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포의 밥벌이, 조조의 꿈
        2009년 08월 21일 04:25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후회하는 여포(그림=억수씨)

    그 어느 쪽도 확실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조조와 여포의 공방전이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을 무렵,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그것은 일찍이 들어 본 적 없었던 거대한 메뚜기 떼의 습격이었다. 푸른 하늘을 까맣게 덮을 만큼 수많은 메뚜기 떼가 갑자기 나타나 조조와 여포가 대치 중인 연주 일대의 벼이삭을 모두 갉아 먹다시피 한 것이었다.

    피해는 심각했다. 민간이 갖고 있던 나락은 물론이고 군대가 갖고 있던 군량미도 메뚜기 떼의 공격을 피해가지 못했다. 이 때문에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조조와 여포 모두 예상치 못한 식량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지도자가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반란이 일어나는 법. 양측은 공히 전투는 둘째 치고 갑자기 식량문제 해결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 때, 조조가 생각한 해법은 다시 말머리를 돌려 식량이 충분한 서주로 쳐들어가는 것이었다. 어차피 조조는 앞에도 적이 있고, 뒤에도 적이 있는 상태였다. 기왕 앞에 있는 적과의 전선에서 자리를 떠야 한다면 그 핑계김에 뒤에 있는 적을 쳐서 식량도 얻고 땅도 얻자는 생각이었다.

    사실 조조로서는 서주 생각만 하면 심히 분통이 터져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전쟁명 분을 갖고 엄청난 비용을 치르며 군사를 일으켰다가 비운의 역습을 받아 실패한 반면, 유비는 칼 한 번 휘두르지 않고 거의 공짜로 서주를 얻은 것이 아니었던가!

    조조는 열불이 나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 가 없었다.

    "똑똑한 놈이 운 좋은 놈 못 당한다더니. 딱 그 꼴이구만!"

    어차피 여포도 잡아야 하고 서주도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다시 말을 뒤로 돌려 식량이 풍부한 서주를 쳐서 서주도 얻고 여주를 얻기 위한 군량미도 얻어내면 두 가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겠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조조가 참모들을 모아놓고 이런 구상을 밝혔다. 그러자 순욱이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장군, 서주는 지금 우리의 재침을 대비해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약체이긴 하지만, 서주를 다시 쳐들어갔을 때, 유비가 성을 굳게 지키고 나오지 않으면 서주성을 함락시키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우려가 있습니다.

    이보다는 메뚜기 떼의 공격을 받지 않은 여남 지역을 공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남지역은 현재 소규모 무장 세력들이 지배하고 있을 뿐 특별히 영유권을 주장하는 정규군도 없고 쌓아놓은 식량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정규군이 지키는 서주를 쳐들어가기보다는 도적떼들이 지배하고 있는 여남 지방에서 식량을 조달하기가 훨씬 쉽다는 주장이었다. 맞는 얘기였다. 이 의견은 곧바로 받아들여졌다.

    문제를 쫓아다니다 보면…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다 보면 자꾸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마다 부수적으로 발생한 문제를 쫓아다니다 보면 결국 처음에 어떤 문제를 추구하던 것인지 조차 헛갈리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부수적으로 발생한 문제는 최대한 쉽고 빠른 해결을 도모하고 원래의 문제에 집중해야 했던 것이다.

    조조군은 즉각 여포에 대한 포위망을 풀고 곧바로 ‘여남’ 이라는 지역으로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순욱의 말대로 여남 지방은 황건 농민운동 이후의 혼란 속에서 특별히 영유권을 주장하는 제후도 없이 도적떼인지 뭔지 모를 일단의 무장세력들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조조군은 곧바로 토벌전에 돌입했다. 지역을 지배하던 일련의 무장세력들은 대규모 조조군이 나타나자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해보고 자신이 갖고 있던 수많은 식량을 모두 조조군에 빼앗기고 말았다. 이 때 여남 지역을 지배하던 이 지역 무장세력의 우두머리는 하의였다. 갑자기 나타난 조조에게 크게 당한 하의는 대담하게도 조조군과 일전을 치르기 위해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조조군은 전위를 내세워 하의의 도전을 받아 주었다. 맹장으로 한참 이름을 날리던 전위가 말을 달려 나가며 하의에게 말했다.

    "야! 이 도적놈아 우리 장군께서 네놈의 목이 필요하다고 하시니 당장 가져가야겠다. 어서 네놈의 그 세수도 안 한 더러운 머리를 내려놓고 썩 물러가라!"

    귀찮으니 알아서 빨리 죽으라는 얘기였다. 말로는 하의도 물러설 수 없었다.

    "뭐!!! 남에 땅에 마음대로 쳐들어와서 식량을 빼앗은 것이 누군데 우리더러 도적이라는 거냐! 잔말 말고 내 칼이나 받아라!"

    둘은 전투를 벌이기 전에 하는 의례적인 욕설을 주고 받고는 곧바로 칼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나 촌구석의 골목대장인 하의가 천하의 전위를 당할 수는 없었다. 몇 번 싸우는가 싶더니만, 하의는 ‘애당초 내가 상대할 놈은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번쩍 들었다. 해답은 줄행랑뿐이었다. 하의는 몇몇 부하들과 전력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전위는 맹렬히 뒤를 쫓았다.

    그런데 전위가 도적떼의 우두머리를 한참 뒤쫓고 있을 때, 갑자기 웬 사내가 정면에서 불쑥 나타나 도망치던 하의를 자빠뜨리더니 덥석 붙잡고 말았다. 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전위도 어찌된 일인지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전위는 곧바로 자기 임무를 생각해 냈다. 전위는 그 사내에게 다짜고짜 하의를 내놓으라고 말했다.

    사람은 언제라도 주인을 바꿀 수 있다

    "너는 뭐하는 놈인지 모르겠지만, 저놈은 내가 뒤쫓던 놈이니 빨리 나에게 넘겨라!"

    그 괴한도 지지 않았다.

    "에잉? 뭐라고?!! 넌 누군데 내가 잡은 놈을 넘기라 마라 하는 거냐?!!"

    가만 보니 어차피 또 말로는 해결이 안 될 상황이 분명해 보였다. 전위와 그 사내는 방금 붙잡은 포로를 누가 가져갈 것인지를 두고 다시 칼싸움을 벌였다. 그런데 전위가 몇 번 칼을 부딪쳐 보니 이놈은 방금 전에 싸웠던 그 시골 대장하고는 영 다른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한참동안 승부를 내지 못하며 대등한 결투를 계속했다.

    그 광경을 조조가 멀리서 지켜보았다. 조조는 자기 목숨을 벌써 여러 번 살려준 전위의 무예수준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어디선가 나타난 괴한이 전위와 거의 대등한 대결을 벌이고 있는가?

    ‘참으로 대단한 무예로다.’

    조조는 속으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급히 부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저자를 죽이지 말고 꼭 생포해서 데려와라.!"

    명령을 받은 부하들은 그물과 밧줄을 던져 전위와 한참 싸우고 있던 그 사내를 생포해서 조조 앞에 끌고 왔다.

    조조는 자신이 구축한 권력기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최초에는 어떤 경제적 기반으로 시작했으나 그 다음 단계는 인적 자본이 중요했다. 그래서 조조는 다른 진영에 있던 인재들까지 마구 데려와 무조건 능력 위주로 참모진을 구성했던 것이다.

    사실 과거에 누구의 편인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일이 꼬이다 보면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었고, 조건만 맞으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개는 무조건 먼저 만난 주인이 평생 주인이지만 사람은 언제라도 주인을 바꿀 수 있었다.

    그래서 조조는 적과 아군을 고정 불변의 잣대로 바라보지 않았다. 현재 시점에서 적이라도 괜찮은 인물이 있으면 바로 끌어들여 같은 편으로 만들어나갔던 것이다.

    이러한 조조의 습성이 이제는 아예 방금 전까지 죽일 듯이 싸우던 적군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수준으로까지 진화한 것이었다. 실시간 포용전략이었다.

    조조는 부하들이 잡아온 그 사내를 잠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주변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 이놈들아 ! 손님을 모셔오라 했더니 이렇게 꽁꽁 묶어오면 어쩌란 말이냐!"

    옆에 있던 병졸들은 갑자기 혼란함을 느꼈다. 방금 전에 자기가 잡아오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호통을 치니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부하들의 무례를 용서하시지요! 제가 대신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조조는 그 사내에게 다가가 손수 밧줄을 풀어주더니 심지어는 자기 옷까지 벗어서 입혀 주며 좋은 자리를 권해 같이 앉았다. 그리고는 의례 회유를 위한 언사를 늘어놓았음은 물론이다.

    허저의 등장

    이렇게 해서 조조는 또 하나의 심복을 얻게 되니 이 사람이 바로 ‘허저’다. ‘허저’는 여남 땅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토박이인데 무예도 보통이 아니거니와 큰 황소의 꼬리를 붙잡아 100 걸음을 뒤로 끌고 갈수 있을 정도로 힘이 장사였다. 황건 농민 봉기 이후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도적떼가 마을을 자주 습격하자 기회를 엿보고 있던 허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그 두목이던 하의를 붙잡은 것이었다.

    허저는 함께 천하의 대업을 이뤄보자는 조조의 제안에 반색했다.

    "저같이 무지한 시골놈에게 이렇듯 대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주공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허저는 당장 어떤 벼슬을 받지는 못했지만 조조의 곁에 있게 된다.

    여남 지역을 평정해서 별 희생도 없이, 충분한 군량미를 확보한데다가 ‘허저’라는 새로운 부장까지 얻은 조조는 또 다시 서주로 쳐들어갈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순욱이 다시 반대했다.

    "애당초 처음에 회군했던 목표에 집중해야 합니다. 식량이 떨어진 여포가 지금 곤경에 처해있을 테니 일단 여포를 쳐서 연주를 손에 넣고 서주는 다음에 도모하시지요. 유비의 작은 성공에 너무 배 아파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조조는 왠지 자꾸 서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이 대장이라 해도 순욱의 제안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잠시 곰곰 생각해보던 조조는 순욱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하여 조조군은 다시 여포가 있는 복양성을 향해 기수를 돌렸다. 원래의 싸움터로 돌아간 것이다.

    사실 이렇게 원래의 목표를 계속 상기시키는 것은 참모의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였다. 최초의 목적의식을 망각하고 그 때 그 때 움직이다 보면 목표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면서 목표를 만들게 된다.

    순욱은 자꾸 군사를 이쪽 저쪽으로 몰고 다니려는 조조의 성급한 심리를 진정시키면서 한편으로 꾸준히 최초의 목표에 대한 집중력을 유지하려고 했다.

    물론 순욱이 꿈꾸고 있는 궁극적인 목적지는 황제가 사는 황실의 도읍지였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한 기반으로 연주를 확실히 장악해야 했다. 더구나 연주는 이제 막 도입한 둔전제가 시험적으로 실시되고 있던 지역이었다. 이곳에서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면 앞으로 지속적으로 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안정적인 조건이 형성된다.

    황제의 코 밑에서 백 년을 우려먹어도 마르지 않는 반영구적인 권력기반을 형성하는 데 순욱의 목표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조건을 갖춰놓고 시기를 기다리게 되면 기회가 왔을 때 황제를 장악할 수 있다고 순욱은 생각했다.

    애초 목표를 잊지 않는 순욱

    그러나 이러한 순욱의 생각은 결과적으로 서주로 쳐들어가자는 조조의 제안을 계속 반대하는 꼴이 되었다. 순욱은 조조가 왠지 평상심을 잃고 뭔가 서두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조조에 대한 애정이 식을 정도는 아니었다.

    ‘사람이란 본시 야망에 눈이 뒤집히면 서두르고 조급해지게 마련인데 우리 조장군 정도면 양호한 것이다. 내 말을 그래도 잘 들어주고 있지 않는가!’

    순욱은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순욱은 과거 황건당 시절에도 정원지에게 점진 진격전략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바 있었다. 순욱은 대단히 천재적인 전략가는 아니었다. 그는 일정한 목적을 유지하면서 차근 차근 근거지를 하나씩 늘려나가는 일반론에 충실한 전략가였다.

    그렇게 조조가 군량미를 확보하여 서주로 갈지 연주로 갈지 고민하고 있을 때, 역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던 여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주 일대에서 민가에 대한 약탈을 감행하고 있었다. 조조가, 발생한 문제와 동떨어진 곳에서 문제를 해결해 오는 동안 여포는 문제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연주 일대에서 메뚜기 떼의 피해를 입기는 모두가 매한가지였다. 이 때문에 식량을 구하기 힘들었던 여포군은 꽤 멀리 성을 비우고 나가 노략질을 일삼아야 했다. 이것이 백성들의 거대한 불만을 만들어냈음은 물론이다. 여포에 대한 이러한 민심의 원성은 ‘치명적인 입소문’이 되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사정이 조조군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조조군은 소리 없이 복양성 근처까지 접근해 있다가 여포군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대규모로 성을 비운 틈을 타 복양성을 점령해버렸다.

    성을 비우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가 성 밖에서 대규모 조조군을 만난 여포는 급히 복양성 쪽으로 달아났다. 성 밑까지 다다른 여포는 빨리 성문을 열라고 호통을 쳤으나 되돌아오는 것은 성위에서 떨어지는 조소와 화살뿐이었다. 이미 복양성은 조조군의 수중에 떨어진 뒤였던 것이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여포는 복양성 성벽 밑에서 수많은 군사를 잃고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얼마나 말을 달렸을까? 갈 곳을 잃은 여포는 겨우 수십 기만 남은 부하들을 이끌고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깊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하도 많은 부침을 거듭했기 때문에 중원 천하에 여포를 받아줄 사람은 이제 거의 없어 보였다.

    오갈 데 없는 여포

    유비에게 여포의 편지가 전해진 것은 이 때였다. 몸 둘 곳을 잃어버린 여포가 이곳 저곳에 망명 의사를 타진하다가 서주 태수인 유비에게까지 자신을 좀 받아줄 수 없겠느냐는 편지를 보내 온 것이었다. 이 때 장비와 관우는 크게 반대하였다. 이미 여포는 천하에 소문난 배신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비 생각은 좀 달랐다. 여포가 천하의 맹장이라는 소리를 전부터 들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여포를 내 사람으로 만들면… 서주를 지키는데 도움도 되고 좋을 텐데..’ 라는 희망 섞인 판단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비는 되도록 여포를 받아주고 싶었다. 장비와 관우는 얼토당토 않는 얘기라며 거세게 반대했다.

    "아니 형님, 그 여포라는 자식은 아예 인간이 되먹지 못한 놈이요. 오죽했으면 천하의 제후들이 다 손사래를 치고 어디 한 번 당해봐라 그러고 있는게 아니겠수.."

    옆에 있던 미축도 반대한다는 의사 표시를 했다. 미축은 유비에게 서주를 구원해 달라고 요청했던 도겸의 신하였다. 그는 도겸이 죽기 전 서주 태수 자리를 유비에게 넘기는 과정을 주도했고 도겸이 죽자 유비의 신하가 되었다. 미축은 도원결의를 했던 두 형제 외에는 유비에게 첫 번째 신하나 마찬가지 인물이었다.

    "여포는 본시 자기만 아는 인물로 가까이 두기에 위험한 인물입니다. 언젠가 화가 될까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실패한 여포 길들이기를 유비 자신은 왠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것은 근거 없는 낙관주의였지만 유비는 이번에도 왠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포가 있다면 조조로부터 서주를 지키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관우와 장비는 유비의 이런 생각이 탐탁지 않았다. 특히 장비는 여포에 대해 왠지 경쟁의식 같은 것이 느껴져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나 맏형인 유비가 워낙 해보고 싶다는 주장을 펼치니 유비의 결정을 존중해주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서주로 와도 좋다’는 유비의 사전 양해를 얻은 여포는 몇 명 남지 않은 부하들과 서주를 향해 길을 잡았다.

    돌이켜 보니 자신은 그동안 너무나 많은 배신을 하고 살았었다. 처음에 형주자사 정원의 양아들로 들어갔던 여포는 동탁의 회유를 받고는 정원을 죽이고 동탁에게 귀순했었다. 그러다가 다시 왕윤의 얘기를 듣고는 동탁을 죽였다. 그러나 여포는 다시 동탁의 잔당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결국 원소를 찾아가 원소의 객장이 되었다.

    그러나 이도 잠시, 기존에 있던 원소의 부하들과 화합하지 못해 원소의 품을 박차고 나왔다. 또 다시 길을 떠난 여포는 장양이라는 사람에게 몸을 의탁했다가 장양이 자기를 죽일 것 같다는 소문을 듣고 진류의 장막에게 신변보호를 요청했었다. 그리고 장막의 사주를 받아 연주 침략전의 선봉에 섰으나 이제 패전으로 장막의 군사를 모두 죽였으니 진류로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한 마디로 여포의 삶은 배반의 인생이었고 떠돌이 삶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여포의 오늘은 너무나 쓸쓸하였다. 달 밝은 논길 위를 말 잔등에 올라 터벅 터벅 가는데 여포는 등 뒤로 쓸쓸함이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하나의 주군을 상대로 일관된 충성을 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지금쯤 내가 형주의 주인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 여포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아니다. 내가 정원의 양아들로 있었다 한들, 동탁의 경호원으로 계속 살았다 한들 여기서 뭐가 더 좋아졌겠는가? 그 인간들은 나를 늘 머슴 부리듯 부리면서 하기도 싫은 경호 수행이나 시키고.. 그 지겨운 일을 하느니.. 차라리 이게 낫다.’

    그러나 다음 순간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도 오늘 내 모습을 보라. 유비처럼 삶과 죽음을 함께 하는 동료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조조처럼 잘 짜여진 참모진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유아독존의 길을 걷고 있으니 이렇게 외로운 것 아닌가..!’

    여포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가 강했던 인물이었다. 자신은 스스로 누군가의 밑에서 있을 만한 그릇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구도 자신보다 대단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밑에는 늘 여포의 말에 일방적으로 순종하는 무능한 부하들밖에는 없었다.

    그동안 살면서 후회라고는 해본 적이 없던 천하의 맹장 여포는 유비에게 몸을 의탁하러 가는 말위에 앉아 이렇게 삶의 첫 후회를 하고 있었다.

    여포는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정치적 우물은 하나만 팠어야 했는데…괜히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는 바람에 결국은 남는 것이 없구나.. 이번에 유비가 날 받아주면 절대 유비만큼은 배신하지 말아야겠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