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주의, 순교자의 미몽
        2009년 09월 09일 03: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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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 문제를 놓고 이른바 ‘진보’ 진영 인사들이 격돌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낯익은 이름들이 연달아 등장하고 낯익다 못해 지겨운 언설들이 오가는 기사인 관계로 신선함보다는 답답한 감정이 보는 내내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언론사에 항의방문 가서는 "너 몇 살 먹었어?"를 캐물었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께서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진보 지식인들은 뉴라이트의 우군"이라고 몰아부치는 모습은 답답함을 넘어 절망적입니다.

    어떻게 20년도 더 전, 백기완 선생을 미제의 프락치로 몰아붙이던 수법을 성의 있는 변형도 없이 그대로 써먹고 있는지, 만날 기회가 있으면 콧구멍에 손이라도 대 보고 싶은 심경이 됩니다. 밥은 먹고 사시는지에 앞서서 숨은 쉬고 사시는지가 궁금하거든요. 강시가 아니고서야 저렇게 똑같은 소리를 세월도 아랑곳없이 반복할 수는 없다고 보는 까닭입니다.

       
      ▲ 토론회 모습.(사진=정상근 기자)

    ‘미제의 프락치’라 몰아대던 시절의 수법 그대로

    그 분은 그렇다고 치겠습니다. 그런데 딱히 아는 사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자주 얼굴을 마주치고 인사도 나누는 분께서 터뜨리시는 비분강개와 대면할 때 저는 매우 강력하고도 심오한 대략난감에 빠져들게 됩니다.

    “민주노동당의 분당은 종북주의론 분파들의 몰민족성의 결과”이며 “막말과 수구꼴통을 무색케 하는 수준의 어휘와 내용을 구사하고 합리성과 보편성도 없었다”고요?

    강정구 교수님.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위 발언은 실로 무례하며 제 남편을 링컨에 비했던 이순자만큼이나 억지스러운 말씀이십니다. 보십시다. 북한이 본사라 참칭하며 그 영도를 흠모하며 활동해 왔고, 북한 정보 일꾼에게 당내 인사들의 정보 보고서를 갖다 바쳤던 인사들, 그래도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라며 그 스파이 행위가 사실인지 아닌지 조사조차 할 수 없다고 우기던 작자들과 한 지붕 아래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 도대체 왜 합리성과 보편성을 상실한 결과입니까?

    무엇이 합리이며 무엇이 보편인지 한 번 명동 너른 길 막아 놓고 물어나 볼까요? 그것을 "통일의 열망 때문에 한 행동"이며 "네이버에 다 있는 정보를 정리해서 준 것 뿐"이라고 변호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러시겠다면 교수님 사전에 든 합리와 보편의 정의가 잘못되었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분파라니오. 몰민족성이라니오. 어떻게 이런 적반하장을 감행하십니까. 구갑우 교수의 말에 대답해 보십시오. "같은 민족이라면 남쪽에 있는 우리도 ‘김일성 민족’이 되어야 하는가? ‘김일성 민족’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남과 북이 뜨겁게 하나 되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하든 좋은 일입니다. 교수님 이하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싸웠던 모든 분들의 짧았던 젊음이 헛된 꿈이 아니게 되는 날, 그날을 적셔내릴 감동의 크기를 누가 감히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저 역시 민족주의에 따뜻한 시선은 보내지 못하지만 북한의 월드컵 진출에 환호했고, "반갑습니다" 노래에 흥겨워할 줄 알며, 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 노래 부를 때에는 눈물도 흘려 봤으니까요. 그러나 문제는 남과 북의 민족주의가 과연 합일을 이루고 있는가의 여부일 것입니다.

    "남조선에서 우리 민족의 본질적 특성을 거세하고 ‘다민족, 다인종사회’화를 추구하는 괴이한 놀음이 벌어지고 있다. 이 소동의 연출자들은 …‘폐쇄적인 민족주의 극복’이니, 미국과 같은 ‘다민족국가의 포용성과 개방성’이니 하는 황당한 설을 주장하고 있다"(<노동신문> 2006년 4월 27일자)는 북한식 민족주의에 우리가 동조해야 합니까?

    이미 외국인 100만 명 시대를 열었고, 2050년에는 전 국민의 10퍼센트가 외국계 한국인이 될 것으로 추정되는 세상을 살면서 저런 파시스트적인 발언을 일삼는 ‘민족주의’에 구스 스텝(무릎을 굽히지 않는 군대식 발걸음-편집자)으로 보조를 맞춰 주어야 합니까? 만약 그렇지 않으면 "몰역사적인 과잉서구화에 빠져 민족주의를 경원시하는 경향"에 빠진 종파분자가 되는 건가요? 이런 된장.

    ‘민족주의 진영’은 이미 진보의 덫

    강정구 교수님. 이제 그만하십시오. 강 교수님이 대변하고 계신 진영의 논리는 이미 진보의 덫이 된 지 오래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교조가 된 지 오래입니다. 최규엽 소장의 말은 그를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민족주의 반대 진보학계는 분단 전후 과정의 우리 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그는 우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분단 과정은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라 미제국주의 때문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단언합니다.

    과거 관제 교육에 찌든 학생들은 대학 신입생 때 책 몇 권을 읽고 실로 "사울이 바울이 되는" 충격을 맛보았더랬습니다. 미국 ‘점령군’의 "말 안들으면 쏜다"는 포고령과 소련 ‘해방군’의 "조선 인민에 고함"이라는 성명서 두 장을 비교해 보면서 경악했고, 미 항공모함의 부산 입항을 광주를 도우러 온 것으로 오해했던 광주 시민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보면서, 보도연맹이 무엇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빨갱이 아닌 빨갱이 잡는 사람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는지 공부하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울들은 바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 사울이 다메섹으로 갈 때의 그 표독함, 스데판을 죽이라고 외치고 기독교인들을 감옥에 쓸어 넣기 위해 기세 등등 공문을 들고 가던 그 표독함을 유지한 채, 단지 그 충성과 증오의 대상만 바꾸었을 뿐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기독교인들을 탄압하는 자들을 죽이고 돌로 칠 것을 우겼다면 그이가 과연 우리가 아는 바울이겠습니까. 바울다운 바울이겠습니까. 그가 다메섹 가는 길에서 빛을 보았든, UFO를 보았든 말입니다.

    어쩌면 교수님은 빛이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 날의 저 자신도 적잖은 도움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현재 교수님의 빛을 자양분으로 삼고 있는 많은 분들은 바울로 개명하였으되 사울에 더 가깝다는 말씀을 감히 드려 봅니다.

    마치 국민윤리 교과서에 충실하고 다른 지적 호기심을 거부했던 어떤 친구들처럼, 대학교 1학년 때 받았던 충격과 전복의 감동은 고수하되, 그 이상의 고민과 탐구는 포기한 채, "식민조국에 태어나 내 할 일은 미제 축출뿐"이라는 깔대기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종교적인 열정에 사로잡혀 순교자의 미몽에 빠져들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대학교 1학년… 그리고 광신도

    이를테면, 앞서 언급한 소련군 사령관 치스차코프의 포고령과 맥아더의 포고령의 단순 비교는 그 이후에 벌어진 모든 상황이나 실상 여부에 관계없이 해방 공간의 역학관계를 일률적으로 설명하는 이른바 ‘떡밥’이 되어 있습니다.

    풋내기 대학생부터 저랑 나이가 같은 초짜 중년에 이르는 이들이 그 비교에 거품을 물고 사실은 소련군은 해방군이었고 미군은 점령군이었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지만, 그 뒤에 소련군이 어떻게 행동했고, 김일성이 어떤 식으로 정권을 잡았는지는 관심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반지성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구태여 알아서 무엇합니까. 중요한 것은 분단의 원인은 미 제국주의인데. 거기서 좀 다른 얘기를 하면 "고등학교 때 교육을 못벗어난" 한심이가 될 뿐인데.

    좀 불려 말씀드리자면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운운하는 최규엽씨는 사학과 학사에 불과한 저보다 더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지는 못할 거라고 봅니다. 왜냐면 그가 공부한 것은 역사가 아니라 교시이며, 다른 의견과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종의 ‘국민윤리’ 교과서이기 때문입니다.

    즉, 최규엽씨 이하 그 언저리 분들은 반공 교육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반대의 대상을 바꾸었을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반공교육의 방식으로 반미교육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옷만 바꾼 윤리 교육의 대변자 노릇을 이제 제발 그만두십시오. 미국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수백만이 죽지도 않았을 것이고 내전으로 끝났을 것이라는 ‘학문적’ 주장으로 기껏 사람들이 힘겹게 돌려온 진보의 바퀴를 도로아미타불 염불로 돌리는 일은 제발 삼가십시오.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학문적’ 질의로 반박드린다면 김일성 정권이 전면전을 감행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전쟁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이 분단 세월이 이처럼 혹독하고 지겨웠을는지요. 그리고 이렇게 남과 북이 달라질 대로 달라져서 ‘민족’ 논쟁을 벌여야 하는 때가 왔겠는지요.

    자, 제가 이 질문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듯, "미국이 참전하지 않았다면"을 가정하는 교수님의 논리도 아무 효용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통일은 선이다, 라는 명제가 있었고, 그 말에 열광할 때가 있었습니다. 독일 통일 전이었지요. 독일이 통일된 뒤 흡수통일이라는 선례가 생기자 흡수 통일은 당연히 반대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저 또한 거기에 동의합니다. 이렇듯 통일은 신앙과 소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냉철한 현실적인 목표가 되어야 하며, 통일의 결과보다는 그 내용과 과정에 방점을 찍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과 북 두 당사자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히면서 그 차이를 줄여 나가야 할 겁니다. 과연 교수님이 대변하고 있는 그쪽 ‘진보’들은 그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통일 열망에 너무나 불타오른 나머지, 당 간부들 평가해서는 걔는 어떤 라인이니까 이러이러하게 대처하고, 아무개는 백마처럼 씨근거리기만 하지 머리가 비어서 매사 지시를 받아야 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며, 걔는 일 잘 하니까 특별히 관리하라고 꼼꼼하게 적어서 보고서를 보내는 이 골때리는 ‘바울’들을 과연 "민족적으로 짓밟힌 제3세계와 우리의 역사적 맥락을" 가슴 뜨겁게 받아안은 인사들로 평가하십니까?

    역사 속에서 살아 계신 예수님은 아마 이렇게 바울들에게 훈계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울아 바울아 넌 왜 사울일 때랑 똑같으냐."

    마지막으로 진보 인사로서의 강정구 교수님의 양식을 의심케 하는 발언에 대해 정중히 취소를 요청합니다.

    “북의 핵 실험이 없었다면 정전협정 54년 만에 열린 평화협정 국면이란 대전환이 불가능했을 것이고, 종북론자들 주장처럼 북이 자위적 수단으로 핵무기 시험을 하지 않았다면 2005년 핵폐기 합의와 한반도 비핵화를 얘기하지도 않았을 것"

    북한의 핵무기에 감사? 미국 핵무기에도 감사?

    미국의 1극체제 하에서 미국에 반대하거나 그 압력에 직면한 모든 나라들은 핵 하나씩은 반드시 가져야겠군요. 아울러 북한의 재래식 전력이 절대 우위에 있던 시절, 전쟁을 막아 준 것은 우리 허락도 없이 수천 개씩 갖다 놨던 핵무기 덕분이라고 감사를 드려야겠군요.

    교수님의 발언에 진실로 절망합니다. 교수님이 국가보안법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당연히 반대하고, 심지어 김정일 장군의 치세를 남한에 도입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표현의 자유도 더욱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봅니다만, 더 이상은 교수님을 ‘진보’의 대변자로 보아 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누가 교수님을 두고 진보, 특히 좌파라 부른다면 격하게 그를 시정해 줄 것 같습니다. 좌파는 무슨? 확고한 우파셔! 라고 말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 제발 이제 그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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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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