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택, 09년 여름 그리고 두개의 절망
        2009년 08월 07일 02: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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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먹고 튈 것’라고 예상했던 상하이차에 쌍용자동차를 매각했을 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5년, 이 첫단추의 대가로 저항하는 노동자들은 죽음의 공포를 맛봐야 했고, 저항하지 않는 노동자들도 폭력의 광기를 경험해야 했다.

    여기에 용산에서 6명의 국민들이 공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었음에도 단 한 마디의 사과 없는 이명박 정권의 결합은 ‘불난 집에 시너 부은 격’이었다. 이명박 정권은 공장 노동자들에게 총을, 인도 위 시위자들에게 물대포를 쏘아댔다. 

    자본의 경비견이 된 경찰

    상식은 없다. 절망의 땅이었다. 쌍용자동차 노사 간 협상이 결렬된 이후 6일 협상 타결 순간까지, 평택 공장의 ‘소통 수단’은 폭력이었다. 공적, 사적 무력이 결합한 가공할 만하 폭력은 노동자들의 반발 물리력을 불러왔다. 자본은 함께 일하던 노동자들을 말 그대로 “말려 죽이겠다”면서 물과 식량을 차단했고 화약고 안의 소화전조차 작동 불능으로 만들었다. "태워죽이겠다"는 생각으로.

       
      

    정권은 공적 권력인 경찰을 자본을 위한 ‘사적 경비견’으로 전락시켰고, 노동자들의 인권은 철저하게 제압당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행정권, 공권력은 행사 주체는 한정되어 있다”며 사측과 권력의 ‘합동작전’을 “명백한 불법”이라고 설명했지만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의 말처럼 “이 나라에 법은 없었”다.

    이 초법지대에서 법적으로 하루 30만원을 받아야 함에도, 월급 130만원밖에 받지 못한다는 용역업체 ‘노동자’들은 공권력을 대신해 ‘시위진압’을 벌였고, 사측 직원들은 동료의 아내와 아이들이 농성중인 천막을 부쉈다. 종국에는 민간인이 민간인을 검문하는 웃지못할 상황까지 발생했다. 권력의 사적 운용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현 정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투영됐다.

    정권과 자본이 몰상식으로 절망감을 주었다면 진보와 노동운동은 무력함으로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수차례 반복했던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총파업 선언은 양치기 소년의 외침으로 끝났다. 오히려 사측 임직원들에 의해 농성 천막이 ‘털린’ 뒤 공허하게 인도에 앉아있던 그들의 모습은 무력함, 그 자체였다.

    이명박 특유의 웃음소리

    잘 싸웠던 민주노동당은 간신히 천막 한 켠을 지켰지만 연좌 농성 중인 당의 대표는 사측 임직원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갖은 욕설을 들어야 했다. 진보신당은 천막조차 빼앗긴 채 공장주변만 맴돌았다. 진보정당의 국회의원들은 경찰에 의해 연행되거나 내동댕이 쳐졌고, 실신했고 물대포를 맞았다. 철저하게 무력했다.

       
      

    이런 상황에서 협상 결과가 희망이 되긴 어려웠다. 정권은 “함께 살자”던 노동자들을 화약고 안에 몰아넣고 라이터를 휘두르며 “죽을래, 잘릴래”를 강요했다. 결국 정부와 사측의 의도에 가깝게 인력 구조조정은 관철됐다. 사측은 기자회견을 통해 “회생을 위한 첫 관문인 인력 구조조정이 최종적으로 마무리 되어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며 승전보를 울렸다. 

    자본에 의해 분절된 노동자들이 서로 할퀴고, 싸우는 디스토피아가 눈앞에서 ‘절망’이라는 이름으로 서 있다. 협상 타결의 그 순간,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사측의 기자회견 동안 귓가에 끊임없이 맴돌던 이명박 대통령 특유의 웃음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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