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이 대신할 수 없다”
        2009년 08월 10일 03: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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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자동차의 옥쇄파업이 막을 내리고 주동자들에 대한 형사처벌과 손해배상 청구가 뒤따르고 있다. 민주화된 사회에서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폭력을 배제하는 정치형태이기 때문이다. 다만 정당한 절차에 의해 행사된 공권력과 정당방위와 같은 불가피한 상황에서의 폭력만이 극히 제한적으로 용인되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농성장 방어를 위해 사용한 ‘폭력’에 의해 처벌받는 것은 안타깝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적 과정이다. 다만 그 사유의 정당성에 따라 선처를 바랄 수 있을 것이다. 함께 농성했던 조합원들을 한 명 한 명 포옹하면서 떠나보낸 노조지도부들도 그들이 구속과 손해배상이라는 평생 내려놓지 못할 짐을 자신의 어깨에 하나 하나 짊어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 사진=노동과세계

    한국의 경찰, 이라크의 미군

    쌍용차에서 발생한 ‘폭력’에서 우려스러운 것은 공권력으로 포장된 적나라한 폭력이다. 쌍용자동차에서 진압에 사용된 각종 신무기와 스티로폼을 녹이는 최루액보다 놀라운 것은 경찰과 경찰의 비호 하에서 자행된 사측 용역의 적나라한 폭력이다. 경찰 특공대가 옥상 진입과정에서 이미 제압한 노동자를 재차, 삼차 가격하고, 그것도 모자라 한 번 더 폭행하는 광기어린 폭력은 공권력의 과잉행사가 아니라 폭력 그 자체이다.

    온라인 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천의 경찰이 쇠파이프를 들고 새총을 쏘는 용역들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과정은 사유화된 공권력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심지어 그러한 쌍용차 현장에서 기념촬영하는 경찰의 모습은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들이 포로를 학대하면서 사진을 촬영한 병적인 행태와 어떠한 차이점도 발견하기 어렵다.

    폭력의 주체이자 옹호자로서 공권력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민주화과정에서도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대한 둔감함은 치유되지 못했다. 오히려 민주화 20여년 동안 절차적 민주주의의 미명하에 공권력으로 포장된 폭력은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왔다.

    살인 고문이 폭력 진압으로 바뀌었고, 고문 경관들이 폭력 경찰로 바뀌었을 뿐이다. 문제는 민주정부의 주체들도 폭력의 주체였다는 점이다. 가장 민주적인 정부라고 자찬하던 참여정부에서도 농민들은 자신의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다 경찰의 군홧발에 밟혀 운명을 달리하였으며, 아스팔트에 갈아 날선 방패와 고무패킹이 벗겨진 쇠방패는 항상 국민들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민주주의, 폭력에 대한 다수의 침묵

    독재정권에서 경찰의 폭력이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면 민주화 이후 경찰의 폭력은 노동자, 농민, 빈민 등 대변할 정치세력도, 스스로 변호할 능력도 없는 그러한 계급에게 집중되어진다.

    그들은 언론에 의해 폭도와 ‘노조원’으로 둔갑하고, 경제난과 교통대란,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되어 공권력으로 위장된 폭력의 대상이 된다. 국민들은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공권력으로 위장된 폭력을 바라보면서도 자신들이 직접적인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방관해 왔다.

       
      ▲ 사진=노동과세계

    이제 폭력은 소수의 독재정권이 다수의 저항세력에게 행사하는 폭력이 아니라 다수의 동의와 방관 하에 소수에게 행해지는 폭력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폭력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서처럼 언제든지 모든 국민들 대상으로 한 폭력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친일경찰 청산 실패와 같이 폭력경찰을 청산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 없다. 공권력을 폭력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폭력의 주체를 명확하게 호명하고 기록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만 강권기구들이 유아기적 정권의존성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자기통제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죄를 전두환이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폭력을 행사한 경찰의 죄를 이명박 대통령이 대신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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