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사, 부끄럽지 않게 지켰다
    불에 탄 허세욱씨 지금도 꿈에 나와”
    By mywank
        2009년 08월 14일 09:41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이번 ‘짱돌토크’는 전의경 출신 20대 청년들의 군 생활 이야기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담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레디앙>은 약 1달 전부터 수소문을 해, 이명박 정부(참여정부 복무기간 포함)에서 군 생활을 했던 전의경 예비역 10여 명과 접촉을 시도했다.

    우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대부분의 전의경 예비역들은 “괜히 말을 잘못하면 X된다”, “제대하면 군대 얘긴 하지 않기로 동기들과 약속했다”, “뒤탈이 생길까봐 어머니가 말렸다” 등의 우려를 나타내며, 섭외 제안을 거절했다. 또 일부 참석 의사를 밝힌 이들도 며칠 뒤면 ‘잠수’를 타기 일쑤였다.

    이번 기획을 준비하면서 이명박 정부에서 복무했던 전의경 예비역들이 자신의 군 생활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를 새삼 깨달게 되었다. 또 젊은 시절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야 할 군 생활이, 이들에게 감추고 싶은 ‘기억’이 된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경찰이 진압에 들어가기 전 집회참가자들을 향해, 방패날을 세우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하지만 자신의 군 생활을 당당히 이야기하겠다며 ‘소통의 장’으로 나온 이들이 있어, 이번 좌담회는 우여곡절 끝에 진행될 수 있었다. 지난해 가을에 전역한 ㄱ 아무개 씨(23)는 여의도 한나라당사 경비를 맡으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진압 현장에 나간 경험이 있는 의경 출신 예비역이다. 대학 농구선수 출신인 그는 운동을 그만두고 현재는 술집을 운영하며,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20대 전의경 예비역들을 만나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해 여름에 전역한 ㅊ 아무개 씨(24)는 한남동(이태원) 주변 대사관 경비를 맡으며,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 2007년 한미 FTA에 반대하면서 분신한 허세욱 열사에 붙은 불을 직접 끈 경험이 있는 전경 출신 예비역이다. 얼마 전 경찰공무원 시험을 치르기도 한 그는 직업 경찰관을 꿈꾸고 있다.

    이들은 “경찰에 대한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밝힌 뒤, 자신의 군 생활과 전역 후 고민 그리고 대한민국 경찰에 대한 생각을 진솔하게 밝혔다. 이번 좌담회는 지난 8일 저녁 강남역 부근 모 커피숍에서 약 2시간 30분 가량 진행되었다. 취재원의 요청으로 이들의 이름을 익명 처리하고, 인물사진도 싣지 않았다. 다음은 전의경 예비역들과 나눈 ‘짱돌 토크’ 전문이다.

                                                              * * *

    – ‘짱돌토크’를 준비하면서 전의경 예비역들을 섭외하기 정말 힘들었다. 대부분 자신의 군 생활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불편해 했다. 참석을 부탁받았을 때 심정은?

    ㅊ씨 = “참 당황했다. (웃음) 처음에는 ‘제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을까’라는 생각부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또 지금 준비하는 게 있는데, 좌담회에서 민감한 이야기를 물어 볼 것 같아서 내심 고민을 많이 했다.”

    ㄱ씨 = “<레디앙>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 ‘안 해도 그만이지 않겠느냐’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지만 군 생활을 재미있게 해서, 할 이야기 많은 것 같아 나오게 되었다. 또 전의경에 대한 세간의 오해도 풀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 참석했다.”

       
      ▲집회에 참가한 한 시민이 방패를 든 경찰 앞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 특별히 의경을 지원한 이유는? 전경은 육군훈련소에서 무작위로 차출된다고 들었는데, 전경으로 뽑혔을 때 당황스럽지는 않았나?

    ㄱ씨 = “군 복무를 빨리 끝내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에서 1학기만 마치고 곧바로 의경에 지원했다. 의경은 1~2달마다 수시로 뽑는다. 솔직히 군대를 일찍 간 이유는 빨리 사업을 하고 싶어서다. (웃음) 원래는 모 대학의 농구부에서 가드로 활동했는데, 허리를 다치면서 선수생활이 힘들어졌다.”

    "전경으로 차출돼서 기뻤다"

    ㅊ씨 =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 경찰이었다. 그래서 육군훈련소에 입대했을 때, 전경이 되길 바라고 있었다. 다행히 제가 전경으로 차출되었다.(웃음) 꿈꾸던 경찰관 생활을 할 수 있어 기뻤다. 전경이 된 걸 좋아하는 제게 주변에서는 ‘미친 X’이라고 했다. 전경에 대한 좋지 않은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군 생활에 후회한 적은 없다."

    – 전의경 생활 이야기를 들려 달라. ㄱ씨는 여의도 한나라당사 경비를, ㅊ씨는 한남동 주변 대사관 경비를 맡았다고 들었는데?

    ㄱ씨 = “한나라당사 경비를 섰는데, 나라를 지키는 게 전의경들의 임무이기에 부끄럽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다. 또 정치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저로서는 군 생활 중 한나라당을 비판한 적도 없다. 제가 지키는 곳이니까 뚫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눈을 부릅뜨고 당사를 지켰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웃음)

    지난 2007년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와 당사 앞에서 악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당사 앞을 지나면서 종종 저희들에게 ‘심한 말’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 기분이 나쁘다. 단지 군 생활을 하는 것인데 우리가 무슨 죄가 있나.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 억울할 때가 많다.

    근무를 서는 의경들은 시민들에게 말을 못한다. 듣고만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의경들이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좋아해서 당사를 지키는 것은 아니다. 억울하다. 내무반에 들어와 동료들과 ‘한풀이’를 하기도 한다 저희들은 항상 ‘실전’이기 때문에, 잠을 잘 못자고 긴장도 많이 한다. 그래서 군 생활이 힘들다.” 

    "경찰, 말 못하고 듣고만 있어야 해"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를 지키고 있는 경찰의 모습 (사진=손기영 기자) 

    ㅊ씨 =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분신한 허세욱 씨의 불을 제가 직접 껐을 때다. 2007년 4월 1일 오후 3~4시경. 아직도 날짜와 시간을 잊지 않고 있다. 당시 하얏트 호텔 앞에 있는 노르웨이 대사관에서 근무를 서고 있었다. 갑자기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서 가보니, ‘이태원 경리단’ 쪽에서 어떤 사람이 불에 타고 있었다.

    그 때 대사관 경비초소에 소화기가 있었는데, 곧바로 소화기 2개를 꺼내서 다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소화기 1개는 땅바닥에 굴려서 주변에 있던 시민들에게 전달했던 기억이 난다. 난생 처음 보는 ‘끔직한 장면’이었다. 느낌이 씁쓸했다.

    당시 참여정부가 한미 FTA를 무리하게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국민들과 이 문제를 더 이야기를 해보고 의견을 나눠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성급했던 것 같다. 이런 피해자들이 다시는 발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꿈에서 가끔 허세욱 씨가 불타는 장면이 나온다. ‘정책’이 사람 위에 있을 수 없다.”

    난생 처음 본 ‘끔찍한 장면’

    – 지난해 여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로 진출해 시위를 벌였다. 당시 진압 현장에 있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ㄱ씨 = “시민들이 한나라당 당사를 둘러싼 차벽을 넘어뜨리려고 했다. 또 차벽을 피해 다른 건물 지하통로를 이용해 당사 안으로 들어간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들이 도무지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군 생활을 거의 다했을 때였다. 말년 때 촛불집회 같은 큰일이 있어, 몸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그 사람들을 보면서 속으로 욕을 했다.(웃음) 어느 정도 심정은 이해되지만, 그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다. 그래서 제발 촛불을 들고 나오지 않길 바랐다. 편하려고 의경을 지원했는데, 말년 때 힘든 일이 생기니까 짜증부터 났다. 저렴한 비용에 쇠고기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당시 개인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한미 FTA에 반대하며 분신한 허세욱 열사의 영정 (사진=이치열 기자) 

    – 집회, 시위가 과열되다가 보면 ‘과잉진압’이 벌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 경찰이 진압수칙을 어기며 시민들을 폭행하는 사건이 늘어나고 있는데?

    ㅊ씨 = “(진압부대 출신은 아니지만) 제가 진압부대 대원이었다면, 저 역시 군소리하지 않고 충실히 ‘진압작전’ 나갔을 것이다. ‘진압’은 단지 집회 참가자들에게 물리적인 수단을 사용하고, 연행하는 것만이 아니다. 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임무는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불의의 사고가 나지 않게 보호하는 것이다. 오해를 풀었으면 좋겠다. 경찰이 먼저 시민들을 공격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뉴스나 신문을 보면 전의경들이 (집회 참가자들을) 치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런 한 장면만 보고 전의경이란 ‘조직’을 단정 짓는 건 무리가 있다고 본다. 정말 오해를 풀었으면 좋겠다. 가끔 우발적인 충돌이 벌어지는데, 전의경도 ‘인간’이다. 앞에서 사람들이 무리지어 오고 있으면, 겁이 안날 사람이 어디 있겠나.”

    ㄱ씨 = “맞는 말이다. 특히 대오 앞뒤에서 충돌이 많이 발생되는데, 전의경들도 남자이고 성질이 나니까 우발적인 충돌이 발생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전의경들이 먼저 시위 참가자들을 공격하는 일은 없다. 저희들은 방패로 그리고 차벽을 쳐놓고 막기만 한다.

    "시위자를 먼저 공격? 있을 수 없는 일"

    가끔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과 충돌하는 전의경들도 있는데, ‘시민들이 그 분들에게 얼마나 심하게 했으면 그렇게까지 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지켜야할 선을 넘어버리는 ‘과잉진압’은 문제라고 본다. 전의경들은 나라와 국민을 지키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

    ㅊ씨 = “제 생각에는 경찰 고위층에서 그런 (과잉진압) 명령을 내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체생활에서 일부 전의경들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지쳐있는데, 순간적으로 충동을 제어하지 못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나 싶다. 지휘 계통의 문제보다는 우발적으로 발생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무라이 조’라는 비아냥을 받았던 조삼환 경감이 거리행진을 위해 종로3가역 출입구로 나가려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장봉’을 휘두르고 있다 (사진=참세상)

    하지만 문제를 일으키면, 바로 (관련자들은) 처벌되어야 한다. 과잉진압 문제로 시민들이 경찰 전체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을 갖게 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연대책임’ 중 하나라 생각하고 경찰은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도가 지나친 행동을 하는 시위자들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 전의경 제도에 대해 논란이 많다. 제도 존폐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ㄱ씨 = “만약 상부에서 (시위자들을 먼저 공격하라는 등) 무리한 진압명령이 내려오면, 정말 X 같을 것 같다. 내가 왜 이런 것을 해야 하는지…. 다행히 복무 중 그런 일은 없었다.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집회, 시위를 막는 건 힘들고 괴롭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전의경 제도는 좀 잘못된 것 같다. 차라리 직업경찰 자리를 더 만들었으면 좋겠다.”

    ㅊ씨 = “제 생각은 이 분과 조금 다르다. 주관적인 생각인데, 전의경들이 자신의 ‘테두리’ 안에서 변화를 해야 한다. 전의경들이 변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 전의경 제도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도 조금씩 달라질 것 같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고치면 될 것 같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전의경 제도는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직업경찰 자리 많이 만들어야"

    – 전의경 전역 후, ‘사회인’으로서 고민은?

    ㄱ씨 = “부상을 당한 이유도 있었지만, 솔직히 힘들어서 농구를 그만둔 게 사실이다.(웃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약 7년 동안 농구만 했는데, 막상 그만두니까 막막했다. 그래서 군대를 갔다. 하지만 다시 농구를 할 생각은 없다. 또 취업난도 심각한데, 비싼 돈을 들이고 대학교를 다닐 바에는 차라리 그 돈을 ‘사업’에 투자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한 마디로 돈을 빨리 벌고 싶었다. 지금 아는 분과 술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적성에도 맞고 일하면서 별다른 불만이나 고민도 없는 것 같다. (웃음) 제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만 해도 5,000명이 넘는다.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

       
      ▲경찰청사에 ‘경찰이 새롭게 달라지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ㅊ씨 = “현재 휴학상태다. 하지만 (곧 결과가 발표되는)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학교를 자퇴할 생각이다. 직업경찰이 되는 것이 꿈이다.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저는 앞으로 이런 경찰이 되고 싶다. 일례로 불심검문할 때, 신분증을 요구하면서 시민들에게 분명한 근거를 댈 수 있는 그런 경찰관 말이다.

    지금 시민들의 ‘준법의식’이 높아지는 추세다. 경찰이 직무에 대한 법률적인 지식이 없으면 곤란하다. 시민들에게 정확히 얘기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과 경찰간에 신뢰가 쌓일 수 있을 것 같다. 경찰이 변해야 시민들의 준법의식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경찰이 몸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시민들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