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창들과 나 그리고 세월
    2009년 08월 29일 09:56 오전

Print Friendly
   
  ▲필자

저로서 가장 겁이 나는 일 중의 하나는 초-중-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날 수 있는 ‘동창 재회’ 사이트에 가는 것입니다.

미국의 ‘아이러브스쿨’과 같은, 옛 동창 사이의 재회를 가능케 하고 지속적 온라인 만남의 공간을 제공해주는 사이트들은 요즘 러시아에서도 인기인데 거기에 들어갈 때마다 겁이 납니다.

가장 겁나는 일

왜냐하면, 제가 과거에 알았던 ‘그 때 그 아이들’을 도대체 알아볼 수 없고,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완전히 다른 어른들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변화무쌍이니 ‘무아’니 라는 게 뭔지 그럴 때에 절감하지요. 정해진 자아란 정말로 없는 것 같고, 인간이라는 껍질 안에서의 내용은 그 일생의 70~90년 동안 대단히 크게, 본질적으로 바뀔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초교 1학년 때에, 제가 한 달이나 아주 무서운 독감으로 학교에 못 갔을 때에 매일매일 제 집에 숙제를 직접 갖다주고 수업 내용을 설명해줄 만큼 ‘친구에 대한 도움 줄 의무’ 등 ‘공공에 대한 의무심’이 강한 아이가 있었어요.

견학차 제2차세계대전 때의 레닌그라드 포위 시 아사자들의 집단 묘지에 갔을 때에 그 동상에서 거수경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제게 "돼지 같은 놈,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 왜 이리 존경심도 없냐"고 엄준히 질책할 만큼 (그 당시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해석된) ‘공공의 가치’에 대한 지향은 대단히 강했었던 친구였습니다. 

1980년대말에 군대에서의 얼차려 등 군사주의를 비판하는 기사들이 처음 신문에서 실릴 때에 "공동체에 대한 주요 임무인 병역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려는 젊은이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면 안된다"며 군에 대한 일체 비판마저도 거부하려 했던,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목숨을 바쳐야 한다"던 그 아이…

지금 부동산 거래 업체의 주역이 된 그의 ‘복스럽게’ 둥근 얼굴을 보면 도대체 저와 같이 놀았던 그 친구를 알아볼 수 없어요. 좋다, 나쁘다는 식의 가치판단할 것도 없지만 어쨌든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것만 같지요.

혁명적 소녀 시인

아니면 고교 시절에 제가 은근히 짝사랑했던 ‘반란자’ 풍의 여자 아이가 있었어요. 학교 교장이 직접 세계사 수업하면서 체 게바라에 대해 "극좌적 모험주의자"라고 할 때에 그 비분강개를 못이겨 갑자기 칠판으로 뛰어나와 "아니, 체 게바라와 그 대원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알기나 하시냐"고 하면서 체 게바라의 남자로서의 매력과 그 혁명적 열정에 대해 울면서 열변을 토했던 그녀…

교장을 위시한 모든 교사들의 눈엣가시였던, 규율의 ‘규’자도 못받아들이고 통기타를 치면서 남미의 혁명가요를 맨날 불렀던 그녀… 그녀가 어떻게 정학 내지 퇴학 처분을 면했는지 지금도 불가사의한 일로 남습니다.

솔직히 교장부터 그녀가 퇴학 등을 당하면 테러라도 저지를 것 같아 은근히 무서워했던 것 같기도 했어요. 불 같은 성격에다가 아주 뛰어난 ‘혁명적 소녀 시인’이었어요. 시인으로서는 지금도 살지만 지금이야 보수적인 카톨릭적, 종교적 시인이지요.

그리고 그녀가 멤버로 있고 작사, 작곡하는 밴드는 주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돈이나 잘 버는 중산층이 들락날락거리는 고급 클럽, 카페에서 연주를 많이 합니다. 결국 그녀도 ‘적응’을 잘 한 편에 속하게 됐어요. 고교 시절을 회상해보면 전혀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았지만 말씀입니다.

그런 걸 보면 초교시절이나 고교 시절의 ‘나’부터 지금의 ‘나’를 만약 보게 됐다면 과연 뭐라고 했을까라는 질문부터 떠오릅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남이 바뀐 걸 다 볼 수 있지만, 또 나 자신도 아마도 그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과거의 나’를 떠났을 것입니다. 꼭 좋은 방향으로 떠난 것도 아니고요…

동심을 잃으면 마음이 죽는 건데

지금 기억으로는 1997년초, 한국에서 풋내기 교수(물론 무늬만 교수, 즉 강의 전임강사였지만)로 교단 생활 시작했을 때에는 학회에 참석하거나 특강하는 교수들에게 꼭 봉투에다 돈을 넣어 주는 한국적 (또한 일본적) 풍토에 대단히 놀라 안 받으려고 했던 적도 있었어요.

"학문을 좋아서 하는 것인데 무슨 돈이냐"라고 하면서요. 지금 같으면 끽 소리없이 그냥 다 잘 받습니다. 그나마 학회 ‘발표비’도 전혀 없고 특강료도 안줄 때가 많은 유럽에서 사니까 꼭 주지 않아도 화나지 않지만 이제 와서는 일단 ‘주는’ 것을 당연지사로 봅니다.

학문도 금전 거래 대상이 되고 학자에 대한 ‘대우’가 돈으로 계산되는 한국식 자본주의를 저도 다 내면화한 셈이지요. 그러니까 제가 제 동창들이 "바뀌었다"는 걸 비판적 어조로 말하지만 꼭 저부터 그들과 뭐가 다른지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바깥에서 본다면 말씀에요…

하여간 동창 사이트에서 학교 시절의 단체 사진이라도 보게 되면 자본주의의 단 맛을 아직도 몰랐던 ‘그 때의 나’의 눈으로 ‘지금의 나’를 보게 되고, 또 그만큼 내가 얼마나 나의 동심을 벗어났는지 은근히 알게 돼 무섭습니다. 동심, 즉 ‘나’의 원래 마음을 벗어난 이상 과연 더 이상 살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동심을 잃으면 그게 마음의 죽음인데, 마음이 죽으면 몸이 죽나 사나 그리 크게 중요한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