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기 소리에, 아이 손을 놓아버렸다"
        2009년 08월 13일 01: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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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과 사측에 의해 고립된 도장공장 안에서 사측과 보수언론, 권력에 의해 ‘불법시위대’, ‘상습데모꾼’을 넘어 ‘폭도’, ‘테러리스트’ 그리고 이제는 불온서적이 발견되었다며 ‘빨갱이’ 취급까지 받고 있는 쌍용자동차 농성 노동자들이 13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아픈 기억들을 공개했다.

    사측에 의해 전기가 끊어진 도장 공장 안에서, 발전기로 발생하는 유일한 전기를 도장 도료가 말라붙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했다는 노동자들은 점거파업을 푼 지 일주일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새벽 4시에 눈이 떠지고, 헬기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피하는 등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쌍용차 살인진압 진상보고 및 피해자 증언대회, 증언 노동자들은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차단막을 설치한 체 증언해야 했다.(사진=정상근 기자)

    이들은 ‘폭도’로 몰려야 했던 77일 간의 기억들을 담담히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픔이 생생해져 오자 중간 중간 목이 메여 말을 잘 잇기도 어려웠다. 경찰과 보수언론은 이들이 ‘새총’을 쏘아댔다며 경찰의 과잉진압을 ‘방어적 성격’으로 규정했지만 이들의 말은 달랐다.

    “옥상에 올라가 보니 컨테이너가 이미 올라와 있는 상황이었다. 뒤에서 보고 있는데 경찰 특공대가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면서 내려왔다. 그런데 그 뒤 총구가 보였고 거기서 고무탄이 날아왔다. 도망치던 조합원들은 고무탄을 등에 맞았고, 한 명은 귀에 맞아 귀가 찢어져 피를 흘린 채 도망치기도 했다”

    “조합원들이 무서워 뒤로 후퇴하는데 나는 무서워 그들이 뛰어오는 걸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옥상에서 도장공장으로 내려오는 길목은 하나였기 때문에 그 좁은 길로 몇백 명이 몰리니, 마음이 급해 그쪽으로 뛰어 내리는 분도 계셨다. 귀를 다쳐 피를 흘리던 분도 겨우겨우 길을 따라 내려올 수 있었다”

    무서워서 지켜보기만

    경찰은 곤봉과 방패로 노동자들을 구타하고 고무총을 발사했다. 그리고 대테러 무기인 ‘테이저 건’까지 발사했다. 헬기에서는 최루액 봉지가 떨어지고 최루가루가 분사되었다. 경찰의 온갖 진압방식에 노동자들은 큰 부상을 입고 쓰러져갔다. 그러나 물과 음식, 약품과 의료진까지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침부터 해 넘어갈 때까지 헬기가 떴다. 거기서 최루탄을 터트리던데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공장 옥상에서 사람의 머리를 향해 최루액 봉지를 떨어뜨렸다. 그게 안 터지더라도 가속도로 맞으면 사람 목이 부러질 정도였다”

    “최루액을 맞아 온몸에 물집이 다 생겨 가려워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떤 약을 바를 수도 없었다. 코가 찢어지고, 귀가 찢어졌다. 내가 다친 것은 미미할 정도였다. 그러니 아프다고 의무실 가서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처참한 전쟁터였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의무실을 갔는데 곁의 동료가 골절이 되어 의무실에 누워있더라. 동료는 깁스를 해야 할 상황임에도 붕대로 감는 것이 전부였다. 그 생각만 하면 눈물이 핑 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 친구에게 수건에 물을 적셔 몸을 닦아줄 뿐이었다. 그게 전부다”

    농성중인 노동자들이 아픈 것은 몸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동료들과, 자신이 평생을 바쳐 일하던 회사가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들의 합동작전은 이들을 더 괴롭게 했다. 그리고 이들의 폭력을 방관하는 경찰의 모습을 보는 것도 괴로운 일 이었다.

    “사측 관리자들과 용역들은 옥상에서 대형새총을 가지고 쏘고 있고 경찰은 방패로 막고 있었다. 더 황당한 것은 새총을 쏘던 그들이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 숨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럴 때는 잠시 후 헬기가 떴다. 그들에게 헬기가 뜬다고 누가 알려줬겠나? 헬기가 가고나면 다시 새총을 쏘더라. 너무나도 황당하다”

    “5일 사무실 하나가 불에 탔는데 소화전이 단수라 불을 끌 방법이 없었다. 그 상태에서 소방대원들이 와서 불을 끄기 시작하는데 경찰과 용역들은 그 와중에도 우리를 향해 새총을 날렸다. 그럼에도 우리는 소방대원과 불에 탄 건물 옥상까지 올라가 불을 껐다. 물도 못 마시고 샤워도 못하고 빨래도 못하는 상황에서 검댕이 묻어가며 불을 껐다”

    “아는 분이 녹내장이 있었다. 안약을 넣지 않으면 시신경이 죽는다. 말 그대로 맹인이 되는 것이다. 그 분의 약은 냉장보관이라 한 달밖에 못 쓴다고 했다. 농성이 길어지면서 약이 떨어지는데 경찰과 사측, 용역이 가로막아 의료진조차 못 들어왔다.”

    물도 못마시고 샤워도 못해도… 불은 껐다

    물론 도장공장 안에서 이들이 겪었던 것은 폭력에 대한 공포만은 아니었다. 생사의 고락을 함께 하는 노동자들 간의 진한 연대의식과 밖에서 응원하는 가족대책위원회의 존재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이들은 "동료들, 공장안에서 목숨을 걸고 함께 했던 기자들, 특히 아내에게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안에서 동지들의 따뜻한 부분을 많이 봤다. 나이 많은 형님들은 동생들 밥 한끼 더 챙겨주고 자기 먹을 물이나 부식을 몰래 손에 쥐어줬다. 한 형님은 초코바를 옷 속에 몇날 몇일을 넣고 있다가 나에게 그걸 주더라. 초코바가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뜯어지지도 않았다. 밖에선 500원이면 사는 걸, 쪼그리고 앉아 먹는데 고마워 눈물이 났다”

    “안에 있으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노조 간부들이 조합원들의 의견 무시하고 강제로 강경대응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였다. 도망 못 가게 손발 묶는단 보도도 나왔다. 얼토당토않다. 우리는 파업 전에 충분히 토론했고 민주적 절차로 파업에 돌입했다. 우리를 매도하는 언론에 분노한다. 이 나라 언론들은 국민을 얼마나 무시하길래 이러나”

    이러한 극한의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일터를 지켜왔다. 실제로 사측은 점거파업이 끝난 뒤 생산설비를 돌아보고 “생각보다 파손이 적어 빠른 시일 안에 정상화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생산라인을 지키려고 몸부림을 쳤다. 우리는 다시 일을 할 사람들이니까. 어느 사람이 자기가 10~20년 동안 생활했던 삶의 터를 파괴하겠나? 그런데 사측 관리자와 용역들은 차를 불태우고 생산라인을 망가뜨렸다. 우리는 방어해야했다. 이것만큼은 알아 달라 우리는 생활했던 삶의 터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 몸부림 쳤다”

    “불법 파업이네, 폭력이네 하지만 우리는 회사 물건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회사가 전기를 끊었을 때 우리는 도장 페인트 굳을까봐 그쪽에 전기를 작동시켰다. 자러가는 길에 몇 번이고 넘어졌지만 우리는 불만이 없었다. 참고 버텼다. 우리 보고 폭도, 파괴자라 말하는 분들, 다시 생각해 보라 우리가 폭도인지”

    누가 폭도인가 

    그렇게 오랜 싸움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 노동자들은 여전히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린 딸이 이민가자 하더라”, “오늘 새벽에도 용역에 맞고 도망치는 꿈을 꿨다. 12시에 자도, 2시에 자도 4시면 깬다. 동료 대부분이 그렇다더라”, “아직도 식사하면 좋지 않다”는 등이었다.

    한 노동자는 “헬기에 낮에 떠다니는 소리가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 어제 외출을 갔는데 위에 헬기 한 대가 뜨자 나도 모르게 애들 손 놓고 건물 문 뒤에 숨어버렸다. 얼마나 창피하던지, 내가 죄인도 아닌데 왜 이래야 하는지”라고 울먹였다.

    가대위 권지영 씨도 “헬기의 환청이 들리고 경찰차 싸이렌만 들어도 남편이 잠을 못잔다. 잠도 두 시간에 한 번 깨 고통스러워한다. 그 모습을 보는 가족의 심정을 어떻게 말하겠나? 다 풀지 못한 숙제처럼, 고통과 상처를 계속 안고 가야 하는지 절망스러운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언론은 이들을 ‘폭도’, ‘용공분자’로 매도하고, 경찰은 ‘합의정신’으로 파업이 종료되었음에도 60여 명이 넘는 단일노동사안 최대 구속자를 발생시켰다. 사측은 정리해고 대상이 아니었지만 농성에 동참한 ‘비해고 노동자’ 94명에 대해 ‘휴업’ 발령으로 보복에 나섰다.

    도장공장 안 한 농성 노동자는 “세부협의가 진행되야 함에도 진행이 안되고 있다. 회사하고 합의한 내용을 갖고 회사 측은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 특히 우리와 같이 한 비해고자들, 그 분들에게 피해 가는 것은 우리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분들이 피해받지 않게 냉철하고 냉정하게 판단해달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증언대회를 주최한 ‘일방적 정리해고반대-자동차산업의 올바른 회생을 위한 범국민대책위’, ‘쌍용자동차폭력진압 야4당 공동조사위원회’, ‘민주노총’, ‘인권단체연석회의’, ‘보건의료단체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생민주국민회의’는 증언대회 후 대정부 요구안을 발표했다.

    이들은 △살인진압의 책임자, 경기경찰청장 파면 △경찰 책임자의 재발 방지 약속과 함께 화학무기와 살상무기 및 장비사용의 중단 △경찰폭력 피해에 대한 국가 보상과 재발 방지 약속 △검찰의 사측 폭력행위자들과 지휘책임자 사법처리 △노동자들에게 위기를 전가하는 무책임한 행위 중단과 노동권-생존권 보장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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