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2조원, 기금을 민주화하라
        2009년 08월 31일 10: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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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금은 일반회계, 특별회계와 달리 종류도 다양하고 쓰임새와 운용과정이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재정이다. 하지만 기금은 전체 정부총지출의 약 1/3을 차지하고, 올해 추경 편성처럼 정부가 상대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재정수단이어서 특별한 관심이 요청된다. 국가재정을 구성하는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을 비교 정리하기 전에 기금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400조 원이 넘는 기금운용 규모

    2009년 기금의 수는 63개이고 올해 신규 운용규모가 422조 원에 달한다.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기금은 특정한 사업을 위해 설립된 만큼 기금 규모, 의사결정구조 등이 다양한데, <표 1>에서 보듯이, 보통 설치 목적에 따라 4가지로 분류된다.

       
      

    기금 규모가 정부총지출보다 큰 이유

    아마 올해 우리나라 중앙정부 총지출 규모가 301.8조 원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기금 규모 수치가 어리둥절할 수 있다. 정부총지출은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을 합친 것인데, 어떻게 기금의 운용규모가 422조원으로 정부총지출보다 클 수 있는가?

    우리나라 기금을 이야기할 때 항상 떠올려야 하는 것이 국민연금기금이다. 국민연금기금이 기금 관련 수치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른 나라 공적연금은 대부분 적립금을 가지지 않는 부과방식 재정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공무원연금처럼 그 해 필요한 연금지출액을 보험료 수입과 정부 지원금으로 충당하는 까닭에 사실상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국민연금기금의 재정구조는 미래 연금액을 미리 쌓아두는 적립방식이다. 그래서 국민연금기금이 올해까지 조성한 금액이 무려 280조 원이다. 앞으로도 30년 이상 급여 지출보다 보험료 수입이 더 많아 기금 규모가 증가할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이 가장 커지는 2043년에 기금 규모는 무려 2,465조 원(2005년 불변가격 1,056조 원)에 이른다. 당시 GDP의 절반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그런데 국민연금기금이 모두 정부총지출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 재정은 당해 사업에 지출되는 돈을 가리킨다. 기금은 자산(stock) 방식의 적립금이어서 전체 기금 규모 중 사업지출비만 정부총지출로 간주된다. 현금(flow)방식의 돈으로 전액 당해 지출되는 재정인 일반회계나 특별회계와 다른 점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기금 조성액 280조 원 중 실제 연금급여에 지출되는 돈은 약 8조 원이고, 나머지 272조원은 채권, 주식,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서 운용된다. 정부총지출은 당해연도 사업에 사용되는 돈이기에 기금수익을 위해 운용되는 돈 272조 원은 정부총지출로 계산되지 않는다.

    이와같이 전체 기금 금액에서 사업비지출만을 뽑아보면, 올해 신규 기금운용 규모 421.8조 원 중 정부총지출로 포함되는 금액은 91.5조 원이다. 그래도 기금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기금 91.5조 원은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합친 예산 210.3조 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기금은 금융시장 부양수단으로도 사용돼

    기금에서 유의할 점이 또 있다. 한국경제의 거품을 만들어내는 주식, 부동산시장에 기금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기금의 입장에서는 운용수익을 위해 자산시장에 뛰어드는 것이지만,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백조의 금융시장 부양금이 존재하는 것이다.

    필자가 2004년 국회 보좌관으로 들어가 맨 처음 다룬 법안이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의 내용은 간단했다. 기금의 주식, 부동산 투자를 금지하는 포괄조항(3조 3항)을 삭제하자는 것이었다.

    당시까지 기금관리기본법은 기금의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을 중요시해 주식, 부동산 투자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공익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위험자산 투자를 허용하고 있었다.

    민주노동당이 개정안에 반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정부의 뜻대로 2005년 이 조항이 삭제되었고, 이제는 모든 기금이 개별기금법에 따라 주식, 부동산투자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 이미지=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

    현재 규모가 1조 원이 넘는 기금들은 자체적으로 기금운용위원회를 설치해 운용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민연금기금은 올해 272조 원의 운용계획을 작성해 기획재정부에 제출하고 국회 심의를 받은 후 자신이 직접 집행한다.

    반면 1조 원 이내 중소형 기금들은 기획재정부가 설정하는 연기금투자풀에 여유자금을 예탁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차관이 위원장인 투자풀위원회가 이 기금들을 모아 기금운용계획을 수립한다. 2009년 8월 현재 투자풀위원회는 총 51개 기금에서 약 4조 원을 예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현재 투자풀위원회가 선정한 주간운용사는 삼성투신운용이다.

    이렇게 기금은 한쪽 면은 국가재정으로서 그리고 다른 한면은 금융시장 부양수단으로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대상이다. 기금 역시 우리의 호주머니 돈으로 만들어진 것 아닌가!

    기금은 일반회계와 특별회계가 조세 수입에 의존하는 것에 비해 출연금, 부담금 등의 형태로 재원을 마련한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기금, 고용보험기금 등 사회보험성 기금은 보험료로 기금을 조성하고, 국민건강증진기금은 담배 1갑당 부과되는 354원의 담배부담금이 세입원이며, 주택건설 및 임대사업에 사용되는 국민주택기금의 주요 재원은 주택채권이다.

    기금, 이명박정부의 쌈지돈으로 전락할 수도

    그러면 국가재정에서 기금의 비중을 늘리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줄여야 하는가?

    개별 기금마다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이 질문에 쉽게 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기금의 규모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고, 기금운용에서 정부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결국 기금은 어떤 정부 하에서, 누가 운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원론적으로 기금이 지닌 장점은 지배구조에 있다. 기금은 행정부와 국회가 의사결정과정을 독점하는 예산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사회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국민연금기금, 고용보험기금 등 사회보험기금 의사결정에는 제한적이나마 가입자대표들이 참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방송발전기금, 여성발전기금 등 시민사회단체의 참여 없이 정부 부처가 사실상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는 경우에도, 일반시민의 관심이 커지고 시민사회가 발전할 경우 이해관계자 대표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원론과 너무 멀다.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국민연금기금 민간위탁법안(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보라. 현재 20명으로 구성된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는 가입자단체 대표가 12명으로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이 가입자의 보험료로 조성된 것을 존중해 만들어진 참여형 지배구조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의 골자는 위원회 규모를 7명으로 줄이면서, 가입자대표를 모두 내쫓고 전원 민간 금융전문가로 채우는 것이다. 주식, 부동산 등 위험자산에 국민연금기금 투자를 늘리기 위한 사전초석이다.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참여형 사례조차 위험에 처해 있다.

    사회구성원들이 나서서 기금을 민주화해야

    이제 기금에 대한 요점을 정리하자. 첫째, 기금은 국가재정을 구성하는 삼각기둥 중 하나이다. 우리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생활 곳곳에 기금이 있다. 2009년 복지지출 80.4조 원 중 54조 원이 기금에서 나온다. 진보운동이 개입해야할 공공재정인 것이다.

    둘째, 기금은 우리나라 자산시장에서 핵심 투자자로 부상하고 있다. 기금이 공공적으로 운영될 경우 우리나라 사회경제 인프라가 강화되겠지만 반대로 자산시장 거품을 일으키는 위험한 주체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진보운동이 기금의 대안운용전략을 마련하고 이를 공론화하는 활동을 벌이는 게 중요하다.

    셋째, 기금은 예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사결정과정에 이해관계자가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질 수 있다. 기금이 지닌 잠재적 긍정성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다. 근래 국민연금기금 지배구조 개정 논의를 보면 미래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기금을 민주화하는 과제가 진보운동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에 대한 비교는 다음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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