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진 이사들, 지성 없는 정파 대표"
        2009년 08월 15일 10: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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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과 표현의 자유, 헌법,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며 의원직 사퇴서를 던지고 여의도를 떠난 최문순 의원을 8월 12일 저녁 명동성당 앞에서 만났다.

    길거리 투쟁현장에 가면 늘 만날 수 있다고 해서 ‘노숙의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최문순 의원은 의원직 사퇴서를 던진 이후 요즘에는 명동성당 앞에서 ‘삐끼'(?)로 활동하고 있다.

    ‘언론악법 원천무효와 언론장악저지 100일 행동(시즌2)’의 행동대원으로서 천정배·추미애 의원과 함께 명동성당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홍보물을 나눠주고 서명을 독려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MBC 노조 위원장과 언론노련 위원장을 지낸 후 MBC 사장까지 역임하고, 언론계를 대표하는 민주당 비례대표로 18대 국회에 입성했던 그는 전문성과 투쟁성, 성실성을 겸비한 보기드문 ‘선수’로 인정받는 국회의원이었다. 다음은 최문순 의원과의 일문일답

       
      ▲ 최문순 의원 (사진=김경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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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원직 사퇴서를 낸 지 한참 된 것 같은 느낌이다.

    = 7월22일 날치기가 있고 나서 다음날 사퇴서를 제출했으니까 이제 보름이 좀 넘었다.

    – 서명운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 천정배 의원과 두 사람이 의원직 사퇴를 하고 난 다음에 어디 갈 데가 없기도 하고, 이 문제를 흐지부지 넘겨서는 안되겠다 싶기도 해서 나오게 됐다. 매일 저녁 명동성당 앞에서 천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한 지 이제 12일째다.

    –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 반응이 굉장히 좋다. 어제 춘천, 원주에도 다녀왔는데 서명운동이나 촛불시위 등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하루에 보통 4~5백명에서 많으면 1천 명 정도 서명을 해서 지금까지 한 만 명 정도 한 것 같고, 앞으로 민주당이 전국에서 서명운동으로 전환하면 숫자는 금방 늘어날 것 같다. 서명운동은, 최소한 헌재 판결이 날 때까지는 계속 이어갈 것이다.

    – 헌법재판소 판결은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 잘 해주기를 바라지만…. 사실 예측하기는 힘들다. 우리가 여론을 얼마나 모아 내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방송사업, 돈 안 돼…정치적 이유 말고 유인 없어"

    – 요즘 정부에서는 미디어법 개정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분위기이다.

    = 정부는 헌재 판결과 관계없이 미디어법 개정에 따른 허가과정을 그냥 진행시키고 있는 것 같다. 방통위가 발표한 방송법 개정안 초안에 대해 내일(13일) 긴급토론회도 하는데, 방송사라는 것은 일단 허가를 내버리면 그걸 그만 두고 문닫게 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정부의 그런 움직임을 일단 멈추게 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다.

    – 미디어법 날치기 전날,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법 통과와 관계없이 종편 채널 허가를 추가로 하겠다는 발언도 있었다.

    = 최시중 위원장의 그 발언은 사실 지금의 이 논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 발언이기도 하다. 기존 법으로도 얼마든지 종편 채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준 것이기 때문이다. 안 되는 것은 신문이나 대기업뿐이었는데, 그것을 이번에 법으로 연 것이다. 법을 강제로 통과시킨 이유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 진입장벽 해제에 따른 산업적 효과 예측이 조작 왜곡됐다는 폭로도 있었지만, 또 한편에서는 미디어법 날치기를 전후로, 방송사업 진출 후보군으로 지목되는 대기업들 사이에서는 이런 피곤하면서 돈도 안 되는 것을 왜 하냐는 기류도 전해진다.

    = 그렇다. 사실 방송사업은 정치적인 쟁점이 되면서 수익은 별로 안 되는 일이다. 정치적인 이유를 빼면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 명동성당 앞에서 언론악법 서명운동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최문순 의원 (사진=김경탁 기자)

    현 언론체제는 민주화 성과

    – 미디어법 개정에 대해 한나라당이 최근 개발한 논리는 지금의 방송3사 체제가 군사정권의 잔재라는 것이다.

    = 지금과 같은 방송3사 체제의 출범은 군사정권 시절에 이루어졌지만 그것에 대해서 아주 본질적인 변화가 1987년 6월 항쟁부터 1998년 방송개혁위원회까지 기간을 거쳐 완성된 것이다. 지금의 언론 체제는 말하자면 ’87년 체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1998년 방송개혁위원회가 김대중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지면서 KBS 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는 등의, 방송에 대한 중요한 부분에 대해 사회적 합의와 결정이 내려졌다.

    그에 앞서 각 언론사에 노조가 만들어지고 언론노조가 만들어지면서 개별 회사마다 다르지만 보도국장이나 편집국장에 대한 노조의 임명동의제나 추천동의제와 같은 제도들이 관철, 정착되어 있다. 그렇게 노사간에 평화가 확립되어온 것이다. 그것을 깨는 것은 다시 노사간에 전쟁을 하자는 이야기이다.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가 만들어진 것도 1987년 12월이다. 이전까지 MBC 주식의 70%를 국영방송인 KBS가 가지고 있었는데 이 지분을 넘겨받았다. 방문진을 만든 목적은 정치권력으로부터 MBC를 독립시키는 것이었다.

    – 최근 방문진 이사 선임 문제로 난리다. 대표적으로 방문진 이사장에 취임한 김우룡씨만 해도 작년에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고 KBS를 장악하지 못하면 이명박 정권의 명운이 위험하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 사실 그분도 MBC 출신인데,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이번 이사 선임은 방문진의 애초 설립취지를 위반한 것이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종속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것이다.

    방문진이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설립취지에 맞춰 아무런 문제없이 운영되어왔다고 말할 수는 없고, 그동안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번처럼 노골적으로 극우파, 뉴라이트 같은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저렇게 임명한 적은 없었다.

    공중파 방송사의 이사라고 하면 한 나라의 지성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이전 방문진 이사들을 보면 보수 혹은 진보로 분류할 수 있는 분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지성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번에 선임된 사람들은 지성보다는 정파성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이는 MBC를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정부가 아주 노골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 MBC 사장으로 재임하던 시기에는 방문진과 관계가 어땠나.

    = 거듭 말하지만, 방문진은 정치권력으로부터 MBC를 지켜주는 곳이다. 예를 들어 황우석 사태 때는 MBC에 대해 외부로부터 압력이 엄청나게 들어왔지만 방문진에서 흔들리지 말고 소신 있게 보도하라고 결정하면서 MBC를 지켜줬고, 사장도 지켜줬다. 그런 전통이 쌓여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선임된 최홍재 이사는 오히려 민영화 이야기를 꺼냈던데, 그것은 방문진의 설립목적을 위배할 뿐 아니라 월권이다. 민영화는 방문진에서 왈가왈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MBC와 KBS는 방송문화진흥회법이라는 특별법에 설립근거를 두고 있다. 국회에서 그 법을 고쳐야 민영화가 되는 것이지 일개 방문진 이사가 민영화를 하네마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이번 주, 방문진 문제와 함께 최대 현안은 YTN 사태가 다시 불거진 것이다. YTN 배석규 대표이사 대행은 보도국장 선출제를 폐지하면서 보도국장 선출제를 규정한 단협이 2005년 이후 갱신되지 않아서 자동으로 만료되었다는 논리를 펴던데.

    = 임금협상은 대개 1년마다 하고 단체협상은 2년마다 하게 되어있는데, 특별히 갱신될 이유가 없으면 계속 가는 것이다. 노사합의로 바꾸지 않는 한 기존 단협 그대로 가는 것이 노동법 규정이다. 무식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사의 사장 직무대행이라는 사람이 그런 정도의 발언을 한다는 것은 정말 개탄할 노릇이고 그 자체로 방송사 사장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민주당, 야성 회복 중

    – 현안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신상문제로 돌아와 보자. 지난해 총선 당시 진보정당이 아닌 민주당으로 들어가는 이유에 대해 민주당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약속했었다.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면서 언론과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이야기했는데, 민주당의 변화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보나.

    = 민주당이 처음 출범했을 때에 비해 점차 야성을 회복해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창조한국당과의 연대도 초창기보다는 체계화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러한 변화를 국민들이 더 좀 견인하고, 격려할 것은 격려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 야 4당은 물론 밖에 있는 시민사회단체, 언론단체, 노동단체까지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것 같다.

    제가 밖에 있으면서 그 역할을 할 것이다. 의원직 사퇴로 오히려 편해진 입장이다. 민주당 의원으로 있으면 마치 민주당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고 모든 힘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천정배 의원과 저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 최문순 의원 (사진=김경탁 기자)

    – 능력을 검증받은 ‘선수’가 정치판에서 빠졌다고 아쉬워하는 의견도 많다.

    = 지금 환경에서는 의원직을 가지고 있느냐 여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원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나.

    아무리 무슨 주장을 해도 야당이라는 것의 존재 자체를 한나라당이 무시하고 있는 것이고, 지금 야당을 다 합쳐도 90석이 되는데, 그 지분조차 인정을 받지 못하니까 소수인원은 이에 대해 강하게 저항하고 항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해 국민들에게 인식을 확산시키고, 한나라당이 각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법적으로 부부인 이혼 관계…보좌진들한테 미안"

    – 당장 9월 국회에서 국정감사에서 야당의 전력 약화가 우려된다. (문방위에서 천정배·최문순이 빠져버리고, 교과위원장으로 간 이종걸 의원을 대신해 김부겸 의원이 왔지만 기존 멤버는 간사인 전병헌 의원밖에 없음) 비례대표의원이기 때문에 의원직 정리를 통해 후순위 승계로 플레이어를 충원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 현재 상태는 사실상 이혼 선언을 하고 별거상태에 들어갔는데 이혼 도장을 저쪽에서 안 찍어주니까 법적으로는 아직 부부인 관계이다. 사퇴서를 수리하지 않겠다는 것이 김형오 의장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 비례대표 의원직은 당적만 버리면 자동으로 사퇴가 처리되는 방법이 있다. 2005년 한나라당 박세일 의원의 사례가 있다.

    = 그 방식도 검토를 해봤는데, 당과의 관계를 끊으면서까지 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고,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 부분은 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해야할지 더 연구를 해보겠다.

    – 의원회관을 비우면서 보좌진 일괄사표도 받았는데, 보좌진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 그냥 쉬는 사람도 있고, 여기서 함께 서명운동에 참석하는 사람도 있다. 생계문제도 있는데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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