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온상승 못막으면 가난한 이들 대재앙
        2009년 08월 13일 10:27 오전

    Print Friendly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한 인식이 전세계적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고, 2050년까지 지구의 기온 상승을 2℃ 이내로 묶어두어야 한다는 점에 대한 폭넓은 합의가 만들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합의에 기초하여, 연말 코펜하겐 국제회의에서 실효성 있는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국제협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협상이 성공하고 충실히 실행되어 그 정도로 기온상승을 막는다고 하더라도, 전세계는 엄청난 기후 변화를 경험해야 한다. 사실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별도의 대책이 없다면, 이에 대처할 능력이 부족한 제1세계의 가난한 사람들과 제3세계 국가들의 민중들에게는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대재앙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현실은 환경협상보다 경제협상에 가까워

    코펜하겐에서 세계 각국은 지구를 살리고 가난한 이웃과 국가를 도와줄 수 있는 협상을 이뤄낼 수 있을까? 현실은 그런 낙관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협상은 지구를 지키기 위한 환경협상이 아니라 각국의 이해관계 속에서 움직이기 있는 경제협상이라는 점은 이제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기후변화 완화라는 염불보다 새로운 패권의 획득 혹은 경제적 기회의 포착이라는 잿밥에 관심이 쏠려, 지구를 구하려는 협상이 탐욕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나마 몽니를 부리던 미국이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후에 기후변화 국제협상에 복귀하였다는 점에서 협상 타결의 전망이 조금은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낙관하기는 어렵다.

    경제개발에서 낙후된 국가들이지만 최근 들어 엄청난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와 같은 국가들이 기후변화 국제협상에서 쟁점이 되고 있다. 이들 국가는 경제성장에 따라 대규모의 에너지 소비가 급속히 증가하며 이에 비례해서 막대한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있다.

    미국 등은 이들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노력에 적극 동참해야지만, 전세계적으로 의미있는 온실가스 감축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일 뿐만 아니라 세계 에너지․자원의 블랙홀이라고 불릴 정도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주장에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 등의 제3세계는 온실가스 배출권(Greenhouse Development Rights : GDR)를 주장하면서 이에 맞서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이란 저개발된 국가들의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적정한 경제발전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이에 수반되는 온실가스 배출을 허용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런 주장은 경제규모에 따라서 적정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설정할 것이 아니라, 인구수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하고도 연결되어 있다. 선진국의 사람이든 후진국의 사람들이든 개인당 동일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허용되어 한다는 평등의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는 것이다.

    한편 정의의 문제도 함께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기후변화는 산업화된 선진국들이 역사적으로 배출해온 온실가스에 의한 것이므로 그 책임은 제1세계가 져야 한다는 비판도 담고 있다. 이는 환경문제의 해결에서 핵심적인 원칙이라고 하는 ‘오염자 부담의 원칙’이나, 기후변화협약에서 명확히 밝힌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의 원칙에 따른 주장이라고 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대립은 대단히 정치적이면서 윤리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기후 위기에 대해서 각국은 얼마큼의 책임이 있는가? 또한 각국은 자신의 책임을 얼마나 인정하며 그에 따라서 얼마나 부담을 질 것인가? 만약에 누군가가 그 책임을 회피하면 그에 따른 피해는 누가 받을 것인가?

    그런 책임 회피를 어떻게 제제․처벌할 것이며, 그에 따른 피해를 어떻게 보상하게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은 국제사회에서 국가 단위로 던져질 수도 있지만, 한 공동체 내에서 각 집단 혹은 개인에게도 던져질 수 있는 질문들이다.

    한국은 이미 ‘온실가스 선진국’

    자, 이제 우리도 이 질문에 답해야 할 때가 되었다. 연말의 코펜하겐 국제협상에서 한국 정부는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 구성원인 시민사회도 침묵할 수는 없다. 일단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우수운 질문이라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이 선진국인가, 아니면 개발도상국인가 하는 점이다.

    몇 가지 ‘객관적인’ 경제 지표를 보면 이에 대답은 비교적 쉽게 나온다. 한국의 GDP는 1조 달러에 육박하고 있으며 세계 14위(2007년)를 유지하고 있고, 국제무역의 측면을 보더라도 세계 11위의 수출국이다. 또한 에너지 사용량에 있어서 세계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이 선진국이 아니고 개발도상국이라고 말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

    그렇다면 실제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은 어떨까? 우리나라는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에서 세계 9위(2004)을 기록하고 있으며, 1990년부터 2004년까지 93% 증가하여 OECD 국가 중 증가율 순위에서는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충분히 ‘선진국’이다.

    그러나 역사적 책임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산화탄소 누적 배출량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850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의 이산화탄소의 누적 배출량은 세계 23위에 도달해 있다. 순위가 낮아진 것은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비교적 늦게 시작해서 최근 들어서야 급속히 이루어졌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감축의무를 지고 있지 않은) 교토 의정서에서 규정한 의무감축국이 38개 국가가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누적 배출량 23위의 역사적 책임이 결코 작지 않다.

    한국 정부는 최근에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지고 있지 않은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감축목표치에 관한 세 가지 시나리오를 발표하였다. 외국에서는 발표 자체만으로도 기후변화 국제협상의 진전을 위한 희소식으로 반기는 듯하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감축목표치는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하다는 전제 하에 마련된 것으로, 최악의 시나리오의 경우 2020년까지 2005년 대비해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8% 증가하는 것이다. 최선의 시나리오도 2005년 대비 -4% 감소지만, 세계적으로 수용되는 기준년도 1990년에 대비하면 100%에 근접한 배출량 증가를 의미한다.

    온실가스 감축과 경제성장, 고용 문제

    이러한 세 가지 시나리오는 그 어느 것도 한국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책임에 부응하고 있지 못하다. 국제협상에 이런 후안무치의 목표치가 수용되기도 힘들겠지만, 우리 스스로 철회․폐기해야 할 일이다.

       
      ▲ 필자

    마지막으로, 글을 호기롭게 써내려 왔지만 마음 한켠에 묵직하게 남는 걱정이 있다. 한국이 역사적 책임에 맞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할수록, 한국사회에 더 큰 고통을 감내하자고 요구하는 것이다. 탄소세를 도입하여 에너지 가격을 대폭 올리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에너지다소비적인 중화학공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우리가 책임져야 할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규모 고용 불안, 경제성장의 둔화 등 여러 어려운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많다. 여기에 별다른 준비가 없다면 한국사회에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지피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 상황이 오면(혹은 회피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기후변화의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는 쪽으로 움직여 나갈지 모른다. 그런 비겁함에 마주치지 않을까 두렵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