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치, 넓히고 좁힌 김대중
        2009년 08월 20일 02: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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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서거하면서 진보정치권 역시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전 당원 추도기간’을 갖기로 하고 당사에 분향소를 마련했으며, 진보신당도 홈페이지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을 애도했다.

    진보진영의 대표 정치인들의 추모사도 이어졌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민주주의를 살리고 캄캄한 남북관계를 환하게 밝히는 큰 별이 졌다”며 안타까워했고,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도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고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도 “철학과 소신을 갖춘 정치지도자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지금 그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의 대통령으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민주당 당직자들이 분향소에 놓을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을 옮기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사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진보정치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그야말로 애증의 관계를 이어왔다. 김 전 대통령은 진보정치가 실체조차 없던 시절부터 일정하게 진보정치의 영역을 대변해 온 유일한 정치인였고, 서슬 퍼런 군사독재시절에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함께 했던 ‘동지’였다.

    김대중의 ‘진보대행’ 시절

    장석준 진보신당 미래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은 “후에 ‘빨갱이’로 몰려 그 스스로 묻어두려 했지만 김 전 대통령은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한 바 있으며 맑스주의자인 백남운이 이끈 남조선 신민당에도 당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사상계>에 노동문제 관련 글을 썼을 정도로 ‘진보적’이었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의 첫 대선 출마였던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가 경제공약으로 제시한 ‘대중경제론’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여줬다. 장 실장은 “후진국에서 케인즈주의와 진보적 시각이 접목된 경제정책을 자기 정책으로 받아들인 것을 보면 김 전 대통령이 일반적 보수의 흐름과는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당시 태동기였던 민중운동 진영에서는 김 전 대통령을 ‘아군’에 가깝게 평가해왔다. 그리고 그의 존재는 호남 유권자들을 보수적인 일반 유권자들과는 다른 개혁-진보성향으로 유도하기도 했다. 장 실장은 “김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사라진 시점에서도 호남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이 아닌 민주노동당을 대안으로 선택하는 것은 이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이 앞장선 민주화가 6월 항쟁으로 꽃이 폈고, 이와 함께 진보정치도 합법적 공간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며 “김 전 대통령이 진보정당이 서는 밑거름을 마련하는데 일조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판적 지지’로 진보정치 성장 방해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90년대 이후, 아직까지도 진보진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비판적 지지’의 대상이자, 15대 대통령으로 당선 뒤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쳐왔던 ‘적’이기도 했다. 특히 90년대 초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진보진영에 대한 강력한 공세를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장석준 실장은 “90년대 초반 <사회평론>에 나온 인터뷰를 보면 김 전 대통령은 영국의 사례를 제시하며 ‘자유당 집권 이후에 노동당이 집권했다’는 부분이 나온다”며 “자유주의세력과 진보정치세력의 관계를 잘 아는 대통령으로 진보세력이 실체를 갖는다면 자신에게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재오, 김문수 등 민중당 세력이 붕괴했을 때, 이들이 김대중이 아닌 김영삼을 선택한 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진보세력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며 “김영삼 전 대통령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진보세력의 성장을 막는 데 더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임기 중 신자유주의 공세

    또한 김 전 대통령은 롯데호텔에 공권력을 투입시키고 정리해고에 맞선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을 강경진압하는 등 노동탄압에 앞장서 진보정치세력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 추진된 ‘신자유주의’정책은 진보정치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도 했다.

    주대환 복지한국 미래를 여는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진보정치인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자유주의 정치인 중에서는 비교적 합리적이고 진보성을 띄기도 했지만 그는 부자들의 입장을 적극 대변해왔다”고 지적했다.

    심상정 전 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는 “누구나 인정하듯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독재와 정면으로 맞서 싸우면서 민주주의와 남북화해협력에 전환점을 이룬 것은 분명하지만, 노동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인식의 한계는 존재했다”며 “이 점이 진보정치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넘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노회찬 대표도 “동전의 양면이 있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 그 자신이 진보정치인은 아니었다. 김 전 대통령이 민주화의 기초를 위해 싸워왔다면 이제 남은 것은 우리 몫”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 시대가 마감된 만큼, 이제 제대로 된 진보정치를 실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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