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산 4지구 안에서 우린 모두 난쟁이
    참여하지 않는 공감은 얼마나 무력한가
        2009년 08월 05일 12:5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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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문학사의 결정적 장면들

    한국 현대문학사에는 손에 꼽을 만한 몇가지 인상적 풍경들이 있다. 그 중 몇가지 결정적 장면은 1970년대에 이문구․황석영․조세희가 펼쳐 보였다.

    이문구의 「우리동네 김씨」에서 김씨가 민방위 훈련에서 부면장 상대로 권위주의와 강렬한 풍자로 대결하는 장면은 암울했던 시대의 풍경을 민중적 웃음으로 통쾌하게 그려냈다. 황석영의 중편 「객지」의 결말도 숭고미를 자아낸다. 동혁이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고 외치는 결말에서 ‘절망의 넘어선 희망’을 발견하면, 뭉클해진다.

    나는 조세희가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그려낸 장면이 그 중 압권이라고 생각한다. 난쟁이 가족이 철거 바로 직전에 마루에서 구운고기와 고기국에 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철거 직전에 망치를 든 사람들 앞에서 식사를 하는 이 장면은 한국문학사의 가장 비극적이면서 슬픈 풍경으로 꼽을 수 있다.

       
      ▲ ‘용산 참사’ 현장에 그린 문화예술인들의 작품 (사진=손기영 기자)

    난쟁이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던 지섭은 철거 용역들에게 다음과 같은 상징적 언어를 내뱉는다.

    "지금 선생이 무슨 일을 지휘했는지 아십니까? 편의상 오백 년이라고 하겠습니다. 천 년도 더 될 수 있지만, 방금 선생은 오백 년이 걸려 지은 집을 헐어 버렸습니다. 오 년이 아니라 오백 년입니다."

    지섭의 항변은 ‘민중의 역사, 노비의 역사’를 압축해 제시하기에,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먹먹해지는 울림을 전한다. ‘오백 년’의 상징적 언어지만, 거기에는 슬픔․울분․저항․폭력․압제․좌절․재생의 역사가 기입되어 있다. 권력의 아래에서만 삶을 영위해야 했던 민중의 아픔을 상상할 수 있다면, 그 울림의 크기를 넉넉히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수인의 고백

    나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이 장면을 지난 6월 수원 구치소에서 수용자들과 함께 읽은 적이 있다. 인권연대에서 주관하는 ‘평화인문학’ 강의에 강사로 참여해 10명의 수용자들과 ‘인문학적 책 읽기’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 책이 텍스트로 선정된 것이다.

    한 달 동안 이뤄진 강의에서 나는 누군가와 처지에 깊이 공감한다는 것에 관해 열심히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갇힌 자들의 슬픔에 대해 공감하기도 했고, 아래로부터 삶을 다시 살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수원 구치소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경험을 했다. 30대 초반의 한 수용자가 주저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었는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소설 속에서 철거를 담당한 ‘망치를 든 사람들’과 자신이 동일시되는 경험을 했고 토로했다. 그리고, 자신이 했던 행위가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바깥 세상에 있을 때, 구청에서 바로 재개발 업무와 관련된 업무에 종사했다고 자신의 이력을 고백했다.

    그가 ‘사색의 공간’이기도 한 감옥에서 ‘인문학 강의’를 위해 읽은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자기 역전(逆轉)’의 경험을 안겨주었던 듯하다. 그는 한때 자신이 국가기구, 혹은 공권력의 위임을 받아 폭력을 행사하던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국가기구에 의해 수인이 되어 갇힌 상태에 있다.

    저절로 자신에게 위임되는 줄로 알았던 권력이, 그래서 항상 정당하다고 믿으려고 했던 권력이,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그 고통스러운 역전의 과정이 그에게 ‘두려움’을 느꼈던 듯하다.

    문학 작품은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인물과 공감하는 길을 열어 준다. 그래서 인문학적이다. 누군가는 난쟁이 아버지에 공감할 것이고, 누군가는 지섭에 공감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둘째 아들 영호에게 공감할 수도 있다.

    그 다양한 길을 문학 작품은 갈무리하고 있어 ‘타인의 삶’에 깊이 공감하게 해 주고, 읽는 이가 ‘다른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이끌어준다. 그것이 두려울지라도, 이성적 이해를 넘어선 깊은 공감이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길인 것이다.

    남일당 앞에 선 부끄러움

    나도 그 수용자가 겪었던 ‘고통스런 역전’을 지난 8월 3일에 절절히 경험했다. 6.9 작가선언이 기획한 ‘용산 릴레이 실천’에 참여해 용산참사의 현장인 남일당 앞에서 8시간여 동안 동료 작가들과 시위를 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현장이 바로 용산 남일당이고, 그 곳에 우리 시대의 참혹한 풍경이 펼쳐져 있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부끄럽게도 현장에 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난 1월 20일 용산 참사가 발생한 이래, 정부와 서울시는 철저하게 사건을 외면하고, 대화도 거부했다. 이는 지난 80년 광주 대학살 이후 정치권력이 취한 태도와 너무 흡사하다. 외면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고, 망각의 심연에 ‘학살의 진상’을 은폐하려 한다.

    용산참사와 80년 광주의 대학살은 동일한 사건이다. 그러므로, 이명박 정권의 비민주적 치부의 현장이 바로 남일당이고, 용산 4지구이다. 나는 다시 한번 유족의 슬픔에 공감하며, 현장에서 이를 확인했다.

    나는 ‘레아 호프’의 상황실에서 용산 4지구의 풍경을 바라보고, 유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참여하지 않는 공감’이 얼마나 무력한가에 대해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두 명의 미국인은 시위를 하고 있는 내게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하고 물었다. 나는 ‘정부에 의해 학살이 자행됐다’고 했다. 그러자 그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가’라고 다시 질문했다. 나는 순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릴레이 시위에 참여한 지난 3일은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196일째였고, 7일이면 고통의 나날이 200일에 접어든다.

    한국 민주주주의 짓밟힌 지 200여일에 이르고 있다.

    더불어, 우리 모두는 남일당 아래에서 난쟁이가 되어 왜소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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