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 ‘통 큰 정치’ 시동 거나?
    By 내막
        2009년 08월 10일 12: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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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3시간여에 걸친 회담 이후 북미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의 앞날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클린턴의 방북 자체가 파격적이고 전격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과 미국 모두 ‘대결 속에 해법’을 모색하는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더구나 클린턴의 방북 직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평양 방문이 성사되었고, 8월 30일 일본 총선에서 민주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이러한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볼 필요가 있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이후 대외 강경책으로 일관했던 북한의 대외전략이 본격적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일본 민주당 집권 가능성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의 거물급 인사의 방북을 통해 일석사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2명의 미국 여기자 특별사면 단행을 통한 미국 내 대북 이미지 개선, 자신의 건강 문제 의혹 완화 및 통치 능력 과시, 대내적 결속 강화, 오바마 행정부에 최고위급 메시지 전달 등 여러 가지 성과를 올린 것이다.

       
      

    반면 오바마 행정부는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도 당면 과제였던 여기자 석방과 함께 북한 최고지도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에 따라 4월 이후 대북 제재 및 봉쇄에 방점을 찍어왔던 오바마의 대북정책도 새로운 변수를 만나게 됐다.

    관심의 초점은 ‘김정일의 메시지’이다. 김 위원장이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희망하고 장시간에 걸쳐 면담 자리에 직접 나선 것은 그만큼 오바마 행정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해 클린턴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지만, 그를 만난 인사의 입을 통해 그 윤곽을 그려볼 수 있다.

    클린턴으로부터 1차 방북 보고를 받은 제임스 존스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9일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크게 세 가지 내용을 밝혔다.

    첫째는 “북한은 미국과 새로운 관계, 더 나은 관계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김 위원장이 건강이상설에도 여전히 권력을 쥔 것 같았으며 말도 심사숙고해서 하는 듯 했다”는 것이며, 셋째는 김정일과 클린턴이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 번 언급했다”는 것이다.

    존스가 밝힌 내용 가운데 주목할 것은 둘째와 셋째이다. 4월 이후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의 배경에는 김정일의 건강 및 후계 문제가 핵보유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열망을 야기했다는 분석이 깔려 있었다. 이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 제제와 봉쇄 방안 마련에 몰두해왔다.

    그러나 김정일이 직접 나서 건강 위독설을 불식시키고 비핵화 의사를 밝힘으로써 이러한 분석에는 근본적인 재검토의 필요성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김정일-클린턴 회동이 미국 대북정책 변화를 가져올지는 두고 봐야 한다. 미국 내에서는 클린턴의 방북을 둘러싸고 지지 여론 못지 않게 비판 여론도 거세게 일고 있다. 북한의 속임수 게임에 또 다시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클린턴과 오바마의 회동이 주목된다.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전직과 현직 대통령 사이의 회동은 오바마의 대북 인식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클린턴은 김정일의 메시지를 상세하게 전달하면서 정책 권고까지 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일은 클린턴을 통해 ‘새로운 북미관계’와 ‘한반도 비핵화’ 사이의 ‘통 큰 교환’을 제안했을 가능성이 높고, 이를 전해들은 오바마는 협상할 만한 제안인지를 판단하게 될 것이다.

    기실 오바마 행정부로서도 대북 강경책의 부담은 따른다. 무기 금수와 금융 제재를 통해 북한의 돈줄을 일정 정도 차단할 수 있지만, 북한은 자체적인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갖고 있어 그 효과는 장담할 수 없다.

    더구나 미국 내 일각에서 거론되어온 ‘북한정권교체론’은 중국의 거부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의 붕괴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것이라는 점 역시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간과할 수 없다.

    MB의 ‘실용주의’ 필요해

    세계 전략 차원에서도 대북 강경책의 부담은 따른다. 당장 이란 핵문제가 걸린다. 이란에게 제시한 9월 대화 시한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다. 이때까지 이란 핵협상이 재개되지 않고 북핵에도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 이란을 상대로 위험한 게임이 돌입해야 한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가 ‘재건’을 내건 핵확산금지조약(NPT) 검토회의도 내년 5월로 예정되어 있다. 북한과 이란 핵문제의 동시 악화는 NPT 재건은 고사하고 그 유용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야기할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대화 형식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담판을 선호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는 반면에, 미국은 ‘6자회담 틀 내에서 양자대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이 두 나라 사이의 평행선을 좁히기 위해 ‘3자회담’의 모양새를 띤 북미 양자대화를 주선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남북관계와 북일관계도 북미관계의 변수이다. 한미일 3각공조를 맹신해온 한국과 일본은 클린턴의 방북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동맹국과의 공조를 강조해온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북한의 성의 표시가 주목된다. 북한이 대미관계 개선의 주사위를 던진 데 이어 남북관계와 북일관계의 변화도 시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정은 회장의 평양 방문 성사는 북한으로서도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일본 총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북한은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성의를 보여주면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도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 남북관계와 북일관계의 개선은 6자회담에 대한 북한의 거부감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희망적으로 바라본다면, 북미, 남북, 북일 관계의 개선과 중국의 북-미-중 3자회담 주선이 맞물리면서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미지의 가능성에 불과하다. 정치외교를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할 때,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은 철학과 비전을 갖춘 정치지도자들로부터 나와야 한다. 김정일의 ‘통 큰 결단’과 오바마의 ‘터프하고 직접적인 외교’와 함께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주의’가 필요한 까닭이다.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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