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산이 아니라 대화를 간절히 원합니다"
    By 나난
        2009년 07월 28일 10: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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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7일 오늘은 이곳 굴뚝에 올라온 지 76일이자 점거파업을 시작한 지 67일째입니다.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에 맞선 굴뚝농성이 38일만에 끝났다고 하니, 그 때보다 두 배나 되는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이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 우리 아이들이 있는 밝은 세상을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사진=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오늘로 물이 끊긴 지 8일째입니다. 헬기의 최루탄 난사와 함께 경찰의 전면적인 공격이 시작된 지도 8일째입니다. 온 몸에 최루가스를 뒤집어 써 수포가 생긴 몸을 씻지도 못한 채, 땀이 비 오듯 흐른 몸에 물 한 바가지 뿌리지도 못한 채, 밤낮으로 계속되는 선무방송의 고통 속에서 쪼그리고 선잠을 자야 하는 공포의 8일 낮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제 경찰헬기는 굴뚝으로 최루봉투탄을 투하했습니다. 한 봉의 봉투탄만으로도 좁은 굴뚝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그러니 8일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같이 엄청나게 쏟아부은 최루탄으로 도장공장 옥상 동지들의 괴로움이 얼마나 클 지 상상도 안 됩니다.

    서울에서는 낮에 소나기가 퍼부었다고 하지요? 그러나 여기 평택엔 그렇게 쏟아지던 비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하늘에서는 단비가 아니라 최루탄 폭우만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제발 소나기가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벼락이 두렵긴 하지만 차라리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몰려왔으면 좋겠습니다. 도장 굴뚝 위의 최루가스를 모두 쓸어가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 빗물을 받아 최루가스와 땀범벅에 썩어가는 몸을 깨끗이 씻을 수 있게 말입니다.

    물이 끊긴 공포의 8일 밤과 낮

    오늘 아침, 살인진압이 시작된 지 처음으로 도장공장 안에서 조합원 집회가 열렸습니다. 최루액에 지칠 만도 한데, 하얀 작업복이 누더기가 되고, 얼굴은 씻지 못해 꾀죄죄해도 조합원들의 눈은 불타는 태양처럼 반짝였습니다.

    결코 정리해고 철회 없이는 한발도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굳은 각오의 모습이었습니다. 먹을 물, 식량 모두 부족하지만 아무도 원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부족하면 나누어 먹자는 조합원들의 말에 가슴이 매어졌습니다.

    한상균 지부장은 물과 가스를 중단하면 길면 5일, 짧으면 3일정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오고 있고, 먹을 것 풍부하지는 않지만 갈증 해소를 위한 끓인 물과 주먹밥은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한 지부장의 말처럼 정말 회사를 살리려는 마음은 관리인과 경영진이 아니라 우리 조합원이라는 사실이 가슴 깊이 전해졌습니다.

    “물과 식량 부족하지만 나눠먹자”

       
      ▲ 사진=금속노조 쌍용차지부

    26일 오후 4시 43분. 저에게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 빠른 시간 내에 나오길 바랍니다.”(발신번호 0004) 회사가 보냈는지, 경찰이 보냈는지 알 수 없는 ‘0004’라는 번호로 얼마나 많은 동지들에게 이렇게 문자를 보냈을까요?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고요? 언제 얼마나 어떤 내용으로 협상을 했나요? 7월 24일 오후 금속노조가 대화를 요청하고, 여야3당 국회의원과 평택시장의 중재로 25일 아침 10시 교섭이 재개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교섭 한 시간 전에 회사는 일방적으로 교섭을 거부했습니다.

    금속노조와 중재단이 다시 교섭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계속 외면하다, 여론의 질타가 두려웠는지 평화적 해결에 동의한다며 교섭을 하겠다고 했지만, 교섭 날짜도 잡지 않은 채 굴뚝과 도장공장을 향한 무차별 공격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날 경찰은 곤봉으로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내리치며 대화가 ‘쇼’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줬습니다.

    대화의 문이 열리길 기다리던 우리들은 오늘(27일) 아침 7시 일주일만에 처음으로 조합원 결의대회를 갖고 다시 마지막으로 교섭을 요구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어 평화구역을 설정해 모든 것을 열어놓은 채 조건 없는 대화를 하자고 간절히 호소하였습니다.

    언제 대화를 했는데 교섭이 없다고요?

    그런데 기자회견을 하든 시간, 경찰헬기가 나타나더니 회견장에 최루봉투탄을 투하하였습니다. 그러다니, 곧바로 회사는 이렇게 선무방송을 하였습니다. “언론플레이할 때, 잘 나갈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의약품도 없고 물도 없으니까 평화적으로 하자는 것이냐, 대화를 구걸하는 것이냐? 더 이상의 대화는 없다.”

    그리고 회사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해고근로자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먼저 불법 점거를 풀어야 한다"며 평화구역 설치조차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이영희 노동부장관은 기자들을 만나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생존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반 자본투쟁으로 정치적 이념이 상당히 깔려있다. 회사가 파산하든 어떻게 하든 끝까지 가려는 자세는 대단히 잘못됐다. 불법적인 점거행위를 빨리 그만둬라.”

    도대체 왜 노동조합의 조건없는 대화마저 거부하십니까? 쌍용차의 파산을 막기 위해, 4천여 노동자들과 협력업체 노동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의 목숨과도 같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대화로 해결하자고 하는데, 왜 대화를 하는 흉내조차 내지 않고 거절하십니까?

    이영희 노동부장관의 얘기처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파산을 기다렸다가 파산의 책임을 노조의 강경투쟁으로 몰기 위한 것은 아닌가요? 그렇지 않다면 왜 대화조차 거부하시나요? 정말 믿고 싶지 않지만 그런 시나리오가 아닌가요?

       
      ▲ 사진=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만약 정부와 대화를 거부하면서 쌍용차 5천여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 협력업체 노동자와 그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파산이라는 불장난을 하려는 것이라면 이는 쌍용차와 협력업체 노동자와 가족을 넘어, 온 국민의 단죄는 물론 역사의 단죄를 받을 천인공로할 일일 것입니다.

    천인공로할 파산 시나리오

    그렇지 않다면, 정말 평화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당장 대화에 나서야 합니다. 국민여러분, 회사가 대화에 나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평화적으로 사태를 해결하고, 이곳에서 평생을 바쳐 일했던 노동자들이 다시 이 공장에서 땀 흘려 일할 수 있도록 응원해 주십시오.

    무쏘, 렉스턴, 체어맨, 카이런… 우리의 기술과 땀방울이 담긴 소중한 차들이 다시 국민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2009년 7월 27일 밤 70m 굴뚝에서 단비를 기다리며 쌍용차비정규직지회 부지회장 서맹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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