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배자는 신, 피지배자는 짐승
        2009년 07월 29일 02: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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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라미드 벽화 <곡하는 여인들> BC 1320년경

    죽음에 대한 의식과 종교의 발달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고와 생활은 상당 부분 종교적인 요소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었다. 나일 강의 범람에서 사람이나 동물이 갑자기 죽는 것에 이르기까지, 인간생활과 자연의 모든 것들을 신이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미술이나 문학, 나아가서는 통치 행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삶의 영역에서 종교가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이집트 초기의 고왕국(BC 2755~2255년)의 통치 형태는 신정 정치였으며, 이후 제국 시대의 군사적 파라오들도 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했다. 이집트인들은 절대적 통치자인 파라오의 지배하에 살았는데, 파라오는 신적인 존재였으며, 오직 파라오의 책임 하에 사람들은 종교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 때문에 고대인들이 가졌던 사고 체계를 확인하는 데 있어서 가장 유용한 역할을 하는 것이 종교에 대한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지역에서나 종교적인 의식은 대체적으로 인간의 죽음과 깊은 관련을 갖고 발생한다. 이미 신석기 시대 이래로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생각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청동기를 거치면서 영혼불멸사상이 체계화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온갖 예술적 표현수단은 죽음과 연관된 그들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집중된다.

    흔히 이집트의 미술을 “죽은 자를 위한 미술”이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확실히 그들의 미술은 살아있는 사람의 미적 충족이 아니라 영혼을 위한 것이었다. 당시에 조각가라는 말은 “살아있게 하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벽화의 한 부분인 <곡하는 여인들>을 보면 이집트인들이 갖고 있던 죽음에 대한 특별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집트에서는 장사를 지낼 때 고용된 사람들을 동원했다고 한다. 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유족의 슬픔을 돋우는 역할을 했다. 그림을 보면 거의 20명에 이르는 여인들이 하늘로 손을 치켜들고 울고 있다. 모든 여인의 눈 밑으로는 한 없이 흐르는 눈물방울이 묘사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여인들이 모두 흰색 옷을 입고 머리를 땋고 있는 것인데, ‘곡하는 여인’들에게 요구되었던 모습이었던 것 같다. 머리를 땋은 것은 아마도 땋은 머리와 눈물이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수많은 여인을 고용해서 죽음에 대한 슬픔을 강조했던 것만으로도 이들이 죽음의 문제를 얼마나 특별하게 생각했는가를 알 수 있다. 또한 이 여인들이 하나같이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죽은 자가 하늘 어딘가에 있는 또 다른 세상으로 간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 <투탄카멘의 마스크> BC 1320년경

    죽음에 대한 의식, 영혼불멸이라는 사고는 필연적으로 내세관을 형성해낸다.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음 세상에서도 별도의 삶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는 내세를 위해서는 현세에서 준비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아직 영혼과 신체의 분리라는 사고가 뚜렷하게 형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후 생활이란 형태 없는 영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뜻했다. 죽음과 함께 영혼은 육체를 떠나지만 그것은 또 다시 육체로 되돌아와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것이었다.

    이집트인이 죽은 사람을 미라로 만들어 육체가 썩지 않도록 보존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내세를 위해서, 인간이 지상에 남긴 시신의 소멸을 방지하기 위한 정교한 준비가 행해져야만 했다. 시신이 미라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부자들은 자신들의 미라에 음식물과 기타 생필품을 공급하기 위해 막대한 재산을 남겼다.

    그리하여 이집트의 물적 자원은 그 상당량이 정교한 무덤을 만들고 사제들을 지원하는 데 소모되었다. 우리가 고대 이집트의 미술작품이라 부른 것들은 주로 신을 위한 제물이나 제사를 위해 또는 무덤의 부장품으로 제작된 것들이다.

    또한 종교는 고대나 현대를 막론하고 정치적인 요소와 매우 긴밀한 연관을 지니고 발전한다. 특히 고대 그리스 이전의 사회에서는 종교와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거의 일체화된 모습을 지닌다.

    종교적인 신의 정통성은 파라오에게로, 또한 파라오는 신을 대신하여 인간을 통치하는 존재로서 등장한다. 신약 성서에 나오는, “케사르의 것은 케사르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 바쳐라”라는 가르침은 이집트인 입장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케사르는 파라오이며 파라오는 신이었기 때문이다.

    신격화된 파라오의 위세를 가장 화려하게 보여주는 것이 <투탄카멘의 마스크>일 것이다. 이 마스크는 왕의 유해 머리에 씌워진 것으로, 왕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순도 높은 금으로 만들어진 두꺼운 판을 안쪽에서 망치로 두드려 성형한 것이라고 한다.

    마스크에는 이집트 전 지역을 통치하는 지배자임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의 상징이 들어있다. 먼저 오직 왕만이 쓰는 두건이 있고, 나일 강의 신인 오시리스신과 일체임을 나타내는 붙임수염이 보인다. 또한 이마에 달려 있는 코브라와 양 끝에 매의 머리 모양으로 된 가슴 장식 등은 상하 양 이집트의 지배자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의 형상 변화와 자연에서 독립하기 시작한 인간의 사유

    종교적인 의식은 경배의 대상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종교적인 경배의 대상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천의 과정을 겪는다. 원시시대에는 동물이나 자연에 대한 숭배가 일반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아직은 인간의 생산력이 일천하여 자연현상에 지배될 수밖에 없었던 원시사회에서 자연이 인간에게 두려움의 대상, 경배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흔히 토템사상이라 부르는 현상이 이집트에서도 나타난다. 고왕국 이전의 이집트인들은 자연의 경이에 놀라고 사자의 사나움, 악어의 강건함, 송아지를 보살피는 어미 소의 자애로움 같은 동물의 특성에 찬탄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때문에 이들에게 신은 동물의 모습을 띠고 나타나곤 했다. 나중에 인격화된 신으로 대체되고 나서도, 특히 민간 신앙에서는 상당 기간 그 흔적이 남아있게 된다. 고대 이집트는 거의 모든 시대에 걸쳐 신들과 관련된 동물을 신전에서 사육했다.

    태양․대지․물의 신을 상징하는 악어, 환희와 사랑의 여신을 나타내는 고양이, 신성한 황소 등이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신격화된 동물들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사후에는 미라로 만들어졌다.

       
      ▲ 이집트조각 <고양이>

    이집트에서 흔히 발견되는 조각인 <고양이>는 위엄스러운 자태를 풍긴다. 머리와 목에는 화려한 장식을 두르고 있다. 코에도 코걸이에 해당하는 장식을 달고 있다. 고양이는 특히 이집트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신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집트 기자의 대 피라미드 근처에는 고양이를 위한 무덤이 따로 있다.

    당시에 고양이 여신 ‘바스데다’를 위한 제사가 매년 열렸고 각지로부터 순례자가 70만 명이나 모였다고 한다. 인간이 고양이를 죽이면 고의건 실수건 사형에 처했다. 고양이가 죽으면 가족들은 눈썹을 밀고 3개월 동안의 애도 기간을 지켰다.

    이집트 고대 역사에 의하면 BC 5세기 경 페르시아가 이집트를 습격하였는데, 이때 페르시아군은 이집트인들이 신앙의 대상인 고양이를 다치게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방패에다 고양이를 매달고서 이집트인들과 싸워 놀랄만한 성과를 올렸다고 한다. 고양이가 성스러운 동물로 자리를 잡은 것은 농경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쥐 같은 동물로부터 곡식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소중한 동물로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 이집트벽화 <아누비스>

    하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점차 동물신이 인간의 모습과 섞이기 시작한다. 인간의 지혜가 발달하고 자연의 재앙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동물에 대한 신비성도 줄어든다. 인간이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향상시켜 가면서 신의 모습도 동물에서 인간으로 변모한다.

    하지만 언제나 전통은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게 마련이다. 특히 이집트에서는 매우 오랜 기간 동물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신이 지배력을 가졌다. 고왕국 초기부터 이집트인은 자연, 동물, 인간이라는 세 개의 개념을 혼합시켜 신들에게 인간성을 부여해 갔다.

    대표적으로 <아누비스(Anubis)>는 인간의 신체를 가지고 있으면서 머리는 재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누비스는 저승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 죽은 자를 오시리스의 법정으로 인도하며, 죽은 자의 심장을 저울에 달아 생전의 행위를 판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집트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지역에서 신의 모습은 처음에는 토템에 해당하는 동물의 모습에서 반인반수의 절충적인 모습을 거쳐 인격화된 신의 모습으로 변화가 일어난다. 물론 그 과정은 문화권에 따라 일정한 차이를 보인다. 인간의 형상을 한 신으로 완전히 교체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집트처럼 나중에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이 출현한 이후에도 전 기간에 걸쳐서 공존하는 경우도 있다.

    인간의 모습으로 전면적인 변화가 이루어진 경우에는 반인반수의 모습이 악마나 기괴한 모습의 괴물로 격하되는 경우도 나타난다. 미케네 문명에서 보이는 황소머리에 사람의 몸을 가진 크노소스의 괴물, 상반신은 사람인데 말의 아랫도리를 가진 켄타우르스, 머리카락이 뱀으로 덮여있는 메두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집트에서는 고왕국 시기를 고치면서 사람의 모습을 한 신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태양의 아들인 파라오를 비롯하여 오시리스(Osiris), 이시스(Isis) 등 주요한 숭배 대상이 되는 신들은 모두 사람의 모습을 띠게 된다.

    하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이집트에서는 반인반수의 신은 괴물로 격하되는 것이 아니라 부차적인 신의 지위를 인정받으며 이집트 전 기간에 걸쳐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신 내에서도 위계질서가 형성되어 주요한 신과 부차적인 신으로의 분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인간 형상을 한 신으로의 변화는 인간 지혜의 발달, 인간이라는 주체적 인식 형성 등의 정신적인 원인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기간 자연에 속박되어 있던 인간이 자연에서 독립하는 과정이 신의 형상으로 나타남을 의미한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인간의 인식이 자연과 구별되어 독립적인 지위를 얻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철학적 사유의 발전 단계를 나타내는 징표이기도 하다. 고왕국 시기 후반부에 이르러 문학과 의학이 발달하고 다양한 영역에서 문화가 꽃을 피우고 있다는 점에서도 독립적인 사유의 발전과정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 아부심벨 신전 <람세스 2세>

    다른 한편으로 사회 공동체가 점차 체계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고대국가의 형성과정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국가 형성은 대부분 다양한 부족들이 통합되어 나가는 과정을 거친다.

    대체적으로 고대 국가는 각각의 부족 간 전쟁을 거쳐 연맹 왕국을 이룬 다음에 성립된다. 보통은 승리한 부족이나 연맹의 신은 인간 형상 단계의 신으로 격상되고, 패배한 부족의 경우 반인반수 단계에 머물거나, 심한 경우 괴물로 전락하는 경우들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반인반수로서 부차적인 신의 지위나마 차지했던 경우는 일정하게 종속적인 지위에서 연맹에 편입되었던 경우가 많고 공격에 의해 파괴된 부족의 경우는 신에서 요괴로 둔갑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이집트 고왕국 후기에 이르러 여러 개로 나누어진 주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파라오는 강력한 통치체제를 만들어간다. 이때가 최초의 피라미드가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성직자들은 이집트 신화에 나타나는 여러 신, 특히 각 지역 고유의 지역 신들에 대해 연구하며 일관된 신들의 체계를 수립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 <나일강의 신 오시리스와 태양신 레>

    인격적인 신의 체계화와 추상화

    인간의 형상을 한 신은 등장과 함께 체계화 과정을 거친다. 이는 이집트의 통일과정과 맥락을 같이 하면서 이루어진다. 소박한 다신교에서 유일신교의 맹아적 형태로 발전한다. 동물 신이나 반인반수 신은 각 지역 차원에서 오랜 기간을 거쳐 형성된 지방 신의 성격이 강했다. 각 지방의 수호신으로서 의인화된 존재들이었다.

    이집트의 정치적․영토적 통일은 신의 통합으로 나아간다. 신들의 신이 등장하게 된다. 태양신인 레(Re)를 정점으로 한 체계화 작업이 진행된다. 태양 신앙은 국가의 공인 종교로써 역할을 하게 된다.

    태양신은 백성들에게 집단적인 불멸성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파라오는 지상에서 이 신앙의 살아있는 대리인 역할을 부여받은 것으로 규정된다. 자연에서 출발하여 의인화된 수많은 신들은 인간 형상을 한 또 다른 신, 나일 강의 신인 오시리스(Osiris)로 통합된다.

    후기로 가면서 파라오들은 신들을 체계화하는 작업과 함께 새로운 교리를 제시한다. 특히 당시 파라오 중에 아크나톤(Akhnaton)은 적극적으로 유일신교를 향한 일종의 종교혁명을 시도한다.

    그는 이집트가 파국적인 침입을 받는 후에 세워졌던 신왕국(BC 1560~1087년) 시대의 18대 왕이었다. 그는 백성들이 믿는 각 지역의 신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았고 태양신만을 숭배하도록 했다. 기존의 신들과 단절을 위해서 아예 왕궁을 다른 신들을 믿는 사제들의 신이 미치지 않는 지역으로 옮기기도 했다. 그는 태양신을 만물의 창조주로 강화시킨다.

    만물의 창조주로 규정한다는 것은 지방의 신이나 이집트의 신을 넘어서 우주 전체를 관장하는 신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파라오는 태양신에게 예배를 드리고, 이집트의 일반인들은 살아 있는 신인 파라오에게 예배를 드려야 했다.

       
      ▲ <황금 의자>

    더 나아가서 그는 태양신에게서 일정하게 인격적인 요소를 약화시키고 추상화된 절대자의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나일강의 신 오시리스와 태양신 레>에서 보이듯이 원래 태양신은 매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점차 인간의 모습에 머리 위에 둥근 원반을 두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점차 태양을 상징하는 원 모양의 추상화된 형태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가 통치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황금 의자>를 보면 커다란 관을 쓴 왕이 의자에 앉아 그 앞에 선 왕비와 마주하고 있는 조각이 있다.

    왕과 왕비의 머리 위에는 태양의 원반, 즉 아톤신이 표현되어 있다. 그 빛이 몇 개의 선으로 이들을 내리쬐고 있다. 태양신이 추상화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크나톤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이후의 파라오들은 기존의 사제들과 결탁함으로써 과거의 신앙을 회복시켰다. 흔히 이에 대해 새로운 교리가 대중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을 하지만 이는 단편적인 접근일 수 있다.

    여기에는 이집트 고대국가체제의 한계도 일정하게 작용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고대국가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지역에 근거를 둔 부족 세력들의 힘이 무시하지 못할 만큼 컷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다신교 체제를 유지하고자 했고 결국 이후의 파라오들은 이들과 타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종교와 철학적 사유의 발전

    고대인들에게 종교는 철학적 사고의 한 표현 형식이었다. 종교적 사고의 추상화, 체계화는 사유 능력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죽음 이후의 내세관에서도 성숙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에는 영혼이 내세에서 영원한 삶을 영위한다는 소박한 형태를 띠었다.

    하지만 중왕국 후기로 접어들면서는 죽은 자가 생전의 행실에 대한 심판을 받기 위해 오시리스 앞에 서게 된다는 믿음이 형성된다. 오시리스는 죽은 자의 심장과 진실이라는 추를 저울에 다는 것을 감독한다.

    이 시험에 실격하면 영혼을 삼키는 짐승이 기다린다. ‘메리카레 왕을 위한 교훈’이라는 파피루스에는 “그대 목숨이 있는 한 바르게 살라. 사람은 모두 사후의 세계가 있어 저지른 일은 모두 시체 옆에 내려쌓이느니라.”는 글귀가 있다. 소박한 내세관이 점차 윤리적 가치관을 지닌 내세관으로 성숙해져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태양신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수호신의 의미가 강했으나 정직․정의․진리의 신이자, 우주의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는 신으로서의 성격이 강화된다. 특히 아크나톤은 태양신이 세계의 도덕적 질서의 창시자이며, 고결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보상을 베푸는 존재라고 주장함으로써 이집트 종교의 윤리성을 회복시켰다. 정직, 자비와 같은 윤리적인 사고와 함께 일관성과 질서 등의 논리적인 사고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주 창조 신화에서도 지적인 요소의 성숙을 발견할 수 있다. 이집트인들의 우주 창조신화는 다분히 철학적인 성격을 지닌다. 신화에 의하면 우주를 창조한 프타 신은 “자신을 심장으로 드러내는 존재, 그 혀로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였다. 신이 그의 심장과 혀로 세상을 창조했다고 한다.

    이집트인들에게 심장은 단순한 육체가 아니라 모든 영(靈)적인 것의 상징이었다. 또한 혀는 말을 나타낸다. 이 우주의 창조가 어떠한 자연적인 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정신과 말이 지닌 창조력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집트인들이 가지고 있던 형이상학적인 사고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형이상학적 사고의 발전은 이집트 미술의 특징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점차 현상적인 사실보다 추상화된 초월적 영역을 중시하면서 미술에서도 자연주의에서 형식주의로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자신의 눈으로 본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충실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지식을 통해 형성된 표상의 형식으로 세계를 표사하게 된다.

    이들은 사소한 세부 묘사는 생략해버리고 사물의 본질적인 것을 유형화하여 묘사하는 데 관심을 집중시킨다. 이 과정에서 기하학적 규칙성을 보이는데, 이집트의 조각이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마치 한 가지 법칙이 적용되어 배치된 것처럼 보이는 일관된 표현 양식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미술에서 흔히 양식(樣式)이라고 부르는 유형화된 표현이 지배하게 된다.

    이는 각각의 사물에 대한 즉자적인 관찰을 넘어서서 이를 체계화하여 각 사물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부여하는, 철학적 사고의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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