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메테우스를 파먹는 제우스
        2009년 08월 20일 09: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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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메테우스> BC 530년

    신화는 역사이자 사유에 대한 기록

    우리는 흔히 신화를 종교적이거나 일종의 허구적인 세계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아직 문자가 존재하지 않거나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대, 그리하여 불가피하게 구전에 의하여 정보가 전달되어야 했던 시대에 신화는 가장 훌륭한 기록의 방식이었다.

    때문에 직접적인 기록이 부족한 시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나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사유방식의 단초를 신화를 통해 발견해나가는 일은 매우 유익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도 마찬가지의 기능을 한다. 그리스 신화는 종교적인 요소보다는 민중적인 특징을 담은 구전문학의 하나였다고 봐야 한다.

    폴 벤느(Paul Veyne)는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신화는 일종의 정보이다. 신화는 무슨 특수한 사고 양태가 아니다. 그것은 정보를 통해 얻은 견문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며, 이 견문이 적용되는 분야는 오늘날 논쟁이나 경험적인 작업 등에 의해 운영되는 지식 분야들이다.”

    신화는 과거의 모사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신화를 비판하는 일은 그 허위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진실 된 바탕을 되찾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이 진실이 신화라는 외피를 쓰고 나타나기 때문에 두꺼운 껍질을 벗겨내고 그 안에서 진실의 단편들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신화만 봐도 그러하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중에서 우리 인간에게 가장 우호적인 역할을 한 존재가 프로메테우스이다. 프로메테우스는 하늘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분노한 제우스는 독수리로 하여금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파먹게 하는 형벌을 내린다.

    이 광경을 다룬 항아리 그림인 <프로메테우스>를 보면 손발을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제우스의 상징인 독수리가 파먹은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간에서부터 발밑으로 피가 낭자하게 흘러내리는 장면이 끔찍하다.

    불핀치(Bulfinch)의 <그리스로마신화>에 의하면 프로메테우스가 훔친 불 덕분에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월등히 뛰어난 존재가 된다. 인간은 이 불을 이용하여 무기를 만들어 다른 동물을 정복할 수 있었고, 도구를 만들어 토지를 경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로 거처를 따뜻하게 하여 기후가 다소 추운 곳에서도 살 수 있었고, 나아가서 갖가지 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상거래의 수단인 화폐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스 신화의 역사적 배경이 수렵․채취 생활에서 농경․목축을 중심으로 한 정착 생활로의 변화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프로메테우스 신화 속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사유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동물과의 차별성 위에서 인간의 시작을 그리고 있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여 주체인 인간이 대상인 동물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서구적 이원론이 이미 그리스 시대부터 일반화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서는 도구를 만들거나 기술을 개발하는 이성의 능력이 인간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토테미즘의 흔적이 점차 사라지고 이성이 옥좌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이성과 괴리된 것으로 여겨지는 신화 속에서 이성의 승리를 확인할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스 신화는 인간사회의 변화 과정도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한다. 신화에 나타나는 최초의 인간시대는 죄악이 없는 행복한 시대로서 ‘황금시대’라고 불려졌다. 법률이라는 강제에 의하지 않고도 진리와 정의가 행해졌고, 위협하거나 벌을 주는 관리도 없었다. 그 무렵에는 마을 주변에 성곽을 쌓는 일도 없었다. 칼이나 창이나 투구 같은 것도 없었다. 대지는 인간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노동하지 않더라도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산출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무섭고 나쁜 시대로 규정되는 것은 ‘철의 시대’이다. 이 시대에는 죄악이 홍수처럼 넘쳐흘렀고, 겸양과 진실과 명예도 헌신짝처럼 사라졌다. 그 대신 사기와 폭력과 사악한 사리사욕이 나타났다.

    이제까지 공동으로 경작되던 땅이 분할되어 사유재산이 되기 시작했다. 자식들은 재산을 상속받기 위하여 아버지가 죽을 날을 기다렸다. 가족 간의 사랑도 사라져버렸다. 대지는 살육의 피로 물들었고, 신들은 하나씩 대지를 버리고 떠났다. 끝까지 남아 있던 아스트라이아 여신도 마침내 이 땅을 떠나고 말았다.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면서 나타나는 사회의 분화, 사적인 소유와 상속의 발생, 지배와 피지배의 형성 과정 등이 묘사된다. 당시 그리스인들 스스로도 신화의 형식을 빌려 현실의 갈등과 억압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낸다. 타락과 살육에 분노한 제우스는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어 인간 종족을 멸망시키고자 한다. 폭포수처럼 비가 쏟아져 곡식은 쓰러지고, 한 해 동안 농부의 노동은 순식간에 수포로 돌아간다.

    농경을 통한 정착생활에 들어선 인간에게 가장 큰 재앙은 홍수였으리라. 때문에 메소포타미아 신화, 그리스 신화, 성경의 노아의 방주 등 대체로 고대 신화에 거의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대홍수는 농경사회의 발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신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재앙이 공통적으로 인간의 타락을 원인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당시의 계급사회에서 나타나는 억압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그리스 청동조각 <제우스> BC 460~450년

    국가권력의 형성과 정복의 신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Zeus)는 신중의 신, 신과 인간의 아버지이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Kronos)는 자식 중의 한 명이 그를 권좌에서 밀어낼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태어나기만 하면 잡아먹었다.

    그러나 아내 레아는 제우스가 태어나자 배내옷에 돌을 싸서 대신 삼키게 하고 제우스를 동굴에 숨겨놓았다. 어른이 되자 제우스는 형제들인 하데스(Hades)와 포세이돈(Poseidon)의 도움을 받아 반란을 일으켜 크로노스를 권좌에서 몰아냈으며 세계에 대한 지배권을 형제들과 나누어가졌다. 제우스는 하늘을 차지하고, 포세이돈은 바다를 차지하고, 하데스는 죽은 사람들의 나라를 차지했다. 그리고 지상과 올림포스는 공동 소유로 했다.

    제우스 신화는 당시 그리스 사회가 도달한 지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제우스가 관장하던 일들은 국가가 수행하는 역할과 거의 일치한다. 제우스는 모든 권력을 주거나 빼앗는 자이며, 범죄자를 벌하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며, 국가의 재앙을 막는 위력을 가지고 있는 신이었다. 또한 개인의 소유지나 재산을 보호하고, 아내인 헤라와 함께 결혼을 주관하였다. 고대 국가의 제도화된 권력을 상징하는 존재였다고 볼 수 있다.

    제우스 신화는 국가 권력이 강제적인 폭력과 정복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우스가 그리스 북방 민족의 신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아버지 크로노스는 정복 대상이 되었던 원주민 세력의 상징이었다고 볼 수 있다. 형제인 포세이돈과의 연합을 통해 아버지를 제거했다는 내용은 제우스신 추종세력이 어떤 해양 세력과의 동맹을 통해 그리스의 지배자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 같다. 제우스가 번개를 무기로 그를 죽이려는 아버지 세력을 물리치고 올림포스를 평정한 이야기는 기존 토착세력의 저항이 상당 기간 지속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제우스가 권좌에 오른 이후에도 나타나는 신들 사이의 갈등 역시 당시 고대국가가 아직 부족 연합적 성격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청동기나 철기와 같이 발달된 무기가 정복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각자의 특징적인 무기를 갖추고 있다. 그 정점에 제우스의 번개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스의 청동조각인 <제우스>는 번개를 던지고 있는 제우스를 묘사하고 있다.

    지금은 사라져서 없지만 당시에는 오른손에 번개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제우스의 권위를 보여주는 듯 건장한 신체를 보여준다. 꽉 다문 입은 신과 인간을 벌하는 제우스의 단호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번개는 이주민인 제우스신 추종세력이 사용한 발달된 무기를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번개가 불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불에 의해 만들어진 무기, 즉 청동기나 철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 <부시리스의 병사를 던지는 헤라클레스리스> BC 470년

    헤라클레스(Herakles) 신화도 제우스 신화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의 세계를 제우스가 상징한다면 인간 세계의 정점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헤라클레스이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아들로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는 힘과 용기의 상징이다. 그가 치러낸 유명한 열두 가지 시험은 악에 대한 선의 위대한 승리, 혹은 불의에 대한 정의의 위대한 승리를 상징한다. 이 시험은 네메아의 식인사자 퇴치를 비롯하여 히드라 퇴치, 아우게이아스 왕의 외양간 청소, 아마존 여왕 히폴리테의 허리띠를 가져오는 시험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의 흥미진진한 모험도 고대의 국가 권력 형성 과정과 주변 국가에 대한 정복 신화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제우스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부시리스(Busiris)와 연관된 이야기는 아예 노골적으로 이집트에 대한 침략을 보여주기도 한다.

    부시리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이집트 왕이다. 황금사과를 찾으러 이집트에 오게 된 헤라클레스를 부시리스가 사로잡아 제물로 바치려하다가 오히려 그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이다. <부시리스의 병사를 던지는 헤라클레스>가 그려진 항아리 그림을 보면 그가 부시리스의 병사들을 나뭇가지 집어던지듯 하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있다. 좌우로 겁에 질린 병사들의 모습이 극적으로 대비되어 있다.

    두 번째 시험에 해당하는 히드라의 퇴치를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라인보우(Linebaugh)는 <히드라, 제국과 다중의 역사적 기원>에서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히드라를 죽이는 이 신화의 숨겨진 의미는 국가(헤라클레스)가 괴물 같은 민중들(히드라)을 통제하여 질서를 잡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고대 국가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민중들의 자연발생적인 공동체에 해당하는 수많은 씨족적 관계를 강제로 자신의 지배 아래 편입시켜야 했는데 히드라 이야기는 이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 그리스 부조 <제우스와 헤라> BC 470년

    가부장제의 상징 제우스와 헤라클레스

    다른 한편으로 제우스를 정점으로 하는 그리스 신화는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가부장적 체제가 확고히 틀을 잡아나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제우스는 부인 헤라 외에도 수많은 연인과 정부를 거느리고 있었다. 제우스는 바람둥이로 유명했고 이 때문에 아내 헤라와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여신이나 여인들과 수많은 정사를 가졌으며,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동물의 모습을 취하곤 했는데, 예를 들면 헤라를 범할 때에는 뻐꾸기로, 레다를 범할 때는 백조로, 그리고 에우로파를 범할 때에는 황소로 변신했다.

    그는 사회에 온갖 금기를 강제하면서도 자기 스스로는 금기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욕망을 충족한다. 그런 점에서 부권제 사회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존재가 제우스이다. 일부일처제라는 윤리를 여성에게 강제하며 남성 자신은 역사적으로 공창이나 사창을 통해 제한 없는 성을 누렸던 부권제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원래 제우스가 지배자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 문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고대 미노아 문명은 모계제를 상징하는 여신이 최고신이었다. 그들은 가이아와 헤라와 같은 여신을 숭배했다. 하지만 더 일찍 부권제를 형성한 북방 부족이 침입하면서 제우스가 지배자의 자리를 차지한다.

    헤라는 제우스의 하위 파트너로서의 아내 자리로 떨어진다. 그 이후 헤라는 세상일을 관장하기보다는 제우스에 대한 질투의 화신이 되어버린다. 그리스가 모계제에서 가부장제 도시국가로 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가족 내에서의 억압과 지배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마존 전투는 모계사회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적대감과 부계사회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신화에 따르면 아마존은 용맹한 여성 부족이었으며, 타 부족의 남성들과 관계를 맺은 후 남성들은 거세를 시켜 노예로 부리고,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목을 졸라 죽이거나 외국으로 추방시켰다고 한다. 반대로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여전사로 키우는데, 방패와 창, 활을 사용하기 위해서 거추장스러운 오른쪽 유방을 불로 지지거나 도려냈다고 한다.

    아마존에 대한 이러한 설정 자체가 여성이 중심이 된 사회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존의 패배와 그리스의 승리는 모계사회의 종말과 부계사회의 역사적 승리, 그리고 그 이행 과정이 상당히 폭력적인 형식으로 나타났음을 신화적인 상상력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아킬레스와 펜테실레아의 전투> BC 540~530년

    항아리 그림인 <아킬레스와 펜테실레아의 전투>는 아마존 전투의 한 장면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신화에서 아마존족은 트로이 전쟁 때 트로이의 우방으로 전투에 참가한다. 그리고 아마존 여전사들을 거느리고 참전한 여왕 펜테실레아는 아킬레우스와 사투를 벌였으나 전사하게 된다.

    아킬레우스는 펜테실레아를 죽인 후 투구를 벗겨보고 그 아름다움과 용맹스러움을 안타깝게 여기며 후회했다고 한다. 그리스의 유명한 화가이자 도공이었던 엑세키아스(Exekias)의 이 작품은 당시의 상황을 한 장의 스냅사진처럼 보여주고 있다.

    엑세키아스는 엄격하고 장중한 표현을 통해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행동들을 정지된 순간으로 묘사함으로써 긴장감이 느껴지는 격렬한 극적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 장면은 아킬레스와 펜테실레아의 전투가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는 바로 그 순간을 담고 있다.

    검은 투구를 쓰고 있는 아킬레스의 창이 아마존 여왕의 목을 꿰뚫고 있다. 아킬레스의 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다. 펜테실레아는 창을 들고 있지만 이미 상황이 끝났음을 인정하는 듯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하나의 점으로 그려진 그녀의 눈은 두려움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스 신화 속에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의 변화를 보여주는 예는 수 없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판도라(Pandora) 신화일 것이다. 신화에 의하면 제우스가 여자를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와 그의 동생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여자를 보낸 것이 선물이 아니라 처벌의 일환이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것은 두 형제에 대해서는 천상의 불을 훔친 불경스러운 짓을 벌하기 위함이요, 인간에 대해서는 그 선물을 받은 죄를 벌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최초로 만들어진 여자의 이름은 판도라였다. 그런데 판도라는 인간에 대한 온갖 재앙을 담고 있는 상자를 열어 인간을 괴롭히는 무수한 고통, 즉 육체를 괴롭히는 것으로는 통풍․류머티즘․복통 등, 정신을 괴롭히는 것으로는 질투․원한․복수 등이 상자에서 튀어나와 사방팔방으로 흩어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성과 국가에 대한 욕망과 공동체의 도전, 디오니소스

    제우스, 아폴론(Apollon)을 비롯하여 그리스 신화의 주요 신들이 이성과 국가를 상징한다면 디오니소스(Dionysos)는 감성과 욕망, 기존의 공동체 사회를 상징한다. 디오니소스의 라틴식 이름이 바커스이다. 디오니소스는 술과 황홀경, 광기어린 욕망의 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헤라의 질투에 의해 죽임을 당한 제우스의 연인 세멜레는 임신 중이었다. 제우스는 아이를 꺼내어 넓적다리에 넣어 키웠다. 달이 차자 아이가 태어났고 이 아이가 디오니소스이다. 디오니소스는 헤라의 책략에 의해 미치광이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바커스는 후에 포도 재배법과 과즙을 짜내는 법, 포도주를 만드는 법을 발견했다.

    당시 그리스에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의식(儀式)이 생겨났는데, 그들은 집을 버리고 무리를 지어 산과 들을 헤매 다녔다. 술을 마시고 황홀경 속에서 밤의 축제를 열었다. 축제에서는 괴성을 지르고 피리를 불며 광란에 가까운 춤을 추었다.

    때로는 산 짐승의 고기를 날것으로 먹기도 했다. 이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는 특히 여성이 많았고 노예들도 있었다고 한다. 노예와 비슷한 대우를 받으면서 억압된 삶을 살던 여성들에게 디오니소스는 현실을 거부하는 탈출구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항아리에 그려진 <디오니소스와 여인들>는 이러한 의식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왼쪽에는 큰 술잔을 들고 여인들에게 술을 권하는 디오니소스가 보인다. 오른 쪽으로는 표범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은 두 여인이 나란히 밝은 표정과 경쾌한 발걸음으로 디오니소스에게 다가서고 있다. 한 여인은 산토기를, 다른 여인은 사슴을 들고 있다. 디오니소스의 술과 날고기 안주를 먹으며 축제를 즐기려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 <디오니소스와 여인들> BC 540년

    디오니소스를 단순한 광기나 착란의 상징 정도로 여기는 것은 단견일 수 있다. 그리스 고대 국가는 앞서 보았듯이 씨족이나 부족 공동체를 힘으로 제압한 위에서 성립한 강제적인 권력이었고 또한 가부장적 체제를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국가권력과 가부장제는 모두 자연발생적인 감정이나 욕망을 거세한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체제이다.

    국가권력의 가장 큰 적은 기존의 혈연적 공동체였을 것이다. 인류가 태어난 이래 그 엄청난 세월동안 자연적으로 형성되어온 공동체는 쉽사리 인위적인 국가체제에 예속될 수 없었을 것이다. 난혼에 기초한 모계적인 전통 역시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서 폭력적인 해체 과정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런데 혈연적 공동체나 모계적 전통은 모두 자연적인 감정과 관계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어서 국가를 수립하려는 지배세력의 입장에서는 일체의 감성과 욕망 그리고 축제를 철저히 억압하고 이성과 제도로 교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정립하고자 했던 플라톤은 <국가>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인간이 그의 격렬한 욕망에 의해 이성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게 되었을 때엔, 그 자신을 모욕하고 그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을 향해 화를 내며 그 폭력을 감수한다는 것을 안다”라고 하면서 욕망에 대한 이성의 투쟁을 강조한다.

    물론 이는 그리스만이 아니라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구적 사유를 관통한다. 전통적으로 서양의 인식체계에서 쾌락과 욕망은 부정적인 배척의 대상이었다. 특히 서양 철학사는 육체적 정념에 대항하는 이성의 투쟁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신과 육제, 이성과 욕망의 이분법적 분리 위에 서 있었다.

    신학이 지배하던 중세에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근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이성의 승리를 향한 진군은 서양 주류 철학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나의 세 번째 준칙은 운명을 이기느니 차라리 나 자신을 자제하고, 세계의 질서를 바꾸느니 차라리 나의 욕망을 바꾸려고 항상 애쓰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더 나아가 <정념론>에서 “의지로써 매우 쉽게 정념을 물리치고 그 정념에 동반되는 육체의 운동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확실히 가장 강한 영혼을 가졌기 때문이다”라고 단언한다.

    그런 점에서 디오니소스 신화는 국가권력과 이성에 대한 도전, 인간 사이의 지배와 피지배가 존재하지 않았던 기존 공동체 사회를 향한 지향을 통해 현실의 억압에 대한 도전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디오니소스 의식에 여성과 노예가 주로 참여했다는 점은 이를 시사해주는 것이다. 또한 집을 떠나 숲에 머물며 축제를 벌이는 행위라든가 날짐승을 잡아먹는 행위는 과거 평등했던 수렵과 채취사회에 대한 향수와 지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문화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라든가 말리노프스키의 <미개사회의 성과 억압>을 보면 원시부족들이 밤이 되면 자주 축제를 벌이곤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수렵과 채취를 중심으로 하는 이들에게 재산을 축적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날의 수확물을 놓고 벌이는 축제를 통해 만족을 추구하는 삶이 곧 일상의 삶이자 행복이었을 것이다. 디오니소스 의식은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제우스로 대표되는 힘과 권위 그리고 수직적인 위계구조, 아폴론으로 대표되는 균형, 조화, 절제, 질서, 이성, 지식 등이 당시 그리스 고대국가 지배세력의 사유이자 이데올로기였다면 디오니소스는 해방을 열망하는 피지배 계급의 사유방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디오니소스가 도취, 극단성, 무질서, 본능, 광란, 환상, 열광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은 이성을 강조했던 지배세력에 의해 악의적으로 형성된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최고의 신이고 아폴론이 그의 뒤를 잇는 신이었음에 비해 디오니소스는 신의 대접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던 사정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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