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와 영찬이의 어린이집 하루
        2009년 08월 21일 11: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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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둘째 영찬이가 다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1일 ‘아마’를 하는 날이다. ‘아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사용하는 말인데 어린이집을 위한 활동 전체를 의미한다. 1일 아마는 보통 휴가를 내신 선생님 대신 하루 동안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아침에 어린이집에 도착해 대문 앞에서 등원하는 아이들에게 나를 소개한다.

       
     

    “안녕, 나는 안드로메다야. 오늘 아라방(5~6세 방 이름) 아마야. 잘 부탁할게”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나는 영찬 아빠가 아닌 ‘안드로메다’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별명을 부르게 되면 아이들에게 어른 ‘영찬 아빠’가 아닌 친구 ‘안드로메다’로 다가설 수 있다. 아이들은 인사하는 나를 탐색한다. ‘안드로메다 오늘 잘 걸렸어. 흐흐흐’ 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나도 지지 않는다.

    “오늘 안드로메다 하고 신나고 재미나게 놀아보자. 그런 의미에서 자, 하이 파이브!”

    아이들이 하이 파이브 하자며 한 줄로 선다. 나름 기선을 제압했다. 일단 처음부터 호감을 갖게 만들면 성공이다. 성공의 증거인 아이들의 질문과 수다 공세가 시작됐다.

    "안드로메다! 집은 어디야?"
    "안드로메다! 난 오늘 밥 잘 먹을거다"
    "안드로메다! 우리 집에서 어제 벌레 나왔다"

    끝이 없다. 일단 오전 간식을 먹으면서 대충 상황을 정리하고 나들이에 나선다. 모기에 물리지 않게 모기 퇴치제도 바르고 돗자리도 준비하고 물도 가방에 넣었다.

    “얘들아, 오늘은 어디로 나들이를 갈까?”
    “안드로메다! 두더지 무덤 가!”
    “두더지 무덤 가”
    “두더지 무덤 가”

    이런 나들이가 무덤 가라니. 무덤 가에 가서 무얼하고 논단 말이지? 애들이 무섭지도 않나? 하여튼 가보자. 재호, 다솔, 재현, 명서, 해온, 정준 이렇게 짝손을 하고 ‘두저지 무덤가’로 향한다. 아이들은 신이 나 있다. 가는 길에 작은 꽃, 벌레 하나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길 가에 벌레 하나가 나왔나 보다. 영찬이가 배를 깔고 누워서 한참을 쳐다본다. 이래서는 제 시간에 갈 수가 없다. 억지로 손을 끌고 다시 나들이를 재촉한다. 이번에는 재현이가 나팔꽃을 꺽는다. 그러자 아이들이 꽃이 아플 거라며 뭐라 한다.

       
      

    "안드로메다. 그 거 꺽으면 꽃이 아프지?~~~"
    "하나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재현이는 나팔꽃을 얻었다. 그렇게 어린이집에서 나서길 10여 분. 여름에 풀 숲은 이미 아이들 키 만큼 자랐다. 하지만 아이들은 풀 숲을 헤치고 거침없이 무덤 가를 향한다. 드디어 무덤 가에 도착했다.

    그런데 날씨가 이상하다. 하늘이 어둑해지더니 금세 소나기가 내릴 태세다. 아니나 다를까, 후두둑 하더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런, 무덤 가에 도착해서 놀아보지도 못하고 다시 어린이집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내리는 비도 놀잇감이다. 길 가에 피어 있는 호박 잎을 하나씩 따더니 우산이라고 쓴다. 아이들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진다. 그렇게 아쉽게 어린이집에 돌아와서 신나게 마당에서 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당 한켠에 마련된 밭에서 점심 때 먹을 야채를 뜯는다. 가지, 고추, 방울토마토, 피망 등등을 한아름 모았다. 아이들은 이렇게 어린이집에서 보내고 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그 흔한 영어 교육이나 태권도도 없다. 한글도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 하면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노는지, 여름에는 어떤 채소가 열리고 어떤 꽃이 피는지, 어떤 벌레가 위험하고 어떤 벌레는 안 위험한지, 차가 오면 어떻게 피하고, 비가 오기 전에는 구름 모양이 어떻게 변하는지, 소나기는 어떤 소리를 내는지, 여름 비와 가을 비는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웃는지, 어떻게 우는지, 어떻게 사과하는지, 어떻게 화내는지를 배우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한 하루. 아이들보다 내가 더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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