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선 병사로부터 적군의 향기를 느끼다
        2009년 08월 07일 02: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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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억수씨

    유비의 처세 전략

    순간의 선택으로 서주 태수가 된 유비는 공손찬에게 빌려온 군사 2000과 조자룡을 되돌려보내고, 언제 있을지 모를 조조의 재침에 대비하기로 하였다. 유비로서는 얼마나 갈지 모르는 행운의 시간이었으나 어쨌든 명실공히 하나의 주(州)를 맡아 제후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던 것인 만큼 일단 원초적 권력기반 수립에 성공한 것이었다.

    유비는 곳곳에 방을 붙여 백성들을 안심시키는 한편, 도겸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고, 도겸의 유표를 조정에 올렸다. 유비는 이 모든 것이 탁현에서 몸을 일으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서두르거나 조급해 하지 않으면서 꾸준히 정치적 자산을 키워온 대가라고 생각했다.

    유비의 처신 전략은 관우, 장비가 답답하게 여길 정도로 장기적 가치를 중시하는 방식이었다. 유비는 다른 사람들의 권유와 추대로 서주를 장악한 후, 이 같은 자기 방식을 더욱 더 신뢰하게 되었다. 유비는 속으로 생각했다.

    ‘결국 타인의 입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만드는 것이 최상의 정치이다.!’

    한편 조조는 서주 공략을 중간에 포기하고 급히 회군하여 연주로 향했다. 진류태수 장막의 사주를 받고 조조의 본거지를 쳐들어 온 여포와 일전을 치르기 위한 것이었다. 조조가 돌아오자 조인(曺仁)이 그동안의 전황을 상세히 설명하며 여포군의 위세가 만만치 않다고 보고했다. 순욱 등이 지키고 있던 3곳 외에는 대부분의 본거지가 여포군의 수중에 떨어진 상황이었다.

    조조, 여포와 일전

    조조는 곧바로 군마를 이끌고 여포가 있는 복양성으로 진군했다. 당장 여포의 본진과 결판을 벌여 상황을 조기에 마무리 짓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조조가 복양성 앞 넓은 들판에 진을 치자, 여포도 아예 성 밖으로 나와 진을 치고 조조군을 맞았다. 이 때 여포는 장요, 장패를 비롯한 여러 명의 장수와 진류에서 끌고 온 5만의 군사를 지휘하고 있었다.

    첫 전투는 조조의 패배였다. 조조 측에서 악진, 하후돈 같은 장수를 내보내 전투를 시작하자 여포 쪽에서도 장요, 장패가 나와 서로 뒤엉키며 부딪혔다. 이 때 여포가 적토마를 타고 방천화극을 휘두르며 달려 나오자 그 기세에 눌려 하후돈, 악진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여포가 두 장수를 뒤쫓자 다른 군사들이 여세를 몰아 조조의 군사를 닥치는 대로 공격했다. 과연 천하의 맹장 여포였다. 조조군은 30리 밖으로 후퇴 했다.

    조조는 첫 전투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야간 기습을 감행했으나 이마저도 여포가 보낸 구원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것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었다. 조조는 직접 군사를 몰고 야습을 기하다 오히려 여포군에게 몰려 불더미 속에 갇히기도 하였다.

    조조는 목숨을 잃을 뻔한 상황까지 몰렸으나 전위에 의해 가까스로 생명을 구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조조는 자기의 목숨을 구해 준 전위에게 큰 상을 내리고 영군도위라는 벼슬을 내렸다.

    "그대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귀신이 되었을 것이오."

    조조는 전위를 치하하고 다른 장수들과 군사들에게도 각기 공에 따라 비단과 금을 내렸다.

    속고 속이다

    그 이후 여포와 조조의 전투는 교착상태에 빠져들었다. 양측 모두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어느 한쪽도 뚜렷한 전과를 거두지 못하고 지루하게 시간만 끄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상황을 일찍 마무리하고 본래의 근거지를 회복하려 했던 조조로서는 여포와의 싸움에 별 진전이 없자 조급한 마음에 왠지 우울해졌다. 조조는 탄식했다.

    ‘원래 갖고 있던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나 한 번 빼앗긴 자리를 도로 찾아오기는 쉬운 일이 아니구나! ‘

    그렇게 교착국면이 계속되던 어느 날, 한 허름한 사내가 조조를 찾아왔다.

    "장군님, 저는 복양성에서 온 사자입니다. 조용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조조는 복양성이란 말에 귀가 솔깃했다. 조조는 모든 장수를 막사 밖으로 나가게 하고 혼자서 그 사내와 대면하였다. 그러자 그 사내는 한 장의 서찰을 꺼내 조조에게 은밀하게 건냈다. 조조는 서찰을 받아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찰을 보낸 사람은 복양성 제일의 부호 전씨가 아닌가! 복양성 전씨 가문은 조조도 익히 들어본 적 있는 명문 가문이었다.

    전씨가 조조에게 보낸 서찰에는 복양성의 동태와 여포군의 군사 배치가 낱낱이 적혀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자기들은 여포가 복양성을 점령한 이후 그 횡포가 심해 살수가 없으며 조조군이 복양성으로 쳐들어오면 내부에서 조응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허름한 사내가 말했다.

    "저희들은 기회를 보아 ‘의’자를 쓴 흰 기를 성벽 위에 세우겠습니다. 장군님은 그것을 신호로 진격하십시오. 그러면 저희들이 안에서 성문을 열어 복양성을 장군께 바치겠습니다."

    조조는 크게 기뻤다.

    "오.. 이제야 뭔가 일이 좀 풀리는 구나! 이제 복양성 회복은 시간문제다.!"

    그러나 다음 순간 조조는 ‘이것이 혹시 여포 측의 계략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조조는 늘 버릇처럼 눈앞에 들어온 정보와 정반대의 생각을 해보곤 했다. 물론 이것은 더 나은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방법론이었을 뿐 무작정 남을 의심하거나 귀에 들어온 정보를 부정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현재의 정보와 판단을 다시 의심해보는 절차를 조조는 ‘방법론적 회의(方法論的 懷疑)’라고 불렀다. 조조는 ‘방법론적 회의’를 위해 참모들에게 방금 들어온 정보를 공개했다.

    조조의 방법론적 회의

    "적진에서 사자가 와 내게 밀서를 전달했소. 복양성 안의 전씨 일가가 여포에게 불만을 품고 우리가 공격하는 시간에 맞춰 성문을 열어주겠다는 내용의 밀서요. 여러 장군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 때 책사인 유엽이 입을 열었다.

    "그 정보가 사실이라면 이렇게 좋은 기회는 없을 것입니다만, 만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 이것이 적의 계략이라면 성안에서 매복군에 당할 우려가 있습니다. 전군을 셋으로 나누어 그 중 한 부대를 먼저 성안으로 들여보내고 지휘부는 후방에 배치하심이 어떨는지요?"

    조조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만약을 대비하여 유엽의 말대로 군대를 셋으로 나눈 후 좌군과 우군은 성 밖을 포위하고 중군만 복양성 안으로 진격시키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조조 자신은 후방에서 군사를 지휘하는 역할 대신 직접 성안으로 쳐들어가는 선봉부대에 배속되었다. 위험한 일을 부하들에게만 맡기지 않고 직접 생사를 같이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조조는 이렇게 늘 맨 앞에 서곤 했다.

    그렇게 전략이 서자. 곧바로 작전이 시작되었다. 조조군은 야음을 틈타 복양성으로 조금씩 접근해 나갔다. 한참을 나아가고 있을 때 누군가 나즈막이 소리 쳤다.

    "저기 성벽 위에 흰 기가 보인다."

    성벽위의 한 구석에 정말 큰 백기가 꽂혀 있었다. 그 깃발에는 뚜렷이 ‘의’자가 새겨져 있었다. 밀서에 씌어 있는 그대로였다. 그 깃발이 눈에 들어오자 조조는 뭔가 일이 계획대로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 때까지 갖고 있던 이런 저런 불확실성에 대한 의구심이 순간 눈 녹듯 사라졌다. 조조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됐다. 기회다."

    조조는 하후돈과 조인에게 각기 좌군과 우군을 맡겨 성문 앞에 대기토록 하고 자신은 하후연, 이전, 악진, 전위 등을 이끌고 중군을 맡아 성 안으로 쳐들어가기로 했다. 조조는 앞장 서 성을 향해 말을 몰았다. 달이 없는 밤이라 사방은 자못 어두웠고 조조를 뒤따르는 군마의 말발굽 소리만 요란했다.

    조조가 이끄는 중군이 거의 성벽 밑에 도달할 때 쯤 성 위에서 조용히 울리는 징 소리가 어둠속에서 퍼지는가 싶더니 성문 위에 횃불 몇 개가 밝혀지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윽고 성문이 활짝 열리고 친절하게 적교(吊橋: 성문에서 내려와 성밖과 성안을 연결시켜주는 다리)도 내려졌다. 모든 것이 밀서에 적힌 대로 였다.

    "성문이 열렸다. 진격하라!!"

    조조가 진격명령을 내렸다. 그 소리와 함께 조조군은 서로 앞을 다투어 문 안으로 몰려들었다. 조조도 말을 박차며 성문 안으로 쏜살같이 달렸다. 성문이 열린 이상 무조건 빨리 진격해야 했다. 조조군은 너나없이 서로 질세라 힘차게 달려 곧장 관아 앞에 이르렀다.

    그러나 막상 성의 중심부에 도착하니 인기척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서야 조조는 급히 말을 세웠다. 조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를 맞기 위해 나와 있어야 할 전씨는 물론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아우성 치는 ‘조조 군사’들

    조조는 순간 머리칼이 쭈뼛하며 곤두섰다. 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 공포였다. 이 모든 것이 여포군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조조가 급히 말머리를 돌리며 외쳤다.

    "퇴각하라! 적의 계략이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그 순간 요란한 함성과 함께 북소리, 징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여기저기서 화살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와! 와아아아……!"

    조조가 퇴각명령을 내렸지만 좁은 성문을 통과해 긴 행렬을 이루며 계속 진격해오는 군사들을 신속하게 되돌리기란 불가능 했다. 퇴각명령을 받은 앞쪽 대열과 진격명령을 받고 계속 달려 들어오는 뒤쪽 대오가 마구 뒤섞이며 조조군은 대 혼란에 휩싸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성벽 위에서 화살과 돌덩이가 쏟아져 내리고 사방팔방에서 수천 개의 횃불이 날아왔다. 성안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지옥이 되고 말았다. 몸에 불이 붙은 조조군은 비명을 지르며 여기저기 뛰어다녔고 말과 군사들은 서로 부딪히고 짓밟으며 아우성쳤다. 그 와중에 성 안의 문들이 여기저기서 열리면서 여포의 군대가 쏟아져 들어왔다.

    "모조리 베어라!"

    우왕좌왕하던 조조군은 차츰 차츰 쓰러지면서 제대로 서있는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조조는 싸움을 포기한 채 황급히 북문을 향해 말을 몰았다. 그러나 그곳에도 여포의 매복군이 불쑥 나타났다. 조조는 또다시 남문으로 말머리를 돌렸으나 그곳도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불길 속에서 매복한 여포의 군사들이 나타나 공격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조는 어찌할 줄 모르고 좌우를 살폈다. 성 안은 어디를 보아도 온통 적병들과 불꽃과 검은 연기뿐이었다. 조조는 자기가 달리고 있는 곳이 남쪽인지 동쪽인지 알 수도 없었다. 그때 저쪽에서 한 무리의 군사가 횃불을 들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여포군이었다.

    ‘이제는 죽었구나!’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 상황에서 도망을 친다면 날 쫓아오라는 소리 밖에 되지 않는다. 조조는 침착하게 얼굴을 숙이고 태연히 그들 옆을 지나가려 하였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앞장서서 오는 자는 적장 여포가 아닌가. 여포는 적토마를 탄 채 조조 쪽으로 유유히 다가오고 있었다. 조조는 고개를 숙인 채 과감히 여포를 옆으로 지나쳤다. 그러자 여포가 창으로 조조가 쓰고 있는 투구를 가볍게 툭 쳤다.

    조조와 여포의 조우

    "여봐라, 조조가 어디로 달아났는지 모르느냐?"

    여포는 불길과 연기가 난무하는 어둠 속에서 상대가 자기 앞에서 태연하게 행동하자 당연히 자기의 부하 장수라고 생각했다. 조조는 가슴이 섬뜩하였으나 한 쪽을 가리키며 태연하게 말했다.

    "저쪽에 누런 말을 타고 가는 놈이 조조입니다.!"

    여포는 그 말을 듣자 급히 군대를 끌고 조조가 가리킨 쪽으로 말을 몰았다. 조조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머리를 돌려 자욱한 연기 속으로 사라졌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여포였다. 잠시 말을 달리던 여포는 뭔가 이상한 느낌에 흠칫 하며 급히 말을 세웠다. 왠지 방금 지나온 낯선 병사로부터 적군의 향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째, 아까 그 놈이 좀 이상하군.!’

    그러나 여포는 잠시 멈추었을 뿐 말을 되돌리지는 않았다. 많은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아무런 증거도 없이 느낌만으로 말을 다시 돌릴 수는 없었다. 여포는 가던 쪽으로 그대로 말을 내달렸다.

    한편, 조조도 혼비백산하여 말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탈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인지? 동쪽인지? 서쪽인지? 도 분간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공!"

    한 장수가 헐떡이며 조조에게 다가왔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 자신을 찾아 나선 전위었다. 조조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웠다. 천신만고 끝에 주인을 발견한 전위는 조조를 데리고 성문 근처까지 나왔다. 그러나 성문은 맹렬한 불길 속에 휩싸여 있었다. 전위가 결연히 말했다.

    "주공, 제가 앞장서서 길을 열겠습니다. 제 뒤를 따르십시오."

    전위는 철극 끝으로 타오르는 불길을 헤집고 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베고 찔렀다. 조조는 전위의 뒤를 따르며 성문을 통과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 와중에 조조의 앞에서 갑자기 큰 불기둥이 쓰러졌다. 조조는 그 불기둥에 거의 깔리다시피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팔뚝에 큰 화상을 입었을 뿐, 조조는 전위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전위는 조조를 자기의 말 위에 태우고 결국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때 성밖을 지키고 있던 하후연이 전위와 조조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그들은 가까스로 진영으로 돌아왔다.

    심각한 패배와 장계취계

    조조군의 악몽은 날이 밝도록 계속되었다. 탈출한 장수와 군사들이 하나씩 조조군의 진채로 돌아왔으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살아 돌아온 사람은 다행이었다. 조조는 성안으로 진입시킨 중군의 반 이상을 잃었다. 심각한 패배였다.

    조조군의 사기는 푹 가라앉았다. 여러 장수들이 조조의 막사에 모여 고개를 숙인 채 아무도 섣불리 입을 못 열고 있었다. 그때였다. 돌연 조조가 크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장수들은 그 뜻밖의 웃음소리에 놀라 조조를 쳐다보았다. 조조는 심한 화상으로 오른팔부터 허벅지까지 흰 천을 두르고 있었다. 얼굴도 불에 그을려 있을 정도였다. 장수들은 조조의 때 아닌 웃음에 서로를 마주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두들 걱정하지 마라!"

    조조는 여전히 껄껄 웃으며 말했다.

    "장계취계(將計就計:적의 계략을 역이용함)를 써야겠다.!"

    조조의 입에서 장계취계란 말이 나오자 일부 참모들은 벌써 알아듣고 미소를 지었다. 사실 조조가 크게 웃은 것은 부하들이 너무 상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지도자로서 뭔가 희망을 보여주려고 크게 웃은 것이었는데 그 웃음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좋은 말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머리보다 입이 빨리 움직인 것이었다.

    "너희들은 내가 화상을 입어 죽었다고 소문을 퍼뜨려라. 그러면 여포는 반드시 공격해 올 것이다. 우리는 그 때 군사를 매복시켜 여포 군을 섬멸하면 된다. 하하하!"

    그제야 여러 장수들은 무릎을 치며 웃었다.

    "그것 참 좋은 계책입니다."

    조조군의 진영에는 순식간에 조조가 죽었다는 말이 쫘악 퍼지고, 깃발도 모두 조기로 교체 되었다. 조조군은 상여를 준비하는 등 한껏 초상집 분위기를 냈다. 그 소식은 복양성에 있는 여포의 귀에도 들어갔다.

    여포는 조조가 성문을 빠져나가다 커다란 불기둥에 깔렸다는 부하들의 말을 들었던 터라 조조가 죽었다는 정보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모든 것이 자기가 쳐놓은 함정의 성과였기 때문에 여포는 더욱 의심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없었다.

    여포는 조조군이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마릉산으로 갔다는 첩자들의 전언을 듣고 즉시 군대를 성 밖으로 끌고 나갔다. 마릉산에서 조조군을 작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포가 마릉산을 반쯤 지나 어느 계곡에 이르렀을 때였다. 돌연 숲 속에서 징 소리, 꽹과리 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사방에서 매복해 있던 군사들이 뛰어 나왔다.

    "이런 ! 계략이구나! 한번 속이고, 나도 한번 속는구나!."

    복병의 기습에 당한 여포의 군사들은 우왕좌왕하며 죽어갔다. 여포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천하의 맹장이라도 좁은 계곡에서 기습에 당하니 수 많은 자기 군사들 틈에 끼어 어찌할 수가 없었다. 결국 여포는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여 복양성 안으로 달아났다. 전날의 대승을 부질없게 만드는 참담한 패전이었다. 이제 여포는 복양성을 굳게 지키기만 할 뿐 더 이상 성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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