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사회경제적 의제다
    2009년 09월 09일 04: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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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체제의 ‘붕괴’

나는 2002년부터 1년간 일본 교토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 교토는 고도(古都)이기도 하지만, 일본에서 예외적으로 좌파 정치세력이 강한 곳이기도 했다. 그즈음은 미국의 이라크 파병을 둘러싸고 일본 열도 역시 다소 시끄럽던 시절이었다. 골목골목마다 일본공산당의 반전 포스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던 때였다. 좁은 길을 따라 일본 공산당은 핸드마이크를 들고 반전에 대한 선전을 하고 다녔다.

길거리에 ‘공산당(共産黨)’이란 한자를 보는 것 자체가 신기했던 나는, 공산당에 가입한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다. 그런 와중에 지인이 ‘이번 주에 부립 체육관에서 교토부 공산당 집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속으로 ‘이게 왠 떡이냐’라고 쾌재를 부르며 몇몇이 같이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 주변에는 일본 우익의 비난 방송이 간간이 들였지만 차분했다. 집회장 안은 여느 한국의 집회처럼 유인물을 주기도 하고, 팜플렛 등을 판매하기도 했다. 집회장 안으로 들어서자 빼곡하게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집회장 안은 연사의 연설에 간간이 박수를 치는 청중들 이외에 조용했다. 한국 집회에서 보이는 것처럼 시끄럽고 역동적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재미있던 사실은 이 집회 참석자 대다수는 중년이나 노년층이라는 점이었다. 집회가 끝난 뒤 질서 정연하게 지역별로 버스에 타고 돌아가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집회 모습에서 보여지듯이 일본 사회는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곳은 아니다.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을, 사회적 갈등에 대해서도 제도적 해법을 다수가 추구하는 것 같았다. 이는 실제 패전 후 일본 현대 정치사가 잘 보여준다.

일본은 분명 민주주의 사회다. 자민당, 민주당, 사민당, 공산당이 합법화되어 있으며, 이들의 정치활동도 보장되어 있다. 이곳에도 자민당 등 우익 세력의 ‘빨갱이 사냥’이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이념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은 평화헌법 등을 제외하곤 치열하지 않다.

패전 후 미군정 치하에서 일본도 같은 시기 한반도와 같이 좌우간 정치적 갈등이 격렬했다. 천황제 존치 여부, 농지개혁 등 민주개혁을 둘러싼 정치투쟁 등이 존재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전후로 좌우간 동거 체제가 형성되고, 이는 1955년 이후 이른바 ‘55년 체제’라고 불리는 자민당-사회당 양당 체제,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민당의 장기 집권 체제가 안정화되어 왔다.

펨펠(Pempel)이란 일본연구자가 ‘희한한 민주주의’(uncommon democracy)라고 지칭했듯이, 민주주의 정치체제 가운데 일당의 장기 집권이 이토록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사회는 일본과 이스라엘이 거의 유일하다고 알려져 있다. 1993년 잠시 비자민 연립정권이 들어섰으나, 아주 짧은 에피소드에 불과했고 자민당은 전후부터 이번 선거까지 정권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혹자는 이러한 자민당의 힘을 보수주의이긴 하되, 자기갱신능력이 있는 ‘창조적 보수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54년 만에 자민당 장기 집권이 종식되고, 민주당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일각에서는 이를 ‘보통 사람들의 대반란’, ‘세대교체’ 등 크게 평가하고 있다.

일본 8.30 총선, 무엇이 유권자의 선택을 바꾸었나?

이번 일본 총선에서 민주당의 승리는 유권자의 적극적인 정당 지지의 결과는 아니었다. 오히려 광범위한 반자민당 정서의 결과라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고이즈미 정권 시절, 일본은 이른바 구조개혁이라고 불리는 신자유주의 배를 탔다. 물론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른바 “格差社會”라고 불리는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정국 민영화 등으로 상징되는 자민당 정권의 신자유주의 드라이브는 기업 차원의 강고한 사회복지 체제를 붕괴시켰고, 고용 없는 경기회복, 노동분배율 저하, 광범위한 빈곤층과 파견노동자층을 산출했다. 이는 오랫동안 안정적인 자민당 지배에 만족하던 유권자들의 불만을 강화시켰으며, 결국 선거에서 민주당의 사상 최대 압승이란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민주당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는 민주당의 정당 선호도에 기초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 선거는 소위 “한 구절 정치”, 즉 정권교체를 하느냐 마느냐는 구호가 지배한 선거였다. 그만큼 어떤 방향으로 자민당 지배와 다른 정책이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불투명하다.

이는 유권자들이 사회복지 후퇴, 파견노동자 증대 등에 따른 부의 불균등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만, 공산당이나 사민당 등 신자유주의를 비판해온 정치세력을 선택하지 않은 데서도 드러난다. 공산당 등은 유권자에게 가시적인 변화를 당장 가져올 현실적인 대안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또 민주당은 오자와, 하토야마, 사회당 이탈파, 자민당 이탈그룹, 시민운동 등 다양한 이념과 지향을 지닌 세력의 불안정한 연합체이다. 비록 반자민당/정권교체란 중대 이슈를 중심으로 뭉쳐져 있지만, 자기 정체성이 유동적인 ‘백화점 정당’(catch-all party)이다.

비록 민주당이 집권을 했지만, 당내 넓은 이념적 스팩트럼은 행정개혁, 관료개혁, 사회복지 등을 둘러싼 의제에서 지속적인 긴장과 갈등을 예고할 것이다. 특히 메이지 유신 이후 140여 년 간 유지되어온 관료 시스템을 민주당 정권이 넘어설 수 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시 사회경제적 의제를 생각한다

이처럼 한계는 존재하지만 일본에서 정권교체는 신자유주의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가 대중의 생활을 어렵게 만든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오랫동안 기업에 강하게 긴박되어온, 이른바 ‘기업사회’에 길들여진 일본 유권자들이 민주당조차 현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다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이들이 정권교체를 자신의 대안으로 선택한 것은,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삶, 안정된 생활을 한 번 다른 정체세력에 맡겨보자는 바램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일본의 정권교체를 바라보며 주목할 만한 사실은 자민당 장기집권의 붕괴, 여성 자격이라고 불린 정치신인의 대거 등장 등 현상보다, 고용-파견노동, 연금제도 등 사회보장, 워킹 푸어(working poor) 등 사회경제적 의제를 중심으로 유권자의 선택이 이루어진 점이다.

일본에 비해 매우 역동적인 사회로 알려진 한국 사회는 87년 민주화, 여-야간 정권교체 그리고 노사모 등 밑으로부터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많은 흐름이 존재했다. 하지만 대부분 핵심 의제는 민주주의, 특히 형식적 차원의 민주주의를 둘러싼 문제였다. 이는 노무현 사망 이후에도 민주주의 회복, MB반대 등 이슈가 전개되는 양상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선거에서 선택이든 거리에서 정치건 갈등의 의제가 이동하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역동적인 변화를 보여주기 어려울 것이다. 죽음과 분노는 대중을 움직이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균열이 정치와 운동에 반영되지 않을 때, 사회는 근본적으로 변할 가능성을 잃게 된다. 지난 탄핵 정국, 촛불시위 그리고 노무현의 죽음 이후 정세는 사회운동 그리고 정치운동이 민주주의라는 오래된 상징에 매달렸을 때 일보 전진보다 정체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웅변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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