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훈 다투기, 가신들의 귀환
        2009년 08월 27일 02: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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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의 유지를 계승한다?

    영면에 들어가신 고인의 유지를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이 앞다투어 계승하겠다고 한다. 유지의 핵심은 ‘화합과 통합’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제도와 행정구역 개편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개혁이 유지계승의 기본이라 한다.

    유지계승의 정통을 잇는 민주당은 ‘민주대연합’이라는 통합의 공통분모가 당내를 관통하지만, 오히려 복잡한 속내가 있다. 민주당 중심론을 급부상시키려 하지만, 한 쪽에서는 ‘친노신당’ 창당론이, 다른 한쪽에서는 민주당의 어깨에 앉은 채 산을 넘으려는 소수 정당들과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민주개혁 대통합론’ 때문에 불편함을 감출 수 없다.

    여기에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새로운’ 구 세력이 있다. 조문정국 이후 상도동계를 동반한 동교동계의 잦은 언론 노출은 정치가 실종된 1980년대로 돌아간 느낌을 준다. 민주세력조차 줄서기, 서열, 측근 혹은 가신, 밀실정치의 악습을 버리기 힘들도록 했던 ‘또 다른 권위주의 정치’가 회귀하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 사진=민주당

    왕의 후견 아니면 자신의 권력이 보장되지 못하는 몰락한 왕족들, 가신들, 양반들이 왕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이제 기지개를 펴는 정치의 민주화를 짓누르는 느낌이다.

    텅 빈 민주대연합론

    문제는 민주대연합론의 텅 빈 내용이다. 민주대연합론은 2012년까지 모든 선거에서의 승리를 정치적 목표로 삼는 듯하다. 그런데 선거승리 또한 정책실현을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어떤 정책을 실현하려는지 아직까지 드러난 것은 현 정권의 정책에 대한 반대뿐이다. 이는 민주당이 집권했던 2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2년 전이 지금보다 좋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대단히 중요하며, 모든 민주주의 정치세력들은 선거에 주목한다. 대의/대표제가 요구되는 거대 사회집단에서 선거는 그 한계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효과적인 정치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선거승리란 바로 선거를 통해 인정된 정치적 대표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사회의 실현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민주대연합론에는 새로운 사회가 무엇인지 알맹이가 없다. 어쩌면 민주대연합론 주창자들에게는 현 정권만 없으면 무조건 새로운 세상인 듯하다. 이런 가운데 민주대연합의 빈자리는 ‘인물’로 채워지고 있다.

    민주대연합의 빈자리를 채우는 ‘인물론’은 마치 동네 장기 훈수와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누굴 어디로 출마시키면 누굴 잡고, 누가 나오는 곳엔 누굴 내보내선 안 되고, 초반 당내 경쟁으로 불을 지피다가 막판 단일화로 극적 상황을 만들어야 하고, 누굴 대마로 키우려면 지더라도 큰 판에 보내야 하고, 누구는 언론 묘사와 달리 도저히 같이 일 못할 사람이고, 누구는 겉보기와는 달리 특정 집단의 사실상 보스라는 등이 그렇다.

    여기에 쌍용노조 파업, 용산참사, 비정규직 문제, 미디어법 개정, 교육 개혁, 친환경 정책 추진 등은 인물들을 부각시킬 곁다리일 뿐이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어느 ‘의회주의자들’이 과연 이러한 ‘진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 ‘민주대연합’을 하려 한 적이 있는가?

    최근에는 진보성향 언론들이 민주대연합 주창자들 사이의 인물 중심론을 부채질하고 있다. 오히려 정책감시에 더 헌신적인 언론은 보수언론이다. 이들은 반대정책의 생산자들은 가차없이 족쇄를 채우고, 반대로 누구라도 자신들의 지지 정책을 실현할 인물이면 적극적으로 키워나간다. 슬픈 현실이다.

    ‘평가와 반성’없는 인물론

    누구 그림자가 고인의 그림자와 가장 유사한가에서 계승의 정통성을 찾으려는 인물론은 무엇보다 어떠한 ‘평가와 반성’도 불가능하게 한다. 고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 및 계승자 스스로에 대한 반성은 계승의 기본 원칙이다. 그렇지 않은 계승은 ‘지난 결과의 반복’만을 만들어낼 뿐이다.

    불행하게도 다시 거론되기 시작하는 민주당 주변의 수많은 인물들 중 ‘평가와 반성’을 시도하는 자는 없는 듯하다. 오히려 그들 중 적지 않은 자들은 평가하고 반성해야할 자신의 과거 잔재를 덮어버리고 제도정치공간으로 귀환하려 한다.

    ‘인물’이란 닮은 그림자가 아니라, 민주대연합이 그리는 구체적인 대안적 공동체의 상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을 만들어 주는가에 따라 드러나게 된다. 그러한 실천 속에서 어떤 이는 전략가로, 어떤 이는 대중적 지도자로 그 역할이 나뉠 수 있다. 따라서 민주대연합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인물 중심의 정치지형을 구축하기 위해 변형된 민주대연합론이 문제인 것이다.

    가장 쉬운 통치

    현 정권에 대한 비판, 그리고 ‘소위’ 민주대연합에 대한 논의, 아니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대에 대한 논의를 대안적 공동체에 대한 치열하고 창조적인 고민으로부터 시작하자. 대안적 공동체의 깃발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때 모든 민주적 연합, 나아가 연대가 가능할 것이다.

    명심하자. 반대만 하다 지쳐버린 희망 잃은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처럼 가장 쉬운 통치는 없다는 것을. 마치 이 늦은 밤 투표율 저조로 제주지사 주민소환 무산을 경험한 제주도민들의 가슴 아픈 현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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