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총보수화' 변화 가능성 미지수
    민족주의 강화, 보수양당 고착 가능성
        2009년 09월 01일 09: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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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30일, 일본판 ‘체인지(Change)’의 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1955년 이후 반세기가 넘게 일당 우위의 장기집권 체제를 유지해왔던 자민당은 말 그대로 참패했다(선거결과는 표 참조).

       
      ▲ 일본 민주당 대표 하토야마 유키오가 손을 번쩍 치켜들고 있다

    이로서 일본은 반세기만에 ‘진정한 의미의’ 정권교체를 이루어 냈다.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의석 달성에 실패해, 야당과 군소정당들이 ‘비자민-비공산’ 연립정권을 수립해 운영한 것은 불과 10개월이었다.

    게다가, 자민당은 10개월 만에 여야로 대립해 오던 사회당과 연립을 구성해서 집권여당으로 복귀했다. 이 10개월을 정권교체의 경험으로 보더라도, 이번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는 그 의미가 무척 크다. 특히, 집권여당으로 복귀한 자민당은 고이즈미 정권을 거치면서 다시 한 번 그 아성을 뽐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계의 왼쪽 날개를 점해왔던 사회당은 ‘우경 노선’의 실패와 노동그룹의 이탈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공산당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결과는 90년대와 2000년대 초엽의 일본 정치사회의 ‘총보수화’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다만, 이번 정권교체가 기존의 흐름에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지만 일본 정치사회의 ‘총보수화’ 자체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이번 중의원 선거 과정과 결과 속에서 몇 가지 주목해 봐야 할 지점들이 있다.

       
      ▲ 자료출처: 야후저팬(www.yahoo.co.jp) 특집페이지 『衆議院選擧2009』

    구조적 한계에 봉착한 자민당 집권 체제

    무엇보다도, 민주당의 압승-자민당의 참패라는 결과이다. 일본 정치평론가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민당의 집권체제가 ‘구조적 한계’에 봉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분명, 경기침체와 실업, 고용불안, 생활고, 연금과 의료체계의 붕괴 등 복지시스템의 동요 등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의 폐해에 대한 불만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러한 불만이 반드시 민주당 선택으로 이어지리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사실, 지난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경제불황을 경험하면서 일본 유권자들은 고이즈미라는 ‘극장형 정치인’에게 표를 몰아준 바 있다.

    그러나, 금번 선거에서 일본 유권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자민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그것은 자민당이 그 한계를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베, 후쿠다, 아소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정권을 내던지고 전임자가 내던진 정권을 후임자가 다시 주섬주섬 챙기는 모습은 자민당 집권 체제의 한계를 극적으로 보여 주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참고기사 이준규, “정권 연장을 위한 자민당의 ‘생쑈’ )

    ‘정권교체’를 선거 프레임으로 제기하는 민주당에 대항해서 자민당은 ‘책임성’이라는 프레임으로 맞섰다. 그 실내용은 민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면 ‘일본이 불안하다’는 네거티브 전략이었다. 그러나, 누가 봐도 그 ‘불안’이라는 말은 현재의 자민당에게 들어맞는 표현이었다. 이는 이번 민주당의 압승이 반사이익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 오자와 이치로

    물론, 민주당의 압승 뒤에는 오자와 이치로라는 ‘정치꾼’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민주당을 수권정당으로 탈바꿈 시켰고, 바닥을 훑는 특유의 스타일과 적절한 시기와 장소에 젊은 신인정치인을 배치하는 스타 마케팅을 적절히 구사하는 전술로 선거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자민당의 최대약점인 세습정치인, 관료지배 등의 문제를 쟁점화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 일본 유권자들의 투표행위는 포지티브한 선택이라기보다는 네거티브한 선택이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즉, 언제든지 민주당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세대교체라는 양날의 칼

    한편, 이번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거물급 정치인들이 우수수 낙마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대부분이 자민당 소속이다. 동시에,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 당선의원 308명의 평균 연령이 49.4세로 자민당의 56.6에 비해 7살 가량 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신인인 초선 당선자도 143명에 달한다. 정치권의 세대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정계에서 세대교체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고이즈미 전 수상이 2005년 ‘우정민영화를 위한 해산 선거’를 강행할 당시에 발탁한 ‘고이즈미 칠드런’도 정치신인들이 다수였다.

    그러나, 이번 세대교체는 그 규모 뿐만 아니라, 정권교체와 함께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 파장이 더 클 수 있다. 선거 전부터 쟁점이 되었던 ‘세습 정치인들’, 즉 가업이 정치가 되버리는 정치구조, 그리고 ‘직업 정치인들’에 의해 높아만 가는 정치시장의 진입장벽 등이 개선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외부의 시선으로 볼 때 세대교체는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일본의 젊은 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대외인식과 역사인식과 관련해서다. 특히, 민주당의 젊은 정치인들의 경우, 자민당의 원로그룹 정치인들보다도 훨씬 민족주의적인 경향성을 드러내곤 한다.

    또한 30~40대 정치인들은, 평화주의라는 이상주의적 노선과 미국에의 편승이라는 현실주의적 노선 사이의 길항작용 속에서 구축되어 온 일본의 전후체제가 동요-붕괴된 환경에서 자란 세대다. 그들은 미국식 리얼리즘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대외관계를 인식하는 데 익숙하다고 볼 수 있다. 한일 관계와 북일 관계에서 그들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민주당의 기본 입장이 ‘아시아 중시’이고, 북한과도 대화의 여지를 남겨 두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또한, 사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하게 되면 아무리 소수정당이라 할지라도 정책을 조율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있다.

    그러나, 특히 북일 관계에 관한 한 일본 내에서 ‘전후처리’라는 맥락에서 접근하는 시각이 극소수로 전락하고, 대화노선이든 강경노선이든 ‘위협의 제거’라는 맥락에서 접근하는 시각이 일반화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한 여론과 분위기 속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색이 옅은 민주당이기에, 오히려 운신의 폭이 좁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향후 북일 관계의 향방은 일본 국내요인 보다는 외적요인, 즉 북미 관계의 진전, 남북 관계의 진전 등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을 더 높게 보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일 것이다.

    보수 양당 체제의 고착

    다음으로 주목해 봐야 할 부분은 공산당과 사민당의 쇠락이 분명해지고 보수 양당 체제가 고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또한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사민당의 경우, 1990년대 연립정권에 참여하면서 이른바 ‘현실 노선(자위대 합헌성 인정, 국기․국가법 인정 등)’으로 우경화했지만 오히려 당세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쇠퇴해버렸다. 도이 다카코 당수, 후쿠시마 미즈호 당수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현대식 사민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환골탈태를 시도했지만 당세 회복은 이뤄내지 못했다.

    이번 중의원 선거 직전에 치러진 토쿄도 도의회 선거(2009년 7월)에서는 인재가 없어서 각 선거구에 후보도 제대로 세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는 현상유지는 했다. 그러나 ‘반자민’ 여론을 사민당 지지로 끌어오는 데는 실패했다.

    공산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90년대 한때 지방선거에서 약진을 하면서, 일본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실상은 소수야당으로서 현상유지에 급급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공산당이 나름의 기대를 한 것도 사실이다. 고용불안과 실업, 경기악화 등을 배경으로 작년부터 일기 시작한 ‘공산당 붐’에 기대를 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공산당은 ‘건설적인 야당’을 모토로 내걸고, ‘비례투표는 공산당에게’라는 선거전술을 구사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현상유지였다.

    공산당과 사민당의 소수정당으로의 전락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정권교체’라는 선거프레임과 ‘자민VS민주’라는 정치구도 속에서 사민당과 공산당은 의미 있는 정치적 선택지로서 부각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 괴로운 표정의 아소 다로

    ‘55년 체제’가 유지되는 상황 속에서 만년 여당인 자민당의 견제세력으로서 사회당(사민당의 전신)-공산당에 표를 던지는 행위는 의미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처럼 반세기만에 ‘정권교체’가 화두가 되는 선거에서 “원칙을 지키는 정당 사민당”, “건설적인 야당 공산당”이 표심을 얻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변화의 향방은 어디로

    분명, 2009년 8월30일의 일본 국민들의 선택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 일본 현대사에서도, 그리고 국제정치적으로도 그렇다. 향후 한반도와 일본, 동아시아와 일본의 국제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긍정적 힘으로 작용할 것을 기대해 본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것들처럼 일본의 정치사회가 전반적으로 보수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혁신정당, 혁신세력의 쇠락은 두드러지고 있다. 이를 대외정책의 측면에서 본다면, 평화주의 혹은 평화지향성을 견지해온 세력의 쇠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오랜 역사를 가진 시민운동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 국내정치의 변화와 개혁에 의미 있는 행위자로 부상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반드시 우리(한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소망스러운 대외정책’으로 연결되리라는 법은 없다.

    앞으로는 좀 더 현명하고 전략적인 대일 접근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질 것이다. 민주당 정권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권교체까지 이룬 일본 사회를 향해 지금까지처럼 ‘도덕적 우월감’에 입각해서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극심한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것이 역사문제든, 영토문제든, 아니면 북일 관계든.

    정권교체와 ‘새로운 일본’의 등장, 함께 기뻐해 주는 것은 이웃나라로서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는 새로운 고민을 해야 할 단계에 와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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