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정 6-1지구에서 용산 4지구까지
        2009년 08월 07일 02: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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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30일 저녁 용산참사 192일째를 맞아 ‘작가선언 6.9 북콘서트’가 홍대앞 작은 카페에서 열렸다. 용산참사 반년의 기록들이 으로 증언으로 연극으로 영상으로 그리고 시와 글로 생생히 되살아났다. 

    작가들이 시와 글을 낭송하자 사람들은 어두운 조명에 얼굴을 숨기고 흐느껴 울었다. 소리내어 우는 이는 없었으나, 들썩이는 어깨를 통해 모두가 울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레디앙>은 ‘작가선언’팀의 동의를 얻어 이 날 낭송되었던 글과 시를 몇 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 낭독하고 있는 나희덕 시인 (사진=작가선언 6.9)

    신정 6-1지구 근처 아파트에 세 들어 산 적이 있다.
    십오 년 전 내가 본 것은 개발이라는 이름의 전쟁이었다.
    나 역시 세입자에 불과했지만 아파트 유리창은 고통의 전시장이었다.
    유리창 속에서 내 고통은 한 마리 벌처럼 웅웅거렸다.

    끊임없이 무엇인가 세워지는 곳에 사는 일은, 폐허에 사는 일보다, 더 고통스럽다, 집에 갇혀 있던 흙은 수십 년 만에 풀려나와, 햇빛을 껴안아본다, 그러나 이내 무료한 표정으로 돌아가, 더 견고한 벽 속에 갇히기를 기다리며 푸석해진다, 휘어진 철근 사이, 콘크리트덩이들이 먹다 남은 살점처럼 걸려 있고, 반쯤 깨어져나간 항아리가 하늘을 벌써 몇입 베어먹었다, 햇살은 찡그리며 그 칼날 위에 눕는다, 내일은 어느 집이 헐려나갈까, 내 몸이 나를 모르듯, 저 낡은 지붕들도 제 때를 모르고, 손바닥만한 텃밭을 일구던 늙은 손도 그 끝을 모르고, 다만, 내일이라는 믿음이 벽을 낳고, 새로운 지붕을 낳고, 흙은 다시 그 속에 갇혀 마음으로나 쑥갓 상추 따위를 기르겠지, 큰 희망이 작은 희망을 내쫓고, 높은 지붕이 낮은 지붕을 삼키며, 끊임없이, 그림자가 길어지는, 그곳에서*

    그곳에서, 하루 종일 연기가 피어올랐다.
    철거 용역이 휘두르는 몽둥이에 여자들 몇이 쓰러지고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어른들 뒤에 숨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사람이 죽지는 않았다.
    포크레인이 뭉개고 간 집들이 불길에 휩싸이고
    검은 연기에 플라타너스 잎들이 노랗게 말라 죽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사람이 타죽지는 않았다.
    그래도 망루 끝까지 도망간 사람들을 내리치지는 않았다.

    신정 6-1지구 – 용인 수지 1지구 – 수원 권선 4지구 – 용인 구갈지구 – 김포 신곡지구 – 홍제 3지구 – 용인 어정지구 – 성남 단대지구 – 수원 망포지구 – 수원 원천지구 – 흑석지구 – 광명 6지구 – 인천 주안지구 – 서초 내곡지구 – 구로 천왕지구 – 고양 풍동지구 – 용산 4지구

    새로운 도시가 생겨날 때마다 전쟁은 계속되었다.
    큰 희망과 작은 희망이 벌이는 전쟁,
    높은 지붕이 낮은 지붕을 삼키는 전쟁,
    망루 끝에 매달린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내는 전쟁,

    지상의 어떤 방도 그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 2연은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에 수록된 시「신정 6-1지구」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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