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시대 가다, 나은 시대 올 수 있을까
        2009년 08월 20일 09: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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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선생께서 별세하셨다 소식을 듣고 좀 침울한 기분이 됐습니다. 그 분과 함께 한 시대는 이제 갔지만 그것보다 더 나은 시대가 과연 올는지, 하도 확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기도 합니다.

    주노르웨이 한국 대사관에 분향소가 설치됐다고 하기에, 저만 해도 내일 학회차 독일로 가야 되는 관계로 그 준비로 바쁘지만 않았다면 거기에 가서 조문할까 싶기도 했습니다. 사정상 그렇게 하지 못하니 이 글로 조문하는 마음을 표현하려 하는 것입니다.  

       
      ▲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서울광장 분향소의 모습 (사진=손기영 기자)

    제가 고 김대중 선생님을 한 번만, 해외 학자 청와대 초청 만찬에서 아주 간단히 뵌 적밖에 아무런 인연은 없었지만 그 분의 은혜를 좀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정부 시절이 되니 주러 대사로 서울대 서양사학과의 이인호 선생이 기용되신 것은 바로 그 은혜였습니다.  

    이인호 교수는 그 때도 온건 보수이셨고 지금은 훨씬 더 보수적으로 되신 걸로 알고 있지만 진정한 학자이신지라 러시아 학계와 폭넓게 교류하셨고 특히 저희 한국학 쪽을 많이 보살펴주셨어요.

    대사님의 신분이신데, 저희 미하일 박 교수님의 한국학 센터에 자주 오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어주시고, 물심양면으로 도우셨는데 무엇보다 ‘권위주의’란 전혀 안보이는 그 태도에 자못 놀란 일은 있었습니다.

    사실 이인호 교수도 그렇고 한국 외교사상 거의 최초이다 싶은 여성 대사를 발탁하신 김대중 선생도 그러셨는데, ‘좋은 보수주의자’의 모범을 보이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요즘은 ‘나쁜 보수주의자’들이 정권을 잡고 진보 쪽은 물론 같은 보수 쪽까지도 아주 피곤하게 만드는 세상이 됐기에 ‘좋은 보수주의자’란 무엇인지 우린 똑똑히 기억해두어야 할 듯합니다.

    김대중 선생과 그 주변 인물들, ‘좋은 보수주의자의 모범’

    ‘좋은 보수주의자’는 무엇보다 자유주의적 가치를 진심으로 믿고, 그 가치들을 – 자신의 목숨을 위험에 노출시키면서까지 – 실천하려 하는 사람, 그리고 ‘온전한 자유민주주의적 국민 국가’의 건설 및 운영을 그 어떤 개인적/파벌적 이해관계보다 더 우위에 두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제 익숙해져서 별로 신경 안써서 그렇지 국민정부 이전까지만 해도 거의 선거마다 각종 ‘투표 부정’, ‘관 개입’ 등으로 시끄러워 선거로 뽑힌 권력자들의 정통성은 꽤나 의심스럽지 않았는가요? 적어도 선거만큼 어느 정도 정상화시켜 개개인 투표권에 온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김대중 선생과 같은 1960~80년대적 민주화 투사들의 커다란 공적입니다.

    국내에서는 이제 ‘정상적 선거’는 당연시돼서 그렇지만 ‘관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운 선거를 러시아만 해도 아직 꿈도 못꿉니다. 그러한 면에서는 ‘좋은 보수주의자’들의 역사적 공헌은 크지요.

    그 다음에 또 두 가지, 즉 고문으로부터의 자유와 사형 집행의 정지를 특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그것 역시 당연시 하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공안정국마다 고문 수사 내지 고문에 준하는 강압을 수반하는 수사가 이루어지는 게 다반사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쁜 보수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아 딴 걸 다 부활시켜도 고문만큼 부활시키지 못하는 것은 1998~2008, ‘그 10년’의 큰 성과입니다. 사형 집행도 마찬가지로 다시 하려 해도 못하는 것은 고 김대중 선생의 공훈이라고 봅니다. 그래도 그 덕택에 역사는 조금 진전된 셈에요.

    10년의 성과, 선생의 공훈

    ‘햇볕 정책’을 저 같은 사람들은 "너무나 부족했다, 훨씬 더 멀리, 공동 군축 정도로 나아갔어야 했다"라고 보고 비판을 하고, ‘나쁜 보수주의자’들은 "퍼주기"라고 비방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 정책으로 인해서 ‘공비’, 즉 이북의 무장 공작원의 남파로 발생되는 각종 인명 피해는 일단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그러한 일이 발생되지 못할 만큼 남북이 일단 가까워지고 공동의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생긴 것이지요. 이번 정권의 온갖 망동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남북 사이에 인명 피해가 없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고 김대중 선생의 덕분이라고 봅니다.

    일단 ‘햇볕’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북한은, 이명박과 말은 안통해도 일단 기다리는 것입니다. 즉, 다음에 정권 바뀔 때에 남한이 다시 한 번 ‘시혜’할 줄로 기대하는 심리가 있어서 자제하는 부분이 있단 것이지요. 또 그렇게 베풀지 않고서는 (그 베풂은 잘못하면 북을 종속화시킬 위험도 있지만) 우리 공존, 공생, 평화적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자명한 일이지요.

    개개인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정치적 공간(고문 금지 등)을 확보한 것부터 동북아에서 ‘평화와 공존의 공간'(한-일, 남북 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확보한 것까지, 고 김대중 선생의 역사적 기여는 실로 큽니다.

    그런데 고 김대중 선생님께서는 분명히 ‘좋은’ 보수주의자이었지만 어쩔수 없이 보수주의자이셨는데 그게 일종의 ‘태생적 한계’로 봐야 할 것입니다. 만약 선생의 통치 기간이 고성장 시대이었다면 그 자유주의적 노선은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도 어느 정도 표방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선생이 국정을 맡으신 시대는 외환위기의 시대, 저성장의 시대, 신자유주의를 통한 이윤율 저하 경향의 극복 시도가 국정 이념이 된 시대이었습니다.

    자유주의와 노동계급의 정면충돌

    결국 이는 김대중 선생이 대표하는 한국적 자유주의와 노동계급 이해관계의 정면 충돌을 의미했었는데, 그 충돌에서는 노동계급이 불행히도 패배하고 말았지요. 자유주의자들의 통치 시기인 1998-2008년간은 비정규직과 신용불량자의 대량 양산 시대, 출산율 저하 시대, 신흥 빈곤층 형성 시대, 양극화의 시대이었으며, 이명박 정권의 등장으로 그 경향들은 더욱더 강화된 것입니다.

    만약 1998~2008년간 신자유주의 견인차 역할을 김대중 선생이 아니고 이회창씨와 같은 인물이 맡았다면 아마도 노동계의 줄파업과 지속적 총파업, 그리고 촛불집회와 같은 시민사회의 저항이 컸을 것이지만, 위대한 민주화 투사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하는 판에 노동계급도 시민사회도 무력하게 대응하거나 포섭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목숨을 건 민주화 투쟁으로 축적된 김대중 선생의 ‘정치적 자본'(권위)은 한국적 신자유주의의 고착, 착근, 발전에 쓰이게 된 꼴인데, 아주 슬픈 일은 아닐 수도 없어요. 이는 고 김대중 선생의 최대의 비극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선생의 민주화 투쟁만큼은 영원히 정치적 실천의 본보기로 남을 것입니다. 김대중 선생이 가시고 나니 이제 한국의 보수 정계에서 더이상 존경할 만한 인물은 안남은 것 같습니다. 그게 관련 정당으로서는 아주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어쩌면 한국에서 자유주의 등 여러 종류의 보수주의가 더 이상 그 어떤 진보적 함의도 없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부분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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