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완성 위해 노력"
        2009년 08월 20일 07: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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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서거했다. 삶 전체가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질곡이었고 영광과 감동이었던 그의 서거 앞에서 우리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애도의 심정을 숨길 수 없다.

    지도자로서 고인이 처했던 정치적 환경은 남달랐다. 그는 엄혹했던 시절, 군사독재에 맞서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던 민주주의의 투사였다. 교통사고로 위장된 암살 시도와 일본에서의 납치, 살해 시도 그리고 55회에 이르는 가택 연금과 6년간의 투옥, 망명과 사형 선고로 얼룩졌던 그의 삶은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고통과 영욕의 삶이었다.

    공공성 중심의 국가 의료체제 고수

    그러나 6월 항쟁 이후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간 민주주의를 위해 일정하게 지역주의에 기반 할 수밖에 없던 한계를 동시에 갖게 되었다. 또, 그가 집권했던 시기는 1997년 IMF 경제위기라는 거대한 외부 환경의 변동 속에서 사회양극화의 심화와 신자유주의 확대라는 원천적 조건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서 신자유주의 방향으로 키를 잡고 항해를 시작하여 위태롭게 항진하는 조각배와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외적인 한계와 조건 속에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도력은 흔들리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싶다. 신자유주의 세계관에 경도된 경제학자들과 관료들의 벽에 갇혀 있으면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뛰어난 정세 인식과 탁월한 정치력에 바탕을 둔 고도의 리더십은 결코 빛을 잃지 않았었다.

    주지하듯이, 고인께서는 50년 만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하고, 노벨상 평화상 수상자로서 이산가족의 상봉과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의 초석을 닦았던 진정한 평화주의자였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기억하고 싶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은 그가 신자유주의의 높은 파도 앞에서 공공성 중심의 국가의료제도를 끝까지 지켜내고 발전시켰다는 사실이다.

    국민건강보헙 입법 세계적 성과

    2000년 의약분업 파동 당시, 심지어 집권여당의 정책위원장까지도 ‘정치적으로 아무런 이익도 없는 일’이라며 냉소적으로 외면하던 의약분업을 “국가의료제도의 백년대계를 위해, 의약품의 오남용으로부터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의약분업을 관철해야"한다며 결코 물러서지 않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뚝심과 원칙은 한국 보건의료의 역사에 큰 성과를 남겼다.

    1998년 당시 수백 개의 의료보험조합으로 난립해 있던 조합주의 의료보험제도를 전국적인 단일보험자 조직으로 통합한 국민건강보험을, 입법을 통해 관철한 것은 세계적인 성과로 인정받고 있는 바, 이는 시민사회, 농민, 노동계의 오랜 숙원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들과 정책적 연대를 구축해왔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강력하고 확고한 지도력이 없었다면, 결코 달성하기 어려웠던 중대한 역사적 성과라 하겠다.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나라는 미국의 ‘식코’형 시장주의 의료제도와는 달리 유럽 복지국가의 의료제도에 더 가까운 보편적 의료보장제도를 갖게 된 것이다.

    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할 때는 현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성재 당시 국회의원과 단독 면담 채널까지 열어가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경제부처의 관료주의적 반대와 무관심을 이겨내고, 결국 이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도록 힘을 실어주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빈자들에 대해 더 이상 지금까지의 동정과 시혜가 아닌, 이들의 기초생활을 보편적 사회권으로 정부가 보장해야 한다는 철학과 원칙에 동의해 주셨던 분이다. 이것은 한국 복지운동사의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기술 중심  산업기반 전환 분기점 창출

    김대중 대통령이 한 평짜리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깨알 같은 글씨로 써 내려갔던 국가발전의 구상들은 향후, 집권 시기에 국가를 운용하는 커다란 밑그림이 되었다. 그는 대통령 재임 시절, 매일 집무실을 나설 때 1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보고서들을 챙겨 갔다가 다음날 아침, 밤 세워 고민한 각종 지시와 주석들로 빨갛게 도배가 된 보고서를 보좌진에게 넘겨주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나라를 위한 책임감과 국민을 위한 사랑으로 노구를 혹사시키면서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앞에 ‘IT 강국’이라는 수식어 하나를 추가했다. 산업전략 측면에서 김대중 정부는 조선, 자동차, 철강 등의 기계 공업에서 지식과 기술 중심의 산업으로 기반을 전환하는 분기점을 창출하였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년은 행복하지 못했을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지켜보는 그의 가슴은 미어졌을 것이다. 또, 그가 만들어 놓았던 한반도 평화체제와 복지제도의 기틀이 끊임없이 위협받고, 심지어 민주주의마저 퇴보하는 상황을 힘겹게 지켜보아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에 우리는 다시금 민주투사로 돌아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고인의 꿈을 알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꿈꾸었던 나라는 "우리 국민 누구나 행복한 삶을 누리는 민주복지국가 대한민국"이었다.

    이제 우리는 온 국민의 여망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꿈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노동자, 서민을 위시한 온 국민과 함께 그 꿈을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을 더욱 발전시켜 우리 시대의 지상 과제인 ‘완전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이 땅에서 반드시 이룰 것이다.

    그것이 복지국가를 여는 새 시대의 첫 대통령이 아니라, 과거 청산을 우선해야 하는 구시대의 마지막 대통령이 된 것을 늘 아쉬워했던 사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뜻에도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2009년 8월 20일
    사단법인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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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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