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선 버르장머리? 무조건 기각이다”
        2009년 08월 14일 09: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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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건 상상 이상이다. 숨이 가빠온다. 정말 무섭다. TV 납량특집극을 따로 볼 필요가 없다. 바로 여기 이곳에 살아 숨 쉬는 공포가 있다. 100% 리얼이다!

    읽다가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게 되는 글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바로 김민선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측의 인터뷰 기사였다.

    기자가 손해액이 4,200억 원이라면서 왜 3억 원만 손배소했냐고 하자, 일단 그렇게 했을 뿐이란다.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비용은 얼마든지 올릴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일단 소송을 제기하고 차후에 액수 상향조정 문제를 생각할 것이라고 한다. 이건 당하는 사람 말려 죽이는 말 아닌가.

    더 무서운 건 그 다음이다. 왜 혼자 소송을 제기했느냐고 하자, 자신은 ‘시작’을 한 것이고 앞으로 각 회사별로 줄줄이 들어갈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할 수도 있단다. 당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라고?

    이 대목에선 ‘살의’가 느껴질 만큼 살벌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썼다가는 나도 소송을 당할까봐 그렇게 쓸 수도 없고, 할 말을 하지 못하니 더더욱 한숨만 몰아쉬게 된다. 국가권력의 검열보다 업자의 검열이 더 무서운 세상이 되는구나.

    김민선이 사과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엔, 웬만한 수준으로는 사과 안 받는단다. 김민선이 미제 쇠고기 홍보대사가 되고, 중고등학교 쫓아다니면서 미제 쇠고기 판촉활동을 해준다면 혹시 생각해보겠단다.

       
      ▲ 8월 14일자 <오마이뉴스>

    이건 거의 김민선더러 사회적으로, 그리고 대중연예인으로서도 죽으라는 말 아닌가? 혹시 방금의 표현도 너무 심했을까? 김민선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단어가 잘못됐다는 이유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판이니, 도대체 이 기막힌 상황을 안전하게 표현할 단어는 무엇인가?

    함부로 말하는 버르장머리를 고쳐놓는 데서 보람을 느낀단다. ‘함부로 말하는 버르장머리’ 정도를 고치기 위해 저렇게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다고? 정말 잔인하다.

    이번 소송이 ‘말조심하라는 경고’라고 인정하고 있다. 김민선은 본보기이고 이것을 통해 다른 연예인들이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교육효과를 노린단다. 김민선은 사람이다.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한 인간을 저렇게까지 몰아세우다니. 이게 사람에게 할 짓인가?

    또 다른 공포

    개발업체가 환경운동하는 사람에게 손해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다면? 우리나라에 환경단체는 씨가 마를 것이다. 어떤 사람이 강을 개발하는 것 때문에 금수강산이 썩어간다고 글을 썼는데, 건설회사가 그 사람의 표현이 지나쳤다고 소송을 제기한다면?

    내가 만약 ‘문화적 병균이 득실거리는 미국 영화를 보느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안에 털어 넣겠다’라고 썼더니 미국 영화 배급업자가 소송을 제기한다면? 대형마트가 지역경제 죽인다고 썼더니, 그들이 소송을 제기한다면?

    혹은 학원이 애들 죽인다고 주장했는데, 사교육업체가 소송을 제기한다면? 재벌개혁운동하는 사람이 재벌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썼더니, 30대 재벌이 그 사람에게 돌아가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소송을 제기한다면? 노동유연화가 독극물이라고 썼더니, 기업들이 노동비용이 올라갔다면서 ‘돌림빵’으로 소송을 제기해온다면?

    민주공화국은 끝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가 한국사회에 엄습할 것이다. 소송은 경찰보다 더 무섭다. KKK단처럼 엄청난 린치가 아닌 바에야, 국가권력의 탄압보다 더 무서운 게 돈이다. 소송으로 말려 죽이고, 돈으로 끝장내는 분위기가 되면 백골단이 날아다닐 때보다 더 언로가 막힐 것이다.

    자본은 온갖 물리력과 인맥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일반적인 시민이 가진 거라곤 달랑 ‘입’밖에 없다. 시민은 그 입을 가지고 떠들어댄다. 소송으로 겁을 주면 시민은 떠들어댈 수 없게 된다. 자본에 대해 떠들어대는 것은 언제나 기업의 피해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손해배상 소송이 따른다면, 시민은 벙어리가 된다. 우리는 결국 괴물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소송이라는 절대보호막을 장착한 괴물을.

    무조건 기각이다

    참여정부 때 한 국가기관을 비웃는 글을 썼더니, 그곳에서 전화가 왔다. 정정·사과글을 싣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법무팀도 꾸렸다고 했다. 그 후 그곳에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전화를 해왔다. 나는 정정이나 사과는 말도 안 되고, 국민에게 국가기관을 비웃을 권리도 없느냐고 했다.

    결국 소송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나는 강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만약 실제로 소송이 진행됐다면, 결과와 상관없이 내 삶은 헝클어졌을 것이다. 당시 상당한 위협을 느꼈었다. 김민선을 말려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업자들이 줄을 섰다는 이런 소송이 진행돼선 안 된다.

    방금 말한 국가권력에 의한 소송보다 업자에 의한 소송이 훨씬 해괴하다. 이것이 선례가 되면 국가는 ‘개판’이 될 것이다. 이 문제는 미제 쇠고기 개방이라는 국가정책 이슈였다. 공화국의 시민은 국가의 정책에 대해 누구라도 떠들어댈 수 있으며, 청산가리든 뭐든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이 오해라면 국가가 반론하고 설득해야 할 문제다. 해당 정책의 수혜자가 되는 업자가 직접 소송을 제기해대면, 공론장은 사라지고 ‘개싸움판’만 남을 것이다. 골프장업자가 무서워 난개발정책을 보고만 있고, 아파트업자가 무서워 그린벨트 지키자는 말도 못 하는 세상이 그려진다. 국가정책에 대해 자기 미니홈피에 한 마디 툭 내뱉은 것 가지고 업자가 소송이라니. 말도 안 된다. 이 소송은 ‘얄짤’ 없이 기각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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