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운찬, ‘장미’ 아니다…진보정당 헛발질"
        2009년 09월 04일 09: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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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정운찬이 뜨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정운찬을 총리로 기용하자 민주화 세력이 모두 정운찬 영웅 만들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 좌파인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정운찬을 ‘장미’에 비유하며 추켜세웠다. 민주화 우파인 민주당은 정운찬과 이명박 정부가 서로 소신이 정면충돌하는 관계라며, 정운찬을 두둔했다.

    대체로 ‘정운찬은 보기 좋은데, 이명박 정부가 보기 싫다. 보기 싫은 곳에 보기 좋은 것을 억지로 가져다 놓으니, 봐주기가 심히 괴롭다. 뭐하는 짓이냐!’ 이런 정도의 반응들이다. 정운찬의 차별성과 존재감을 비판세력이 알아서 만들어주고 있다.

       
      ▲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사진=교육희망)

    이렇게 차별성과 존재감을 범정파적으로 만들어준 상황에서 정운찬이 대통령의 예스맨에 안주한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이명박 정부와 싸우기라도 하면 그는 영웅이 된다. 약간의 갈등관계만 빚어도 영웅이고, 이명박 정부의 ‘삽질’ 기조를 뒤집으면 더 큰 영웅이 되고, 행여 이명박 정부에게 쫓겨나기라도 하면 대영웅으로 입신 차기 대선 최대의 다크호스가 될 것이다.

    ‘소신의 사나이 정운찬!’, ‘대쪽 총리 정운찬!’ 이런 식의 이미지 메이킹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충청권 대표주자라는 자산까지 가질 수 있으니 파괴력은 어마어마하다.

    요즘 이명박 정부에게 삐딱한 소리를 조금이라도 하면, 덮어놓고 ‘개나소나’ 뜨는 분위기다. 정운찬도 현 정부 들어 대운하 반대 등의 주장으로 떴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들 정운찬이 이명박 정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사람에 대해선 할 말이 없으니까 구도가 어색하다며 ‘째째한’ 비방이나 하는 것이다. 그렇게 어색하다고 비방할수록, 정운찬의 차별성과 존재감만 강화될 뿐이다.

    입버릇처럼 이명박 정부에게 포용인사, 범정파적 인사를 주문하더니 막상 정운찬 뺏기니까 초 치고 나서는 민주당의 모습은 특히 째째하다.

    과연 정운찬이 그렇게 이명박 정부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까? 이명박 정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부자정권, 엘리트정권, 상위 1% 정권과는 다른 성향이라는 뜻인데 과연 정운찬이 그런가?

    이명박 정부와 뭐가 다른데?

    정운찬은 서울대 총장으로 있던 2004년에 평준화 교육이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며 고교평준화를 비판하고, “한국 대학도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에 따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대학개혁을 역설한 바 있다.

    이념의 차원에서도, 감수성의 차원에서도, 이해관계의 차원에서도 고교평준화를 적대시하는 건 이명박 정부의 핵심 코드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를 구성하는 기득권 세력은 자식들을 일류고에 보내려는, 동시에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들은 고교평준화를 빨갱이 제도라고 생각하거나, 자유로운 시장원리 혹은 선택권 원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평준화라고 하면 괜히 기분이 나쁘다. 왠지 경기고가 있던 그 시절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의 집단인 것이다. 정운찬의 사고방식과 감수성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에 따른 대학 구조조정도 그렇다. 다윈이 거론되는 것부터가 문제다. 사회문제에 다윈의 진화론을 갖다 붙이는 것은 미국식 시장주의자, 엘리트주의자들의 전매특허다. 2000년대는 시장화에 따른 폐해로 국가가 붕괴해가고 있었을 때인데, 아직도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 운운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적자생존 이론에 따라 대학을 구조조정할 경우 한국의 권력 재생산 기제인 대학서열체제 학벌사회는 훨씬 심화된다. 결국 서울대, 연고대가 살아남고 지방대, 3류대가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명박 정부를 구성하는 집단이 대대손손 귀족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현 정부와 충돌할 것이 없다. 평준화를 반대하며 적자생존 구조조정을 좋아한다면 이명박 정부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얘기다.

    노무현과도 싸웠던 정운찬

    노무현 정부 기간 동안 뜨겁게 상연됐던 쇼쇼쇼가 있다. 바로 3불정책 쇼쇼쇼다. 노무현 정부는 3불정책으로 대학을 규제하는 것처럼 쇼를 펼쳤고, 대한민국은 거기에 깜빡 넘어갔다.

    그것이 쇼쇼쇼였던 이유는, 노무현 정부에게 대학을 규제할 의지가 사실은 없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도 이명박 정부처럼 입시자유화, 대학자유화를 신봉했었기 때문에 정부의 엄포는 단지 쇼였을 뿐이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차이는 자유화의 속도 차이, 그리고 대학에게 쓴 소리를 하느냐 안 하느냐라는 ‘말’의 차이 정도였다. 그 말 때문에 정부와 대학 사이에 말싸움이 노무현 정부 내내 이어졌다. 그 말싸움을 주도한 것이 논술 파동의 서울대였고, 그 한 가운데에 정운찬이 있었다.

    정운찬은 서울대가 자유롭게, 자기들 마음대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을 일컬어 학문의 자유라고까지 했었다. 대학입시하고 학문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대학이 학문의 자유를 누리듯이 입시의 자유를 누리면, 그리고 교교평준화가 해체돼 각 고등학교가 또 입시의 자유를 누리면 대한민국은 ‘개판’이 될 것이다.

    당시 정운찬은 교육의 목적이 가르치는 데에도 있지만, 좋은 학생을 솎아내는 데에도 있다며 입시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선발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 기득권 세력의 이해관계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왜냐하면 입시 선발이 강조돼야 입시경쟁이 강화되고, 보다 많은 자원을 가진 자기들의 자식이 승리해, 자신들 집단이 천민자본에서 귀족으로 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해관계에 부합하게, 대입자유화로 근본적인 차원에서 같은 입장을 취한 노무현 정부 교육정책마저도 부족하다며 참여정부와 싸웠던 정운찬. 이명박 정부에 어울리는 엘리트주의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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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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