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보내며 서편제를 회상한다
    2009년 08월 22일 12: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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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대통령 이전, ‘대통령’이라는 최고권력자의 존재는 영화에 대해 오로지 폭력적 존재였다. 자유당 말기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전국 학생들에게 단체관람까지 시켜가면서 자기를 찬양하게 만들었던 초대 대통령 이승만.

영화 뿐 아니라 모든 대중문화의 자유로운 정신을 철저히 억압하며 검열의 칼자루를 휘둘렀던 박정희, 식민지정책에서의 순치(馴致)정책의 한 전형인 3S정책으로 영화(Screen), 스포츠(Sports), 성(Sex)를 이용해 대중의 정치적 자기 소외,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하려던 전두환.

영화와 대통령의 관계 그리고 사건

영화를 문화가 아니라 오로지 자동차 산업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 정도로만 생각해서 다양성을 봉쇄하고 상업영화만 키우면 된다고 생각한 김영삼까지 그저 대통령은 영화에 관심만 안가져도 다행인 존재였다.

   
  ▲영화 속 장면. 

그러므로 김대중 전대통령이 순수한 관객의 한 사람으로 영화를 본 것은 한국영화사와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하나의 사건이고 전환점이었다. 대통령도 영화 앞에서는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관객으로 박수를 보내는 존재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준 것은 영화 <서편제>와 김대중 전대통령의 공이다.

1993년 개봉된 영화 <서편제>는 그해 최고의 흥행작이었으며 한국 영화사에 흔치 않은 여러 기록을 만들어낸 영화다. 판소리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민족적 정서로서의 한’, ‘전통적 문화유산으로서의 판소리’를 영화화해냈다는 호평, 대통령을 비롯해 각계 저명인사들의 공식 관람 등 이례적인 문화적 파장, 제작진의 예상을 뛰어 넘는 상업적 성공 등을 바탕으로 임권택 감독에게 소위 ‘국민 감독’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주었다.

임권택 감독은 <씨받이>, <아제아제 바라아제>, <아다다> 등 국제영화제에서의 수상작들이 <장군의 아들> 시리즈와 같은 액션 오락물에의 흥행에 미치지 못하던 국내 영화시장에서의 딜레마를 이 영화를 통해 해소할 수 있었다.

<서편제>의 성공은 80년대 이후 거세게 한국 사회를 압박해 오던 시장 개방의 압력 속에서 ‘직배’체제를 통해 외국 영화의 공세가 강화되면서 영화계가 느껴오던 위기의식에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92년 한 해 동안 수입된 외국 영화는 3백 18편으로 한국 영화의 세 배에 이르며 관객 수에 있어서도 직배 영화인 <사랑과 영혼>이 1백 68만 명, <원초적 본능>이 1백 13만 명, <늑대와 춤을>이 98만 명이었던데 반해 한국 영화 중 최고 흥행작이었던 <장군이 아들>은 67만 명에 불과했다.

서편제 신드롬

87년 직배 체제가 도입된 지 6년만에 흥행실적 2백 순위 가운데 82%가 외국 영화였으며, 외화 수입이 늘어나는 반면 국내 영화 제작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외국영화의 공세와 상대적으로 침체된 국산영화의 부진, 이 두 협곡 사이를 빠져나가는 방법은 작품성이 높은 문예영화시대를 여는 길 뿐이라는 위기의식이 한편에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80년대 중반 이후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의 수상이 드물지 않게 되고 세계영화계가 아시아 영화에 주목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기대감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편제>의 성공은 전사회적 관심을 불러모으면서 소위 ‘서편제 신드롬’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게 되었고 영화계뿐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 걸쳐 다양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영화는 동호가 의붓 누이 송화를 찾아 헤매는 데서 시작한다. 동호가 맨처음 찾은 곳은 소릿재, 그 곳에서 만난 사람은 세월네이다. 도입부에서 모든 것이 드러난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 ‘소리’를 찾아 보겠다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소리’를 찾아야 하는 내력은 동호의 잃어버린 과거를 통해 드러난다. 동호의 홀어머니 금산댁이 떠돌이 소리꾼 유봉과 정분이 나서 고향을 뜨게 되었다. 유봉에게는 소리꾼을 만들고자 얻은 수양딸 송화가 있어서 동호와 송화는 의붓 남매가 된다.

금산댁은 유봉의 아이를 낳다가 죽고 송화와 동호는 유봉에게서 각각 소리와 북을 배우게 된다. 유봉은 젊은 시절에는 판소리 명창의 수제자였으나 스승의 애첩과 관계 때문에 파문당하고 떠돌이 소리꾼이 된 자로 득음에의 집착과 실패한 자로서의 콤플렉스 때문에 술주정뱅이가 되었다.

근대화의 흐름 속에 그들은 시골 잔치에서 한량들의 술판, 약장수의 바람잡이 등을 전전하면서 극도로 궁핍한 생활을 이어나간다. 지독한 가난과 유봉의 억압에 반발한 동호가 떠나버리자 송화는 소리를 거부하고 유봉은 그런 송화를 계속 자기 곁에 붙잡아두면서 소리판으로 끌어내기 위해 눈을 멀게 만든다.

   
  ▲영화 속 장면. 

결국 송화는 다시 소리를 하게 되고 그런 송화를 유봉은 지극정성으로 가르친다. 유봉이 세상을 뜨자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송화는 동호를 기다린다.

약재수집상이 된 동호는 송화의 자취를 더듬어 결국 외진 바닷가까지 찾아가고 마침내 둘은 만나게 되지만, 오직 소리와 북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뿐. 이들은 아무 기약 없이 헤어지고 다시 송화가 길을 떠나는 데서 영화가 끝난다.

이청준의 소설 「남도사람들」 연작 세 편 가운데 ‘서편제’와 ‘소리의 빛’에서 출발한 영화 <서편제>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통과 근대의 충돌

동호가 송화를 찾아 여러 지방을 다니는 여정과 그 과정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유봉 일가의 행적을 좋아 떠돌아다니는 동안 관객은 동호의 과거 시점인 30년대에서부터 현재 시점인 70년대까지의 남도 땅을 두루 지나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전통과 근대의 충돌을 드러낸다. 동호가 처음 들어선 공간 소릿재 주막 어귀에서 트럭과 소달구지가 엇갈리고, 약장사 호객 구실을 하며 생계를 잇다가 바이올린쟁이에게 밀려나고, 장터에서 ‘베사메무초’를 연주하는 악대에게 방해받는 과정에서 판소리의 부침은 전통이 밀려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동호가 송화를 찾아다니면서 ‘소리를 찾아 남도천지 안돌아본 데가 없는 위인’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데서 근대화 과정에서 밀려난 전통의 끊임없는 회귀에 대한 열망을 읽을 수 있다.

이 영화에서의 공간은 막연한 공간이다. 과거를 불러들이기는 하되 구체적인 역사 속의 사건과 연관된 공간은 없다. 오직 사실적인 소품과 사운드의 재현이 시대적 분위기를 드러낼 뿐이다. 감독 또한 ‘<서편제>를 우리 수난의 역사와 맞물려서 역사물처럼 찍을 것인가, 아니면 이 땅을 살고 있는 인간과 우리가 부르고 있는 소리가 무엇인가를 다룰 것인가 쪽에서 단연코 후자를 택한 셈’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럼으로써 판소리로서의 서편제가 하나의 문화적 실체로서 구체화 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 민족문화로서의 소리와 민족정서로서의 한’으로 추상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추상화는 이후 ‘서편제 신드롬’이 판소리에 대한 구체적 관심과 지속적인 발전으로 나아가기보다는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막연한 구호로 정리되도록 하였다.

추상화 또는 막연한 구호

<서편제>는 헐리웃 영화로 대표되는 외국 영화의 한국 영화 시장 지배 현상 속에서 한국 영화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했으며, 나아가 일본 영화나 중국의 5세대 영화들이 세계 영화제에서 거둔 평가와 견줄만한 국제적 평가를 한국영화도 충분히 받을만하다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경극을 소재로 한 첸 카이거의 중국 영화 <패왕별희>가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고 국내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한 예에 자극 받은 <서편제>의 제작진은 사실 이 영화를 처음부터 칸 영화제를 염두에 두고 기획했다.

<씨받이>를 통해 국제영화제에서의 수상이 국내 흥행에 미치는 파급력에 주목한 제작자 이태원과 국제영화제에서 내리 여우주연상에 그친 뒤 작품상이나 감독상 수상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 감독 임권택은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탄 대부분의 작품들이 말해주듯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를 기획한 것이다.

그러나 제작진의 자신감과 국민적 기대와 달리 칸 영화제에서 수상하는데는 실패했다. 이런 배경에서 제작된 <서편제>는 92년 8월 당시 기획 중이던 <태백산맥>의 제작이 정치적 상황 때문에 연기되자 치밀한 사전 기획 없이 9월부터 제작에 들어갔으며, 칸영화제 출품을 위해 3월말까지 완성되어야 했기 때문에 영화에 봄 장면이 없는 아쉬움을 남기게 되었으며 개봉 후에 보충 촬영을 했으나 결국 편집은 되지 않았다.

   
  ▲영화 속 장면. 

그런 제작진의 의도를 「서편제 영화이야기」에 실린 제작일지에서 제작자 이태원은 당시 태흥영화사에서 기획 중이던 <태백산맥>의 제작이 당시의 정치적 여건 때문에 미루어지자 임권택 감독에게 그 공백기간을 채울 영화제작을 의뢰한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이왕이면 예술적이고 알뜰한 작품을 한번 해봅시다. 내년 깐느 영화제에 한번 내보내게 한국적인 것을 소재로‥‥‥”라는 주문을 하면서 <서편제>라는 소재가 발굴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영화 안에 창극 대춘향전이 삽입된 이유를 세계영화제를 겨냥한 인위적인 노력의 하나라고 설명한다.

깐느용 영화

영화의 배경을 이루는 40~50년대 당시,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판소리보다는 창극이었고 대춘향전이 작품 전체의 주제에 걸맞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춘향전 중 사랑가와 십장가를 선택한 이유는 이 드라마가 사랑 때문에 고통 받는다는 내용을 압축하고 있기 때문인데 외국인들이 보아서도 작품의 해독력을 쉽게 하려는 배려도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서구를 의식하고 서구의 기준에 맞추어 영화를 제작했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장님이 된 송화가 동호의 북장단에 맞추어 심청가를 부르는 장면이 클라이맥스를 향해갈 때 난데없이 판소리를 제치고 김수철의 미디 음악이 사운드를 점령하게 된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 판소리가 아닌 서구의 드라마 음악 컨벤션 가운데 하나인 영화 속 현장에서 울려나오는 음악이 아니라, 서사가 끌어내고자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영화스토리 밖의 소리인, 비다이어제틱한) 음악의 표현적 기능을 통해 설명되는 것은 영화의 완성도에 분명 흠이 되는 것이다.

오정해의 목소리를 대신한 명창 안숙선의 판소리가 분명 당대의 절창임을 인정한다면 이러한 음악 사용은 분명 ‘판소리가 주인공인 영화’의 절정으로는 미흡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영화가 개봉된 후의 ‘서편제 신드롬’은 서구 평단을 겨냥해 영화를 기획했던 제작진의 입장에서 볼 때 예상 밖의 결과였다.

감상적 민족주의

<서편제>가 국내에서 이례적인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기존의 모든 것을 빠르게 뒤엎고 변화시켜왔으며 세계적인 경제 질서로의 편입을 진행시켜온 근대화의 가속 공간에서 잃어버렸던 자신에 대한 자의식, 즉 전통 문화의 자기 정체성 찾기의 ‘근대성의 또 다른 징후’라는 당시 우리 사회 흐름에 이 영화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응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편에서는 이 영화가 ‘자민족 중심주의’인 ‘전통으로의 회귀’를 강조하는 감상적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키는데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영화 <서편제>에서 송화는 유봉에 의해 ‘득음’을 위해 철저히 억압당하는 존재이다. 여기서 ‘득음’이란 전통문화, 한국적인 것, 즉 민족의 아이덴티티로서 근대화 과정에서 상실된 것이다. 득음을 추구하는 것은 유봉이다. 내러티브상 판소리 명창의 수제자였던 유봉은 자신이 득음의 세계를 향해 정진하는 것이 아니라 송화를 통해 그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소리에 대한 자질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유봉이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송화를 통해 뜻을 이루고자 하는 데 대해 관객이 거부감이나 멸시를 품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게 만드는 요소는 동일시에 있다.

   
  ▲영화 속 장면 

영화는 도입부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동호와 동일시하도록 요구한다. 동호의 회상을 통해 내러티브를 전개해나가는 방식, 동호가 자신의 결핍된 부분으로서 찾아다니는 송화의 존재, 판소리가 근대화의 물결 속에 밀려나는 과정 등을 통해 동호는 관객의 대리 주체의 역할을 한다.

관객이 영화 속에서 능동적으로 동일시 대상을 찾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요구하는 한 인물에게만 동일시하도록 만들기 위해 영화는 송화를 철저하게 추상적인 존재로 만들어 놓는다. 유봉이나 동호의 인생은 구체적으로 설명되지만 송화의 삶의 내력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남성의 욕망 ‘득음’

유봉이 몰락하는 까닭이나 과정, 동호가 유봉의 아들이 되었다가 가출해서 송화를 찾아다니기까지의 상황 등은 내러티브에서 충분히 드러난다. 그러나 송화가 어떤 사정으로 유봉의 양녀가 되었는지, 유봉의 사후 어떤 삶을 겪어냈는지, 유봉과 동호 이외의 인물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으며 중년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봉과 동호를 통해서 어떻게 과거와 단절되었으며, 그 개인의 한이 무엇인지, 그 한을 풀기 위한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가 분명하게 제시되지만 송화는 오직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매개로 대상화된다. 그러므로 송화와 동호가 재회한 다음날 동호와 송화가 각자 떠나게 될 때, 동호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지만 송화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송화는 오직 유봉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득음을 했고 동호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소리를 다듬어가며 기다리고 있었을 뿐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전혀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송화는 관객들에게 ‘우리들의 딸이자 누이’일 뿐 잃어버렸던 ‘우리 자신’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유봉의 소리에 대한 집념과 판소리 담론에 대한 적극적 의견 개진은 그의 부도덕함에 대한 합리화로 작용하며, 동호의 반발이나 송화를 찾으려는 노력은 근대화 과정에서 현실과 타협해야 했던 한국적 상황에 대한 변명을 만들어내면서 그들을 주체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송화는 그렇게 목에 핏발을 세워가며 소리를 하면서도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재생하는 매개이자 희생물로만 존재한다. 유봉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면서 ‘이산 저산’을 부르는 것이나 동호가 송화를 그리며 북채를 잡는 것과는 달리 송화는 <춘향가>를 부르건 <심청가>를 부르건 오직 남성의 욕망인 ‘득음’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존재할 뿐이다.

민족주의적 기획과 여성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가장 결정적인 부분인 동호와의 재회 장면에서 동호의 북장단에 맞추어 <심청가>를 부를 때 관객에게 감정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자기 자신의 ‘소리’가 없는 송화의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그토록 중요한 장면에서 판소리가 영상으로만 존재하고 사운드를 관습적인 배경음악으로서의 미디 음악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탈식민사회에서 민족주의적 기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상당히 모순되고 모호하게 그려져 왔다. 민족주의와 반식민주의 운동은 여성의 위치와 여성의 복종을 정당화하는 지배적인 종교적 강령에 문제를 제기하는 중요한 이론적 공간을 열어왔다.

여성의 해방은 자유주의적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중심 이론이 되었다. 개혁주의자들은 종종 여성해방을 정당화하기 위해 ‘토속적인’ 예를 찾아 과거를 선택적으로 돌아보는데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여성의 위치를 변화시키려는 의도를 허용하는 것은 민족적 이해에 합당할 때뿐이었다.

나아가 보수주의자, 근대화를 반대하는 문화 민족주의자들은 가부장적 여성 통제의 연장선상에서 문화적 통합을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왔다. 이러한 입장은 성차의 관계에 있어서의 변화와 서구 문화제국주의에 대한 항복을 등치시킴으로써 조장되었다.

여성은 그들이 속한 사회의 후진성의 희생물, 민족이 새롭게 찾아낸 활기와 근대성의 상징, 또는 오염된 민족적 가치를 유지하는 특별한 존재 등으로 다양하게 그려져왔다.

<서편제>는 여성으로서의 개별성, 독자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송화를 민족문화의 알레고리로 그려내는데 성공한 영화이다. 이 영화가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 비단 판소리인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영화에서 전통적 가치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시선을 차단하고 목소리를 길들이는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임권택 딜레마의 해소

<서편제>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와는 다른 방식으로 한국 영화 시장에서 성공한 영화다. 또 <장군의 아들> 류의 국내 흥행 영화와 <씨받이> 류의 국제 영화제용 영화 사이에서 감독으로서의 임권택이 짊어지고 있던 딜레마를 해소하도록 한 영화이다.

그러나 <서편제>는 대안적 영화로서 새로운 흐름을 생산적 방식으로 창출하기보다는 <춘향뎐>의 실패에서 볼 수 있듯이 문화적 소모로 이어진다. <서편제>의 관객이 <춘향뎐>의 관객이 되지 못했고, 판소리는 여전히 대중음악이 되지 못했다.

   
  ▲영화 포스터 

<서편제>의 성공이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끌어 모으게 된 것은 UR(우르과이 라운드)로 상징되는 당시의 시장개방 압력이 한국사회에 불러일으킨 위기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면서 이 영화가 촉발할 수도 있었을 논의들이 다양화되지 못하고 생산적 담론형성이 미흡한 상태에서 그치게 된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서편제>에서 못다 풀어낸 한이 절절하듯이 여름 무더위에 고인이 되신 김대중 전대통령이 영화관객의 한 사람으로 이루어냈던 정치와 문화의 민주적 관계가 새삼 절절하다.

미디어는 장악하면 되고, 비판적 영화에 대한 투자는 억압하면 되고, 대중적으로 성공한 영화는 뒤늦게 감독 옆에 앉히고 관람해서 문화적 안목이 있는 척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대통령이 무슨 전통을 알며 무슨 문화를 알랴.

듣도보도 못한 6일장을 생색내듯 밀어붙이는 후안무치 앞에서 돌아가신 분께 작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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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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