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공격, 도발”…언론 ‘~라면’ 보도
        2009년 09월 07일 09: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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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1980년대 북한 금강산댐에 대응하는 댐이 필요하다면서 평화의댐 건설을 위해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벌인 일이 있다. 정부는 언론매체를 동원해 ‘물’에 대한 공포심을 극대화했고, 초등학생까지 모금 행렬에 동참했다. 당시 방송은 금강산댐에서 한꺼번에 물이 쏟아지면 서울 남산 중턱까지 물로 잠기는 모형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2009년 9월 언론은 다시 금강산댐과 같은 물 공포에 주목하고 있다. 일요일인 지난 6일 새벽 임진강 주변에서 야영하던 이들 6명이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 댐 방류에 따라 수위가 갑자기 올라가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의 재난방지장치는 작동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원인은 무엇이고, 해결책은 무엇인지 냉철하고 차분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이번 사건을 북한의 ‘물 공격’ ‘물 폭탄’ ‘도발’ 등으로 규정하고 나섰다. 문제는 언론의 이러한 주장을 입증할 뚜렷한 근거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라면’이라는 전제를 깔고 전개하는 언론 보도의 허점은 언론 보도 내부에도 담겨 있다.

    다음은 7일자 주요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이다.

    경향신문 <북 예고없이 댐 방류 임진강 야영객 덮쳐>
    국민일보 <북 댐 방류…6명 어이없는 실종>
    동아일보 <북 예고없는 ‘물폭탄’…야영객 6명 실종>
    서울신문 <북 댐 방류…임진강서 6명 실종>
    세계일보 <금융위기 1년 경제전문가 50명 설문>
    조선일보 <水攻? 댐 보수?…북, 통보없이 방류>
    중앙일보 <휴일 새벽 ‘임진강의 비극’>
    한겨레 <서민 못 챙기는 ‘친서민 정책’>
    한국일보 <북, 기습 댐 방류…휴일 야영객 날벼락>

    경향신문 "북 예고 없이 댐 방류 임진강 야영객 덮쳐"

       
      ▲ 경향신문 9월7일자 1면.  
     

    7일자 1면 머리기사는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변에서 발생한 야영객 실종 사건을 다루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한겨레를 제외한 모든 신문이 1면 머리기사와 1면 기사로 관련 뉴스를 전했다. 한겨레는 2면 머리기사로 내보냈다.

    경향신문은 1면 <북 예고 없이 댐 방류 임진강 야영객 덮쳐>라는 기사에서 “6일 오전 6시쯤 연천군 군남면 진상리 염진교에서 200m 하류 쪽 모래섬에서 서모씨(41) 등 7명이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다 갑자기 불어난 강물에 서씨 등 5명이 실종됐다. 1시간20분 뒤인 오전 7시20분쯤엔 임진교에서 2km 떨어진 백학면 노곡리 비룡대교에서도 김모씨(39)가 강물에 휩쓸려 실종됐다”고 보도했다.

    언론은 임진강변에 물이 갑자기 불어난 원인에 대해 뚜렷한 증거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다만 북한 쪽 댐에서 예고 없이 물이 방류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물이 방류된 원인도 다양한 각도의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일보 "새벽 경보시스템 먹통"

       
      ▲ 한국일보 9월7일자 3면.  
     

    야영객들이 6명이나 실종된 이번 사건은 정부의 안일한 대응도 한몫을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일보는 3면 <새벽 경보시스템 먹통, 군·지자체 안일대응…화 키웠다>라는 기사에서 “북한의 갑작스러운 방류도 문제였지만 당국의 늑장대처와 먹통인 경보시스템이 화를 키웠다. 그동안 황강댐 건설 후 가뭄이나 홍수 가능성에 대해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무신경하게 대치한 우리 당국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라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2면 <수공 ‘먹통 무인경보기‘ 피해 키웠다>라는 기사에서 “북한의 갑작스러운 방류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 ‘임진강 실종 사고’의 책임에 우리 당국의 늑장 대응도 한몫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 연천 군청은 이미 임진강에 설치도니 폐쇄 회로텔레비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홍수를 막기 위해 수자원공사가 설치한 무인자동경보시스템은 사고 당시 ‘먹통’이었던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안일한 대응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이번 사건은 북한도 관계된 일이라는 점에서 언론 관심의 초점은 정부 책임론에서 빗겨났다. 북한이 댐을 예고 없이 방류하면서 사전 통보를 하지 않은 점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조선일보 "북한의 ‘도발’…"

       
      ▲ 조선일보 9월7일자 3면.  
     

    기술적인 문제인지, 다른 의도가 있는지 살펴봐야 할 대목이지만, 언론 대부분은 북한의 의도에 무게를 싣고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3면 <남측 피해 모를 리 없는 북…핵폭탄 이은 물폭탄?>이라는 기사에서 “남북 간 기존 묵계는 물론 국제법까지 위반한 사실상의 ‘범죄행위’나 마찬가지”라며 “북한의 이번 ‘도발’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사전 예고 없이 수문을 열면 남측에 큰 피해를 줄 것이라는 사실을 북측이 잘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물폭탄’ ‘범죄행위’ ‘도발’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도 “북측의 방류로 훈련 중이던 우리 군 전차가 발이 묶이기도 했다. 북측에 정치.군사적 의도가 없었는지도 속단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1면에 <예고 없는 ‘물폭탄’…야영객 6명 실종>이라는 기사를 내보냈고, 3면에는 <큰비도 없었는데 새벽에 4000만t 쏟아내…북, 도발? 우발?>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는 기사에서 “북한이 남한에 ‘충격’을 주기 위해 고의로 방류한 것인지, 아니면 하류에서의 수해를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우발적인 실수인지에 따라 향후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동아일보 "고의적인 수공 가능성…패륜적 응대"

       
      ▲ 동아일보 9월7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일부에서는 고의적인 수공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북한이 하류에서의 수해를 의도하고 고의로 방류했다면 지난해 이후 대남 공세 국면에서 ‘긴장 조성’ 전설을 다시 들고 나온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의 ‘~라면’ 보도는 사설을 통해 주장의 강도를 더했다. 

    동아는 <‘한밤중의 물 폭탄’ 북은 민족 운운할 자격 없다>라는 기사에서 “피해 발생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했을 텐데도 밤중에 느닷없이 수문을 연 것은 살인 행위와 같다”면서 “북이 남한을 상대로 수공(水攻)을 했다는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동아는 “우리 국민 6명을 해친 북은 이제 민족을 거론할 자격이 없다. 북의 행위는 경기도가 이달 초 북에 10억 원어치의 옥수수 2500t을 지원한 데 대한 패륜적 응대”라며 “정부가 건설 중인 임진강 본류의 군남홍수조절지와 지류인 한탄강의 한탄강댐은 최소한의 자구책이다. 소아병적인 지역이기주의도 인명과 재산 피해를 키운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북한 사정에 따라 남측 피해 훨씬 큰 규모로"

    북한이 정치적 의도에 따라 물을 방류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러 언론이 주목했다. 경향신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향은 1면 기사에서 “북한은 2001년 ‘4월5일 댐’을 완공한 이후 물을 방류하면서 우리 측에 통보하지 않아 크고 작은 피해를 불러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4월5일 댐’보다 규모가 10배나 큰 황강댐이 예고없이 물을 방류해 사고가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경향은 2면 기사에서도 “가능성은 낮지만 일각에선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있다. 북측이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밝히고 있음에도, 정부가 핵 포기 등 ‘근본적 변화’를 되풀이 요구하며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하자 수문 개방을 통해 남측이 먼저 대화를 제의해야 할 상황을 조성하려는 것 아니냐는 풀이”라고 설명했다. 

    경향은 이날 사설에서 “북한 사정에 따라 남측의 피해가 언제든, 그리고 훨씬 큰 규모로 일어날 수 있다”면서 “비극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북한의 잘못이 드러난다면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은 당연하다”라고 보도했다. 경향도 ‘~라면’을 전제로 주장을 전개했다.

    세계일보 "북한 계산된 수공인가"

       
      ▲ 세계일보 9월7일자 3면.  
     

    세계일보는 3면 <북 단순 사고인가, 계산된 수공인가>라는 기사에서 “단순 사고로 넘기기에는 많은 의문이 제기된다”면서 “임진강 공동수해방지를 위해 남북이 협의를 벌여왔던 과거와 달리 현 정부 들어 협의 자체가 뚝 끊겨 버린 상황이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 즉 우리 정부 압박용이라는 시각”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신문은 <북 황강댐 방류 경위 당장 밝혀라>라는 사설에서 “전례에 비춰보면 미 통보는 순전히 기술적인 이유로 비롯된 사고이거나 아니면 우라늄 농축에 이은 위력시위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단순사고를 가장한 의도적 도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론은 뚜렷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도발’이라는 단어를 썼다. 북한의 도발이라는 의미는 남북관계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언론의 섣부른 보도태도를 경계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중앙일보 "북한은 올여름 비가 주로 황해도 지역에 집중됐었다"

       
      ▲ 중앙일보 9월7일자 사설.  
     

    그렇다면 언론의 이러한 추정은 적절한 모습일까. 서울신문은 4면 기사에서 “북한이 의도적으로 방류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면서 “민간인 피해만 생겨 여론도 나빠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북측의 댐 방류를 정치·군사적 시위로 보기엔 그 정도도 조잡하다”고 지적했다.

    북한 댐 방류의 다양한 가능성은 언론 보도에도 담겨 있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북한은 올여름 비가 주로 황해도 지역에 집중됐었다. 7, 8월 두 달 동안 939mm가 내려 강수량이 많았던 편이다. 특히 평강지역에 지난달 26, 27일 220mm가 넘는 비가 내리긴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섣부른 추정 보도보다는 차분하고 냉철한 접근을 통해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결책을 마련하는 게 순서일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는 “사전 통보 없는 수문 개방으로 인한 인명피해를 아랑곳하지 않는 북한의 무책임성도 그렇지만 번번이 당하면서도 재발 방지 노력을 게을리 하는 남한 당국의 무신경도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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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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