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급 연애'서 탈출하고픈 이들을 위해
        2009년 08월 29일 07: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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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교육관념이 없는 계모와 언니들 밑에서 자라 별다른 ‘스펙’을 지니고 있지 않은 신데렐라는 오로지 나이트에서의 ‘한 방’으로 왕자를 애인으로 얻어냈다. 왕자는 첫눈에 반한 그녀를 찾아 온 동네를 해매이고, 결국 신데렐라는 ‘A급 연애’에 성공한다.

       
      ▲책 표지 

    이건 전설이다. 더 이상 신데렐라는 나올 수 없다. 특히나 대한민국 사회라면 왕자는 자신의 나라보다 더 강력한 나라의 공주를 원하고, 신데렐라는 왕자만을 노린 나이트 ‘죽순이’로 살아갈른지 모른다. 모두 ‘B급 연애’만큼은 거부하고 싶은 감정 때문이다.

    88만원 세대, 특히 20대 여성의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20대 여성들은 전 세대 여성들이 그랬듯 여전히 비교당해서 주눅 들고 가부장제에 찌는 남자들과 릴레이로 B급 연애를 하느라 쓰리고 아픈 눈물 마를 날이 없다.

    ‘20대 여성’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연대가 갖는 가치를 알고 있는 김현진의 신간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레드박스, 12,800원)는 바로 이들, B급 연애에서 탈출하고 싶은 여성들을 위해 쓰여진 에세이다.

    김현진은 머리말에서 “스펙 좋아하고 남보다 잘난 남자 잡아서 대한민국 1%가 되기를 원하는 아가씨들이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살아도 나쁠 것 없다”며 “다만 그렇게 살기 싫은데, 뭔가 자꾸 세상이 바보 취급하는 것 같아서 서글픈 아가씨가 있다면 나는 지금 오직 그녀를 위해 쓴다”고 말한다.

    엘리스 워커의 동명 시에서 제목을 따온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는 냉소와 비관주의 속에서도 현실을 구조적 맥락에서 현상을 파악하고 ‘건강한 삐딱함’으로 웃음을 유도한다. 특히 ‘착한 여자 콤플렉스’, ‘신데렐라 콤플렉스’, ‘된장녀와 골드미스’같은 남성주의 사회가 만들어 놓은 덫에 엮이길 거부하며 이에 엮여있는 여성들의 마음을 다독인다.

    그러나 김현진의 비판은 가부장 사회의 수혜자로서 이기주의를 온몸에 두르고 있는 남성들을 향한 것만은 아니다. 심하게 오지랖 넓은 한국인들, 다른 여자의 외모 평가에 철저하게 남성적 사고방식을 답습하는 여성집단, 자유로운 연애를 구가하는 여자 연예인에게 ‘걸레’라는 오명을 씌우고 뒷말을 하는 여성 대중의 얄팍한 습성 역시 비판한다.

    다만 ‘B급 연애’에 가슴아파하고, 남자 때문에 우는 ‘착한 여성’들을 위해 말한다. “괜찮아 베이비, 우린 살아 있잖아 그것 만으로도 반은 성공이야,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그래도 삶은 계속되니까”

    “그거 견디고 살아남으면 베이비, 마음의 키는 더 자랄 테니까, 안 죽어 안 죽는다고, 세 투트(cest tout, 이게 다예요), 울어도 괜찮아 그러니 얼마든지 사랑하고 얼마든지 실패하자. 안 죽는다. 코시 판 투테(cosi fan tutte, 이것이 여자라는 것이다.)

                                                      * * *

    지은이 김현진

    냉소와 분노와 우울을 블랙 유머로 승화시키는 연금술을 몸속에 장착한 국내 몇 안 되는 에세이스트.
    숨 막히는 고등학교를 용감히 박차고 나온 ‘불량소녀’로 세상에 알려진 지 벌써 10년째.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과 동 대학원 서사창작과에서 고학생 겸 직장인으로 빡세게 살았으나 세상 때문인지 본인 때문인지 여전히 도시빈민으로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그래도 기는 죽지 않고 세상과 맞짱뜨며 이십 대의 막바지를 치열하게 불태우고 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오래된 캐치프레이즈를 증명이라도 하듯 ‘88만 원 세대’이자 비주류인 자신의 계급과 사회구조적 모순과의 관계를 ‘특유의 삐딱한 건강함’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평가받으며 이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반골 기질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TK 출신에 목회자인 부친을 둔 그녀는 최근 MB 정권과 격렬히 불화하는 것은 물론, 기륭전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싸움터에서 그 어떤 학교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한다.

    <시사IN>, <한겨레> 등에 고정 칼럼을 쓰고 있으며 저서로는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네 멋대로 해라』, 『불량소녀백서』, 『질투하라 행동하라』, 『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 『그래도 언니는 간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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