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쟁 기억과 성공사례…시대가 불러낸 실용서?
    By 내막
        2009년 08월 22일 02: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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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부터 한국 사회와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열쇠가 되는 사회과학의 개념들을 뽑아 그 의미와 역사, 실천적 함의를 해설하는 ‘비타 악티바Vita Activa|개념사’ 시리즈를 내온 책세상이 최근 12, 13번째 시리즈 『68운동』과 『87년 6월 항쟁』을 냈다.

    책세상은 지난해 12월 『인권』, 『아나키즘』, 『시민』, 『계급』, 『아방가르드』를 묶어 세트로 낸데 이어, 올해 5월에는 『폭력』, 『IMF위기』, 『노동가치』, 『인종주의』, 『비정규직』를 묶어 ‘세트2’를 냈고, 지난 7월에는 11번째 시리즈 『정당』을 낸 바 있다.

    비타 악티바 시리즈의 책들은 각 개념의 무미건조한 사전적 의미를 제시하기보다 우리가 평소에 쓰는 ‘개념’이라는 것들이 실제 역사 속에서 겪어 왔던 무수히 많은 의미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이와 관련해 출판사측은 "한 권 한 권이 개념에 대한 충실한 해설서인 동시에, 다양한 의견과 이론 그리고 여러 사회 세력들의 입장이 충돌하면서 끊임없이 변화 발전해온 개염의 역사와 인간 사회의 구조와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지도가 되고자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비타 악티바 시리즈가 이번에 내놓은 주제는 이전과 달리 ‘개념’이 아닌 ‘사건’ 혹은 ‘역사’ 그 자체이다.

    어떻게 보면 ‘개념사’라는 시리즈컨셉트에서 벗어난 주제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 ‘독재에 맞서 투쟁하는 법’을 잊어버린 야당과 국민들에게 지금 당장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두 권의 책에서 이야기하는 개념인 ‘투쟁'(그중에서도 승리한 투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세계사에서 가장 빛나고 독특하면서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진 ‘투쟁’의 성공사례와 함께 우리도 그렇게 이겨본 적이 있다는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획이라 할 수 있고, 어찌보면 민주주의의 위기가 불러낸 이 시대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실용서’인 셈이다.

    68운동, 과거인 동시에 현재인 사건

       
      ▲ 책 표지.

    시리즈의 열두 번째 권『68운동』은 1968년 유럽, 아메리카, 동유럽, 일본 등지에서 권위주의와 기성 가회의 가치에 대한 반대 그리고 창의성과 상상력 확대라는 구호를 내걸고 전개된 역사적 사건 ‘68운동’을 고찰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68운동의 원인, 과정, 결과를 통해 이 운동이 지닌 세계사적 의미를 짚어보며, 68운동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68운동이 실현하고자 했던 가치가 프랑스와 전 세계에 미친 영향과 그것이 가져온 변화를 교육, 여성, 노동, 정치, 문화 각 부문에서 역사학자의 균형 있는 시각으로 짚어낸다.

    저자에 따르면 68운동의 핵심 정신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기성 사회의 가치를 전복하는 것이었다. 당시 학생들은 인종 차별과 남녀 차별 등 모든 차별과 권위주의에 반대했으며, 소비 사회ㆍ베트남 전쟁ㆍ소련 공산주의를 비판했다.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파괴의 열정은 창조적 희열이다’
    ‘서른이 넘은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말라’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지루함은 반혁명적이다’
    ‘우리는 정체됨 없이 살고 무제한으로 즐기고 싶다’
    ‘현실적이 되자, 비현실적인 것을 요구하자’등등….

    이런 것이 68운동의 구호였다. 그들은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성 해방을 외쳤고, 민주주의ㆍ자유로운 토론ㆍ소수자의 권익을 옹호했다.

    이 책은 특히 지향한 가치의 본질과 운동 방식의 유사성이라는 측면에서 68운동과 2008년 한국의 촛불 집회의 연관성을 살펴보고 한국 사회에서 68운동의 현재적 의미를 묻고 있다.

    87년 6월 항쟁,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사건

    시리즈의 열세 번째 권인 『87년 6월 항쟁』은 제목 그대로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의 도약을 이룬 중요한 사건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적 개념이 된 ‘87년 6월 항쟁’에 대한 책이다.

    1987년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6월 항쟁은 시민이 주체가 되어 군부 독재를 무너뜨리고 대통령 직선제라는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냄으로써 민주화의 진전을 이룬 우리 역사의 결정적인 국면이다.

       
      ▲ 책 표지

    당시 6월 한 달 동안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는 물론 읍ㆍ면 단위까지 호헌 철폐와 직선제 쟁취를 외치는 시위의 물결이 거대한 파도처럼 일어났으며, 곧이어 7∼9월에는 전국에서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나 6월의 민주화 열기를 확산시켰다.

    그 이후 진행된 우리 사회의 변화를 ‘87년 체제’라고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87년 6월 항쟁은 한국 사회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 분기점이다. 정치적으로는 형식적 차원의 민주화가 진전되었고, 제도와 법 차원에서 개헌을 거쳐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었다.

    사회적으로도 1987년 이후 한국 사회는 노동조합과 자발적인 결사 등이 활성화된 계급 사회로 진전하게 되며, 문화적 측면에서 지배 이념과 문화에 대응하는 민족·민중 문화가 개화하기 시작한 시점 역시 87년 이후이다.

    이 책은 (구체제와의 타협 및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한계가 존재하지만) 이처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시기이자 사건인 87년 6월 항쟁을 ‘기억’과 ‘이야기’라는 방법론을 통해 새롭게 탐색한다.

    저자는 그동안 6월 항쟁을 규정해온 ‘직선제, 민주화, 항쟁, 열사’ 등의 거대한 담론들에 주목하기보다 그 시기를 직접 살아낸 (그러나 사료에는 기록되지 않은) 당사자들이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6월 항쟁을 되살려내고 있다.

    즉 87년을 각기 다른 위치에서 경험한 가상의 인물들(대학생 출신 노동자, 대학생, 부산에서 시위에 참여한 배달 노동자, 기자)을 등장시켜, 그들이 1인칭 화자로서 토로하는 이야기를 통해 87년의 기억을 재구성한다.

    이러한 ‘기억의 재구성’과 ‘이야기체 서술’은 그동안 공식 사료에 묻혀 잘 드러나지 않았던 생생한 역사의 흔적을 복원하며 당시 사건들의 역동적 의미를 드러내준다.

    더불어 2008년의 촛불 집회와 2009년의 추모 정국 등 현재 시점에서 87년 6월의 의미를 탐색하며, ‘두 개의 시민’으로 나뉘어 분열했던 87년 6월에 존재하는 균열과 모순의 지점을 추적하고 있다.

    2009년 민주주의 담론의 한계

    2009년 한국 사회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이라는 충격적 사건과 이전 정권에 비해 강력해진 공권력의 시민·사회운동 탄압 등에 직면해 독재 대 민주 및 민주주의 담론이 재등장한 상황이다.

    87년 6월에 존재했던 균열을 통해 그 한계를 드러낸 저자는 이른바 추모 정국이 형성한 독재-민주의 대립 구도 역시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며, 그것이 87년 6월 수준의 민주주의 담론으로 회귀할 가능성을 경계한다.

    독재를 언급하는 순간 그 대안은 민주주의가 되고, 대안 담론 수준에서 민주주의는 정상적인 정당 정치, 소통의 원활 등으로 협소화됨으로써 사회 운동의 대안을 스스로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국가 기구의 작동이 87년 6월과 역사적 맥락이 다르다는 인식과 닿아 있다.

    즉 자본의 사회적 지배력이 급격히 확장된 상황에서 공권력 동원은 단순히 국가의 시민 사회 탄압이 아니라, 체제 재생산을 위해 자본이 공권력 사용을 추동하고 용인하는 것이며, 신자유주의 아래서 국가는 ‘자본의 국가’임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민주주의와 독재, 전민 항쟁이라는 말의 반복은 결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 * *

    지은이 

    『68운동』 : 이성재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서양사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원광대 역사교육과에 재직하면서 서양의 중세 말 근대 초 빈민에 대한 심성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16∼17세기 프랑스 성직자의 유언장에 나타난 빈곤의 상징성〉,〈역사적 시각에서 본 도시의 폐쇄성과 도농 대립〉,〈역사수업에서 극화학습의 특성 및 교사의 역할〉,〈가면에 나타난 경계〉,〈일본 근대화 속에 내재된 서양〉 등의 논문을 썼다.

    『87년 6월 항쟁』 : 김원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성공회대 노동사연구소를 거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 한국 대학생의 하위문화와 대중정치》,《여공 1970, 그녀들의 반역사》가 있고,〈1991년 5월 투쟁의 일상과 담론에 대한 연구〉,〈서벌턴은 왜 침묵하는가?―구술, 기억 그리고 재현을 중심으로〉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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