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장' 아니라 '관장'이다"
    By 내막
        2009년 08월 21일 05: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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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오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일기 내용을 담은 소책자가 배포된 가운데, 책자 표지 하단에 볼펜과 매직펜으로 지저분하게 지워진 자국이 남아 있어 의문을 자아냈다.(아래 사진) 

       
      ▲ 발행처가 지워진 김 전 대통령의 일기

    일기 소책자 발행처 사라진 이유

    의문은 곧바로 풀렸다. 이날 오후 2시경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을 가진 최경환 공보비서관(김대중전 대통령 비서실)은 장의위원장을 맡은 한승수 국무총리 측에서 항의를 해와 지우게 됐다고 설명했다.

    즉 지워진 글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장의위원회’라는 발행처 명의였다는 말이다.

    최경환 비서관은 "한승수 국무총리가 장의위원장인데, 장의위원회와 협의가 덜 된 상태에서 발행되었다며 부담스럽다는 뜻을 전달해왔다"며, "추가 발행분부터는 발행처 표기 없이 인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비서관은 "워낙 저희들이 정신 없이 만들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고 해명하면서 정부측의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장례절차 전반에 정부측의 일방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자포자기한 듯 불쾌한 느낌을 감추지 않았다.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이날 오전 현안 브리핑을 가진 후 <레디앙> 기자를 만나 "국장이 되다 보니까 당이 설자리가 공식적으로 없다"며, "공동장의원회에도 안 들어가 있고, 지난 번(노무현 대통령 국민장)에 있었던 운영위원회라는 제도도 없어졌다"고 밝혔다.

    노영민 대변인은 "국장이다보니 북한 조문단이 와서 활동할 수 있는 반경도 통일부가 다 지정하기 때문에 정부에서 가지 말라는 곳은 갈 수도 없다"고 말해,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봉하마을의 노무현 대통령 묘소 방문 등도 어려울 전망이다.

    최경환 비서관에 따르면 북측 조문단의 유족 면담도 정부의 강경한 입장에 따라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며, 이에 따라 관련 브리핑도 최소화될 예정이라고 한다.

    ‘국장’ 이유, 정부 뜻대로

    김대중 대통령의 장례 문제와 관련해 정부와 유족 측의 의견이 충돌한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국장’이라는 형식 때문인지 대부분 정부의 뜻대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정부는 20일 2371명의 장의위원 명단을 발표하면서 한승수 국무총리가 장의위원장을 맡았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 측이 요구했던 공동장의원장 선임이 결국 무산된 것이다.

    최경환 비서관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할 때까지 공동장의원장이 당연히 될 것으로 생각했는지 기자브리핑에서 "어느 분이 공동장의위원장이 될지에 대해서 논의가 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20일 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대중연설인 6·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연설 동영상 상영을 막은 것부터 시작해, 영결식 이후 고인의 인생에 의미 있는 장소에 운구차량이 잠시 들러서 치르게 되는 노제 그리고 영결식 당일 국민들과 취재진의 참석범위를 놓고도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관련 내용을 브리핑하고 있는 최경환 공보비서관 (사진=김경탁 기자)

    노제와 관련해 최 비서관은 21일 오전 브리핑에서도 "문화행사 방식으로 어떻게 치르게 될지에 대해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지만 정부는 국장 절차를 결정한 19일 국무회의에서부터 아예 노제 자체를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전해진다.

    당초 장례형식을 국장으로 할 것인지 국민장으로 할 것인지를 두고 정부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태도를 보였을 때부터 이런 잡음들은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것이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보여주는 태도는 너무 심하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다.

    한편 정치권 주변에서는 유족이 ‘국장’ 형식을 원했던 이유가 결국 돈 문제 때문일 수 있다는 관측도 퍼지고 있다. 국장의 경우 장례비용 전액이 국고로 지원되는 반면 국민장은 전체 비용의 30%, 가족장의 경우 비용의 극히 일부만 지원되기 때문이다.

    국무회의, 노제 않기로 결정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당시 전체 장례비용의 30%에 대한 국고보조가 되었는데,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1인당 1천만 원 이상씩을 각출했어도 비용이 턱없이 부족해 아직까지 유족과 측근들이 돈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정치권 인사는 "이런 식이면 ‘국장’이 아니라 ‘관장’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더라"고 분위기를 전했고, 일각에서는 지난번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추도사를 막았던 사례와 연결해 일종의 ‘음모론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결국 정부가 ‘국장’과 ‘국민장’이라는 형식적 절차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예산 지원을 통해 생색을 내면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막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한편 20일 밤 10시 반경에는 서울광장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식분향소 지붕이 기울어지는 불상사로 조문이 일시 중단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다행히 긴급복구를 통해 21일 오전 6시부터 분향이 재개됐지만 ‘국장’이라는 형식을 통해 생색내기에 급급했던 정부의 안이한 행사 진행에 대해서는 뒷말이 무성하게 나왔다.

    노영민 대변인은 20일 밤 사고에 대해 21일 오전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며, 동시에 국장을 주관하는 정부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노 대변인은 "현재 어젯밤 사고에 대한 원인을 조사하고는 있지만 공식분향소에서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서울광장 분향소는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의 정부 공식 분향소로, 정부는 분향소 시설물 유지관리에 만전을 기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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