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림 할아버지께
        2009년 08월 06일 10: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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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30일 저녁 용산참사 192일째를 맞아 ‘작가선언 6.9 북콘서트’가 홍대앞 작은 카페에서 열렸다. 용산참사 반년의 기록들이 으로 증언으로 연극으로 영상으로 그리고 시와 글로 생생히 되살아났다. 

    작가들이 시와 글을 낭송하자 사람들은 어두운 조명에 얼굴을 숨기고 흐느껴 울었다. 소리내어 우는 이는 없었으나, 들썩이는 어깨를 통해 모두가 울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레디앙>은 ‘작가선언’팀의 동의를 얻어 이 날 낭송되었던 글과 시를 몇 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 낭독하고 있는 이만교 소설가 (사진=작가선언 6.9)

    이상림 할아버지.

    제 딸아이가
    사용하지 않는 여름 난로에 닿아도 놀라던 마음으로,
    할아버지가 망루의 시커먼 불길에 속절없이 휩싸였을 순간을 상상해 봅니다.

    이상림 할아버지.

    제 늙으신 부모님이
    걸음이 늦어 사람들에게 핀잔 듣는 것만으로도
    꽤나 속상해지던 마음으로,
    칠순이 넘은 할아버지가 백주대낮의 길거리에서 젊은 용역의 주먹질에 속수무책으로 얻어맞는 모습을
    꼼짝없이 목격하였던, 할아버지의 아드님과 며느리의
    참담하고도 분통했을 심정을
    상상해 봅니다.

    이상림 할아버지.

    하다못해
    수첩조차 자신이 직접 골라 구입하면
    새삼 그 물건에 더 정이 들고 흡족해지던 마음으로,
    할아버지께서 막내아들 막내며느리와 함께 타일을 하나하나 바르고,
    탁자 테이블 다리의 문양까지 하나하나 새겨 공사를 마친 다음, 레아 호프집을 마침내 개업했을 때,
    빚을 내어 개업했음에도 기쁘고 대견하고 자랑스러웠을,
    흐뭇했을 그 기분을 상상해 봅니다.

    이상림 할아버지.

    제가 좋아서
    제 스스로 일을 벌이게 되면
    누가 깨우지 않아도 아침 일찍 깨어 서두르게 되던 마음으로,
    레아 호프집을 개업하고 나서,
    언제나 새벽 4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교회에 가서 새벽 기도를 하고, 자전거로 동네 한 바퀴를 돌고, 가게로 나가 청소를 하고, 수산시장 경동시장에 나가 시장을 보시던……
    할아버지의 피곤하지만 상쾌했을, 생활 전체에서
    자연스럽게 휘파람 소리가 나왔을
    즐거움을 떠올려 봅니다.

    이상림 할아버지.

    우리가
    하다못해 남한테 푼돈을 빌렸을 때조차
    약속한 날짜에 갚지 못하면 계속 신경이 쓰이는 마음으로,
    할아버지께서 큰 빚을 내어 레아 호프집을 운영했을 마음을 상상해 봅니다.
    매일 같이 성경책 구절을 베껴 쓰던, 다리가 불편해서 편히 앉아서 써도 좋았을 텐데,
    굳이 무릎을 꿇은 단정한 자세로 성경을 빈 노트에
    한 구절 한 구절 베껴 써야 마음이 편하던,
    할아버지의 간절한 자세를
    상상해 봅니다.

    이상림 할아버지.

    푸른
    강물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흘러가는 푸른 강물의 수면 위를 건너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흘러가는 푸른 강물과 흰 구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만 자신이 뒤로 밀려가는 듯하여
    깜짝 놀라 깨는 마음으로,

    이상림 할아버지.

    다만 지하철에서
    빈자리를 얌체 같이 차지해도 사람들은
    눈을 흘깁니다. 하물며 30년을 장사하며 살아온 용산 땅,
    별다른 대안도 대화도 없이,
    도리어 때리고 윽박지르고 넘어뜨리고 발길질하고 부수고 추행하면서 나가라니요?
    경찰은 그러한 꼴을 열 번 스무 번 지켜보면서도
    용역 편만 들다니요?

    이상림 할아버지.

    이리 저리 빚을 내어
    아들과 며느리와 인테리어 공사하던 마음으로,
    새벽 4시 30분이면 기상하여 새벽기도를 가던 마음으로,
    자전거 타고 동네를 한 바퀴를 돌며 이웃들과 눈인사 나누던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성경책을 베껴 쓰던 마음으로,
    다름 아닌 서울의 너무나 선량한 한 시민의 마음으로,
    할아버지는 이 세상의 마지막 망루에
    올랐지요.

    이상림 할아버지.

    제 딸아이가
    사용하지 않는 여름 난로에만 닿아도 놀라던 마음으로,
    할아버지가 망루의 시커먼 불길에 휩싸였을 그 순간을 상상해 봅니다.
    경찰이 용역과 함께 불을 지르며 공격해 왔을 때, 기우뚱 기울어지는 망루 안에서
    이 세상에 잡을 것이라곤 더는 아무 것도 없어서 허우적거렸을,
    너무나 당혹스럽고도 황망했을, 화염 속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 봅니다.

    이상림 할아버지.

    단 10초,
    단 3초 동안의 상상조차,
    저는 뜨거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보온 그릇에만 닿아도
    그만 화들짝 놀라는 것이 사람 피부이고 사람 신경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가족은 무려 192일째,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의 남편이, 망루의 불길에 휩싸여 죽던 순간에
    꼼짝 없이 머물러 있습니다. 시신마저 도둑질 당하고,
    손목 잘린 채, 떼쟁이, 폭도, 테러분자로
    매도당한 채,
    당신은 우리 국민들 가슴 가슴 속을 하염없이 떠돌고,
    그리하여 제가 사는 나라는
    캄캄한 무덤입니다.

    이상림 할아버지.

    이 나라가
    할아버지의 진실을 감추는 바람에,
    저는 그만 제가 사는 이 나라의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위해 안하무인으로 살아온 자가 대통령이 되더니,
    평생을 자기 이익만을 위해 안하무인으로 살아가려는,
    정치인, 관료, 검찰, 경찰, 조중동 보수언론, 대기업 건설사 등과 같은,
    무수한 용역 깡패들을
    보았습니다.

    이상림 할아버지.

    울고,
    통곡하고, 호소하고,
    기도를 드려도, 이 나라 용역들은 꿈쩍 않습니다.
    하다못해 서랍이 안 열려도,
    식구 수대로 나서서 직접 서랍을 열어보려 애쓰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192일 동안을 울고, 통곡하고, 호소하고, 흐느끼고,
    기도 드려도,
    이 나라는 더욱 추악한 행동만
    일삼고 있습니다.

    이상림 할아버지.

    이제 다시
    꿈을 꾸는 마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마음으로, 먼 길을 떠나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저 자신을 나무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제 스스로 반성해 보는 마음으로, 눈물겨운 마음으로,
    가장 멀리까지 걸어가기 위해 부지런히
    한 발씩 내딛는 마음으로

    이상림 할아버지.

    저는
    딸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곧바로 달려가 일으켜야 할지 아니면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 줘야 좋을지조차 몰라, 어쩔 줄 모르는, 다소 심약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민감한 마음으로, 할아버지의 고통을
    기억하겠습니다.

    이상림 할아버지

    저는
    제가 구입한 물건이,
    다른 마트에서 더 높은 가격으로 파는 것을 발견하곤
    그만한 차액을 벌었다고 행복해 하는, 작고 소심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으로, 이 나라 곳곳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일들을
    따져보겠습니다.

    이상림 할아버지.

    저는
    시원한 맥주 한 잔과
    제 얘기를 재치 있는 농담으로 받아치는 친구들만 있으면,
    그것으로 즐겁고 만족하여, 밤새 웃고 떠들며 놀기 좋아하는 가벼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유쾌한 마음으로, 분노할 줄 알면서도 농담을 잃지 않고
    싸우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생활 곳곳에서
    쉬지 않고 저항하는 사람들과
    만나겠습니다.

    이상림 할아버지.

    등산을 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아름다운 산등성 풍경에 넋을 놓듯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인상 깊은 아름 슬픈 장면이 두고두고 기억나듯이,
    음악을 듣다 보면,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거기에 어울리는 멜로디가 떠올라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더욱 강렬하게 체험되듯이,
    나보다 더 열심히 살면서도 나보다 더 욕심이 적은 사람들을 보면
    비로소 부끄러워하며 용기를 얻게 되듯이

    이상림 할아버지.

    제 마음속,
    제가 못내 좋아하는,
    제가 곧잘 떠올리며 그때마다 용기로 삼는,
    보잘 것 없는 저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기운을 회복하게 만들고
    옳은 주장을 하게 만드는, 강 물결, 저녁노을, 멜로디, 밑줄 그어둔 문장,
    영향 받은 작가나 스승, 외우는 시구나 경전의 구절들을……
    속 깊이 되새기는
    마음으로

    이상림 할아버지.

    제가
    혹여 어려운 이웃과
    부당한 일에 그만 눈을 감을 때,
    그것이 자신의 이익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깨어나고 각성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상상하고
    마침내 즐거이 살아나고 싶어 하는,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억압하는, 자신이 자신에게
    용역 깡패가 되는 짓이라고
    꾸짖어 주세요.

    이상림 할아버지.

    노래를 끝내는 마음으로,
    노래가 끝나고 나서 노래보다 오래 침묵하는 마음으로,
    화를 가라앉히되, 할 말은 차분하게 하기 위해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마음으로,
    나쁜 사람을 보면 그만큼 더 불쌍해 보이는 마음으로, 한껏 울고 나서
    더욱 차분해지는 마음으로, 눈이 마주치면
    그냥 웃게 되는
    마음으로.

    이상림 할아버지 영전 앞에
    삼가 저의 눈물을
    바칩니다.

    2009년 7월 30일
    이 만 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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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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