다. 정당과 대중조직 사이의 관계도 만고불변의 원칙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오늘날 정당이 대중조직을 호령하거나 대중조직이 정당을 호령하는 모양새는 매우 어색하고 불편한 장면이 아니겠습니까.

       
      ▲ 최광은 사회당 대표

    대중조직의 호령에 휘청거리는 정당은 이미 정당이 아닙니다. 정치적 독자성은 미래구상과 관련됩니다. 미래구상이 다르면 정치적 독자성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이는 현실의 과제 해결을 위한 연대, 협력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서로 인상 찌푸릴 일 없이 정당 간, 그리고 정당과 대중조직 간의 연대와 협력을 하고 싶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서로를 설득할 수 있다면, 진보정치의 재구성은 자연스럽게 가능할 것입니다. 설마 여러분들이 민주노총당을 원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큰 꿈을 갖고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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