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에서 '왜 사는가' 질문 사라진 이유?
    By 내막
        2009년 08월 08일 01: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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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수 년 전, 대학 교양철학 수업이었던 것 같다. 인문대 건물 꼭대기 층에서 진행되던 수업 시간에 교수가 갑자기 "인문학이 영어로 뭔지 아는 사람?"이라는 생뚱 맞은 질문을 했다. "인문대 건물의 인문이랑 같은 단어"라는 힌트도 나왔다.

    그러나 "인문학은 영어로 휴머니즘(Humanism)입니다"라는 간단한 답을 곧바로 할 수 있었던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가방에 영어사전을 들고 다니던 한 친구가 겨우 답변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문학(人文學)’에 대해 한국어위키백과는 "인간이 처해진 조건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 분야이다.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에서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 구별되는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또는 사변적인 방법을 넓게 사용한다"고 정의한다.

       
      ▲ 표지

    이번에 나온 『교육의 종말 – 삶의 의미를 찾는 인문교육의 부활을 꿈꾸며』(원제: EDUCATION’S END – Why our college and universities have given up on the meaning of life)(앤서니 T. 크론먼 저·한창호 역·모티브북·1만5000원, 이하 『교육의 종말』)이란 책은 인문학에 대한 책이다.

    『교육의 종말』에서 저자는 책 제목이 드러내는 것처럼 ‘왜 사는가’라는 질문이 미국 대학의 체계적인 교육 목록에서 사라져 버린 이유를 중심으로, 이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다룰 권위를 교회가 독점하게 된 지금 문화전반에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지, 그리고 이 질문이 학문의 중심으로 복귀할 전망은 있는지에 대해 탐구했다.

    한국 대학은 역사적으로 일본대학, 미국 및 유럽 대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미국대학의 영향이 단연 압도적이다. 그리하여 미국대학에 대한 앞서와 같은 진단은 우리나라 대학 진단에 참고할 대목이 아주 많다. 이런 현실에서 이 책이 밝힌, 미국대학에서 인문학이 다시 부활되어야 할 필요성은 우리의 대학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한다.

    한국에서도 몇 년 전부터 ‘인문학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흐름이 나타났고, 또 그 즈음에는 한국 출판인들의 인문학 쇠퇴에 즈음한 인문학 부활을 선언했고, 미국과 한국의 일부 대학의 일부 교수를 중심으로 벌어진 인문학을 통한 사회소외계층의 재활 프로그램 실시 등 인문학의 실천적 정립을 위한 노력의 가시화가 극히 제한적이나마 시작됐다.

    그러나 정작 인문학 부활의 가장 중요한 주체가 되어야 할 대학 자체의 내적 움직임은 전무하다시피 한 게 우리 나라의 실정이다.

    고교 졸업 전까지 몇 년간 ‘대학만 가면’ 삶을 억누르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거짓말을 주입 당했던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 알게 되는 충격적(?) 진실의 하나는 이 시대의 대학은 더 이상 상아탑이 아니라 직업훈련소 혹은 직업알선소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대학과 이 책에서 접할 수 있는 미국의 대학에서 오늘날 학생들이 지니는 보편적 신조는 ‘삶이란 직업이다’일 수 있는데 이런 신조보다 훨씬 더 뿌리깊이 박혀있는 신조가 인간적 조건을 숨기고 거부하는 과학기술 만능주의이며, 이는 진리와 과학을 동일시하는 경향성을 띤다.

    본서『교육의 종말』을 통해 저자가 제기하는 이런 경향성과 함께 토론억압, 출세제일주의 등은 교육의 종말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요인이다.

    저자는 지난 40년 동안 학생과 교수, 학장을 거쳐 다시 교수로 살아오면서 ‘삶의 의미에 관한 의문 자체의 정당성과 그 의문을 추구하는 인문학 교수들의 권위가 은밀하게 훼손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저자는 명확하고 중요해 보이는 가치를 쉽사리 팽개쳐버리는 것에 당혹스러움과 분노를 느꼈고, 그 원인과 결과 그리고 해결방법에 대한 호기심을 풀기 위해 이 책을 썼으며, 삶의 목적에 관한 질문이 조만간 대학교육에서 합당한 자리로 회복되리라는 희망을 밝힌다.

    * * *

    지은이 : 앤서니 T. 크론먼Anthony T. Kronman

    윌리엄스 대학을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예일 대학교 법과대학 학장을 지냈으며, 현재 예일 대학교 법과대학 석좌교수로 계약, 파산, 법률학, 사회이론과 ‘지도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인문학에 기여하고 있다. 예일 대학교 이전에는 시카고 대학에서 근무했다.

    저서로 『막스 베버의 법률사회학Reconstructing Max Weber’s sociology of law』(공저), 『길잃은 변호사The Lost Lawyer』, 『예일 법과대학사History of the Yale Law School』, 『계약법의 경제학The Economics of Contract Law』(공저) 등이 있다.

    옮긴이 : 한창호

    1961년에 태어나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국악과를 졸업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옮긴 책으로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시간의 창공』, 『괴짜심리학』, 『매혹과 열광』, 『감성지능』 등이 있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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