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동초’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2009년 08월 19일 09:44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인동초’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43분 86세를 일기로 서울 연세세브란스 병원에서 서거했다. 지난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87일 만이다. 김 전 대통령은 제15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남북 화해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대통령이었다.

    19일자 전국단위 일간지들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전하며 김 전 대통령의 삶과 정치 역정을 조명하는 특집기사를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다음은 이날자 전국단위 일간지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한 시대 막을 내리다 /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국민일보 <민주 꽃피우고…그가 떠났다>
    동아일보 <85년 파란의 삶 역사 속으로 >
    서울신문 <민주화 꽃 피우고 ‘인동초’ 지다>
    세계일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 민주․남북화해 상징 ‘인동초’ 끝내 지다>
    조선일보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
    중앙일보 <김대중 1924~2009>
    한겨레 <민주․통일 큰뜻 남기고…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한국일보 <굿바이, DJ>

    ‘통단 제목’ 안 뽑은 동아․조선

    이날 아침신문들은 대부분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1면에 ‘통단 제목’으로 뽑아 전했다. 신문들은 김 전 대통령이 폐렴 증세로 입원한 지 37일 만에 장기부전으로 인해 심장이 멎었고,, 급성호흡곤란증후군과 폐색전증 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부인 이희호 여사, 아들 홍일․홍업․홍걸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서거했다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치료 기간에 두세 차례 고비를 맞았고, 지난달 29일 기관지 절개수술을 받아 인공호흡을 해왔다. 김 전 대통령은 2003년 관상동맥 확장시술을 받은 뒤 매주 세 차례씩 신장 혈액투석을 받아왔고 2005년에는 폐에 물이 차는 폐부종 증세 등으로 두 차례 입원한 적이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인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의 유서와 관련해 “특별히 남기지 않으셨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이) 평소 쓰시던 책상이나 서랍에 유서가 작성되고 보관돼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며, 입원 며칠 전까지 일기를 계속 쓰셨는데 혹시 그 일기에 말씀을 남겼는가 챙겨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부분의 신문이 이러한 내용의 기사를 1면에 ‘통단’으로 제목을 뽑아 처리한 것과 달리,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통단 제목’을 뽑지는 않았다.

    두 신문은 김 전 대통령 서거 기사 옆에 <나로호 오늘 발사>(동아), <발사 후 ‘운명의 9분’>(조선) 등 나로호가 19일 오후 5시를 전후로 발사된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동아는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18일 8면짜리 호외를 발행했다.

    동아는 다른 신문들이 모두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고 이를 계기로 그의 유지를 정치권이 받들어야 한다는 사설을 게재한 것과 달리 유일하게 <민노총 가입 석달만에 개진 32년 노사평화>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기도 했다.

    ‘인동초’ 김 전 대통령의 삶과 정치역정

    신문들은 이날 특집기사를 통해 ‘인동초’ 김 전 대통령의 삶과 정치 역정,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 반응 등을 보도했다.

    국민은 2면 <‘행동하는 양심’ 고인의 유훈 잊지 않을 것> 기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전직 대통령들과 정치권은 18일 일제히 안타까움과 애도의 뜻을 표했다”며 김영삼 전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등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고 전했다.

    각 정당도 모두 조의를 표했다. 민주당은 일정을 모두 중단하고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소집, 장례기간 동안 장외투쟁과 각종 행사를 일시 중단하고 중앙당 및 시도당에 분향소를 설치해 조문을 받기로 했다. 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이어 민주당의 뿌리와 정신인 전직 대통령을 잃었다"면서 "고인의 뜻을 계승해 민주주의, 남북통일, 따뜻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도 "나라의 큰 지도자를 잃었다"며 각 시도당과 국회의원 사무실에 김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는 ‘근조’ 플래카드를 걸기로 했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고인이 꿈꾸었던 남북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자유선진당은 "고인께서 남기신 업적은 후대의 역사가 바르게 평가하고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고, 민주노동당은 "민주주의의 위기에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고 한 김 전 대통령의 유훈을 받들겠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이날 공식 홈페이지(www.cwd.go.kr)에 김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는 내용의 ‘근조’ 게시문을 띄웠다.

    민주화․남북 화해에 큰 획

    김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한국사회 민주화와 남북 화해에 큰 획을 그었다는 것이다.
    경향은 4면 <민주화․남북 화해정책…현대사에 큰 획> 기사에서 “한겨울 풍상을 이겨내고 이른 봄 꽃망울을 터트린 ‘인동초(忍冬草)’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시련과 영광이 점철된, 민주주의와 남북화해를 위한 그 도저한 여정을 끝냈다”며 김 전 대통령을 기렸다.

    경향은 김 전 대통령의 출생과 성장 과정, 정치계 입문과 활동 과정을 회고하며 민주화와 인권, 평화통일 노선을 걸으며 투옥과 가택연금, 사형선고 등 탄압받았던 과거를 전했다.

    경향은 “이전 역대 정권이 그에게 씌웠던 부정적 이미지를 고치기 위해 노력했다. ‘급진적이고 과격한 친북파’, 심지어 ‘빨갱이’라는 색깔론을 깨기 위해 TV의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인기 그룹 ‘DJ DOC’의 노래를 딴 ‘DJ와 춤을’ 부르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또, 대통령이 된 뒤 “평생의 숙원인 남북관계 개선에도 집중됐다”며 “98년 방한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에게 햇볕정책의 실효성을 설파해 그를 설복했다”고 밝혔다.

    햇볕정책을 앞세워 2000년 6월 평양을 방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고, 역사적인 6·15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해방 이후 처음으로 화해 분위기를 조성한 김 전 대통령은 같은해 12월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두 아들과 측근들이 줄줄이 비리에 연루돼 구속돼 임기 말이 우울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는 동교동 사저에 머물며 남북문제에 천착했다. 대북 송금 특검으로 측근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구속되고, 자신의 성가가 폄훼되는 상황도 지켜봤다.

    김 전 대통령은 아태평화재단을 확대발전시킨 김대중평화센터를 통해 남북 화해 협력과 햇볕정책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또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남북 문제는 평화적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와의 면담 및 서신 교환, 중국 지도부 면담 등도 이 일환으로 이뤄졌다.

    민주주의에 대한 천착도 계속돼 2007년 11월 김대중평화센터를 통해 구금당한 버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 연금해제, 민주인사들의 정치활동 자유화 등 민주화 조치 단행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촉구했다.

    김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투신 서거를 지켜보며 “내 몸의 반쪽이 무너진 심정”이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울역 분향소에서 조문한 뒤 그는 “국민은 지금 민주주의가 엄청나게 후퇴하고 서민경제가 전례 없이 빈부격차가 강화돼 어려움 속에 살고 있다. 남북관계가 초긴장 상태에 있어 (국민들은) 속수무책으로 슬픈 것”이라고 사실상 마지막 통한의 대중연설을 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남북평화를 필생의 업으로 해 왔지만, 이 정부 들어 이러한 업이 후퇴하고 흔들리는 것을 목도하며 안타까워하다 서거했다.

    정부, 유족과 장례절차 협의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는 어떻게 치러질까. 서울신문은 이날 1면 <정부, “장례형식 유족과 협의 결정”기사에서 “(정부는)1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중앙청사에서 한승수 총리 주재로 긴급 관계 국무위원 간담회를 열어 김 전 대통령의 장례절차를 논의했다”며 “유가족 측과 협의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이는 19일 다시 회의를 열어 장례 형식을 확정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전직 대통령이 서거할 경우 장례는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장(國葬) 또는 국민장(國民葬)으로 거행된다. 김 전 대통령 장례는 지난 5월 영면한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국민장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김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국민장으로 치러질 경우 역대 14번째 국민장이 된다.
    앞서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지난 2006년 최규하 전 대통령의 장례 역시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국장은 현직 대통령으로 지난 1979년 서거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가 유일하다.

    국장의 장의기간은 9일이며 장의비용은 전액 국고에서 부담한다. 국민장 기간은 7일이고 장의비용은 일부만 국고에서 보조한다. 국장은 장의기간 내내 조기를 달고 장례일 당일 관공서가 쉬지만 국민장은 당일만 조기를 달며 관공서 휴무도 없다.

    행안부가 이희호 여사 등 유가족과 함께 장례 절차를 논의한 결과, “행안부는 김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민장(國民葬)으로 치르는 것을 고려하고 있지만 민주당 및 측근들은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고려해 국장(國葬)으로 치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신문은 전했다. 송영길 의원은 “장례 기간을 줄여 6일로 하고 일요일(23일) 영결식을 열더라도 형식은 국장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당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한편 행안부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김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설치하고 19일 오전 9시부터 개방할 예정이다. 행안부는 각 시·도에 최소 1곳 이상 분향소를 설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적절한 장소를 선정하도록 각 지자체에 권고했다. 또 장례기간 중 축제 등 행사가 예정된 경우 가급적 연기하도록 당부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