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호적 동지에서 퇴진 대상까지
By 나난
    2009년 08월 18일 05: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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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때 노동계와 가장 친화력이 강한 정치가였다.야당 대표 시절에는 당시 노태우 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던 ‘민주노조’ 진영에 우군으로서의 역할을 했으며, 노조의 주요 지도부들과의 만남도 비교적 많이 가졌다.

대통령이 된 이후 그의 노동 관련 정책은 긍정과 부정 양 측면의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노동계는 민주노총, 전교조 합법화와 각종 정부 위원회의 노동조합 참여, 적극적 실업대책 등에서는 후한 점수를, 노동시장 유연화와 비정규직 노동자 양산을 가능케한 제도 도입에서는 비판적 평가를 내렸다.

민주노총 김태현 정책실장은 “민주노총이 합법화됨에 따라 정식 내셔널센터로서 기능”하게 됐고, 이에 따라 민주노총과 각 산별연맹은 조직을 정비하는 한편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김 실장은 또 “민주노총이 각종 정부 위원회에 참여가 가능해졌다”며 “정책 참여 영역 중 최저임금위원회 참여가 장 성과를 본 제도 개선”이라고 평했다. 

그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던 시절,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합법화됐으며, 노조의 정치활동도 보장됐다. 그는 또 백골단을 해체한 데 이어 최루탄 사용을 금지해 ‘최루탄 없는 서울거리’를 만드는가 하면, 노동시간 단축 등을 이뤄냈다.

노조 활동 보장하고, 근로조건 개선

또한 외환위기로 침체된 경기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취약 계층에 20조원의 실업대책 예산을 투입하는가 하면 고용보험 대상자를 1998년 527만명에서 2000년 675만명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지난 2000년 12월 노벨위원회는 고 김 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합법화하고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을 허용”하였으며, “과거와 달리 누구나 합법적인 방식으로 집회와 시위, 결사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다”는 점을 선정 이유로 밝히기도 했다.

이와 함께 “불법 폭력시위는 664회에서 129회로 줄었다”며 “최루탄은 1997년 13만여 발에 달했으나 1999년에는 단 한 발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수상 이유 가운데 하나로 적시했다. 

   
  ▲ 1998년 6월 열린 노사정위원 위촉장 수여 및 오찬 간담회

하지만 국민이 정부로부터 시작된 그림자도 짙다. 현재의 870만에 달하는 비정규직은 그가 대통령 시절 시행한 노동유연화 정책부터 시작됐으며, 지금까지 가장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되어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과 공기업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를 강도 높게 추진했다.

그와 함께 탄력 근로제 도입, 근로자 파견제 등을 실시한 결과 한국의 노동시장은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었고, 비정규직 고용의 활용으로 노동시장의 수량적 유연성과 임금소득 불평등 현상이 심화됐다. 

이러한 비정규직 문제는 노사갈등뿐만 아니라 빈부갈등, 임금갈등,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노노갈등 등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만들어 냈다. 김태현 실장은 “97년 경제위기 속에서 탄생한 DJ정부는 신자유주의를 강요하며 정리해고, 파견제 실시 등을 통해 비정규직을 본격적인 사회 쟁점화시켰다”며 “이로써 비정규직과 정규직간 격차가 확대됐다”고 말했다.

기업 구조조정, 노동 유연화 추진

전노협과 민주노총에서 활동한 바 있는 신언직 진보신당 서울시당 위원장도 “IMF를 거치면서 DJ정부는 노동문제 즉, 경제사회적 측면에서 민주주의를 신장시키지 못했다”며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노동시장에 만연했다”고 말했다. 또한 김 전 대통령 시절 설립된 노사정위원회는 수차례의 노정갈등 끝에 한때 유명무실화 됐다.

대통령 재직 당시 그는 “지금은 식민지 시대가 아니므로 외국자본은 많이 들여올수록 좋다”며 대우자동차의 해외매각을 추진했고, 이에 1,725명의 노동자가 정리해고됐다. 이에 2001년 민주노총은 “대우차 폭력진압은 김대중 정권의 정리해고와 구조조정 정책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분쇄 김대중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인 것이다. 

또 김대중 정부 시절 롯데호텔과 의료보험관리공단 등 파업장에 대한 공권력 강경 진압으로 노정대결 국면이 야기되기도 했다. 지난 2001년 사측의 노조탄압에 파업을 벌이던 롯데호텔 조합원 404명이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임신 여성이 유산하고, 장애인이 부상을 입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신언직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등장 이후 노사정위원회가 설치되고 사회적 합의의 노력이 있었지만 노동의 목소리보다는 자본의 요구가 더 많이 관철됐다”며 “대우자동차 해외매각, 롯데호텔 파업에 대한 경찰 투입으로 많은 문제점이 야기됐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정치민주주의 측면에서는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겠지만 국내 노동 현안에서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면서도 “그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기보다는 앞으로 우리가 극복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김태현 정책실장은 “DJ 정부는 구조조정 등 생존권을 위협하는 동시에 대화의 창을 열어놓으며 민주정부로서의 역할을 다하려 했다”면서도 “신자유주의 정책의 선봉에 선 측면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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