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운함' 놓으시고 고이 잠드시길
        2009년 08월 19일 08: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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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의 김대중 대통령을 생각하면 노벨평화상에 얽힌 노동계와 대통령 사이에 드리워진 ‘서운함’이 떠오른다. 얘기는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었을 때 난 민주노총 대변인을 맡고 있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는 일이야 경사이며, 남북화해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살아온 김대중 대통령은 충분히 그런 평가를 받을 만한 인물이란 점에서 노동계도 이견이 없었다.

    노벨평화상과 DJ의 오해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김 전대통령. 

    문제는 그 당시 정부가 많은 노동자들을 구속 수감하는 강경한 노동정책을 편 탓에 노동계와 날카롭게 대립하는 상황 때문에 일어났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집권 이후 외환위기 극복을 명분 삼아 정리해고제를 도입하고 비정규직 고용을 늘리는 등 노동자들에게 가혹한 희생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밀고 나갔으며, 이에 저항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구속 수감했다.

    취임 첫 해인 1998년에만 219명을 구속하는 등 노벨상 수상 당시까지 구속 노동자가 400명이 넘어서 전임 김영삼 정권 때 보다 더 심각했다. 2000년 상반기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호텔롯데 여성 노동자 파업 현장에 경찰병력을 투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이 같은 목소리는 노동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민주노총을 포함한 각계의 시민사회단체들은 공동으로 김대중 정부에게 사회기본권을 보장할 것을 강도 높게 촉구했고, 이에 침묵하는 정부에게 기본인권을 탄압한다면 노벨평화상 수상 자격이 없는 것이라거나 노벨상을 반납하라거나 하는 식으로 강력히 항의했다.

    정부가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자 목소리는 더 커졌고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으로 연 어느 기자회견 자리에선가 ‘정부가 계속 침묵한다면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노르웨이 오슬로에 대표단을 파견하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식의 얘기까지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노벨상 수상 행사장 근처에서 한국인 한 사람이 인권탄압을 비판하는 피켓시위를 했고, 외신 기자도 한국 내 인권상황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에게 비판적 질문을 했다는 보도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피켓시위를 한 사람은 현지 교포로 민주노총이나 그 어떤 사회단체도 오슬로로 대표단을 파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실 민주노총은 노벨상 수상에 즈음한 성명서를 하나 냈을 뿐 이와 관련한 별도의 독자적인 입장을 밝혔거나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서운한 이야기들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노동인권을 제대로 보장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 진의였지, 더 나아가서 노벨상 수상을 반대해야 한다고까지 생각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대변인으로서 민주노총 공식 입장을 밝히는 통로를 맡았던 필자는 이 이슈로 ‘오버’하지 않기 위해 정교하게 관리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까닭에 그 뒤 이 일은 잊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002년 말 김대중 대통령 퇴임 때까지 이 일은 김대중 정부가 노동운동이나 민주노총을 대하는 데 직간접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되었다.

    2001년 터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와 경찰병력 투입 사태를 비롯해 그 뒤로도 김대중 정부와 노동계의 관계는 더 악화됐고, 정부가 단병호 위원장을 구속 수감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더 덧났다. 정부는 적절한 선에서 마무리할 수 있는 일도 끝까지 ‘발본색원’하는 일이 많아졌고, 임기 동안 모두 892명이나 구속하는 강경한 정책을 펼쳤다.

    물론 이는 노동정책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하위 개념으로 취급해 치안정책의 하나로 치부한 김대중 정부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문제를 풀려고 할 때마다 “노벨상 수상을 반대한 데 대해 윗선에서 서운해 하신다”는 얘기가 시도 때도 없이 들려왔다.

    1년이 가도 2년이 가도 어이없는 얘기가 되풀이 되길래 정부 관계자에게 “도대체 누가 그런 보고를 했느냐. 정확한 사실이 아니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한 번 ‘잘못된 팩트’로 보고된 내용은 바로잡히지 않았다. 필자가 느끼기에 그 뒤로도 이 일은 김대중 정부가 민주노총이나 노동계를 대할 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많이 미쳤다.

    심지어 퇴임한 뒤인 2006년 당시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도 김 대통령은 “2000년에 노벨상 받으러 노르웨이 오슬로에 갔더니 민주노총이 반대 운동을 했다”며 “매우 서운했다”고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서운한 이야기’의 사실 관계는 여기까지다. 사실 서운한 마음으로야 필자를 비롯한 노동계도 뒤질 게 없다. 마음이란 게 주관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서로 맞선 세월이 있고 그 때의 판단이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그랬다’ 정도일 그깟 일을 지금 와서 미주알고주알 한다고 해서 서운함이 풀어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뭔가 더 돌아보고 생각해보고 충분히 더 이야기할 게 남아있는 세월인 것만은 틀림없단 생각에서 독백처럼 돌아본 것이다.

    대통령다운 대통령 ‘한 명’

    ‘평화와 인권을 사랑하는 노벨상 대통령’ 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많은 노동자를 구속하는 대통령’의 상황처럼 김대중 대통령을 떠올리면 여러 가지 빛깔의 느낌이 난다.

    노동정책이나 부동산 정책처럼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와 투기경제를 오히려 부채질한 점에서 혹독한 평가를 피할 수 없다. 문제의식을 더 확장하자면 한국 현대사에서 ‘해방전후사’ 만큼의 무게가 나가는 ‘IMF외환위기 전후사’가 필요할 만큼 격변기에 김대중 정부의 선택이 어떤 역사적 결과를 빚었는지 특히 경제사회정책 분야에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다른 빛깔도 눈부시다. 필자는 중학교 때 신문배달을 하다 잠시 쉬면서 펼친 지면에 아로새겨진 흑백 사진 속 ‘양심’의 상징 김대중을 잊을 수 없다. 금방이라도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말할 것 같은 잘생긴 얼굴, 납치와 고문 그리고 사형선고, 5.18 광주민중항쟁….

    치떨리는 노여움에 서툰 백묵 글씨로 남 몰래 쓰던 민주주의의 얼굴 김대중. 마침내 온갖 역경을 딛고 선 ‘인동초 대통령’이 되어 획기적인 민족화해를 이뤄낸 사람. 국민들에게 ‘그래도 어디에 내놓을 만한 대통령다운 대통령 한 명’은 갖게 해준 사람.

    이 모든 빛깔이 그 시대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김대중 대통령의 일생이리라. 이 점은 노무현 대통령도 다르지 않으리라. 민주정부 10년을 책임진 대통령 두 분이 서거하고 바야흐로 한 시대가 가고 있다. 민주정부 10년의 한계를 어떻게 실질적으로 뛰어넘을 것인가가 큰 과제가 되고 있다.

    국화꽃 한 송이 정성스레 바친다

    공과가 있게 마련이니 공은 잇고 과는 넘어서야 하리다. 그러나 과를 비판하기는 쉬워도 뛰어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며, 솔직히 말하면 앞선 세대만큼의 공을 만들어내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민주정부의 과를 따지기 앞서 과연 민주정부를 뛰어넘을 의지와 실력이 우리에게 있는가 돌아볼 때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공을 남기기 위해 자신이 만난 시대를 얼마나 치열하고 성실하게 마주했으며 남기고 싶지 않았을 과는 왜 남게 되었는지, ‘서운함’을 넘어 서로 이해하고 고개 끄떡 일 수 있도록 충분히 힘써야 할 책임은 남은 우리 몫이다.

    86년 동안 영욕의 한국 현대사와 정면으로 마주하며 최선을 다한 김대중 대통령 영전에 ‘서운한 마음’ 내려놓으시고 고이 잠드시라는 뜻에서 국화꽃 한 송이 정성스레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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