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긴데 웃고만 있을 수 없는 정치우화
    By 내막
        2009년 07월 26일 03: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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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집단이나 지도자(와 그를 둘러싼 무리)는 있게 마련이지만 지혜롭고 현명한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요순시대의 태평성대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때로는 악한 지도자와 이들을 선택하는 어리석은 시민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켈름도 마찬가지다.

       

    ▲ 표지

    『바보들의 나라, 켈름』(아이작 B. 싱어 글, 유리 슐레비츠 그림, 강미경 역, 두레아이들, 69쪽. 8900원)은 제목 그대로 ‘바보들’이 사는 나라에서 가장 바보인 지도자들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대응을 하고, 그 대응이 어떻게 더 나쁜 결과를 낳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어디서 본 듯한 바보들의 바보짓

    켈름의 첫 통치자는 현자 중의 현자(바보 중의 바보이기도 하다)라 불리는 황소 그로남과 다섯 현자들(역시 바보들이기도 하다).

    켈름은 모든 게 부족하지만 늘 행복하고 평화로웠지만 원시 사회에서 문명 사회로 발전하면서 위기가 닥쳐온다. 위기, 문제라는 단어가 생겨나고, 사람들은 마을 사정이 좋지 않다는 데 주목하게 된 것이다.

    바보 지도자들이 내놓는 ‘위기 극복방안’은 ‘위기’라는 말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서 사용 못 하게 하면 위기도 잊혀질 것이다, 월요일과 목요일을 단식의 날로 정해서 빵을 절약해야 한다, 모든 물품에 높은 세금을 매겨 부자들만 사고 가난한 사람들은 살 수 없도록 하자,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자들이 자는 동안 부자들의 집을 털게 하자 등등.

    독자들이 이런 ‘방안’들을 읽으면서 우스워도 편하게 웃을 수 없는 것은 이 농담 같은 이야기들과 비슷한 일들이 우리 현실에 실제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켈름의 바보 지도자들이 마침내 택하는 ‘방안’이 전쟁이라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갑갑한 마음마저 들게 된다. 

    아이작 싱어는 이 바보 지도자들의 이름과 그 바보스런 행동을 통해 웃음과 함께, 어리석은 지도자들의 모습과 권력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데, 작가의 날카로운 풍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전쟁에서 대패한 그로남을 쫓아내고 정권을 잡지만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정책을 추구하다 주민들의 반발로 역시 권좌에서 쫓겨나는 부넴 포크라카와 혁명당, 포크라카가 불러일으킨 혼란을 틈타 정권을 훔친 ‘도둑’ 파이텔 일당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어리석고 이기적인 지도자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을 합리화하고 찬양하는 시인 제켈은 위선적이며 기회주의적인 인간들의 모습을 매우 적나라하고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게다가 이렇게 하나같이 바보짓을 일삼는 ‘남자들’을 풍자하면서 작가는 그 대안으로 여성들을 내세운다. ‘바보’들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여성들이 통치하는 새로운 시대로 전환하게 된 켈름의 미래가 ‘밝다’고 한 것은 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닐까.

    한편 이 책의 원제는 “The Fools of Chelm and Their History(1973),” 즉 ‘켈름의 바보들과 그들의 역사’이다.

    잉어에게 내려진 사형 선고를 집행하기 위해 잉어를 물에 빠트려 ‘익사’시키는 사람들, 명절날 쓸 신 크림(우유의 지방을 유산균으로 발효시켜 시게 만든 것)이 부족하자, 마을에 풍부한 물을 신 크림이라 부르고 신 크림을 물이라 부르게 해서 신 크림 부족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현자들 등의 요절복통 이야기 20여 편을 담은 『행복한 바보들이 사는 마을, 켈름』(1966~68)의 ‘프리퀄’이라 할 수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저자 아이작 싱어는 『행복한 바보들이 사는 마을, 켈름』의 이야기들을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고 무구한 가족을 파괴하는 어리석은 전쟁과 잔인한 박해로 인해 어른이 될 기회를 잃어버린 수많은 아이들에게” 바쳤는데, 그의 이러한 전쟁과 폭력에 대한 비판은 이 책에서도 계속된다.

    ‘위기’의 대책은 전쟁보다 노동

    어리석은 황소 그로남과 다섯 현자들이 켈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도, 도둑 파이텔이 정권을 빼앗은 다음에 벌인 것도 전쟁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하나같이 실패하고 모두에게 아픔과 상처만 남긴다.

    결국 이 모든 혼란을 겪고 나서야 ‘일(노동)만이 그들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급기야 “우리는 세상을 정복하길 바라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게 된다. 이 해학적인 우화는 전쟁뿐만이 아니라 현대 문명의 이기적인 모습들, 즉 범죄, 돈, 폭력 들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이렇다 할 기교를 부리지 않은 그의 이야기들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거침없이 술술 풀려 나가는 데 그 묘미가 있는데, 그가 천부적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다”라는 평가처럼, 이 책은 폭소를 자아내는 풍자를 통해 오늘의 세계를 다시 보게 해주는 뛰어난 우화로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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