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증세와 복지확대로 승부하라"
        2009년 08월 05일 09: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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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영국 노동당 좌파의 원로 정치인 토니 벤(1925~)이 영국의 중도좌파 일간지 <가디언> 7월 22일자에 발표한 글이다.

    토니 벤은 대처가 득세하던 70년대 말, 80년대 초에 민주적 사회주의의 공세적 추진을 통해 대처주의에 맞서서, 당시 ‘벤 좌파’라는 급진좌파 조류(노동당 좌파뿐만 아니라 공산당, 트로츠키파, 신좌파 등을 규합)가 형성되는 데 구심 역할을 한 인물이다.

    현재는 하원의원 직에서 은퇴하여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 사유화 반대 운동 등에 앞장서고 있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식코>를 본 분이라면, 영국의 공공 의료 체제(NHS)에 대해 설명하던 한 원로 영국 정치인이 기억날 텐데 그 사람이 바로 벤이다.

    아래 글에서 벤은, 블레어-브라운 노선 때문에 금융 위기의 원흉으로 낙인찍혀 지지도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노동당이 다시 살아날 길은 ‘부자 증세’와 ‘복지 확대’, ‘전쟁 중지’와 ‘핵 철폐’를 주장하는 것뿐이라고 일갈한다.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쟁점들이라 하겠다.  <역자 주>

    이번 주에 제임스 퍼넬(노동당 정치인. 최근 고든 브라운 총리를 비판하며 내각에서 사임했다)은 데모스(영국의 온건좌파 씽크탱크)의 프로젝트 중 하나로 ‘열린 좌파’(좌파 혁신을 토론하는 블로그)를 출범시켰다. 오늘날 좌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져보자는 게 그 취지다.

       
      ▲ 토니 벤

    좌파가 직면한 어려움들을 이해하려면, 과거를 돌아보아야만 한다. 거의 10년 동안 세 주요 정당들(신노동당, 보수당, 자유민주당) 사이에서는 어떤 합의가 형성돼왔으며, 그 영감의 원천은 대처의 반혁명이었다. 그들은 정부가 산업에서 손을 떼야 하며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경제위기를 낳은 것은 바로 이러한 정책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두 방향에서 노동당 지지도에 극적인 결과를 낳았다. 하나는 노동당 지지율 급락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민족당(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의석을 획득한 파시즘 정당)의 부상이다.

    현 정부는 환경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자랑할 만한 많은 업적을 쌓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당은 민심을 대변하기보다는 관리자 행세를 하는 것처럼만 보인다.

    내 생각에 총리 관저의 소파에서 만들어진 정책들은 유권자들의 신뢰를 높이는 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좌파 내의 종파적 분쟁이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부자 증세와 복지 확대로 승부하라

    이제 점점 더 많은 세계인들이 부를 창조하는 다수와 그것을 소유하는 소수 사이에 근본적 갈등이 존재함을 깨닫고 있다. 그들은 일자리와 가정, 좋은 의료와 교육, 괜찮은 연금과 평화를 원한다.

    이 점에서, 의회 바깥에 있는 내가 보기에, 힘 있는 좌파의 재건은 민중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강력한 여론전을 벌이는 데서 출발해야만 한다. 이런 여론전을 통해서 우리는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광범한 지지를 규합할 수 있다.

    ‘전쟁 중지’(Stop the War) 운동(영국의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은 내 생애에 가장 성공한 운동 중 하나였다. 이 운동은 좌파뿐만 아니라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 녹색주의자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종내는 아프가니스탄 철군 정책에 대해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고 말 것이다.

    최근에는, 핵전력 갱신에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는 발표가 있자, 일부 장군들이 핵무기 철폐를 주장하고 나섰다. 실제로 핵무기를 철폐한다면, 이것은 정부 지출을 대폭 줄이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또 다른 사례는 주택 문제다. 현재 공공주택 대기자가 급증하고 있고 건설 노동자들은 실업 상태다. 돈이 금융가들에게만 몰리기 때문이다. 금융가들 중 상당수는 혈세를 바탕으로 엄청난 보너스를 착복하고 있다.

    공공 서비스의 교묘한 사유화(민간 투자 유치를 통한 병원 설립과 대학 재편으로 나타났다)에 대해서도 엄청난 분노가 들끓고 있다. 그 결과로 공공 기관들은 민주적 통제의 바깥에 놓이게 되었다.

    시민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나 소득과 연금 사이의 연계를 폐지하고 연금을 소득 수준 이하로 낮춘 데 대해서도 민중은 분노하고 있다.

    또 다른 쟁점은 세금이다. 런던 금융가(街)는 정부가 발표한 조심스러운 부자 증세안조차도 비난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 정도는 처칠이 1945년에 총리직에서 물러나던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당시 최고세율은 95%였다. 이것을 정당화한 근거는 전쟁을 수행하는 데 돈이 필요하며 부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근거는 현재의 경제 위기 상황에도 충분히 적용된다.

    좌파 재생은 사회경제 민주주의의 확대로부터

    우리는 이러한 주제들을 선점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다우닝가 10번지[영국 총리 관저]의 정책 결정자들에게 아래로부터 훨씬 더 많은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압박이 있어야 비로소 좌파는 재생할 수 있을 것이며, 좌파가 이제껏 항상 대변하려고 노력해온 그 사람들에 대해 새롭게 헌신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이 모든 쟁점들에 대해서 여론이 신노동당보다 진보적인 입장에 서 있다. 민주주의는 거리를 법전과 연결시키는 죔쇠다. 그리고 좌파를 혁신하자면,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세력의 지배가 점점 더 강력해지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더욱 강화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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