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민도 아니고, 조합원도 아니라서?
By mywank
    2009년 08월 07일 09: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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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 라는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자란 사람들에게, 고단하고 별 볼일 없는 삶이 나아질 가망이라고는 국가기관이 온 국민을 상대로 팔고 있는, ‘한 방에 인생역전’을 이루게 할 로또 당첨 정도나 되어야 하리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어느 날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고생을 게임으로 해내면 10억을 거머쥘 기회가 생긴다면?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10억도 생길 수 있다면?

   
  ▲ 영화 <10억>의 포스터

요즘 세상에 10억이라는 돈은 강남 아파트 한 채 값도 못 되는 액수지만 그래도 일 년에 돈 천 만원 모으는 것도 꿈같은 사람들에게는 주어지기만 한다면 한 번 덤벼 볼만한 기회임에 틀림없다.

조민호 감독의 <10억>은 여기서 시작한다. 동네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를 사며 로또 판매대를 한 번쯤 흘깃거려 볼만한 사람들. 자신에게도 언젠가 한 방에 인생을 업그레이드할 역전의 기회가 올까 꿈꿔볼만한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미끼를 던진다.

오지에 가서 서바이벌 게임을 해서 그 과정을 인터넷 TV에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신에 마지막까지 버텨내는 승자가 된다면 상금이 10억 원. 그 방송이 공중파가 아니면 어떤가. 어쨌든 방송이라는데. 더구나 가야할 장소가 고만고만한 나라 안도 아니고 심지어 비행기 타고 물 건너 펼쳐진 외국이라는데.

그래서 너도나도 출연 신청을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출연자로 선정되는 순간 벌써 10억을 차지하기나 한 것처럼 사람들은 환호한다.

고층건물 유리창 청소를 하고, 술집에서 접대할 취객을 기다리고, 도서관에서 고시 공부에 머리를 쥐어짜고, 철거 현장에서 캠코더로 폭력이 오가는 장면을 기록하고, 오토바이로 피자를 배달하고, 수영장에서 고된 훈련을 하고, 증권회사 사무실에서 구멍 난 차트 때문에 고객에게 전화로 시달리고, 골방에서 꾸역꾸역 간식거리를 먹어대던 사람들에게 10억을 상금으로 건 서바이벌 게임 방송 출연자 선정 통보가 전해진다. 남자 넷, 여자 넷.

갈라져서 싸우게 만드는 ‘룰’

막상 모이고 보니 방송이래야 PD 하나, 카메라 하나. 비행기 타고 날아간 외국은 관광은커녕 사람구경조차 할 수 없는 외딴 숲 깊은 곳에 생뚱맞게 지어진 집 한 채. 앞으로 10억을 걸고 경쟁하게 될 사람들의 면면도 그저 그렇고 그런 오합지졸.

앞으로 고생이야 하겠지만, 자신들이 겪을 그 고생은 남들이 훤히 지켜보는 카메라 앞에서 벌어질 일이니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닐 것이고, 잘만 해낸다면 돈도 벌고 유명해질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로 모인 사람들은 처음부터 경쟁관계다.

그러니 서로서로 친해지기 보다는 견제하고, 오순도순 도와가며 게임을 해나가기 보다는 아웅다웅 다투면서 누군가를 하나씩 떨구어 내려한다. 그러다보니 게임이 시작되기 전부터 말다툼에 주먹다짐까지 벌이는 꼴이 참 한심스럽다.

   
  ▲ 영화의 한 장면

PD라는 사람은 앞으로의 재미있는 진행을 위해 출연자들의 긴장을 풀어주거나 적당한 재밋거리를 만들어주는 대신 날콩을 오독오독 씹어 먹으며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어댄다.

누군가 떨어뜨려야 내가 살아남는 무한경쟁이 서바이벌 게임의 규칙이다. 어린 시절 피구가 되었든, 다방구가 되었든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놀이를 해 본 사람들은 다들 기억하는 말. 탈락되는 사람에게는 쐐기를 박는 말. ‘너 아웃. 죽었어.’

"너 아웃, 죽었어"

이 ‘죽었다’는 말이 탈락을 뜻하는 하나의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일차적 의미로서의 ‘죽음’이 되는 순간 10억을 향해 부풀어 올랐던 꿈은, 이기지 못하면 죽게 될까봐 악착같이 매달려야하는 악몽이 된다. 멀쩡한 젊은 청춘 여덟이 죽음의 공포로 자신들을 몰아넣는 위협에 힘을 합쳐 대항하는 대신 어떻게든 자기 목숨 하나는 보전하려 하는 아귀다툼이 펼쳐진다.

이들을 꼼짝 못하고 게임의 규칙에 따라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것. 그 막강한 권력을 만들어 내는 힘의 바탕 하나는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지켜보는 카메라의 감시체제요, 또 다른 하나는 저항하려는 이들을 제압할 수 있는 무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력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들이 누군지 이미 파악하고 있는 정보력.

죽기 아니면 살기가 되어버린 이들의 처절한 생존투쟁은 인터넷을 통해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비춰지지만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댓글 반응은 고작 ‘저거 특효야?’라든가 ‘섹시하게 죽었네’ 따위.

   
  ▲ 영화의 한 장면

공포와 분노로 "우리한테 왜 이러는데?"라고 묻는 게임 참가자들에게 PD는 대답한다. 너희들의 죄는 주위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부당함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라고. 그렇다. 모든 것이 훤히 보이는 대명천지에서 자기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방관의 무심함은 그 폭력적 상황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때까지 죄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자체로 죄가 되는 것이다.

주변을 바라보지 않은 죄

독일의 마틴 니묄러는 이렇게 가슴을 쳤다.

"나치는 맨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들이닥쳤다. 그러나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에 그들은 유태인들에게 들이닥쳤다. 그러나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 그들은 노동조합원들에게 들이닥쳤다. 그러나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 그들은 가톨릭교도들에게 들이닥쳤다. 그러나 나는 개신교도였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그들은 나에게 들이닥쳤다. 그리고 그때가 되자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라고.

용산에서, 쌍용자동차에서 권력이 사람을 몰아내고 미디어가 그 현장을 구경거리로 만들 때, 나는 철거민이 아니고, 나는 조합원이 아니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그래서 아무도 남지 않게 될 때, 그때 그들은 나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도 눈앞에 10억의 기회만 주어진다면 두 눈 질끈 감고 돈가방을 향해 달려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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