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기 법률 통과, 복지국가의 적"
    2009년 07월 30일 02: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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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지난 22일 신문법, 방송법,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등 ‘미디어 관련 법률’들을 탈법적인 날치기로 통과시키면서 슬그머니 끼워 넣어 함께 통과시킨 법률이 있다. 금융지주회사법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법안, 즉 미디어 관련 법률과 금융지주회사법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이 법률들이 모두 자본에 대한 ‘규제완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규제완화란 신자유주의의 교조적 원칙으로, 달리 말하면 자본운동의 무한한 자유를 의미한다.

우선 신문법, 방송법 등 미디어 관련법을 살펴보자. 지난 7월 22일 통과된 신문법, 방송법 등의 내용을 종합하면, 하나의 자본 주체가 신문사와 방송사를 동시에 겸영하고, 기존의 초대형 자본이 방송사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터주겠다는 기본 취지를 담고 있다.

   
  ▲ 사진=김경탁 기자

자본운동, 무한한 자유 획득

그런데 ‘미디어 관련 법률’에 담긴 이러한 기본적 법 정신은 금융지주회사법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 동안 한국 자본주의는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일종의 방화벽을 설치함으로써 소위 ‘금산분리’ 정책을 고수해 왔으나, 이날 탈법적인 날치기 법 통과로 이제 대기업이 은행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 기존의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자본운동의 자유를 배가시켜준 것이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상식과는 달리 우리는 그동안 아무리 많은 자본을 갖고 있다 해도 신문과 방송을 함께 가질 수 없었고 산업자본이 금융을 소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본에 대한 이러한 규제는 거의 예외 없는 세계적 추세였다. 그럼 우리가 이렇게 신문과 방송을 나누어 놓고 금융과 산업을 분리시켰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자본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상호 견제와 균형, 기능의 분리라는 원리 위에서 존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본이란 사회적 통제 아래 있을 때는 일정하게 생산적인 기능을 수행하지만 이 통제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 탐욕적인 속성으로 인해 자신을 낳아준 사회를 위협할 만큼 위험한 문제를 잉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가 개입하여 이들 자본에 대해 법률의 형태로 적절한 규제를 시행함으로써 시장실패를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물론, 불필요한 규제는 제거하는 게 옳다. 그러나 자본의 역할 분리를 촉진시켜주는 최소한의 법률적 규제조차 해제한다면, 그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자본운동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우리사회의 고장난 나침반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이미 작년 하반기 미국에서 대책 없는 신자유주의 규제완화의 결과로 금융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 장치조차 없음으로 인해 미국 경제가 당한 금융위기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오바마 정부가 지난 6월 발표한 금융시스템 개혁에 관한 보고서는 금융기관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감독’을 주문하고 있으며, “금산분리 정책은 재확인되고 강화돼야 한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시장을 시장답게 만드는 규제

사실, 이러한 규제완화는 자유주의자들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시장 경쟁’을 저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문과 방송의 차단 벽을 무너뜨리고 금융과 산업자본의 칸막이를 없애는 것은 시장논리 차원에서도 잘못된 것이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시장을 시장답게 만들기 위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 단독자본이 아무런 차단 벽 없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시장은 시장이 아니라 독점자본의 운동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그 동안 입만 열면 규제완화를 주창해온 신자유주의 흐름에 대해 일관된 반대 입장을 견지해 왔다. 신자유주의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적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공공부문의 극소화’와 규제완화를 통한 ‘경쟁 시장’의 완전한 자유를 모든 문제의 해법인 냥 주장하지만, 사실 자본의 생산적 역할은 적절한 규제와 통제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미디어법과 금융지주회사법, 이 두 가지 법률이 같은 날 통과되었다는 점에서 공포에 가까운 위기감을 느낀다. 7월 22일 당시 느꼈던 우리의 공포는 특정 산업자본이 금융을 지배하고, 또 다시 그 힘으로 신문과 방송을 장악하는 끊임없는 자본의 확장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괜한 공포가 아니다.

자본의 속성이 아무런 제한 없이 언론 권력에 그대로 적용된 사례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언론재벌 출신인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는 신문, 방송을 두루 장악한 힘으로 총리가 되었다. 베를루스코니의 집권 이후 이탈리아 경제는 깊은 침체에 빠졌고, 베를루스코니 자신은 많은 부정을 범하기도 했다.

한국판 베를루스코니 출현 보증

그러나 그는 언론의 비판에 노출되지 않은 채 15년째 총리를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신문과 방송을 함께 쥐고 흔드는 언론장악의 힘이었던 것이다. 하물며 조선, 중앙, 동아일보의 보수적 괴력이 산업자본과 결합하여 방송을 장악한다는 상황 설정은 한국판 베를루스코니의 출현을 보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마디로 지난 7월 22일 한나라당의 의회 폭거 이후 우리 사회는 위기에 빠졌다. 자본운동의 기능별 차단막을 설치해 자본이 돈놀이의 성격보다는 사회를 성장, 발전시키는 생산적 기능에 종사하도록 하겠다는 우리 사회의 기본구상은 이제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졌다.

우리 사회는 점점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 되고 있다. 장차 자본만 증식하고, 사람은 더 이상 살 수 없는 그런 세상이 올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역동적 복지국가의 꿈도 공염불이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신자유주의 규제완화와 날치기 법률 통과에 저항해야 하는 이유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신자유주의 규제완화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해운대 앞바다에서 옷도 제대로 못 걸친 채 위태롭게 홀로 서 있는 우리의 안타까운 자화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역동적 복지국가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은 너무도 분명하다 하겠다.

2009년 7월 30일
사단법인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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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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