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택 쌍용차, ‘공안태풍’ 몰아친다
        2009년 08월 12일 09: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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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 ‘모라꼿’의 영향으로 수도권 등 전국에 물 폭탄이 쏟아졌다. 태풍은 사실상 소멸 했지만, 그 후폭풍은 한반도를 비롯해 동아시아 곳곳을 강타하고 있다. 태풍은 우리사회에도 존재한다. 평택 쌍용자동차 사태가 노사 합의로 타결됐지만, 합의정신은 온데간데없이 ‘공안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노조 지도부를 포함해 무더기 구속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언론 대부분은 이러한 상황을 모른 척 눈을 감고 있다. 쌍용자동차 사태는 2009년 한국사회 노동자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정리해고 광풍 앞에서 일자리를 놓고 살아남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정면충돌하게 한 장면은 그들만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쌍용차 사태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누군가는 제2, 제3의 쌍용차 구성원이 될 수밖에 없지만, 8월6일 노사 협상 타결 이후 평택 쌍용차 구성원들의 이야기는 언론 지면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 그러는 동안 이명박 정부는 눈엣가시와 같았던 이들을 상대로 공안태풍의 위력을 선보이고 있다.

    다음은 12일자 주요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다.

    -경향신문 <‘쌍용차 사태’ 64명 구속 12년 만에 최대 공안사건>
    -국민일보 <현회장·김정일 오늘 면담할 듯>
    -동아일보 <한글, 아이들 등불이 되다>
    -서울신문 <현회장 방북 내일까지 연장>
    -세계일보 <북 억류 유씨 이르면 오늘 석방될 듯>
    -조선일보 <한국교총 "교원평가 받겠다">
    -중앙일보 <방북 현정은 회장 하루 더 머문다>
    -한겨레 <쌍용차 64명 무더기 구속 ‘공안 폭풍’>
    -한국일보 <이번엔 다큐 표절 ‘수렁’ 문제아가 돼버린 EBS>

    평택 쌍용차 문제는 오래 전 일이 아니다. 불과 지난주까지 주요 언론 메인뉴스를 장식했던 사건이다. 노사는 8월6일 파국의 길목에서 타결을 이뤘다. 어느 쪽의 양보가 더 컸는지를 따지기에 앞서 상상하기도 싫은 참사를 막아냈다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다.

    그러나 쌍용차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쌍용차 회생까지는 갈 길이 멀고, 노사와 지역 시민단체 등이 합심 단결해도 회생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평택 쌍용차 사태가 극한으로 치달을 때 이명박 정부는 손을 놓고 있었다.

    일자리 하나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정부 스스로 잘 알고 있지만, 20만 개 일자리와 연관이 있다는 쌍용차 사태는 극한상황으로 치닫도록 팔짱 끼고 있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8월5일부터 7일까지 휴가를 선택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언론에서 멀어지는 쌍용자동차 문제

    노동부는 뒤늦은 해명을 통해 휴가기간은 맞지만 출근은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사실 쌍용차 문제를 아예 외면하지는 않았다. 회사 쪽과 발을 맞춰 적절한 시기에 공권력을 투입하며 노조를 압박했다. 쌍용차 문제가 타결되자 정부는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쌍용차 문제를 12일자 1면 머리기사로 전한 신문은 경향신문과 한겨레뿐이다. 사안이 엄중하지 않다고 판단했을까. 신문의 편집은 자체 판단을 근거로 한다. 하지만 언론밥을 먹는 선수들은 어떤 사안의 경중을 가리는데 말 그대로 선수급이다.

    쌍용차 사태가 근래에 보기 드문 공안사건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팩트’를 선수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런 사안을 단신으로 처리하거나 외면한다면 그것은 사안의 경중 문제가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경향신문 "쌍용차 사태, 한총련 출범식 이후 최대 공안 사건"

       
      ▲ 경향신문 8월12일자 1면.  
     

    경향신문은 1면 <‘쌍용차 사태’ 64명 구속 12년 만에 최대 공안사건>이라는 기사에서 “쌍용자동차 사태로 64명이 구속되면서 쌍용차 사태는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출범식 사건 이후 12년 만에 최대 공안사건으로 기록됐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하지만 경찰은 사측에 대해선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경찰은 임직원 36명을 조사했으나 모두 귀가시키고 16명에 대해 출석 요구한 것이 전부”라고 설명했다. 쌍용차 사태는 전쟁 상황과 비교될 정도로 양쪽의 격한 충돌을 불러왔다.

    신문과 방송에 노조원들이 새총을 쏘는 장면이 주로 보도됐지만, 회사 쪽 직원들도 건물 옥상 곳곳에서 노조원을 향해 새총을 쐈다는 게 현장을 지켰던 언론인들의 증언이다. 그러나 경찰은 경향신문이 보도한 것처럼 회사 쪽 ‘전투원’에 대해서는 관대한 처분을 내리고 있다.

    한겨레 "회사 폭력행위 눈 감고 노조 쪽만 문제 삼아"

       
      ▲ 한겨레 8월12일자 1면.  
     

    폭력행위에 대한 엄정한 잣대 적용으로 보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한겨레는 1면 <쌍용차 64명 무더기 구속 ‘공안 폭풍’>이라는 기사에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점거농성을 벌인 쌍용차 노조원들이 11일 무더기로 구속됐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는 노조원 대량 구속은 ‘노사 대타협’의 정신을 외면한데다, 회사 쪽의 불법·폭력행위에는 눈을 감고 노조 쪽만을 문제 삼은 ‘형평성 잃은 처사’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초강경 대응은 쌍용차 회생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겨레는 <8면 노-사합의 불구 ‘길들이기’…노-정 갈등 깊어져>라는 기사에서 “노동자의 파업과 시위가 무더기 구속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그동안 여러 차례 되풀이됐지만, 이번 쌍용차 사태의 경우 노사가 정리해고에 합의하는 대타결에 성공했음에도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갈등을 더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 "쌍용차 직원, 민노총 탈퇴 움직임"

       
      ▲ 동아일보 8월12일자 10면.  
     

    정부의 초강경 대응은 언론이 부추긴 측면도 있다. 노사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언론은 주로 사용자 편에 서서 논조를 전개할 때가 많다. 돈도 있고 힘도 있는 사용자 편에 설 때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 편에 설 때 언론의 손익계산서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반노동’ 여론몰이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평택 쌍용차 사태 때도 이러한 모습은 반복됐다. 동아일보는 10면 <쌍용차 직원들 "이참에 민노총 탈퇴를">이라는 기사에서 “77일의 공장 점거 파업사태를 겪은 쌍용자동차가 다음 달 노조 새 집행부 선거를 앞둔 가운데 직원들을 중심으로 민주노총 탈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일부 언론의 주장에 발맞춰 초강경 대응을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급가속 페달을 밟고 달리는 승용차와 같은 모습이다. 한국일보는 경찰의 우려스러운 행보를 지적했다.

    한국일보 "경찰 진압장비 ‘브레이크’ 없다"

       
      ▲ 한국일보 8월12일자 10면.  
     

    한국일보는 10면 <경찰 진압장비 ‘브레이크’가 없다>는 기사에서 “경찰이 불법 집회 엄단 방침에 따라 테이저건(전기침 발사기), 고무탄총 등 대테러 장비를 시위 진압에 적극 사용하는데다 진압 능력을 대폭 향상시킨 신형 장비도 속속 개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관리규칙은 테이저건, 고무탄총 등 강한 진압력을 갖춘 장비를 ‘대테러 장비’로 지정해 ‘집회시위관리 장비’와 구분하고 있지만 정작 대테러 장비의 목적에 ‘대규모 시위 진압’도 포함시키고 있어 사용 한계가 불명확하다. 대테러 장비에는 P-7 권총, MP-5 기관단총 등의 무기도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다른 언론도 경찰의 신형장비 개발 소식을 전했다. 서울신문은 9면 <최루액 분사 전경버스 도입>이라는 기사에서 “경찰청 관계자는 11일 ‘차체 밖으로 최대 5m까지 최루액을 혼합한 물을 분사할 수 있는 경찰버스를 도입하기로 했다’면서 ‘시위 진압보다는 전·의경의 인명 보호 차원에서 방어적 수단으로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검찰, 물증 없는 공안 여론몰이

       
      ▲ 경향신문 8월12일자 10면.  
     

    세계일보는 10면 <시위대 접근하면 최루액 분사 ‘고슴도치 경찰차’>라는 기사에서 “경찰버스에 최루액 분사 등 방어 시스템이 장착되고 전·의경 부대의 기동성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저상버스와 우등버스가 운영된다”고 보도했다.

    검찰은 쌍용차 문제와 관련해 붉은색 덧칠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동아일보는 10면 기사에서 “대검찰청은 9일 외부세력이 이번 쌍용차 불법 점거파업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했다며 일부 구속자의 불법 시위 및 좌파단체 활동 전력을 밝힌 바 있다. 검찰은 외부세력에 대한 단서를 일부 확보해 사실 확인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검찰의 행보는 논란의 대상이다. 경향신문은 10면 <검찰, 오세철 교수 물증 없는 기소>라는 기사에서 “검찰은 사노련이 쌍용차 파업집회에도 수차례 참가해 ‘노동조합을 전투적으로 재편하고 전면적인 공장 점거 파업을 전개해야 한다’며 과격시위를 부추겼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검찰은 사노련이 실제 과격 행위를 했다는 구체적인 물증은 확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검찰 관계자는 ‘무장봉기나 폭력혁명에 대한 직접적 증거를 잡지 못했더라도 집회에 참석해 이를 선전·선동한 것만으로도 보안법 상 국가반란 선전·선동 단체로 사법처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이명박 대통령 ‘폭력적인 노사문화’ 누구를 겨냥한 것일까

       
      ▲ 한겨레 8월12일자 1면.  
     

    쌍용차 사태는 12년만의 최대 공안사건으로 번지고 있다. 검찰과 경찰이 강경 일변도 대응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한겨레 1면 기사는 의문을 풀어주고 있다.

    한겨레는 1면 <MB, 쌍용차 중재 손놓고 뒤늦게 비판>이라는 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11일 ‘쌍용자동차 사태가 별다른 인명피해 없이 마무리돼 다행이긴 하지만 해외 투자자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해 국가적 손실이 컸다’며 ‘선진국 가운데 폭력적인 노사문화가 일상화된 나라는 한 곳도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대통령이 지적한 ‘폭력적인 노사문화’는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의 폭력을 지적한 것일까. 아니면 노동자의 폭력을 엄단해야 한다는 주장일까. 경향신문 1면 기사를 다시 살펴보자.

    “경찰은 사측에 대해선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경찰은 임직원 36명을 조사했으나 모두 귀가시키고 16명에 대해 출석 요구한 것이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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