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선제가 곧 혁신은 아니다"
        2009년 08월 17일 10: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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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선제는 애초 민주노총 조직 내부 민주주의와 지도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데 도입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명분 뒤에는 정파적 이해 관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존의 정파 구도 아래 민주노총 위원장 당선이 어려운 쪽에서 직선제 도입을 가장 강력하게 들고 나왔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직선제 도입과 정파 이해

    이는 직선제의 요구가 현장 조합원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으로, 이 제도 역시 정파적 이해 관계 속에서 찬반이 갈라졌던 사안이다. 따라서 직선제에 관한 수많은 관련 논의도 정파적 이해 관계와 동떨어진 채 진행되기가 어려웠으며, ‘정치적/정파적’ 배경도 제도 도입의 이유로 작용됐다.

       
      ▲ 민주노총 44차 임시대의원 대회 (사진=민주노총)

    직선제 선거 넉 달을 앞둔 현재까지도 ‘조직 내부 민주주의 구현과 노동운동의 혁신을 위한 방법이 직선제 밖에 없는지’에 대한 의문이 비교적 강하게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더욱 노골화된 ‘민주노총 죽이기’와 ‘민주노조운동 말살’ 의도에 민주노총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 역량이 실종된 상황에서 (선거제도라는)시스템 변화가 진정한 혁신이냐’는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2009년 상반기, ‘화물연대’라는 이름조차 합의문에 넣지 못했던 대한통운 사태, 지역접인 ‘기간 유예’를 놓고 줄다리기에 그쳤던 비정규직법, 목표에 절반도 달성 못하고 재계의 ‘인하’안에 끌려다니다 2.75% 인상에 그친 최저임금안, 그리고 77일 간의 투쟁에도 52% 구조조정안에 합의한 쌍용 등 동력과 역량이 상당 부분 ‘유실’된 상황에서 구심력 강화를 위한 모색이 절실할 때다.

    여기에 하반기에는 복수노조 및 전임자 임금문제 금지라는 노동진영 최대 이슈가 기다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노동유연화와 노사관계 선진화를 주장하며 반노동정책을 더 강화할 것이다. 당장 “10월 하순부터 선거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전임자나 복수노조 문제의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노총은 또 다시 각종 선거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원칙 떠나, 시기적으로도 문제

    총연맹과 직선제가 맞는 조합인가 라는 원론적 문제를 논외로 한다  해도, 이런 시기적 정세적 상황에서, 조직 내부의 원심력 작용의 가능성이 적지 않은 하드웨어 프로그램 하나 설치한다고 민주노총이 강력한 투쟁 동력을 회복하는 등 조직이 강화될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많은 게 현실이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는 “(현재 민주노총의) 문제는 시스템이 아닌 사업의 내용”이라며 “다른 것(현안 투쟁)도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직선제는 그 자체가 사업이라기보다는 조직 시스템을 바꾸는 문제”라고 말했다.

    한때 직선제는 민주노총 혁신의 핵심 고리로 받아들여진 적도 있다. 그만큼 내부 혁신이 중요했고,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 민주노총 관계자들도 “직선제는 혁신을 위한 목적이 아닌 내부 소통을 위한 도구”라고 말한다. 혁신 방안 중 하나일 뿐 혁신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더구나 전방위적으로 단행되고 있는 민주노총과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밖으로 시선을 전혀 돌릴 수 없게 만들 직선제가 넉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일단 부딪쳐보자"는 태도가 민주노총 내부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같은 시기적, 정세적 조건과 함께 직선제가 정파갈등을 확산시킬 것이라는 우려와 민주노총의 선거 관리 능력을 걱정하는 목소리들도 나오고 있다. 

    현재 민주노총은 사무처장단회의와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준비에는 돌입했으나, “직선제를 운영할 수 있는 관리 능력이 있는지”, “직선제에 민주노총 조직구조와 역할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등에 대한 분석과 대안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정파들, 직선제 관련 입장 제시해야

    현재 민주노총의 선거는 각 정파들의 후보 간 경쟁구도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특히 선거라는 것이 자파의 후보를 배타적으로 지지해주고, 상대방의 약점을 끄집어내서 큰 소리를 얘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져올 것이 분명함에 따라, 정파 갈등이 보다 대중적으로 확산될 우려도 없지 않다.

    이와 관련 노중기 교수는 “지금의 정파구도에서 직선제를 한다는 것은 (일시적인) 충격은 될 수 있겠지만 그에 따른 문제가 더 많이 불거질 것”이라며 “민주적인 과정을 거쳐야 하는 직선제가 (정파 갈등으로)부정적인 비민주적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직선제에 대한 각 정파의 입장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중요 정파는 직선제에 대한 각자의 입장 내지는 철학을 공개”해 그에 따른 “대응과 극복 방안을 내놓고 최소한의 합의를 만들어 직선제로 인한 역풍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의 선거 관리능력과 관련해, 총연맹이 직선제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는 산별노조와 지역본부의 안정적인 선거관리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일부 산별조직과 지역조직에서 그동안 보여준 부정선거와 이에 따른 조직 내 갈등 사례는 직선제 성공 여부에 적지 않은 우려를 던져주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0년 당시 사무금융노련(현 사무금융연맹)이 조합원 직선에 의한 임원선거를 했다가 부정선거 시비 끝에 결국 간선제로 규약을 바꾼 전례가 있으며, 민주노총 대전본부는 부정선거와 투표거부 등으로 4년간 지역본부장을 선출하지 못했다. 이 같은 일이 중앙 조직인 민주노총에서 발생할 경우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다.

    안팎의 혁신 동시에

    민주노총 안팎에서 "내부 혁신과 외부 혁신을 동시에 가져가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도 이런 문제들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선제가 민주노총 강화를 위한 전체 혁신사업과 분리되어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사업혁신과 함께 조직을 혁신하는 과정에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중기 교수는 “문제의 근원을 놔두고 내부만 바꾼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며 “조직혁신을 통한 민주노조운동으로 (조직 밖의 현안에) 대응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만으로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직선제가 결정된 이상 처음 한두 회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다시 시스템 전환, 즉 간선제로 돌리는 것이 아닌 민주노조운동 외부사업에서의 혁신과 내부의 혁신을 함께 가는 체계로 변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광표 부소장 역시 “노동운동이 이명박 정부 하에서 고립되고 있고, 그 고립을 깨고 전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직선제는 그 과정 속에 포함될 순 있겠지만 지금은 그러한 장치가 만들어 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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